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아는 왜 집에 없어?”
   수아의 큰외삼촌이 물었다. 덩치가 크다는 느낌보다 둥글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물론 가까이 가서 보면 확실히 크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소파 한 자리로 부족해 두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모인 어른 중에서도 가장 어른이었고 그래서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다.
   “학원 갔겠지, 뭐. 요새 이 시간에 집에 있는 애들이 어디 있어?”
   큰외삼촌의 부인, 큰외숙모라고 불리는 사람이 수아네 집 냉장고 문을 열어 찾아낸 주스를 유리컵에 따라 쟁반에 받쳐 종종걸음으로 오며 대답했다. 수아 엄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수아 엄마가 집에 없었다.
   “그래, 애들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학원에 집어넣어 놔야지. 괜히 풀어놓으면 사고나 치고 그런단 말이야.”
   “수아가 무슨 사고를 쳐, 오빠? 얼마나 착한 앤데.”
   작은이모가 그렇게 수아 편을 들어 주자 큰외삼촌은 주스를 단번에 반 정도 마셔 버리고 입맛을 쩝쩝 다셨다.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번 더 입맛을 다시고 나서 못 들은 것처럼 말했다.
   “애들은 쉴 새 없이 학원을 돌려야 돼. 강제로라도 공부를 시켜야 한단 말이야. 지들은 불만이 많겠지만 다 지들을 생각해서 그러는 줄 알아야 한다고.”
   큰외삼촌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대답할 말을 몰라 가만히 주스만 마셨다.
   “며칠 있으면 아버지 돌아가시고 벌써 100일이네.”
   큰외삼촌의 아버지는 수아에게 외할아버지였다.
   “그러고 보니 수아 고것도 참 맹랑하다니까. 야, 어떻게 자기 할아버지가 쓰러진 걸 옆에서 보면서 눈도 깜짝 안 할 수가 있을까? 나중에 내가 보니까 표정에 아주 변화가 없어. 나는 뭐 울고불고 야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눈물이라도 닭똥처럼 뚝뚝 떨굴 줄 알았는데 내가 가 보니까 아주 끝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어봤지. 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슬프지도 않니?”
   “그랬더니 뭐래?”
   큰외숙모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슬퍼요, 그냥 이러고 말더라고. 요새 애들은 아무튼 진짜 무서워.”
   “원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손주들이야 자식들만큼 슬프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지.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가끔 만나는 건데, 뭐. 애들은 그런 일 있을 때 다 펑펑 울고 그러지 않아.”
   염색한 지 오래되어 노란 머리와 검은 머리가 반반인 큰이모가 그렇게 편을 들었다. 큰이모와 작은이모는 같이 다니기만 하면 누구나 자매라는 것을 알 만큼 닮아 있었다. 작은이모도 옆에 아군이 생기자 다시 반격할 기운을 냈다.
   “그리고 원래 갑자기 너무 큰일이 생기면 놀라서 슬퍼할 겨를도 없어. 할아버지랑 같이 걸어가다가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얼마나 놀랐겠어? 아직 어린 애가 말이야.”
   큰외삼촌은 남의 말에 쉽게 수긍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은 주스 반 잔을 기운차게 마시더니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그게 아니라니까. 왜 우리 할머니도 우리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잖아? 가만있어 보자, 그때 내가 몇 살이었더라? 머리를 빡빡 깎았었으니까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그때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너무 울어 가지고 눈이 퉁퉁 부어서 버스 타고 가다가 창문에 비친 얼굴을 보고 걱정했었다고. 야, 이러다가 눈 퉁퉁 부은 거 안 가라앉아서 평생 못생기게 사는 거 아니야? 정말 머리도 빡빡 깎았는데 얼굴까지 부어 놓으니까 내가 봐도 무슨 못생긴 감자가 따로 없더라고.”
   “에이, 당신은 부으나 안 부으나 원래 못생겼어. 차라리 눈이 퉁퉁 부었으면 개구리처럼 귀엽기라도 했겠네.”
   큰외숙모가 그렇게 핀잔을 주자 모두 고소하다는 듯이 웃어젖혔다. 그리고 웃음 뒤에 짧은 침묵이 찾아들었는데 그 작은 틈을 파고든 사람은 그동안 듣기만 했던 작은외삼촌이었다.
