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우리 학교에 내려오는 괴담 알아? 저기 봐봐. 저기, 빈 교실에 사물함 보이지? 다 작은데 큰 거 하나 있잖아. 청소도구함처럼 생긴 거 말이야. 저기에서 여자애가 죽었대.
   4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야. 죽은 여자애는 사람들을 놀라키는 걸 엄청 좋아했대. 그날도 친구들을 놀라키려고 아침 일찍 등교해서 저 사물함 안에 숨어 있었다나. 그러다 깜빡 잠이 든 거지. 그런데 그날 폭설이 내려서 학교가 쉬고, 아무도 학교에 오지 않은 거야. 교실은 북극처럼 추워졌어. 그런데 아무도 그 애를 깨우지 않았지. 결국 여자애는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됐고, 그 뒤로 사물함 귀신이 돼서 나타난대……
   괴담은 저 사물함을 열면 사물함 귀신이 붙는다는 거야. 귀신이 붙은 사람을 계속 놀라킨대. 귀신을 떼는 방법은 딱 하나야. 귀신이 만족할 만큼 아주 크게 놀라는 거지. 말하자면 무서운 걸 얼마나 견딜 수 있나, 용기를 시험하는 거야.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고? 있어도 하나도 안 무섭다고?
   그럼 너도 우리 담력 시험에 껴봐. 네 말을 증명해 보라고.
   
   석진이가 한 얘기는 정말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고 나만 담력 시험에 빠지면 애들한테 두고두고 놀림당할 게 분명했다. 시시하고 재미도 없는 담력 시험이지만 하는 수 없이 나도 끼기로 했다.
   우리는 방과 후에 빈 교실에 모였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석진이가 누가 먼저 들어갈 건지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다들 힐끗힐끗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바우 너 먼저 해. 넌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잖아.”
   창영이가 말했다. 나는 갑자기 이름이 불려서 깜짝 놀랐다. 다들 긴장하고 있으니까 나도 괜히 긴장한 모양이다. 손바닥이 조금 축축해졌다. 하지만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 먼저 할게.”
   친구들이 “오오오”하고 환호했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사물함 앞에 섰다. 귀신이 나온다는 사물함은 반마다 있는 청소도구함만큼 컸다. 높이는 허리까지 오고 폭은 학교 책상 정도 됐다. 무릎께 즈음에 툭 튀어나온 손잡이는 군데군데 시커멓게 녹이 슬어서 만지면 쇠 냄새가 날 것 같았다.
   허리를 숙이고 손가락 끝으로 고리를 살짝 잡아당겼다. 사물함은 90도 정도 열리자 끼익, 끼익하는 소리를 냈다. 녹이 슬어서 그런 건지, 원래 이런 건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냄새도 이상했다. 오랫동안 닫아둔 옷장 문을 연 것처럼 눅눅하고 울렁거리는 냄새가 풍겼다.
   멈칫하고 뒤를 돌아봤다. 애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켜고 사물함 안으로 들어갔다.
   쪼그리고 앉아서 뒤로 오리걸음을 하니까 몸이 전부 들어갔다. 꽤 넉넉한 크기였다. 하지만 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서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됐지?’ 하는 눈빛으로 석진이를 바라봤다. 석진이는 내 눈빛을 다르게 해석한 모양인지 얼른 다가와서 사물함 문을 닫았다.
   “야! 문은 왜 닫고 그래.”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석진이는 “십초 세고 나와!”라고 소리치더니 느릿느릿하게 10을 세기 시작했다. 창영이도, 우람이도, 규민이도 큰 소리로 함께 10을 셌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나는 애들이 10을 세는 동안 숨을 참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사물함 문이 끼익, 끼익하고 살짝 열렸다 닫혔다 하는 걸 보면서 10초가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손톱만큼 얇은 빛이 들어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여기서 죽었다던 여자애 생각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 떠올랐다. 걔는 대체 왜 이런 데 숨어 있었을까? 좀 더 좋은 방법으로 놀라키지, 굳이 이렇게 좁고 냄새나는 곳에 숨어 있다 죽기나 하고…… 바보 같았다. 그 여자애처럼 굴고 있는 나도 바보 같았다.
   “아홉, 십! 이제 나와, 김바우!”
