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에 그 아이의 운동화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3학년 1반 김연수의 하얀 운동화.
   이사 온 지 이틀째 되던 날, 새로 전학한 학교에서 집까지 처음으로 혼자 온 날이었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같이 놀던 친구들, 그 친구들과 같이 다니던 놀이터, 그 놀이터 옆에 있던 느티나무, 그리고 그 느티나무 밑에 묻어준 금붕어 뻐끔이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갑자기 운동화 한 짝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운동화는 103동 엘리베이터 구석에 있었다.
   내 운동화랑 크기도 비슷하고 얼핏 보기에 몇 번 신지 않은 깨끗한 운동화다. 하얀색 바탕에 초록색 나이키 로고가 있고, 발이 들어가는 부분에는 찍찍이가 있었다. 걸음마 배우는 어린아이들 것도 아닌데 왜 여기 있지? 그것도 오른쪽 운동화만 말이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운동화를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사이즈는 190, 그리고 바닥에 ‘초3-1 김연수’라고 적혀 있다. 앗, 나도 3학년 1반인데!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한 손에 배달 음식을 든 아저씨가 안으로 들어왔다. 운동화에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8층 단추를 누를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배달 아저씨가 14층을 누르는 걸 보고 나서야 슬그머니 운동화를 내려놓고 8층을 눌렀다. 배달 아저씨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느라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8층에 내렸지만 발걸음이 집으로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누구 운동화일까? 나도 3학년 1반인데, 우리 반 애가 여기 사는 걸까? 그러면 정말 좋겠다. 학교에 갈 때도 같이 가고, 집에 올 때도 같이 올 수 있다. 새로 꾸민 내 방에서 같이 숙제도 하고, 게임도 하고, 강아지 산책도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나는 이틀 동안 알게 된 우리 반 애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연수라는 애가 있었던가? 곰곰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들은 기억은 없다. 내 짝이 된 소영이, 그리고 또 소영이랑 친한 애들 몇의 이름은 확실히 아는데 그중에 연수는 없었다. 그런데 왜 운동화 바닥에 이름을 써 놓은 걸까?
   문득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표시되는 창을 쳐다보니 10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내려가는 단추를 눌렀다. 운동화를 챙겨 경비실에 가지고 가면 김연수라는 아이가 어디 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음식 배달을 마치고 이제는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아저씨만 보였다. 내가 엘리베이터 안을 훑어보기만 하고 탈 생각을 하지 않자 그제야 아저씨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안 탈 거니?”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뒷걸음질을 했다.
   “네…… 뭘 잃어버린 것 같아서 확인하려고요. 그런데 없어요. 안녕히 가세요.”
   나는 고개를 들어 계단 위쪽을 쳐다보았다. 9층에서 15층 사이, 저 위층 어딘가에 김연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에서 일찍 나서서 집 앞에서 최대한 딴청을 피우며 아파트 입구를 흘깃거렸다. 혹시 집 앞에서 우리 반 친구를 만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분도 넘게 기다려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나는 지각을 할까 봐 숨이 차도록 달려서 교실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짝꿍인 소영이에게 물었다.
   “헉헉, 우리 반에 김연수라고 있어?”
   “엥? 갑자기 뭔 김연수? 그런 애는 없는데.”
   “진짜? 진짜로 없는 거 확실해?”
   “사물함 보면 되잖아. 김연수라는 애는 없어.”
   사물함에 있는 수정초등학교 3학년 1반 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살펴보았지만 김연수라는 이름은 없었다. 덕분에 우리 반 애들의 이름을 다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 알게 된 서른 명의 이름들도 ‘초3-1 김연수’에 대한 호기심을 밀어내진 못했다.
   “김연수가 누군데?” 수정이가 물었다. 나는 소영이에게 전날 오후에 내가 발견한 운동화 한 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소영이가 양 손바닥을 제 얼굴에 갖다 대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야, 뭐야. 너무 무섭잖아.” 나는 소영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가 무서워?”
   “우리랑 같은 3학년이라는 얘긴데 운동화 한 짝만 떨어져 있는 게 이상하잖아. 납치나 아동학대 뭐 이런 거 아닐까? 얼마 전에 뉴스에도 나왔잖아. 학교도 못 가고 집에 갇혀 지내던 초등학생이 맨발로 집을 탈출했다고……”
   “에이, 설마.”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무서운 일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영이 생각은 나와 달랐다.
   “일단 가보자!”
   “어딜?”
   “현장에 가보자고. 뭐라도 단서가 나올지 모르잖아. 너네 아파트 15층까지 있으니까 15층부터 9층까지 한번 살펴보자. 이따 집에 나랑 같이 가는 거다!”
   “우리 집에 같이 가자고?”
