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는 벌써 팔이 아팠어요. 겨우 공책 세 줄밖에 채우지 않았는데도요. 소다는 남은 빈 줄을 또 세어봤어요. 이제 아홉 줄 남았어요. 그걸 다 채울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어요. 무슨 말로 공책 한 바닥을 채워야 할지 막막했어요. 글씨 쓸 힘이 없으니 생각할 힘도 나지 않는 듯했어요.
  “글씨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어른들은 소다가 쓴 글씨를 보고 이렇게 말했어요. 오빠도요. 소다가 봐도 자기가 쓴 글씨는 힘이 없어 보였어요. 지우개를 가까이 대기만 해도 다 사라질 것처럼 흐릿했어요.
  “많이 먹고 힘이 세져야 글씨도 잘 쓰지. 오빠처럼.”
  오빠가 소다 앞으로 반찬을 밀어주며 말했어요.
  소다는 한숨이 나왔어요. 다 먹을 자신이 없었어요. 소다는 젓가락질도 힘들었어요.

방과후 수업 시간이었어요.
  딸깍, 딸깍.
  바쁘게 마우스를 누르는 소리가 컴퓨터 교실을 가득 메웠어요. 마우스로 클릭과 드래그를 연습하는 중이었어요. 암탉이 닭장 여기저기에 낳은 달걀들을 달걀판에 옮겨 담는 게임이었어요. 달걀 한가운데에 화살표를 놓고 마우스를 꼭 누른 다음 그대로 달걀판까지 가져가야 해요. 그런 다음 달걀을 빈칸에 놓고 마우스에서 손가락을 떼면 달걀이 쏙 들어가요.
  “선생님, 다 했어요!”
  달걀판 서른 칸을 다 채운 아이들이 크게 외쳤어요.
  소다는 마음이 급해졌어요. 급하니까 손이 더 안 움직였어요. 달걀을 옮기다가 또 놓쳤어요. 달걀이 바닥에 떨어져 톡 깨졌어요. 벌써 네 개째예요. 두 개는 마우스가 마우스패드를 벗어나는 바람에, 두 개는 마우스에서 손가락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랬어요.
  암탉이 깨진 달걀을 보며 꼬꼬꼬 울었어요. 소다도 울고 싶었어요.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달걀을 슥 옮기면 될 텐데 왜 힘들게 마우스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화면 안에 있는 물건을 화면 밖에서 움직이기는 너무 어려웠어요.
  빌라 앞에 도착한 소다는 화단 앞에 쭈그려 앉아 개미들을 구경했어요. 개미 여러 마리가 커다란 죽은 벌레를 함께 옮기고 있었어요.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과자 부스러기를 하나씩 든 개미들이 줄지어 뒤따랐어요. 소다는 언제인가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어요.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스무 배까지도 들어올릴 수 있다고 했어요.
  “너희는 좋겠다.”
  소다가 나뭇가지로 화단 흙을 쿡쿡 쑤시며 말했어요.
  소다가 개미들을 좀더 구경하다가 일어설 때였어요. 흙바닥에 쿡 찔러 세우려던 나뭇가지가 무엇인가에 닿아 뚝 부러졌어요. 나뭇가지에 뚫린 구멍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했어요. 소다가 부러진 가지 끝으로 그 자리를 쓱쓱 파헤치자 까만 조약돌이 드러났어요.
  “보석인가?”
  소다는 보석이 땅속에서 나온다고 들었어요. 보석은 그냥 보면 돌덩이 같지만 깎아내면 빛이 난다고 했어요. 소다는 조약돌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 다음 집으로 가져갔어요.
  소다는 수돗물로 조약돌을 깨끗이 씻은 다음 수건으로 닦았어요. 그러자 까만 조약돌에 말간 빛이 감돌았어요. 깎아내면 더 예쁠지 모르지만 소다는 이대로도 조약돌이 마음에 들었어요.
