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은 집밖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주워왔다. 고장나거나, 낡았거나, 혹은 누군가가 잃어버린 지 오래되어 기억도 하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줘도 안 가질 물건이었다.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바깥의 쓰레기를 주워와 방 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든다고 했다.
  책상 한편에는 병뚜껑을 테이프로 이어 붙인 탑이 높게 솟아 있었다. 침대 반대편 벽 쪽에는 이곳저곳에서 주워온 옷들로 만든 누더기 토끼가 앉아 있었고, 네모난 창 앞에는 색색 줄로 묶은 문구들이 비행기처럼 떠다녔다.
  그중 가장 이상한 물건은 방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바구니였다. 작은 바구니들을 찢고 이어 만든 커다란 바구니는 방 한가운데서 어두운 속을 내보이고 있었다. 어린아이 하나쯤은 충분히 빠져버릴 만했다. 바구니 옆에는 낡은 냄비 뚜껑 두 개를 테이프로 칭칭 감아 이어 붙여 손잡이가 두 개 달린 괴상한 뚜껑이 놓여 있었다. 조금 어긋나겠지만 바구니를 덮을 만큼 큰 뚜껑이었다.
  거실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다투고 있다. 고함을 치고 짜증내는 소리가 방문을 뚫고 들려온다. 채정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바구니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얼핏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무렴 어떨까. 바구니 속은 생각보다 포근했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겠다. 스르륵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그렇게 깔끔 떨던 애가 왜 이러나.”
  아빠는 채정의 방문을 쾅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원래 채정은 물컵도 나눠 먹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식사를 하기 전엔 꼭 손을 씻었고, 반찬이며 국은 꼭 덜어먹었다. 옷장 속에 외투를 나란히 걸었고 바지는 곱게 개어 정리해두었다. 발자국이 남는다며 방 안에 누구를 들이는 것조차 싫어했다.
  바뀌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정반대로 바뀔 수 있는 걸까. 채정의 아빠는 그 이유를 제멋대로 짐작해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전화를 받은 엄마는 한숨부터 푹푹 내쉬었다.
  “당신이 얘를 너무 조이니까 그렇잖아. 반항심이야 이거. 애니까 지저분한 게 당연하지. 당신 너무 예민해.”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엄마 입장에서 아이는 본래 조금은 지저분하고 조금은 제멋대로 생활해야 한다고 믿었다. 흙바닥에서 뒹굴고, 축구공을 차고 뛰놀고, 아빠가 날린 야구공을 찾기 위해 풀숲 정도는 헤집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탓 하는 거야? 방 꼴이 어떤지 알고나 하는 말이냐고. 당신이 관심이 없으니 애가 엇나가는 거잖아.”
  아빠는 화가 났다. 아빠 입장에서 청결한 집은 곧 건강한 집이었다. 방은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어지러운 방은 어지러운 마음을, 깔끔하고 정돈된 방은 정돈된 마음을 보여준다고 말이다. 채정의 방이 어지러워질수록 아빠의 마음도 어지러워졌다.
  “당신도 사실은 내 탓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싸우자고 전화했어?”
  엄마, 아빠는 다시 다투기 시작했다.
  현관문이 열렸다. 채정이 거실로 들어왔지만, 아빠는 인사조차 없었다. 부엌에 뚫린 작은 창밖을 보며 엄마와 다투는 데 열을 올렸다. 채정은 아빠가 보든 말든 고개를 꾸벅 숙이곤 방으로 들어갔다.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푼 손가방을 가슴에 소중히 품고.
  채정이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 이유가 있다. 채정은 주워야 했다. 채워야 했다. 엄마와 아빠의 싸움이 잦아지면서 거실에 있으면 불안했다. 엄마가 고함을 칠 때마다 채정의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고, 아빠가 삿대질할 때마다 채정의 마음에는 구멍이 뚫렸다. 채정을 향한 것이 아니었어도, 엄마와 아빠는 채정의 가족이었으니 아픈 게 당연했다.