   “응, 나도 너랑 같은 아파트 살아. 내가 너네 집에 가는 지름길도 알려줄게.”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소영이를 따라 집까지 갔다. 소영이가 알려준 지름길은 조금 복잡했지만 빠르긴 확실히 빨랐단. 소영이는 103동 3, 4호 출입구 앞에 도착하자 손가락으로 아파트 위쪽을 가리키며 비장하게 말했다.
   “일단 15층으로 가서 9층까지 내려오면서 살펴보자고. 혹시 누가 살려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소영이에게 손을 잡혀 끌려가면서 사정하듯이 말했다.
   “알았어. 같이 갈 테니까 제발 그런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
   소영이는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내 눈앞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그 운동화 한 짝이 자기를 구해달라는 신호였을 수도 있다고.”
   나는 마지못해 소영이를 따라 주먹을 힘껏 쥐어 보이고는 15층으로 올라갔다.
   1503호에는 엄청 시끄러운 강아지가 산다.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찌나 요란하게 짖어대는지 재빠르게 14층으로 내려왔다. 1403호와 1404호에는 각각 교회와 성당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1404호 현관 옆에는 자전거가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어린이용은 아니었다. 1303호와 1204호 앞에는 유모차가 있었고, 1103호, 1004호에는 우유 주머니가 달려있었다.
   10층에도 강아지가 있었지만 15층처럼 시끄럽게 짖어대진 않았다. 903호 앞에는 할머니들이 끌고 다니는 보행 보조기가 있었다. 904호까지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이상하게 느껴지는 점은 없었다. 나는 소영이를 보고 말했다.
   “이제 얼른 내려가자!” 하지만 소영이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904호 현관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대고 말했다.
   “쉿, 혹시 모르니까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잘 들어봐.”
   “개 짖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잖아.”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그때 903호 문이 열리더니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이쿠, 깜짝이야! 니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도 소영이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소영이가 얼른 할머니에게 살갑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얘는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김은지고요, 저는 같은 반 황소영인데요. 혹시 엘리베이터 타고 다니시면서 저희 또래 애들 못 보셨어요? 얘가 어제 엘리베이터 안에서 운동화 한 짝을 발견했는데 여기 사는 것 같아서요.”
   할머니는 보행 보조기에 몸을 기대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소영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엊그제 이사 온 애구나.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은 못 봤는데. 그래도 같은 반 친구랑 벌써 친해졌으니 다행이네.”
   “할머니도 혹시 운동화 한 짝 보신적 있으세요?”
   “운동화 한 짝?”
   “네, 운동화 한 짝이요.”
   “운동화 한 짝이라……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할머니가 기억을 더듬고 있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할머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연수라는 애가 여기 사는 건 분명한데!”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붙어다니게 된 소영이가 우리 아파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맞아, 어젯밤에도 봤다니까.”
   “누가 찾아가는지 기다려보지 그랬어.”
   “엄마가 더럽게 왜 남의 운동화를 만지냐고 야단이잖아. 그래도 김연수, 그 이름이라도 확인한 게 어디야.”
   소영이가 곰곰 생각하더니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은지야, 밖에서 김연수 기다릴까?”
   “김연수가 누군지 알고?”
   “네가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운동화를 발견한 건 지금까지 딱 한 번이고, 그 뒤로는 네가 엄마랑 같이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발견했잖아. 그것도 아파트 입구 주변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랬지. 어젯밤이 벌써 세 번째라니까!” 나는 소영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운동화가 버려지는 그 순간을 기다려보자고! 하늘에서 떨어지는지 땅에서 솟아나는지 지켜보면 뭐라도 더 알게 되지 않을까?”
   “무작정 기다리자고?”
   “요새는 저녁에 밖에서 놀기 좋으니까 놀면서 기다리면 되지.”
   다음날부터 우리는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능한 늦은 시간까지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또래 애들이 지나가는 걸 보면 얼굴보다 운동화를 먼저 확인했다. 가끔은 김연수를 기다리는 건지, 운동화를 기다리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김연수 덕분에 친하게 된 소영이랑 김연수 덕분에 알게 된 1303호 할머니랑 셋이서 아파트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아파트 입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오후 내내 놀았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저녁 시간이 되었다며 집으로 들어갔다.
   “후우, 아무래도 오늘도 허탕인가 봐!” 소영이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그 운동화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보름 전에 처음 보고, 어젯밤에도 봤던 바로 그 하얀 운동화 한 짝이 틀림없었다.
   “야, 김연수!”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내 또래 아이가 지나가는 모습은 못 보았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운동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파트 입구 쪽으로는 노란 승합차 한 대가 막 빠져나가고 있었고, 103동 입구 경사로에는 등산복 차림의 아주머니 한 분이 빨간 그늘막이 있는 유아차를 밀고 경사로를 오르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어? 우리 연수를 알아?”