   작은외삼촌은 큰외삼촌, 그러니까 자기 형과 반대로 몸에 살이 별로 없었고 본래부터 골격도 작았다.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남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없었다.
   “아버지가 수아를 많이 아끼시기는 했지. 손주 중에서도 제일 예뻐하셨어. 왜 저번 추석엔가 있잖아. 아버지가 애들한테 용돈을 주시는데 우리 수철이는 5만 원짜리 한 장만 주시고 수아한테는 두 장을 주셔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잖아. 수아가 그걸 자랑해 가지고 수철이가 제 엄마한테 가서 이르는 바람에 수철이 엄마가 아버지한테 가서 따졌거든. 아버님, 애들 용돈은 똑같이 주세요. 우리 수철이가 얼마나 서운하다고 울었는지 몰라요, 하고 말이야.”
   “우리 애들도 그때 5만 원 받았는데요? 큰애는 고 삼이라 이제 대학 갈 거라고 해도 그렇게 받았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대요?”
   큰이모가 물었다.
   “아버지가 그러셨대요. 내가 많이 주고 싶은 녀석한테 많이 줄 거다. 받는 주제에 다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그러셨다고 하더라고요. 참, 아버지한테는 씨알도 안 먹혔을 얘기지.”
   “아이고, 그럼. 아버지 성격을 누가 말려.”
   큰외삼촌은 그렇게 맞장구를 치고 빈 컵을 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더 마시고 싶은 눈치였다. 큰외숙모가 알아차리고 빈 컵을 집어 부엌 쪽으로 갔다.
   “그나저나 오빠는 아버지 쓰러지셨을 때 어떻게 그렇게 금방 간 거야?”
   “어, 그거? 그거야 뭐. 내가 워낙 효자니까 아버지가 쓰러지실 것을 또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 바로 근처에 볼일이 있어 나와 있었단 말이야. 온 김에 아버지라도 뵙고 가야겠다 싶어서 전화를 드리려고 했지. 그런데 그때 희경이가 전화해서 우리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얼른 가 보니까 막 구급차가 와서 아버지를 싣고 그러는데 수아는 그 옆에 딱 서서 그 119 대원들을 노려보고 있더라고. 아예 미동도 안 하고 똑바로 서 있더라니까. 내가 그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 아니면 감탄했다고 해야 하나?”
   희경은 수아 엄마의 이름이었다. 수아 엄마는 다섯 남매 중 넷째였다. 그러니까 태어난 순서를 따지자면 위부터 큰외삼촌, 큰이모, 작은외삼촌, 수아 엄마, 작은이모 순이었다.
   다섯 남매는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의미로 모였다. 며칠 있다가 돌아가신 지 100일이 되면 온 가족이 모일 예정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준비랍시고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수아네 집에서 모인 것도 즉흥적인 결정이었고 수아 엄마는 장을 보러 가느라 이야기에 끼지 못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아니, 무슨 그 어린 것이 두 주먹을 쥐고 떡하니 서서 자기 할아버지가 실려 가는 걸 보고 있는데 진짜 말이 안 나오더라고. 아들이었으면 무슨 장군감이었다니까.”
   “딸이라도 저만 원하면 장군 시키면 되지.”
   “애가 놀라서 그런 거라니까 왜 자꾸 그래? 수아가 무슨 로봇이야? 감정이 없어서 그러고 있게?”
   큰이모와 작은이모가 동시에 수아 편을 들었지만 큰외삼촌은 지치지도 않고 그 얘기를 한 번 더 반복해서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작은외삼촌이 다시 기회를 봐서 끼어들자 모두 마음속으로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기는 옛날부터 수아가 범상치 않은 아이이기는 했지. 수아 어렸을 때 그런 일도 있었잖아? 그때 명절에 같이 형 집에 모였을 때 말이야. 우리 수철이하고 수아하고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 간다고 둘이 나갔다가 길을 잃었잖아? 그래서 내가 나중에 찾는다고 나가 보니까 둘이 옆 단지 놀이터로 가서 길을 잃었더라고. 그런데 둘 중에서 수철이만 혼자서 눈물하고 콧물 범벅이 돼서 울고 있는 거야. 막 엄마, 아빠 부르면서. 수아도 표정을 보니까 겁에 질린 건 맞는데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더라는 말이지. 울지도 않고 말이야. 그때 수아는 유치원 다닐 때고 수철이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오히려 수철이만 울었다니까. 그때 수아가 참 대단한 아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
   “맞아, 나도 기억나. 그때 수아가 수철이한테 뭐라고 했다더라? 오빠, 우리가 여기 있으면 어른들이 찾으러 오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면 돼. 울지 마, 오빠. 오빠가 울면 나쁜 사람들이 우리가 길을 잃었다고 자꾸 말을 걸잖아.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몰라. 그랬다고 하더라고. 진짜 내가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웃긴다니까.”