   문이 활짝 열렸다. 석진이는 손을 내밀고 날 일으켰다. 우람이가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었다. 별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으쓱해졌다.
   “뭐야. 귀신 머리털도 없던데?”
   “당연하지. 귀신은 혼자 있을 때 확! 나타나는 거라고.”
   석진이가 얼굴을 확 들이밀고 놀라키는 시늉을 했다.
   “그게 뭐야. 에이, 담력 시험 되게 시시하네.”
   나는 석진이 어깨를 밀어내고 투덜거렸다.
   “야, 너…… 그 귀신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시시하다’랬어.”
   석진이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하나도 안 무서웠다. 나는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그깟 시시한 귀신 붙어보라지. 내가 무서워하나 봐라.”
   석진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창영이, 규민이, 석진이가 사물함 안에 들어가 10초를 세고 나왔다. 우람이는 끝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애들이 이름이랑 덩치는 우람한데 용기는 왜소하다고 놀려댔지만 우람이는 멋쩍게 “헤헤” 웃고는 말았다.
   시시한 담력 시험이 끝난 후 우리는 다 같이 PC방으로 갔다. 귀신 얘기보다 훨씬 재밌는 총 게임을 밤늦게까지 하고, 캄캄한 길을 혼자 걸었지만 귀신은 한 번도 안 나타났다. 역시 귀신같은 건 없다. 귀신은 다 상상이다. 나는 혼자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중얼거렸다.
   집에 도착한 뒤로는 귀신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잘 시간이 돼서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푹 빠졌다. 그러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서 잠이 깼다.
   “아, 화장실 가기 싫은데……”
   한참을 침대 위에서 미적거렸다. 그럴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고 화장실 신호는 세졌다. 하는 수 없이 숨을 훅 들이켜고 화장실까지 돌진했다. 가는 길에 방 불도 빠르게 켰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눌 때는 만화 주제가인 <대전사 우라칸>도 흥얼거렸다. 거울에는 눈도 안 주고 화장실을 나왔다. 이제 침대에 들어가서 이불만 덮으면 무사히 끝이다.
   방문을 조금 열어두고 돌아섰다. 불도 그대로 켜뒀다. 그런데 갑자기 끄지도 않은 불이 달칵하고 꺼지더니, 내 침대 위에, 나타났다. 단발머리 여자애가 말이다. 귀신이었다.
   “어어……”
   귀신은 내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처음엔 어두워서 자세히 안 보였는데, 몸이 굳어있는 동안 눈이 어둠에 적응해버렸다. 이제는 귀신이 입은 옷까지 보였다.
   귀신은 청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남색 스니커즈에, 회색 장갑과 목도리까지 둘렀다. 청청 패션 때문인지, 아니면 얼어 죽었기 때문인지 얼굴도 어딘지 퍼렇게 질려 보였다. 퍼렇게도 허옇게도 보이는 얼굴보다 더 끔찍한 건 새카만 눈이었다. 귀신의 눈은 꼭 바퀴벌레 등딱지처럼 반들반들하고 까만 데다 크기까지 해서 소름이 끼쳤다.
   당장 눈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눈도 몸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털썩 주저앉았다. 비명은 안 나왔다.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아무 소리도 안 나왔다.
   그 와중에도 귀신이랑 눈을 계속 마주쳤다. 귀신도 날 보고 있었다. 귀신은 헝클어진 단발머리를 오른쪽으로 천천히 기울이다가 씩하고 웃었다. 귀신의 입 주변에 핏줄이 균열처럼 일어났다. 투둑투둑 옷 같은 게 뜯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귀신의 얼굴에 핏줄이 한 줄씩 더 일어났다. 귀신이 한층 더 무서운 얼굴로 변하는 걸 보면서……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날 깨우러 온 엄마에게 발견됐다.
   “김바우! 너 왜 문 앞에서 자고 있어? 입 안 돌아갔어?”
   아닌 게 아니라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엄마한테 안겼다. 열두 살이 된 후로는 처음 해보는 포옹이었다.
   “어머, 얘가 왜 이래? 너 진짜 어디 아파? 아니면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
   엄마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한테 어젯밤 얘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바람이가 엄마 뒤에서 튀어나오는 게 더 빨랐다.