   내 또래의 아이가 아니라 유아차를 미는 어른이 대답을 해서 당황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아…… 저기 신발이 한 짝 떨어졌는데…… 바닥에 이름이 김연수라고……”
   아주머니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하더니 뒷걸음으로 유아차와 함께 경사로를 내려왔다.
   “연수가 또 신발을 떨어뜨렸구나. 진짜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니까.”
   아주머니는 한 손으로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집어들고 일어서더니 다른 한 손으로 유아차의 빨간 그늘막을 확 걷어올렸다. 그 안에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고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듯 발차기를 했는데 왼쪽 발에만 하얀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김연수가 틀림없었다. 여자아이는 두 발을 번갈아 뻗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내서 웃었다. 그동안 나를 애태우게 한 일이 신나 죽겠다는 듯이.
   연수에게 다시 운동화를 신기려고 허리를 굽힌 아주머니의 등을 보며 내가 물었다.
   “얘가 김연수예요?”
   연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발길질을 세차게 했다. 운동화에 반쯤 들어갔던 연수의 발이 다시 쏙 빠져나왔다. 아주머니가 운동화를 든 손을 허리에 대고 일어서더니 내게 말했다.
   “니가 김연수니, 하고 직접 물어봐줄래? 지금 자기한테 안 물어봤다고 화내는 거야.”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소영이가 나와 유아차 사이에 쑥 끼어들었다.
   “니가 김연수 맞지? 나는 황소영이고, 얘는 은지라고 해. 김은지. 얘가 103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다음날 네 운동화를 발견하고 네가 어디 숨어있는지 찾아다녔거든.”
   “나·숨·은·적·없·는·데.”
   연수는 입안에 커다란 사탕을 하나 물고 있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말했다. 그래도 천천히 말을 해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15층부터 9층까지 다 찾아봤었어. 너 어디 사는데?”
   “십·이·층.”
   “12층? 아! 그 유아차가 네 거였구나!” 소영이가 손뼉을 치며 대답을 했는데 연수가 짜증이 잔뜩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유·아·차·아·니·고·휠·체·어.”
   우리가 당황한 표정을 하자 그때까지 잠자코 연수 곁에 있던 아주머니가 설명을 해주었다.
   “연수 말이 맞아. 유아차형 휠체어라고 하는데 연수는 유아차라는 말을 싫어해.”
   소영이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연수에게 물었다.
   “아, 알았어. 그건 미안! 참, 너도 3학년 1반이지? 우리는 수정초등학교 3학년 1반이야. 은지가 처음에 너도 우리 반인 줄 알고 나한테 김연수가 누구냐고 물어봤거든. 그래서 나도 너를 같이 찾아다니게 된 거야. 너는 어느 학교에 다녀?”
   “나·는·다·음·학·교·삼·학·년·일·반.”
   “다음 학교? 어디에 있는 학교야?”
   연수가 발을 구르며 곁에 잠자코 서 있는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대신 말해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멀어. 용화동에 있어.”
   소영이가 다시 물었다.
   “용화동? 나는 처음 들어보는 동넨데, 얼마나 걸려?”
   연수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엄·청·멀·어·아·침·밥·도·못·먹·어.” 아주머니가 설명을 보태주었다.
   “학교 버스로 30분 넘게 가야 해. 아침 7시 50분쯤에 버스를 탄대.” 아주머니의 말이 이상해서 내가 물었다.
   “어? 그런데 연수 엄마가 아니에요?”
   “응, 아니야. 나는 활동지원사라고, 오후에 연수 데리러 가서 치료실이랑 복지관 들렀다가 이렇게 집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해. 아침에는 아빠가 출근하면서 버스까지 데리고 가지. 나도 연수랑 만난 지 이제 한 달 됐는데 연수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발차기를 해서 운동화를 떨어뜨리더라고.” 아주머니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연수가 운동화 얘기에 장난꾸러기처럼 활짝 웃었다. 처음 운동화를 발견하고 온갖 상상을 했던 일을 떠올리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네가 어디 갇혀 있는 줄 알았어. 자꾸 운동화 한 짝만 나타나서 구조 신호인가 그랬다니까.”
   “구·조·신·호·가·뭐·야?” 연수의 물음에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살려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거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바다 한복판에서는 깃발을 흔들거나 불을 피우기도 하고……”
   “신·발·을·떨·어·뜨·리·기·도·해.”
   연수가 천천히 말했다.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살려달라고?”
   “아·니·같·이·놀·자·고.” 연수의 말에 아주머니도, 우리도 같이 웃었다. 소영이가 연수를 향해 오른손을 흔들며 말했다.