  소다가 조약돌을 쥐고 화장실 문을 향해 뒤돌 때였어요. 무엇인가가 소다를 따라 휙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화장실 안에 그럴 만한 것은 없었어요. 날벌레도 없었어요.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소다가 눈을 크게 떴어요. 화장실 문에 화살표가 붙어 있었어요.
  소다가 스티커인가 하고 떼려고 했지만 화살표는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소다는 화장실 안을 두리번거렸어요.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어서 빛 그림자가 비칠 리도 없었어요. 소다는 수건에 물을 묻혀 화살표를 닦아보기로 했어요.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던 소다는 깜짝 놀랐어요. 화살표가 움직였어요.
  소다가 주머니에 넣으려던 조약돌을 천천히 꺼냈어요. 화살표가 천천히 따라 움직였어요. 위로, 아래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소다가 조약돌을 움직이는 대로 화살표가 움직였어요.
  “오빠! 오빠!”
  화장실을 뛰쳐나가던 소다가 우뚝 멈춰 섰어요. 어쩐지 이 사실을 혼자만 알아야 할 것 같았어요.
  “뭔데?”
  오빠가 방에서 나오며 물었어요. 오빠 앞에 화살표가 동동 떠 있었어요. 하지만 오빠 눈에는 안 보이는 듯했어요. 다행이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방에 들어온 소다는 화살표가 따라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어요. 그리고 다시 조약돌을 감싸쥐고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화살표가 방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소다는 조약돌을 쥔 손에서 힘을 빼면 화살표가 멈춰 선다는 걸 알아냈어요.
  소다가 다시 조약돌을 쥐고 움직일 때였어요. 책상 위에 있던 메모지가 화살표에 딸려 올라왔어요. 깜짝 놀란 소다가 자기도 모르게 조약돌을 움켜쥐었어요. 그러자 대롱거리던 메모지가 화살표에 찰싹 붙어 한몸처럼 움직였어요. 소다는 손에서 가만히 힘을 풀어보았어요. 그러자 메모지가 화살표를 떠나 책상 위로 나풀나풀 떨어졌어요. 소다는 손을 펴보았어요. 조약돌이 땀에 젖어 반들반들했어요.
  소다는 밤늦도록 조약돌을 쥐었다 놓았다 했어요. 화살표로 공책 끝을 잡아 넘겼어요. 화살표로 여기저기 흩어진 지우개 가루를 콕콕 집어 한곳에 소복이 모았어요. 연필을 집어들어 필통에 넣는 건 어려웠어요. 연필이 이쪽저쪽으로 기울다가 화살표에서 떨어졌어요. 소다는 클립이나 고무밴드 같은 가벼운 것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옮겨보았어요. 마우스와 달리 조약돌로 화살표를 움직이기는 정말 쉬웠어요. 손안에 쏙 들어오는 조약돌이 소다의 마음을 그대로 읽는 것 같았어요.
  잠자리에 든 소다는 코가 간질간질했어요. 소다는 화살표를 움직여서 티슈를 톡 뽑았어요. 그리고 코를 킁 풀었어요. 소다는 티슈를 구긴 다음 화살표로 집어들어 휴지통에 버렸어요. 소다는 전등을 끄기 위해 일어날 필요도 없었어요. 침대에 누운 채로 화살표를 움직여 스위치를 눌렀어요. 딸깍.

소다는 조약돌을 움직여 화살표를 필통 안에 넣고 집을 나섰어요. 학교 가는 내내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만지작거렸어요. 학교에서 조약돌을 써볼 생각이었어요.
  1교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어요. 소다가 주머니 안에서 조약돌을 살살 움직였어요. 화살표가 필통 밖으로 살살 빠져나왔어요. 소다는 앞자리에 앉은 지호의 머리카락으로 화살표를 옮기다가 멈췄어요. 삐죽삐죽 뻗친 머리카락을 단정히 눌러줄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허락 없이 남의 몸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배웠어요. 소다는 화살표를 대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소다가 뭘 움직여볼까 하면서 눈으로 교실을 둘러볼 때였어요. 대각선 자리에 앉은 세라가 지우개를 떨어뜨렸어요. 소다는 지우개가 멀리 굴러가기 전에 화살표로 멈춰 세웠어요. 세라가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어 지우개를 집어들었어요.