   큰이모는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리듯이 그 말을 하면서 얼굴이 환해진 다음 물었다.
   “그때 걔가 몇 살이었지?”
   “여섯 살이었을 거야. 우리 수철이가 아홉 살이었으니까. 아홉 살짜리 애는 우는데 여섯 살짜리는 끝까지 안 울더라니까. 옆에 있는 애가 울면 같이 울 법도 한데 말이야. 꾹 참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수철이 팔을 툭툭 치더라고. 저기 좀 보라고 하면서. 하하하.”
   작은외삼촌은 잘 웃는 사람이 아니라 그 웃음은 더 흥겹게 느껴졌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단 한 명만 그 이야기가 재미있지도 않고 도통 웃긴 구석이 없었다.
   큰외삼촌이 일부러 크게 끙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뭔가 이야기가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내심 작은외삼촌이 자기 말을 뒷받침하는 일화를 소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수아를 칭찬하는 말을 해서 당황한 눈치였다. 큰외삼촌은 성큼성큼 걸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사이에 수아가 참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어쩌면 큰외삼촌이 지나가는 말로 언급했던 것처럼 정말 장군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장군이 되어야지 아니면 누가 장군이 되겠냐고 다들 한목소리로 말했다.
   큰외삼촌이 돌아온 것은 그런 칭찬이 한바탕 끝난 다음이었다. 묘하게도 말이 한 바퀴 돌고 딱 끝날 무렵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큰외삼촌이 작은 일을 치르고 화장실에서 기다리다가 타이밍을 맞춰서 나타났는지 그게 아니면 처음부터 큰일을 치르느라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알 도리가 없었다.
   큰외삼촌은 소파에 앉자마자 현관 쪽을 보며 물었다.
   “아니, 희경이는 왜 이렇게 안 와? 농사지어서 뽑아 왔어도 지금쯤이면 왔겠어.”
   “그러고 보니 우리도 같이 갈 걸 괜히 혼자 보냈어요.”
   “자기가 한사코 혼자 가겠다니, 뭐.”
   큰외숙모와 이모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큰외삼촌은 뭔가를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끝내 떠오르지 않아서 도움을 청해야 했다.
   “수아 같은 애들 말이야. 그렇게 감정이 없는 애들이 요새 유행이라고 하잖아. 그걸 뭐라고 하더라? 사이코 뭐라고 하지 않아?”
   “사이코패스 말하는 거야?”
   작은이모가 물었다.
   “어, 그래, 그거, 그거.”
   “엥,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애한테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있지.”
   “수아가 얼마나 착한데 그래?”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아니, 내가 친구한테 들었는데 말이야. 그런 사람이 세상에 의외로 많다는 거야. 꼭 사람을 해친다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그렇게 냉정하게 감정을 못 느끼도록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남을 동정하지 않고 남 아픈 것도 모르고 자기가 원하고 하고 싶은 건 막 가리지 않고 하니까 결국에는 성공한다고 하더라고. 성공한 사람 중에 그런 사이코패스들이 많다는 거야. 잘된 일이잖아? 수아는 크게 성공하겠네, 허허. 우리도 나중에 수아 덕 좀 봐야겠어. 다들 수아한테 지금부터 잘 보여. 나중에 수아는 크게 될 아이니까.”
   “수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는 작은이모가 기억의 구석에 있던 일화를 끄집어냈다.
   “옛날에 우리 복실이 기억나?”
   “복실이가 뭐야?”
   “내가 키우던 강아지 있잖아, 눈이 짝짝이인 애.”