  채정은 부모님을 말려보았다. 엄마가 잘못한 것 같을 때는 아빠 편을, 아빠가 잘못한 것 같을 때는 아빠 편을 들기도 했다. 채정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빠는 한목소리를 내었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데 아이는 빠지라는 것이다.
  다음은 눈물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다툴 때마다 채정은 울었다. 그러자, 엄마와 아빠는 채정이 볼 수 없는 곳, 이를테면 안방에 문을 잠그고, 베란다에 나가서, 집밖 공원에서 다툼을 이어갔다.
  마지막은 포옹이었다. 채정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방법이었다. 엄마와 아빠에겐 다정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를 지르는 엄마는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삿대질하는 아빠는 아무도 자기를 봐주지 않으니 손을 번쩍 번쩍 들어 여기 있다고 알리고 싶은 사람 같았다.
  채정이 생각한 마지막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채정이 엄마를 안는 순간 엄마는 소리 지르기를 멈추었다. 아빠는 삿대질을 멈추었다.
  그렇게 또다른 다툼이 시작되었다. 채정이 엄마를 꽉 안을 때 아빠는 혼자였다. 채정이 아빠를 꽉 안을 때는 엄마가 혼자였다. 엄마와 아빠는 둘인데 채정은 하나였다.
  채정은 결국 포기했다. 채정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았지만 이미 둘이 된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없었다. 채정은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고 그 사이로 무언가 중요한 것이 숭숭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불안했다. 이대로 모든 게 다 빠져나가면 채정은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무엇이라도 채워야 했다. 그렇게 채정은 줍기 시작했다. 낡고 때 타고 부서진 물건들을 주워와 엄마의 소원을, 아빠의 선물을, 가족의 기억을 만들었다. 그렇게 방을 채워나가는 일이 채정의 마음을 채우는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채정의 방은 분명 어지러웠지만 채정만의 질서가 있었다. 지난 가족 여행 때 엄마는 산을 오르다 커다란 돌 위에 작은 돌을 얹었다. 그렇게 탑을 쌓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었다. 채정은 엄마가 아빠에게 화를 내는 날이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병뚜껑을 하나씩 주워왔다. 그리고 탑을 쌓았다. 소원을 빌었다.
  아빠는 토끼 인형을 좋아했다. 채정이는 엄마를 닮았고, 엄마는 토끼를 닮았다고. 먼 도시로 일하러 갈 때마다 토끼 인형을 사왔다. 도시마다 토끼 인형의 모습이 달랐다. 하지만 아빠는 토끼 인형은 모두 사랑스러우니, 사랑스러운 채정와 엄마를 닮았다고 했다. 채정은 아빠가 엄마에게 화를 낼 때마다 토끼 인형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배운 바느질은 서툴렀다. 어떤 천조각은 더러웠고 어떤 천조각은 색이 바랬다. 하지만 토끼 인형은 모두 사랑스럽다 했으니, 토끼 인형 가족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문구 비행기는 가족들과 떠나고 싶은 여행지가 생길 때마다 창틀에 매달았고, 커다란 바구니와 괴상한 뚜껑은 또다른 무언가를 기억하거나 기리는 일이었을 거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방 안에서 채정의 질서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눈에는 그저 지저분한 방으로 보였다.
  채정을 이해할 수 없던 엄마, 아빠는 밤샌 다툼 끝에 결론 내렸다. 채정이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밤새워 다툰 것 치고는 참 손쉬운 결론이었다. 채정이가 무얼 하든, 누구를 선택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거다. 그러자 채정의 방은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점점 더 차올랐다. 발 디딜 틈 없이, 몸 누일 곳도 없이 세상의 물건들로 가득했다.

토끼 인형과 각종 물건이 그려져 있다.

