“우리 반에 특별한 전학생이 왔어요.”
   1교시 시작 전 선생님이 말했다. 곧 교실 앞문이 열리고 낯선 아이가 들어왔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 아이를 봤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큰 남자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선생님 옆에 섰다.
   “아민이는 시리아라는 나라에서 왔어요. 아직 한국말이 많이 서툴러요. 한글은 좀 배우긴 했다는데. 아민이가 우리나라와 우리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면 좋겠어요. 아민이는 여러분과 같은 열한 살이에요.”
   선생님이 말하고는 교실 뒤쪽에 놓인 빈자리로 아민을 안내했다.
   “아, 시리아? 거기 전쟁 난 나라죠? 그래서 난민이 생겼대요. 뉴스에서 봤어요.”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민이 고개를 숙였고 까만 곱슬머리가 바르르 떨렸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집중하는 아이는 별로 없었다. 다들 아민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쉬는 시간만 기다렸다. 그러고는 종이 치자마자 우르르 아민에게 몰려갔다.
   “아민, 우리나라 이름 같다. 아민이라고 부르면 돼?”
   “우리나라에 언제 왔어?”
   아이들이 아민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멀리서 눈빛 총알을 발사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속눈썹 봐. 정말 길다. 여자 같아.”
   “한국말 얼마나 할 줄 알아?”
   “무서웠겠다. 우리나라엔 어떻게 온 거야? 비행기 타고 왔어?”
   아민을 둘러싼 채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리고 아민의 목소리는 없었다. 아이들이 말을 걸 때마다 아민이 머리는 점퍼 속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꼭 겁먹은 거북이 같았다.
   “말하기 싫은가?”
   “한국말 몰라서 그런가 봐.”
   아민이 반응이 없자 아이들은 곧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피식.
   책상에 엎드려 있던 정수가 일어나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아이들 하는 꼴이 우스웠다.
   “그냥 좀 둬. 귀찮게 하지 말고.”
   정수가 한마디 하고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오, 정수 시크한데?”
   뒤에서 태성이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뭐야, 관심 없는 척? 시크 정수네.”
   시크 정수. 정수는 그때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지금처럼 새로 전학 온 존재에 대해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았다. 저 관심과 호들갑은 딱 이틀이면 사라질 것이었다. 아니 이번엔 좀더 오래 가려나? 한 5일?
   다음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고 교과서에 있는 빈칸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교실엔 연필이 사각대는 소리만 가득했다.
   “화…… 아자……”
   그때 이상한 소리가 났다. 신음 같기도 했다. 아이들이 모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민이었다.
   “아민, 왜 그러니?”
   선생님이 놀라서 다가갔다.
   “……”
   아민은 커다란 눈을 끔벅이기만 할 뿐 말을 안 했다.
   “어디 아프니?”
   선생님이 물었지만 아민은 입을 꾹 다물고 열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쏠리자 아민이 머리는 다시 점퍼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이 되었다.
   “연필 없는 거 아니에요?”
   누군가 소리쳤다. 아민은 필통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필통이 아예 없는지도 모른다.
   “화장실 가고 싶은 거네.”
   바쁘게 연필을 굴리던 정수가 아민을 보더니 말했다.
   “아민, 정말 화장실 가고 싶은 거야?”
   선생님이 묻자 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아이들이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화장실 어디 있는지 모를걸요.”
   정수가 교과서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겠네. 그럼 정수가 화장실에 좀 데리고 가줄래?”
   “제가요? 아, 눼.”
   정수가 되물었다가 바로 대답을 하고는 아민이 자리로 갔다. 아민이 벌떡 일어나 정수를 따라나갔다.
   “쳇, 시크한 척, 관심 없는 척하더니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았대? 티는 안 내면서 은근 관심은 있었나 봐.”
   태성이가 어이없어했다.
   정수와 아민은 교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 교실이 복도 끝이라 화장실이 좀 멀다. 싸고 싶으면 미리미리 움직여야 돼. 안 그럼 원치 않은 관심을 받게 되지. 큭.”
   정수가 말을 해놓고는 쿡 웃었다. 아무 반응이 없다.
   “음, 못 알아듣는구나.”
   “……”
   “한국 온 지 얼마나 됐냐?”
   “……”
   아민이 입은 벌어질 줄 모르는 조개 같았다. 머쓱해진 정수는 다시 시크 모드로 돌아가 조용히 걷기만 했다.