   “아, 말티즈인지 몰티즈인지 네가 옛날에 키우던 그 개 이름이 복실이었냐? 난 뭐, 죽은 개 이름은 기억을 도저히 못 하겠다. 죽은 친구 이름도 몇 년 지나면 가물가물해서.”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큰외삼촌 말고는 끼어드는 사람 없이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복실이가 가기 전에 병원 다니느라 고생 좀 했잖아. 그때 수아가 복실이 아프다는 말 듣고 매일 나한테 연락했었어. 오늘은 괜찮은지 물어보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물어보더라고. 사진도 보내 달라고 하고.”
   “매일 물었단 말이야?”
   큰이모가 물었다.
   “그럼, 정말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묻더라니까. 마지막에 복실이 장례식 해 주는데 희경 언니랑 수아도 왔더라고. 수아가 울면서 꼭 와야 한다고 졸라서 왔다는 거야. 기껏해야 몇 번 봤는데 정이 단단히 들었는지 거기까지 왔어. 거기서도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데 그래? 감정이 없기는 뭐가 없어? 얼마나 정이 많은 아이인데.”
   “아니, 그런 아이가 왜 자기 할아버지한테는 그렇게 매정했는지 모르겠네.”
   큰외삼촌이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수아가 공부는 잘하나?”
   “공부?”
   모두 수아의 성적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어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공부는 더 두고 봐야지.”
   큰이모가 말하는 것을 작은외삼촌이 받았다.
   “공부는 우리 애들 중에서 형 아들 수재만큼 하는 애가 없지.”
   “아, 그거야 그렇지. 자식 이름을 수재로 지어놓았는데 커서 머리가 나쁘면 어떡하나 걱정했단 말이야. 이름이 수재인데 공부를 못하면 얼마나 개망신이야? 아, 그런데 사람이 이름대로 된다더니 녀석이 명문대를 한 방에 떡 붙더라는 말이지.”
   큰외삼촌은 자식 자랑에 수아를 잠시 잊은 듯했다. 그대로 대화가 이어졌다면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를 한번 더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수아 엄마가 양손에 봉투를 들고 낑낑거리며 들어왔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수아 엄마는 멈춰 서서 의아하다는 듯이 거실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왜 그래?”
   “아니야, 빨리 저녁 준비해야지. 다들 배고프겠다.”

2

   큰외삼촌은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수아 아빠는?”
   큰외삼촌이 식탁에 앉으면서 물었다.
   “오늘 야근하고 늦게 온다고 했어.”
   수아 엄마, 큰외삼촌, 큰외숙모, 큰이모, 작은외삼촌, 작은이모까지 여섯 명이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밥그릇은 일곱 개였다.
   “이렇게 번거로운데 그냥 시켜 먹을 걸 그랬어. 벌써 몇 시야?”
   큰이모가 말했다.
   “그래도 사 먹는 것보다 집밥을 먹어야지.”
   큰외삼촌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더니 덧붙였다.
   “밥이 왜 하나가 남아?”
   수아 엄마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
   “수아야, 저녁 먹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두의 눈썹이 파도쳤고 그중에서도 숱이 많고 굵은 큰외삼촌의 눈썹이 가장 크게 움직였다.
   “집에…… 수아가 집에 있었어? 학원 간 거 아니야?”
   “오늘 학원 가는 날 아니야. 아까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신발 보니까 집에 있는 것 같은데?”
   방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수아가 나타났다.
   수아는 얼굴에 아무 표정도 칠하지 않고 가볍게 주먹을 쥔 채 걸어왔다. 일부러 아무하고도 얼굴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 정말 큰외삼촌이 말했던 것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집에 있었어? 그러면 나와서 인사라도 하지 왜 방 안에만 있었어?”
   이모들이 다정하게 물어도 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아 엄마는 그런 태도에 익숙한지 따로 거들지 않았다.
   식사 시간은 조금 전에 비해 지나치게 조용했다. 모두 젓가락으로 밥알을 괜히 툭툭 건드려 보거나 반찬의 색을 관찰하면서 천천히 밥을 먹었다. 큰외삼촌, 큰외삼촌조차 그렇게 먹었다.