채정의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채정의 방을 둘러보던 아빠, 엄마는 이마를 탁 짚었다. 엄마는 문을 쾅 닫고 아빠는 시원한 물 한 컵을 받았다. 빈 식탁에 앉아 채정을 기다렸다.
  현관문이 열리고 채정은 신발을 휙휙 벗어던졌다. 손가방을 소중히 품에 안고 거실로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고개를 휙 돌렸다. 아빠가 손짓했다. 채정은 슬그머니 손가방을 엉덩이 뒤에 숨기고 식탁 앞으로 갔다.
  “줘봐.”
  “어서.”
  채정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하는 수 없이 손가방을 내밀었다. 손가방은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우두두두두.
  손가방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쏟아졌다. 동강난 지우개, 심이 빠져버린 샤프, 한쪽 귀가 없는 토끼 인형, 지퍼가 고장난 필통과 구멍이 뻥 뚫린 니트까지. 그 외에도 도저히 이건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빈 식탁 한가운데 산처럼 쌓였다.
  엄마는 손가방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었다.
  “이 많은 물건이 어떻게 저 작은 손가방 안에 들어가는 거야?”
  아빠는 물 한잔을 마시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만해. 따져 묻지 않기로 했잖아.”
  “따지려는 게 아니야. 그리고 가방을 쏟은 건 당신이잖아?”
  “이게 어떻게 쏟은 거야? 부은 거지.”
  채정은 식탁 앞에 서서 멀뚱히 두 사람을 바라봤다. 부모님은 채정에게 약속했었다. 다시는 가방을 빼앗지 않기로. 검사하지 않기로. 화내지 않고, 벌주지 않기로. 하지만 채정에겐 그런 약속보다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다시는 서로 다투지 않기로 했었는데.
  “목소리 낮춰. 혼을 낸다고 고쳐지지 않아. 먼저 이해해야지.”
  “나도 알아, 그렇다고 모든 걸 다 이해해? 그런 건 포기고 외면이야.”
  엄마, 아빠는 어느새 서로를 보고 이야기했다. 엄마의 손가락 끝은 아빠의 얼굴을 가리키고, 아빠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엄마를 노려보았다.
  “이사 갈 때가 다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러면 어쩌잔 거냐고.”
  “이사를 가긴 왜 가?”
  엄마와 아빠는 채정을 보았다. 서로를 노려보던 눈으로 채정을 노려보았다. 채정은 입을 앙다물고 되뇌었다. 나한테 화내는 게 아니야. 아니랬어.
  채정이 아무 말이 없자, 엄마 아빠는 다시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 채정은 여기 없는 사람이라는 듯 다시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데려간다고.”
  “너한테 어떻게 애를 맡겨?”
  채정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채정이 일어나서 살금살금 방으로 향할 때까지 엄마, 아빠는 알아채지 못했다.
  “다그친다고 될 일이야?”
  “지금 너는 퍽도 다정하니?”
  채정은 살며시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쿠르릉.
  커다란 소리에 엄마, 아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처음엔 천둥이 친 줄 알았다. 창가를 살폈지만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한적했다.
  쿠르르릉.
  또 한번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엄마와 아빠는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채정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채정은 방에서 큰 소리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방 안에서 무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아이였다. 화를 낸 적도, 욕을 한 적도, 친구랑 싸운 적도 손에 꼽는 아이였다.
  엄마가 방문을 열었다. 아빠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채정의 방은 깔끔했다. 허전하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책상 위, 침대 옆, 의자 아래, 어두운 구석구석, 밝은 곳곳 가득차 있던 물건들이 사라졌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엄마, 아빠는 서로를 바라봤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단 하나, 바구니만은 그대로였다. 꼭 바구니가 방 안에 모든 것을 빨아들인 것처럼 말이다.
  “채정아?”
  채정은 뚜껑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부모님이 방문을 활짝 여는 순간, 채정은 재빨리 뚜껑을 열었다. 커다란 바구니 속으로 뛰었다. 덜그럭, 덜그럭 괴상한 소리를 내며 뚜껑이 덮였다.