   “형아 아파? 악몽 꿨어?”
   바람이가 엄마처럼 눈썹을 축 내리고 걱정스러운 척 물었다. 나는 절대 사실대로 답할 수 없었다. 어젯밤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바람이 유치원에 당장 소문이 돌고 말 거다.
   ‘우리 형아가 귀신을 봤다, 기절했다, 감기에 걸렸다, 우리 형아는 겁쟁이다!’
   절대 그런 소문이 돌게 둘 수는 없었다. 엄마도 안심할 수 없다. 바람이 만큼이나 엄마도 소문내기를 좋아했다. 나는 어젯밤 이야기를 가슴 속에 품어두기로 했다.
   “악몽은 무슨! 아니야. 안 아파. 그냥 더워서 바닥에서 잔 거야.”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니라는 진심을 담아 팔짱까지 꼈다.
   “치, 그럼 왜 엄마랑 포옹해? 열두 살이나 먹어서 안 한대 놓고.”
   바람이가 입을 삐죽였다. 나는 그냥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 씩씩하게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인사도 큰소리로 하고, 계단도 힘차게 뛰어 내려왔다. 하지만 집에서 멀어질수록 몸에 점점 힘이 빠졌다. 가방은 오늘따라 특히 더 무거웠다.
   “어, 김바우! 너 왜 그러냐?”
   석진이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뭐가? 내가 뭐?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너 되게 힘없어 보여. 다크써클도 장난 아니야.”
   석진이가 눈 밑을 죽 늘리면서 말했다. 나는 잠깐 입을 다물고 심호흡했다.
   “사실 나…… 어제 귀신 봤다.”
   “뭐, 귀신?”
   석진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들을 만큼 큰 목소리였다.
   “어어…… 그게, 뭐 별 건 아니더라. 놀란 척하느라 힘들었어.”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하지만 태연한 나랑 달리 석진이는 잔뜩 흥분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며 귀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그때가 몇 시였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내가 답할 때마다 감탄을 연발했다.
   “너 대단하다. 그럼 사물함 귀신이 아직 있다는 거네!”
   “뭐?”
   “바우 네가 안 놀랐으니까 귀신도 안 갔겠지.”
   그렇게 말하는 석진이 녀석의 목을 잡고 앞뒤로 흔들고 싶었지만, 생각만 했다. 석진이가 “바우 너 짱이다”라며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내가 귀신같은 거 안 무섭댔잖아. 무서운 게 아니라 귀찮다, 야.”
   나는 조금 우쭐해서 말했다. 진짜 귀찮은 척 한숨도 쉬었다.
   “그럼 다음번엔 크게, 깜짝 놀라 줘봐. 귀신도 놀라서 떨어지게.”
   석진이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크게, 깜짝 놀랄 방법을 궁리했다. 내 얘기를 들은 담력 시험 멤버들도 같이 고민해주겠다고 나섰다.
   “으아아악! 하면서 주저앉으면 어때? 오줌도 좀 지려주고 말이야.”
   창영이가 “으악! 으아아악!”하면서 귀 아픈 비명 소리를 냈다.
   “비명 지르면서 도망가는 게 낫지 않아? 영화에서도 그러잖아.”
   우람이는 아침으로 가져온 토스트를 먹으면서 성의 없이 덧붙였다.
   “귀신이랑 마주보고 으아아악!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야, 재미라니. 바우 지금 심각한 거 안 보여?”
   규민이랑 석진이는 낄낄대기 바빴다. 다들 별 도움은 안 됐다.
   “아니야. 나 안 심각한데? 재밌기만 한데 뭘 그래.”
   나는 얼른 손을 저었다. 그리고 석진이처럼 낄낄 웃었다. 애들도 같이 웃었다. 다들 진짜 신나고 재밌어 보였다.
   “야, 근데 우리가 방금 한 얘기 귀신이 다 들은 거 아니야?”