  소다는 쉬는 시간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화살표로 이런저런 일을 했어요. 칠판에 비뚜름하게 붙어 있는 종이를 똑바로 했어요. 창틀에 놓인 화초에서 말라붙은 나뭇잎들을 똑똑 따냈어요.
  방과후 수업이 시작되었어요. 소다는 여전히 마우스를 쓰는 일이 어려웠어요. 첫 달걀부터 깨뜨리고 말았어요.
  ‘혹시……?’
  소다는 마우스를 슬그머니 책상 아래에 넣었어요. 그리고 손안에 조약돌을 감추고서 화살표를 화면 위에 끌어다 놓았어요. 소다는 화살표를 달걀 위에 올린 다음 조약돌을 꼭 움켜쥐었어요. 그리고 살며시 조약돌을 움직였어요. 달걀이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어요. 소다는 가슴이 콩콩 뛰었어요. 달걀이 무사히 달걀판의 빈칸에 들어갔어요.
  두번째 달걀도, 세번째 달걀도 빈칸에 쏙쏙 들어갔어요. 달걀을 옮기는 소다의 손이 점점 빨라졌어요. 마침내 달걀판의 빈칸이 모두 채워졌어요. 빰빠라밤 하는 나팔 소리와 함께 화면 안에서 꽃가루가 흩날렸어요. 암탉이 활짝 웃으며 두 날개로 짝짝짝 박수를 쳤어요. 기쁨에 젖어 있던 소다는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힘들게 낳은 달걀을 빼앗기고도 박수를 치는 암탉이 이상해 보였어요. 달걀을 깨뜨렸을 때처럼 암탉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소다는 이제 화살표로 연필이나 지우개도 쉽게 옮겼어요. 화살표로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고 닫았어요. 현관 앞에 이리저리 벗어놓은 신발들을 짝을 맞춰 가지런히 놓을 수도 있었어요.
  “다음 시간에 소다랑 윤재랑 대결 한번 해보자.”
  컴퓨터 선생님이 말했어요. 소다가 달걀 옮기기 신기록을 세운 날이었어요. 그전까지 일등 자리를 지키던 윤재가 소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한번 붙자는 뜻이었어요. 소다는 자신의 비밀이 들통날까봐 겁이 났어요.
  집에 돌아온 소다는 주머니 속의 조약돌만 계속 매만졌어요. 다음 방과후 수업 시간까지 진짜 마우스로 열심히 연습해볼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턱도 없는 일이었어요.
  부르르르.
  오빠가 가스불에 올려둔 라면 물이 끓어 넘쳤어요. 그 순간, 소다가 번개처럼 화살표로 냄비 뚜껑을 집어들었어요.
  쨍그랑.
  댕그르르르.
  소다가 놓친 냄비 뚜껑이 바닥에 떨어져 구르며 큰 소리를 냈어요.
  “안 다쳤어? 손 안 뎄어?”
  오빠가 달려오며 외쳤어요. 오빠는 소다가 아기였을 때부터 소다가 다칠까봐 걱정이 많았어요.
  “괜찮아.”
  소다는 냄비 뚜껑을 놓치던 순간이 자꾸만 생각났어요. 주머니에서 조약돌을 꺼내 보고 싶었지만 오빠 앞이라서 그러지 못했어요.
  후루룩후루룩.
  오빠가 끓여주는 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었어요.
  “너 그 흉터……”
  오빠가 라면을 먹다 말고 소다의 이마를 보며 말했어요. 소다의 이마에는 어릴 때 생긴 흉터가 작게 튀어나와 있었어요.
  “예전보다 커진 거 같아.”
  오빠가 걱정스레 말했어요.
  “자라면서 얼굴이 커지니까 흉터도 따라서 커진다던데? 근데 뭐 어때.”