   “여기가 남자. 저기는 여자. 화장실은 만국 공통이니까 사용법은 안 알려줘도 되겠지?”
   화장실 앞에서 정수가 설명을 했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아민이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기서 꺾어서 쭉 걸으면 우리 교실이니까 찾아올 수 있겠지?”
   아민이 대답 대신 정수를 봤다. 정수가 많이 보아온 눈빛, 동생 희수의 겁먹은 눈빛이랑 어쩐지 닮았다.
   “기, 기다릴게. 얼른 들어가.”
   당황한 정수가 말했다. 아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수는 화장실 바깥에서 잠시 멀뚱하게 서 있다가 안으로 갔다. 아민이 어느 칸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야, 안에 화장지 있냐?”
   “……”
   “우띠,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영어로 해야 되나?”
   “있다.”
   정수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안에서 소리가 났다.
   “아민이 목소리? 풉, 한국말 할 줄 아네. 꼭 필요한 말은 배웠나보군.”
   정수는 혼잣말을 하며 화장실 밖에서 아민을 기다렸다. 아민이 발음과 억양이 독특해서 히죽 웃음이 났다.
   한참 만에 아민이 나왔다.
   “시원하냐? 야, 너도 여기서 살려면 노력을 해야지.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도 못 하면……”
   정수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민이 눈이 벌겠다.
   “가자.”
   얼떨결에 정수는 그렇게 말해버리고는 교실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민이 정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둘은 말없이 복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설마 울려고 화장실 간 건 아니겠지?’
   교실에 돌아온 정수는 자꾸만 아민에게 눈이 갔다.
   “선생님, 아민이 밥 안 먹어요.”
   급식 시간에 아민이 옆자리에 앉은 소담이가 말했다. 아민은 소담이가 받아준 급식 판에 손도 안 대고 있었다.
   “아민, 혹시 도시락 싸 왔니? 엄마가 도시락 싸서 보낸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이 아민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민이 커다란 눈만 껌벅였다.
   “도시락 안 싸 왔네? 그럼 어쩐다……”
   선생님이 아민이 가방을 뒤져보더니 난감한 얼굴로 아민을 봤다. 정수는 아까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있는 아민이 신경이 쓰였다.
   “음식 재료에 뭐가 들었는지 몰라서 그런 거 같은데, 이것만 빼고 먹어. 이건 돼지고기이고 나머지는 먹어도 돼. 나도 돈가스 못 먹어. 알레르기 있거든.”
   정수가 설명을 했다. 아민이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허얼, 뭐지? 아까의 시크한 정수는 어디로 가고 갑자기 오지랖 정수가 됐냐?”
   태성이가 정수를 놀려댔다.
   “그러게, 나 왜 이렇게 아민이 하고 싶은 말을 잘 알지? 나 혹시 전생에 시리아에서 살았을까?”
   정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딱 3일 만에 아민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 아민에게 다가가는 아이도 눈총을 발사하는 아이도 없었다. 아민이 머리는 이제 점퍼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화장실은 이제 알아서 다니는 것 같았다. 정수는 아민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어엄……”
   수업이 막 시작되려는데 아민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수가 고개를 들어 아민을 봤다. 아민이 우리나라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고? 한번 더 말해 봐.”
   누군가 말했다. 아민은 다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정수는 아민을 살폈다.
   “미술 준비물이 없네? 그래서 그런가?”
   정수가 물었다. 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 희한하다. 어떻게 아민이 생각을 저렇게 잘 알지?”
   몇몇 아이들이 놀라워했다. 선생님이 정수에게 아민이랑 같이 학습준비물실에 가서 준비물을 챙겨오라고 했다.
   “또요?”
   정수가 얼굴을 찡그렸지만 몸은 벌써 아민에게로 가고 있었다. 정수가 나가자 아민이 정수를 뒤따라나왔다.
   “난 왜 자꾸 네 일에 참견을 해서 이런 걸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무슨 네 개인 통역가도 아니고. 너 아니라도 난…… 난 한 명 챙기는 것만으로도 바쁘거든.”
   학습준비물실로 가는 길에 정수가 구시렁거렸다. 아민이 정수를 빤히 봤다.
   “너 아예 한국말 못하는 거 아니잖아? 말을 배워서 해야지, 말을!”