   “3학년 1반 김연수, 반가워. 나는 3학년 1반 황소영이라고 해! 우리 같이 놀자!”
   나도 가만히 소영이가 하는 말을 따라 했다. “그래, 우리 같이 놀자!”
   아주머니가 우리 셋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 연수가 그동안 열심히 운동화를 벗은 보람이 있었네. 학교에서도 연수 별명이 신데렐라거든. 나는 왕자님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왕자님보다 더 좋은 동네 친구가 찾아왔네.”
   “친·구·가·훨·씬·좋·지.”
   연수의 말투를 따라 셋이 함께 천천히 소리 내어 말했다. 큰소리로 외치는 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런데 왜 가까운 학교에 안 다녀?”
   소영이의 질문에 활짝 웃던 연수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고개만 저었다. 아주머니가 연수 표정을 살피더니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연수도 가까운 학교에 다니고 싶지. 그런데 전에 살던 동네에서 처음 입학할 때 집 근처 학교에 물어봤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했대. 근처 다른 학교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거긴 30분 넘게 걸어가야 하고. 동네 친구들도 없는데 그렇게 멀리 다녀야 하나 싶어서 다음 학교로 간 거지. 다음 학교는 휠체어로 다니기에 아주 편하거든. 거기선 연수도 휠체어를 혼자 밀고 다닐 수 있어.”
   “다·음·학·교·좋·아·이·동·네·랑·학·교·는·나·빠.”
   연수의 말에 소영이가 따지듯 물었다.
   “뭐야, 친구 하기로 해놓고 갑자기 우리 학교랑 동네가 나쁘다고?”
   아주머니가 연수랑 소영이 사이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달래듯 말했다.
   “둘 다 화내지 말고 친구 된 기념으로 같이 동네 한 바퀴 산책할까? 내가 맛있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줄게.”
   아이스크림 소리에 연수가 활짝 웃었고, 소영이는 그런 연수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머니가 소영이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다.
   “자 그럼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 산 소영이가 학교 앞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길 안내를 해줄래?”
   소영이는 오른팔을 힘차게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자신 있게 대꾸했다.
   “그럼요, 저만 따라오세요!”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소영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죄송해요’, ‘미안해’를 입에 달고 다녀야 했다. 휠체어에 견주면 다니기 편하다는 유아차형 휠체어를 타고 가기에도 우리 아파트에서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가는 길은 너무 불편했다. 처음에는 얼마 전 알게 된 지름길로 가려고 했다가 아파트 쪽문을 지나가려면 계단 3개를 올라가야 한다는 걸 알고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평소에는 인도와 차도 사이의 턱 따위를 신경써본 적이 없었는데 별생각 없이 걷다 보면 도로의 턱 때문에 연수가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심지어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계단이 두 개가 있었다. 딱 두 개뿐이었지만 휠체어로 바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밖에서 연수하고 기다려야 했다. 아주머니 혼자 들어가서 우리가 고른 맛의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나왔다. 하지만 가게 안에 들어갔다면 다른 아이스크림을 골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시무룩한 나와 소영이하고는 다르게 연수는 신이 난 표정이었다.
   “내·말·이·맞·지·이·동·네·나·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수 말에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네. 나도 우리 동네가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어. 너 찾는다고 은지랑 추리하면서도 운동화가 왜 아파트 입구에만 떨어져 있냐고 이상하다고 그랬는데. 우리가 맨날 가는 곳들이 너한테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어.”
   연수가 다시 힘을 주어 말했다.
   “수·정·초·등·학·교·도·나·빠.”
   아주머니가 연수의 말에 설명을 보냈다.
   “연수도 한 달 전에 이사를 왔어. 이사 오기 일 년 전부터 혹시 수정초등학교로 전학이 되는지 물어봤었대. 작년에는 나중에 엘리베이터 생기면 오라고 했다는데 이번에 물어보니 아직 엘리베이터 설치를 안 했다고 그러더래. 휠체어를 타는 학생이 없어서 설치할 생각을 못했다고 그랬대.”
   “말도 안 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휠체어를 탄 애들이 학교에 못 오는 거잖아.”
   소영이가 주먹을 쥐고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말을 보탰다.
   “그러게. 박물관에도, 도서관에도 엘리베이터가 다 있는데 왜 우리 학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거야? 우리 동네도, 우리 학교도 정말 나빠.”
   “너·도·화·가·나?”
   처음 학교 이야기에 화를 내던 연수가 우리 둘을 보고 천천히 물었다. 나는 씩씩거리는 소영이 얼굴을 바라본 뒤에 다시 연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공진하

지체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늘 숨지 말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어린이들이 밖으로 나가기에는 학교도 우리가 사는 동네도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게 내 일이고, 또 내 친구의 일이니까요.

2022/06/28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