   “어, 그러게. 그럼 이거 다 소용없는 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애들은 또 한참 웃어댔다. 나는 사실 바람이를 쥐어박을 때처럼 웃는 놈들 모두 한 대씩 쥐어박고 싶었다. 그걸 꾹 참고 따라 웃기만 했더니 입꼬리가 쑤시고 속이 쓰렸다. 거기다 배까지 살살 아프고 속이 부글거려왔다. 한 번 신호가 올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스트레스성 장염이 분명했다. 귀신 능력이라기엔 너무 현실감이 넘쳤다. 더 참다가는 ‘설사쟁이 김바우’로 두고두고 남을 것 같았다.
   나는 곧장 손을 들어 선생님한테 배 아픈 시늉을 했다.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앉자마자 설사가 뿌지직 나왔다. 소리도 냄새도 무지막지했다. 수업시간에 터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을 본 다음에는 최대한 빠르게 뒤처리를 하고 물을 내렸다. 그리고 짧게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화장실을 나올 때까지도 귀신은 안 나타났다.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귀신이 떨어진 걸지도 몰라.’
   속 편한 생각이었다. 귀신은 이럴 때를 노린 게 분명했다.
   내가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갑자기 화장실이랑 복도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복도 끝까지 탁, 탁, 탁 차례로 불이 꺼지더니 천장 귀퉁이에서 사람만한 벌레가 기어 나왔다. 벌레는 몸이 온통 까맣고 번들거리는 데다 다리가 수십 개도 넘게 달려 있었다. 꼭 거대한 바퀴벌레 같았다. 하지만 몸통에 달린 얼굴만은 어제 본 사물함 귀신이랑 똑같았다.
   나는 꼼짝도 못 하고 굳었다. 귀신은 복도 천장을 스슥스슥 기어왔다. 귀신이 가까이 올수록 몸통에 달린 다리들이 자세히 보였다. 정확히는 팔이었다. 몸통처럼 까만 팔마다 손가락 다섯 개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백 개도 넘는 손가락이 꿈틀대며 천장을 걸었다. 귀신은 순식간에 내 머리 위까지 왔다.
   그리고 내 앞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다. 숨이 턱 막혔다. 뒤집어진 귀신의 머리카락이 내 눈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내 턱 앞에서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올라갔다. 귀신의 눈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귀신의 까만 동공에 멍청한 얼굴의 내가 비쳐 보였다.
   그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악!”
   “으악! 으악! 으아아악!”
   하기로 해서 한 게 아니라 진짜로 비명이 계속 나왔다. 그런데 몸은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했지만 어젯밤처럼 힘이 풀려 주저앉지도 못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무섭기만 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3반에서 수업하던 선생님이 뛰쳐나왔다. 선생님이 나오자마자 귀신은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복도에 남은 건 꺼진 복도 불이랑 남자 화장실 앞에 멍청하게 서 있는 나, 놀란 얼굴의 선생님뿐이었다.
   “아니, 바우 너 왜 그렇게 울고 있어? 대체 무슨 일이냐?”
   선생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울고 있단 걸 알았다. 나는 눈물에 콧물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오줌도 조금 지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도 안 쓰였다. 귀신을 사라지게 해준 선생님이 고맙고, 귀신이 사라져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 마음이야 어쨌든 ‘사물함 귀신들린 3반 애’ 소문은 순식간에 학교에 퍼졌다. 날 구경하러 온 애들이 쉬는 시간마다 창밖에 다닥다닥 붙었다. 그래도 ‘교실에서 설사한 3반 애’로 소문나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운 걸 들킨 건 창피해서 끝까지 우겨보려고 했다.
   “나 완전 놀란 척했잖아. 선생님도 속았어.”
   내 말에 담력 시험 멤버들은 침묵했다.
   “어, 그래. 이번엔 귀신도 속았을 거야…… 기운 내라, 김바우.”
   석진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는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옆에 앉은 우람이 어깨를 팡팡 쳤다.
   “그리고 아까 든 생각인데 그 귀신 매너 있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아니, 꼭 내가 화장실 갔다 오면 나타나더라고. 여자 귀신이라 그런가?”
   말하고 보니 그럴싸했다. 애들도 웃겼는지 웃음이 터졌다.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나자 다시 귀신 생각이 났다. 혹시 다시 나타날까? 아니다. 울기까지 했으니 귀신도 더 안 나타날 거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 밖에 혼자 돌아다니기는 싫어서 학원은 빠지기로 했다. 엄마는 당연히 “안 돼!”를 외쳤다. 하지만 내가 아침 일을 핑계로 감기 걸린 척하니 한숨 쉬면서 종합감기약을 꺼내왔다.