   “……”
   “내 동생도 말을 하는데 네가 왜 못해?”
   아민이 정수의 말을 도무지 이해 못하는 눈빛이다.
   “내 동생은!…… 그러니까 내 동생은……”
   “동새앵?”
   아민이 눈이 커졌다. 꽉 막힌 동굴 같던 아민이 입이 열렸다.
   “아휴, 한국말도 잘 모르는 애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하지 마……”
   아민이 들릴 듯 말 듯 모기 소리 만큼 작게 내뱉었다.
   “뭐어? 너 여태 한국말 못하는 척한 거였어?”
   정수가 소리쳤다.
   “교실. 한국말. 생각……”
   말끝에 아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실에서는 한국말이 생각 안 난다는 거야?”
   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서는 생각이 나고? 참 희한하네. 그지?”
   정수가 비아냥거렸다.
   “있다, 말고…… 뭐?”
   아민이 물었다.
   “있다 말고? 있었다? 없다?”
   “엄따……”
   “엄다 아니고 업, 업따.”
   “동생 있다…… 없다.”
   아민이 눈이 빨개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고개를 푹 떨구었다.
   “동생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정수가 물었지만 아민이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정수보다 앞장서 걸었다. 학습준비물실 앞에 와서 정수가 아민을 잡아끌었다. 정수는 수채 물감과 팔레트와 붓을 챙겨 아민에게 안겼다. 정수가 교실로 향하자 아민도 정수 뒤를 졸졸 따라갔다.
   “형아.”
   교실 앞 복도에 익숙한 얼굴이 정수를 부르며 다가왔다.
   “윤희수, 너 왜 왔어?”
   “혀, 형아.”
   “싸웠어? 누가 너 놀렸어?”
   희수가 대답할 틈도 없이 정수가 질문을 퍼부었다. 희수는 대답을 못하고 눈만 껌벅였다.
   “청수…… 동새앵?”
   아민이 다가와 물었다.
   “됐고, 넌 꺼져.”
   정수가 아민에게 말했다.
   “끄, 끄져.”
   아민이 중얼거렸다.
   “형아, 욕 나빠. 꺼져, 안 돼.”
   희수가 정수에게 소리쳤다.
   “끄져, 꺼져……”
   아민이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는 듯 혼잣말을 계속했다.
   “아휴, 하여튼 이런 말은 빨리도 배우지. 희수 너, 무슨 일이냐고?”
   “혀, 형아, 보오 싶어. 없어. 따……”
   “보고 싶어서 교실 찾아오고 그런 거 하지 말랬지! 지금 수업 시간이니까 얼른 교실 가.”
   정수가 소리쳤지만 희수는 꿈쩍도 안 하고 벽처럼 서 있었다.
   “얼른 가. 지금 무슨 시간이야? 3학년 2반이야, 특수반이야?”
   “……”
   “형 얼굴 봤잖아. 얼른 가.”
   정수가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희수는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했다.
   “그럼 형 교실에 들어간다. 잘 가.”
   정수가 교실 쪽으로 걸어갔다.
   “정수, 정수!”
   아민이 정수 뒤를 쫓아가며 불렀다.
   “왜에?”
   정수가 뒤를 휙 돌아보며 신경질을 냈다.
   “동생.”
   “그냥 놔둬. 저러다 갈 거야.”
   “동생. 아파. 마, 마음.”
   아민이 더듬더듬 말했다.
   “하이고, 쟤는 원래 똥고집이라……”
   “똥?”
   “아니, 아니야. 잘못 말했어.”
   “동생, 뭐, 없다.”
   아민이 미술 준비물을 한 손에 모아들고 한 손이 비었다는 몸짓을 했다. 정수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희수에게 다시 갔다.
   “없어. 없어.”
   희수가 울먹이면서 웅얼댔다.
   “뭐가 없어졌어?”
   정수가 희수에게 물었다.
   “소, 소, 중, 한, 것.”
   희수가 천천히 말했다.
   “소중한 것? 소중한 것이 없어졌어?”
   “따, 딱지. 없어.”
   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 중…… 한 것.”
   아민이 옆에서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딱지 잃어버렸다는 거야?”
   “엉, 선물, 딱지.”
   “아, 저번에 친구가 줬다는 그 딱지? 그게 없어졌어? 너 그거 나는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완전 소중하게 가지고 다녔잖아. 누가 뺏어갔어?”