  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어요.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흉터였어요. 그런데도 오빠는 자꾸만 신경을 썼어요.
  소다는 그날의 사고가 기억나지 않았어요. 소다가 네 살 때였다고 했어요. 오빠가 뒤에서 손을 놓치는 바람에 소다가 올라탄 세발자전거가 내리막길을 내달렸다고 했어요. 자전거가 화단 턱을 들이받는 순간 소다가 붕 날아올랐다가 떨어졌다고 했어요.
  “하늘이 도왔네, 도왔어.”
  사고를 보고 달려온 어른들이 입을 모아 말했어요. 놀란 소다가 큰 소리로 울기는 했지만 조금 찢어진 이마를 빼고는 다친 곳이 없었어요.
  “그 조약돌 진짜였을까……?”
  오빠가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어요.
  “응? 조약돌?”
  소다가 오빠를 가만히 보며 물었어요.
  “어…… 설명하자면 긴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꿈이었나봐. 상상이었거나.”
  오빠는 조약돌을 힘껏 움켜쥐자 붕 날아오른 소다가 공중에서 멈췄다고 했어요. 조약돌을 움직여 소다를 천천히 내려놓다가 갑자기 손에서 힘이 쑥 빠졌다고 했어요. 그 바람에 소다가 떨어지면서 화단 모서리에 이마를 콩 찧었다고 했어요.
  “재밌지? 오빠처럼 책 많이 읽으면 이렇게 돼.”
  오빠가 피식 웃으며 말했어요.
  “그 돌, 지금 어딨어?”
  소다가 물었어요.
  “에이, 상상이라니까.”
  “그래, 상상 속에서 그 돌은 어떻게 했는데?”
  “어쨌더라?”
  오빠는 그날을 끝으로 조약돌이 힘을 잃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자리에 도로 파묻었다고 했어요. 상상 속에서.
  소다는 주머니 속의 돌을 땀이 나도록 매만졌어요. 오빠가 묻은 돌이 이 돌일 리는 없었어요. 그때 소다네는 다른 도시에 살았어요. 소다는 오빠에게 조약돌을 보여주면서 모든 일을 털어놓을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랬다가는 조약돌이 힘을 잃을지도 몰랐어요. 소다는 냄비 뚜껑을 떨어뜨린 뒤로 계속 불안한 터였어요. 소다는 달걀 게임 대결을 하기 전까지 조약돌을 쓰지 않기로 했어요. 남은 힘을 다 써버리지 않으려고요.

컴퓨터 수업이 있는 날이었어요. 학교로 향하는 소다의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윤재와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면서 조약돌을 손안에 감추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둘러서서 지켜볼 게 틀림없었어요. 왼손으로 조약돌을 쥐고 주머니 안에서 움직이는 방법도 있었어요. 오른손으로는 마우스를 움직이는 시늉만 하고요. 조약돌은 왼손으로도 움직이기 쉬우니 문제없을 거예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어요. 냄비 뚜껑을 떨어뜨린 날처럼 조약돌이 제힘을 못 쓸지도 몰랐어요. 소다는 주머니에서 조약돌을 꺼내봤어요. 그날 이후로 조약돌이 부쩍 빛을 잃은 듯했어요.
  소다가 길모퉁이를 향해 걸어갈 때였어요. 은행나무 가지에 앉은 비둘기가 소다의 눈길을 붙들었어요. 까만 비닐봉지가 비둘기의 목에 걸려 있었어요. 비둘기의 머리가 바람에 부푼 비닐봉지 안에 갇혀 있었어요. 소다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게임 대결이 생각났지만 더 고민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어요.
  소다는 주머니 속에서 조약돌을 움직여 화살표를 꺼냈어요. 화살표는 처음부터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자꾸만 멈췄어요. 이렇게 멀고 높은 곳으로 화살표를 옮겨본 적이 없어서인 듯했어요. 어쩌면 정말로 조약돌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힘겹게 들어올린 화살표가 마침내 비닐봉지에 닿았어요. 소다는 아무리 봐도 비닐봉지를 한 번에 벗겨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살살 벗겨내려고 하면 비둘기가 도중에 날아가버릴 게 틀림없었어요.