  엄마, 아빠는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커다란 바구니 주위에 섰다. 여러 색의 바구니를 찢고, 실로 다시 기워 만든 커다란 누더기 바구니는 불길해 보였다. 엄마, 아빠는 채정의 방 안을 함부로 열어보고 바닥에 널린 쓰레기를 치우긴 해도 바구니의 뚜껑을 열어보진 않았었다.
  “당신이 열어봐.”
  “이럴 때만 당신이지.”
  서로에게 미루던 부모님은 결국 함께 손을 뻗었다. 한쪽 손잡이씩 잡고 뚜껑을 열었다. 무엇이 무서웠는지, 엄마와 아빠는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뚜껑을 열었고, 방 안은 조용했다. 슬며시 눈을 떴다.

  바구니 속에는 병뚜껑 탑과, 토끼 인형 가족과, 문구 비행기, 그리고 곱슬 머리칼, 갈색 머리칼, 검은 머리칼 몇 줌이 있었다. 곱슬 머리칼은 아빠, 갈색 머리칼은 엄마, 검은 머리칼은 채정의 것이었다.
  채정은 없었다. 엄마, 아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건 걱정의 숨이었을까? 안도의 숨이었을까? 꺼림칙한 기분에 엄마, 아빠는 뚜껑을 재빨리 덮고 물러났다.
  그 순간.
  쿠구구궁.
  바구니에 속에서 천둥이 쳤다. 책상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고, 병뚜껑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줄에 걸린 문구들이 벌처럼 비행했다.
  “으악!”
  엄마, 아빠는 비명을 지르며 문으로 달려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손잡이를 잡았다. 참 오랜만에 두 사람의 손이 포개졌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에는 노랗게 색이 바랜 종이에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적힌 족자가 걸려 있었다. 그건 양의 털로 짠 양피지 같기도 했고, 닭피로 써내려간 부적 같기도 했다.
  덜그럭. 덜그럭.
  찌개가 끓어오를 때처럼 뚜껑이 덜컹거렸다. 엄마, 아빠는 서로를 껴안았다. 어느 때보다 세차게, 온 힘을 다해서 끌어안았다.
  “채정아, 채정아!”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엄마, 아빠는 채정의 이름만 불러댔다.
  핑그르르.
  뚜껑이 날아가버렸다. 벽에 부딪힌 뚜껑은 둘로 쪼개졌다. 원래 하나와 하나였으니 쪼개졌다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나와 하나였다고 하자니, 바구니를 덮을 뚜껑은 하나가 된 둘이었다. 쪼개진 건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건지 알 수 없는 뚜껑은 엄마와 아빠의 발치 아래로 각각 떨어져 팽그르르 돌았다.
  눈을 꼭 감고 있던 엄마와 아빠가 눈을 떴다. 바구니 속에서 모락모락 김이 뿜어져나왔다. 자욱한 안개 같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뚜벅, 뚜벅.
  누군가 걸어왔다. 맨 먼저 다리가 보였다. 다음은 손이었다. 그리고 얼굴. 얼굴.
  연기가 가라앉자 얼굴 둘이 달린 한 아이가 보였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그 모습은 무시무시하기도, 웅장하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것을 살피려는 듯 네 개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세상 모든 걸 손아귀에 쥐려는 듯 네 개의 팔을 펼쳤다.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아이가, 아니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 아빠.”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졌다. 엄마, 아빠는 채정의 방문을 부수고 거실로 뛰쳐나갔다. 엄마는 소파 뒤에, 아빠는 냉장고 옆에 숨었다.
  아이들은 거실로 걸어 나왔다. 당당히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 얼굴은 엄마를, 다른 한 얼굴은 아빠를 보았다. 네 개의 손을 촥 펼쳐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아봐요. 어른 둘, 아이 둘.”