   희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았어. 형이 이따 찾아줄 테니까 일단 교실로 가. 이따 보자.”
   그제야 희수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고는 뒤돌아 복도를 걸었다.
   “소…… 중…… 한 것…… 없다.”
   아민이 희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소중한 것 없어?”
   정수가 아민에게 물었다.
   “집, 책, 장…… 난감, 동생……”
   아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천천히 생각하며 하나하나 입에 올렸다.
   “우얼, 한국말 진짜 많이 아네?”
   “소중한 것, 다 없어. 이, 잃……”
   “소중한 것 잃어버렸다는 거지? 그랬겠네. 다 놓고 왔을 테니까.”
   아민이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동생? 그건 무슨 말이야?”
   “라일라 있어. 미리암 없어.”
   “응?”
   “동생 라일라 있다. 미리암 없다.”
   “없는 동생이 이름도 있나?”
   “미리암. 주, 죽었…… 다…… 한국, 올 때.”
   아민이의 커다란 눈에 잠시 물기가 번졌다. 정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아민을 멍하니 봤다.
   “가, 가자.”
   정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교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민이 조용조용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정수 동생, 기, 귀…… 귀, 여……”
   아민이 정수 옆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귀여워?”
   “귀엽다, 귀엽다. 동생 귀엽다.”
   “귀엽긴, 쟤 완전 똥고집인데다…… 근데 넌 희수 말 어떻게 알아들었어? 희수 말은 아무나 알아듣기 힘든데……”
   “쿠낭……”
   “쿠낭? 그냥?”
   정수가 묻자 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신기한 능력이네.”
   “정수도 있다. 그거.”
   “신기한 능력?”
   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건…… 내가 희수랑 살다보니까 걔가 말을 못해도 나는 그냥 눈빛만 봐도 표정만 봐도 딱 아는 게 있어. 아까는 희수가 너무 자주 우리 반에 오니까 내가 일부러 모른 척한 거고.”
   “희수 말 조금 해. 희수 얼굴 말해.”
   “앗, 알았다! 그래서 내가 네 표정만 보고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았구나. 와, 으흐흐. 이거 진짜 초능력인데? 오늘 처음 알았네. 나한테 그런 능력 있다는 거. 으흐흐흐.”
   정수가 큰 소리로 웃어댔다.
   “앗, 수업 시간이지. 쉿, 근데 너 한국말 진짜 잘한다. 교실에서도 말 좀 해 봐.”
   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 시키 정수? 정수 시키? 무냐?”
   갑자기 생각난 듯 아민이 물었다.
   “푸헐, 정수 시키 아니고 시키 정수 아니고 시크 정수거든. 시크.”
   정수는 아민이 손바닥에 한글로 시크라고 썼다.
   “시크는 까칠하고 차갑고 뭐 그런 건데. 차갑다 알아? 차갑다는 얼음 만지면 엄청 시원하고. 뜨겁다 반대.”
   “차갑다, 알아. 까칠, 몰라.”
   “까칠은, 까칠은 막 안 부드럽고 엉? 아, 어떻게 설명하지?”
   정수가 설명을 하다가 횡설수설했다.
   “정수 안 까칠. 까칠 안 해.”
   아민이 말했다.
   “그러엄, 내가 알고 보면 겁나 부드럽고 동생도 잘 챙기고 그래. 크허허.”
   정수가 웃어젖혔다. 아민도 살며시 따라 웃었다. 둘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들이 수채화 스케치를 거의 완성해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민이 정수 자리로 와서 수첩을 내밀었다.
   chic - 세련되다. 멋지다. 지적이고 도시적이다.
   수첩에는 보고 베낀 것이 분명한, 한글 막 배우는 아이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정수 시크.”
   아민이 정수를 보고 엄지척을 했다. 아민이 교실에서 한 첫마디였다.
   “글씨가 완전 1학년짜리 글씨네. 시크가 이런 뜻이라구? 뭐, 내가 세련되고 멋지고 지적이고 도시적이긴 한데…… 어디 한번 찾아보고.”
   정수는 아직 핸드폰을 제출하기 전이라 검색을 해보았다.
   “오, 진짜네. 시크가 차갑다, 까칠하다가 아니네. 그럼 나는 세련되고 멋지고 지적이고 도시적인 정수다.”