  소다는 모든 것을 비둘기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비둘기가 스스로 빠져나가기를 바라기로 했어요. 소다는 조약돌을 있는 힘껏 움켜쥐고 화살표를 홱 잡아당겼어요. 놀란 비둘기가 푸드덕푸드덕 날뛰었어요. 팽팽히 당겨진 비닐봉지 손잡이 사이로 비둘기의 머리가 보였어요. 비둘기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살살 머리를 빼내면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비둘기가 그런 생각을 할 리 없었어요.
  소다는 날뛰는 비둘기를 따라 비닐봉지를 움직여주었어요. 목에 걸린 손잡이를 느슨하게 해주려고요. 조약돌을 쥔 손이 부서질 듯 아팠어요. 소다는 그보다도 이러다가 조약돌이 힘을 잃고 비닐봉지를 놓칠까봐 겁이 났어요.
  푸드덕!
  미친 듯이 몸부림치던 비둘기가 마침내 머리를 빼냈어요. 그리고 공중에서 한 번 휘청하더니 그대로 날아갔어요. 소다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어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날아가는 비둘기를 오래오래 바라보았어요.

“에이, 뭐야.”
  “이렇게 져주기 있냐?”
  달걀 옮기기 대결은 시시하게 끝났어요. 윤재가 쉬지 않고 달걀 서른 개를 옮기는 동안 소다는 아홉 개밖에 옮기지 못했어요. 옮기는 내내 마우스를 쥔 손이 눈물 나게 아팠어요. 윤재의 컴퓨터에서 빰빠라밤 나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소다가 마우스를 놓았어요. 살 것 같았어요.
  소다는 하나도 깨뜨리지 않고 달걀판에 담은 아홉 개의 달걀이 자랑스러웠어요. 무엇보다 암탉이 울 일도 웃을 일도 없어서 좋았어요. 중단된 게임 화면 안에서 암탉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조약돌은 이제 완전히 빛을 잃어 거무튀튀했어요. 소다는 원래 묻혀 있던 자리에 조약돌을 파묻었어요. 땅속에서 보석이 나오듯 조약돌도 땅속에서 다시 힘을 얻을지 몰랐어요. 언제인가 누가 꺼내서 꼭 필요한 데에 쓸지도 몰랐어요.
  “자, 이거. 중고 시장에서 샀어.”
  집에 들어온 소다에게 오빠가 마우스를 내밀었어요.
  “이렇게 작은 마우스도 있어?”
  소다가 마우스를 받아 들며 말했어요.
  “어린이용 마우스래. 진작 사줄걸. 이걸로 연습하면 훨씬 쉬울 거야.”
  오빠가 말했어요.
  “고마워, 오빠.”
  소다는 마우스를 쥐어보았어요. 마우스가 소다의 작은 손안에 꼭 들어맞았어요.
  오빠가 또 소다의 흉터를 보며 콧등을 찡그렸어요. 소다는 이마에 난 흉터에 손가락을 가져다댔어요. 소다는 눈을 감고 그 흉터를 오래오래 만졌어요. 흉터가 점점 크고 또렷하게 느껴졌어요.
  소다가 다시 한번 말했어요.
  “고마워.”

길상효

동화 『깊은 밤 필통 안에서』, 「내가 좋아서」, 청소년소설 「아무 날도 아니어서」, 그림책 『동갑』 『최고 빵집 아저씨는 치마를 입어요』 등을 쓰고, 그림책 『산딸기 크림봉봉』 등을 우리말로 옮겼어요. 한국과학문학상, 비룡소문학상, 웅진주니어그림책상을 받았어요.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가 발휘하고 마는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고르고 골라 봐도 어쩐지 ‘마음’이란 이름으로 돌아오게 돼요. 페블(pebble)이란 이름의 마우스를 딸각거리다가 쓰기 시작한 이야기예요.

2024/05/01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