  한 입술이 얘기했다.
  “정정당당하게 얘기해보자고요.”
  다른 입술이 얘기했다.
  그 목소리는 고함처럼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집 안을 가득 메울 만큼 웅장했다. 바람처럼 은은하게 퍼지면서도 바위처럼 무겁게 와닿았다. 엄마, 아빠는 벌벌 떨면서도 목소리를 거스를 수 없었다. 슬금슬금 식탁으로 다가갔다.
  식탁에 앉은 엄마는 채정의 왼쪽 얼굴을 보았다. 손이 축축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하나였던 채정이 둘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저 중 어떤 채정이 진짜 채정일까? 알아볼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 눈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식탁에 앉은 아빠는 채정의 오른쪽 얼굴을 보았다.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렀다. 채정의 얼굴은 분명한데 둘이 되어 있었다. 저 중에 진짜 채정이 있겠지. 어쩌면 이름 모를 신이 우리를 벌주기 위해 채정의 몸을 빌려 내려온 걸지도 몰라.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함부로 입을 열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동시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하나의 얼굴로는 엄마를, 하나의 얼굴로는 아빠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엄마는 너무 다혈질이에요. 아빠가 무슨 말을 해도 인정하지 않잖아요.”
  “내 생각에는 아빠는 너무 비겁해요. 무슨 말이든 다 별로다 하면서, 싸움만 피하면 그뿐이잖아요.”
  채정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엄마, 아빠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채정은 그렇게 말하고는 양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엄마와 아빠는 벌벌 떨며 머리를 감쌌다.
  “잘 봐요.”
  채정은 한쪽 손으로 오른쪽 코를 슥 닦고, 한쪽 손으로는 왼쪽 앞머리를 매만졌다. 다른 한쪽 손으로는 오른쪽 얼굴의 오른쪽 눈을 비비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왼쪽 얼굴의 입술을 뜯었다.
  그러자 팔이 뒤엉켜버렸다.
  “이것 봐요. 지금도 충분히 복잡하다고요!”
  엄마, 아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어른 둘 앞에 아이 하나였던 채정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든 익숙해진다면서.”
  “다 방법이 있다면서.”
  채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더 조각나기 싫어요.”
  엄마, 아빠는 그제야 채정에게 손을 뻗었다.
  채정은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꼬인 몸을 풀어냈다. 가족들은 손을 맞잡았다. 엄마에게 두 손, 아빠에게 두 손. 채정 하나, 채정 둘. 처음으로 가족 모두가 손을 맞잡았다.
  “자, 이제 말해보자고요. 다 함께 말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무슨 일이든 방법은 있을 것이다. 채정이 둘이 된 것처럼 가족이 둘이 되어도 말이다. 다만, 단 한 명도 빠져선 안 되었다.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했다. 채정이 둘로 살아갈지, 다시 하나로 살아갈지, 하나이자 둘 혹은 둘이자 하나로 살아갈지. 다 함께 고민해야 했다. 채정이 둘이 되든 셋이 되든 채정은 지구상에 하나뿐인 채정인 것처럼, 부모가 둘이 되든 셋이 되든 몇이 된다고 해도 채정에겐 하나일 테니.

성욱현

1994년에 태어나 밀양에서 자랐습니다. 2021년 한국일보 동화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22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 받았습니다. 천안역 인근 동화와 시 전문 책방 ‘악어새’를 운영중입니다.

꽃을 키우는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대부분의 꽃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낯선 세상에서 당연한 것은 없지요. 그래도 세상은 겪어볼수록 좋습니다. 저는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요.
그러나 지금 세상은 어린이에게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벽을 두드리는 이야기를 씁니다. 벽을 부수려는 게 아닙니다. 벽을 가늠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벽을 보면 오르고, 타넘고, 낙서하고, 말 걸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원래 아주 오래전부터 벽은 어린이의 과묵한 친구였습니다.

2024/02/07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