   정수가 킥킥거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가 무슨 지적이고 도시적이야?”
   언제 왔는지 태성이가 정수에게 헤드록을 걸며 말했다.
   “시크 정수…… 한글, 쉽다. 한국말, 어렵다.”
   아민이 머리를 긁적였다.
   “와, 너 한국말 잘한다!”
   태성이가 놀라서 소리쳤다.
   “너 처음 들었지? 얘 한국말 진짜 많이 알아. 그동안 낯설어서 못했나 봐.”
   정수가 말했다.
   “나, 한국말, 한글, 공부, 열심해.”
   “이러다 나보다 잘할지도 모르겠네. 근데 너희 나라 글자는 지렁이 같기도 하고 라면 부스러기 같더라. 그걸 어떻게 읽고 쓰냐? 완전 헛갈릴 것 같아.”
   정수가 아민에게 물었다.
   “라면!”
   아민이 혀를 내밀며 손부채질을 했다. 맵다고 하는 것 같았다. 정수와 태성이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 정수의 재발견이다.”
   태성이가 정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생각해봤는데 나는 까칠하고 차가운 게 아니라 그냥 덤덤한 거야. 희수가 아주 특별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것처럼 아민이도 마찬가지란 거. 나 좀 시크하지?”
   정수가 엄지와 검지를 턱에 대고 브이자를 만들며 윙크를 했다.
   “오우, 정수, 세련되고 멋지고 지적이고 도시적인데? 큭큭큭.”
   태성이가 정수를 놀리며 웃어댔다.

   “어라?”
   방과 후 컴퓨터 교실을 나서던 정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집에 같이 가려고 정수를 기다리는 희수가 운동장에서 누군가랑 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민이다. 희수와 아민이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둘이 마주보고 웃기도 하면서 꽤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둘이 말이 통해? 아하, 신기한 능력.”
   정수는 혼잣말을 하며 둘에게 다가갔다.
   “형아, 딱지, 아민 형아, 찾아.”
   희수가 정수에게 딱지 몇 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네가 찾아줬어? 어디서?”
   정수가 아민에게 물었다.
   “화장실.”
   아민이 말했다.
   “이게 화장실에 있었어? 희한하네. 내가 어제부터 희수네 교실이랑 화장실 다 찾아봐도 없더니.”
   “미리암. 화장실. 찾아.”
   “그러니까 대충 미리암도 뭐를 화장실에서 찾았다? 장난감 같은 거를?”
   아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민이 옆에는 딱지가 꽤 많이 놓여 있었다.
   “얼, 희수한테 땄어? 쟤는 졌어도 절대 안 주는데. 희수, 너 이거 진짜 아민이 줄 거야?”
   “어.”
   희수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랑 놀 때랑 다르네. 푸헐. 이번엔 나도 같이하자. 희수 너 두고 봐라.”
   셋은 딱지치기를 시작했다. 정수는 환상의 기술로 딱지를 홀딱홀딱 넘겨서 순식간에 둘의 딱지를 다 따버렸다.
   “시크 정수!”
   아민이 정수를 보며 손뼉을 쳤다.
   “시리아 글자.”
   운동장 바닥에 딱지가 그린 그림이 글자처럼 보였는지, 아민이 운동장 바닥에 나뭇가지로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السلام عليكم
   “시리아 글자는 쓰는 방향이 다르네. 진짜 라면 부스러기 같은 글자다. 뭐라고 썼는데?”
   정수가 물었다.
   “마르하반. 앗쌀라무 알라이쿰. 한국말, 안녕.”
   아민이 글자를 읽었다. 정수와 희수도 아민이를 따라 천천히 말했다.
   “마르하반, 앗쌀라무 알라이쿰.”
   “마르하반, 앗쌀라무 알라이쿰.”
    바람이 셋의 머리를 가볍게 쓸고 지나갔다.

김혜온

언어가 없어도, 언어나 문자를 잘 몰라도 소통이 되는 존재들을 생각했어요. 어린이와 어린이, 어린이와 동물,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과 언어 능력이 낮은 아이들과 모국어를 잃은 아이들의 관계와 소통. 어쩌면 더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알아내는 존재들은 언어 이상의 교감으로 관계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인간이라는 한 우주를 만나는 일에는 완벽한 언어나 문자보다 열린 마음과 공감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작은 존재들의 평화를 빕니다.

2023/02/28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