   조금 전까지 쉬지 않고 떠들던 것을 생각하면 새로 나타난 두 사람 중 한 명이 원인인 듯했다. 수아 엄마는 수아가 원인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유는 자세히 몰랐다. 수아는 자기가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이유도 확실히 알았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방문을 뚫고 고스란히 귀에 들어왔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수아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밥알 하나하나가 갑자기 불어나 목구멍을 긁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며 간신히 삼켰다. 가슴이 답답했고 얼굴 쪽으로 무언가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면 되었다. 분위기를 보니 밥만 다 먹으면 친척들 모두 집에 갈 것 같았다. 후식을 먹는다고, 계획을 세운다고 버티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되었다. 수아는 얼른 밥알을 위장에 채우고 다시 방에 틀어박힐 예정이었다. 그리고 친척들이 가는 길에 잠깐 나와서 머리만 몇 번 꾸벅 숙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다 끝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다 망가져 버렸다. 수아의 왼쪽 눈에서 액체가 나왔다. 다시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볼을 타고 흘렀다. 수아는 손을 들어 볼을 닦으면 들킬까 봐 고개를 더 숙이고 밥을 먹었다. 하지만 옆에 앉은 큰이모가 그만 발견해 버렸다.
   “수아야, 너 우니? 왜 울어?”
   그 말에 모두 식사를 중단하고 한꺼번에 수아의 얼굴을 보았다. 수아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다 들었어. 다 들었어요.”
   “뭐를 다 들어?”
   수아 엄마가 물었다.
   “그리고 나, 나 다 봤어요.”
   “뭘 봤는데, 수아야?”
   작은외삼촌이 물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거기까지 얘기했는데 눈물이 양쪽 눈으로 주룩주룩 흘러나왔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차들이 지나가듯 지치지도 않고 계속 나왔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에 나랑 같이 은행에 갔단 말이에요.”
   수아의 목소리에도 이제 울음이 스며들어 있었다.
   “얼른,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쉬게 하자고. 애가 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큰외삼촌이 외치는 소리는 멀리서 말하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수아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큰외숙모가 물었다.
   “할아버지가 은행에서 나와서 나랑 걸으면서 손잡고 걷자고 하셨어요. 근데 난 싫다고 했어요. 애들이 보면 놀리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신 거예요.”
   “괜찮아, 수아야. 할아버지는 원래 아프셨어. 하나도 안 서운해하셔. 그날 수아가 같이 나와 줘서 고맙다고 생각하실 거야.”
   작은이모가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119가 왔는데 큰외삼촌도 오셨단 말이에요. 난 다 봤어요.”
   수아가 큰외삼촌을 보며 말했다.
   “뭘 봤는데?”
   어른들이 한목소리로 물었다.
   “큰외삼촌이 쓰러진 할아버지한테 가서 할아버지 양복 주머니에 있던 하얀 봉투 꺼내는 거 나는 봤어. 큰외삼촌이 몰래 자기 주머니에 넣었어. 다른 사람들은 못 봤는데 나는 봤단 말이야.”
   “하얀 봉투?”
   그날 할아버지는 수아네 집에 며칠 머물다가 오랜만에 외출하면서 수아를 불렀다.
   “맨날 할아버지 속만 썩이는 말썽쟁이 만나러 가는데 너도 같이 가자.”
   수아는 그 말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했다. 그 이야기도 하려고 했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 꺽꺽대느라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모들이 수아를 방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거실에서는 곧바로 어른들이 고함치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장 큰 목소리는 큰외삼촌의 것이 분명했다. 수아는 자기가 저지른 짓이 무서웠다. 그런데 저질러 놓고 나니 왠지 모르게 후련했다.
   결말이 있을 리 없는 싸움이 대충 마무리되고 친척들은 모두 집에 갔다. 수아 아빠는 밤늦게 퇴근해 일어난 일을 묵묵히 들었다. 수아는 아빠한테 혼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 하나도 혼나지 않았다.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머리만 쓰다듬어 주었다.
   며칠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0일째 되던 날, 수아는 친척 모임에서 큰외삼촌을 만나지 못했다.
   이유는 수아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허교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를 쓰며 작가가 되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여럿 쓰고 있다. 여전히 이야기를 좋아한다.

2020/10/27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