   “약 먹고 자. 컴퓨터 하면 바로 학원 보낼 거야.”
   엄마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약을 받아먹었다. 덕분에 잠이 몰려와서 설친 잠까지 한 번에 푹 잘 수 있었다.
   자다가 눈이 갑자기 확 떠지지만 않았어도 귀신같은 건 그대로 잊어버렸을 거다. 하지만 또 화장실 신호에 잠이 깼다. 이건 귀신이 나타날 거라는 예고가 틀림없었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옆을 봤지만 엄마아빠는 없었다. 나는 내방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 아빠가 옮겨놓은 게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한테 옮기지 말라고 말해둘 걸……
   나는 귀신이 나오기 전에 엄마아빠를 부르던가, 안방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귀신은 내 ‘매너 있다’는 평에 화가 났던 모양이다.
   “엄……!”
   내가 침대에서 내려와 입을 열자마자 천장에서 귀신이 뚝 떨어졌다. 아까 낮에 본 벌레 같은 몸통에 머리까지 반 바퀴 꺾여 더 기괴한 모습이었다. 눈이 또 마주쳤다. 목구멍에 알사탕이라도 박힌 것처럼 막혔던 소리가 그제야 터져 나왔다.
   “흐어어어엉! 어, 엄마, 엄마! 흐엉!”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문 쪽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소리가 작아서 방문을 닫고 자는 엄마아빠는 못 들을 것 같았다.
   귀신은 내 옆으로 빠르게 기어오더니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 귀신의 입가가 보였다. 귀신 얼굴에 있는 핏줄이 작은 벌레처럼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꼭 얇은 지네 여러 마리가 피부 아래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귀신은 입술이 없었다. 입술이 있을 곳이 손가락만큼 벌어져 “그으으으으”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자리에 멈춰 땅에 고개를 박았다.
   순간 담력 시험을 치르던 날의 내가 떠오르면서 엄청나게 원망스러워졌다. 억울하기도 했다. 왜 담력 시험에 껴서, 왜 하필 시시하다는 말을 해서 나만 이 꼴이 났는지 억울하고 서러웠다.
   “흐어어어엉! 잘못, 잘못했어요. 시, 시시 아니…… 무서워요…… 흐어어엉……”
   땅에 고개를 박은 채로 빌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시시하다고 안 할게요. 사실 엄청 무서웠어요. 그냥 센 척 한 거였어요.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신없이 나오는 대로 뱉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탁 켜졌다.
   “바우야!”
   고개를 번쩍 드니 놀란 얼굴의 엄마아빠가 보였다. 힘이 탁 풀렸다. 미처 못 싼 오줌이 바지를 적시는 게 느껴졌다. 귀신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여전히 몸이 덜덜 떨렸지만,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귀신이 돌아갔다. 그냥 잠깐 사라진 게 아니라 충분히 만족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에는 내 생각이 맞았는지 그 후로 일주일 동안이나 귀신을 보지 않았다.
   “진짜 그 이후로 안 나와?”
   석진이가 물었다.
   “응. 그날 완전히 만족한 거야. 분명해.”
   비록 집에서는 ‘오줌싸개 김바우’로, 학교에서는 ‘귀신들린 김바우’로 불리는 불명예를 안게 됐지만, 나는 귀신을 세 번만 보고 끝났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했다.
   “이러다 또 갑자기 나타나는 거 아니야?”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귀신이 얼마나 무서운데, 다시는 안 볼 거야.”
   “에이, 귀신 안 무섭다던 용기 있는 김바우 어디 갔냐.”
   “그 김바우는 가짜였어. 진짜 김바우는 귀신이 세상에서 제일로 무섭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인정했다. 귀신 무서워하는 겁쟁이가 되는 것보다 진짜 귀신을 보는 게 더 무서운 일이란 걸. 무서운 걸 무섭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훨씬 더 무서운 일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한슬

재밌는 글만 읽고, 재밌는 글만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 제게 동화가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처럼, 읽는 사람에게도 즐거운 동화라면 좋겠습니다.

2018/06/26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