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은 무슨, 반사!

   뭐든 자기 맘대로 하는 최소원은 내 것도 내 것, 남 것도 내 것이라고 우겼다.
   희연이는 모래 놀이용 삽을, 동철이는 킥보드를 뺏기기 일쑤였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가운데 누구도 소원이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딱 한 사람, 우종이만 빼고.
   “안 돼. 이건 내 거야.”
   우종이는 소원이가 모래밭에 드러눕든, 고함을 지르든, 엉엉 울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종이는 시계나 전기면도기처럼 나사가 있는 물건들은 드라이버로 분해했다. 소원이도 우종이처럼 나사를 돌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종이는 드라이버를 주기는커녕 빌려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소원이는 우종이를 찾아갔다.
   “복 많이 받아라, 최소원.”
   우종이 말에 소원이는 피식 웃었다.
   “드라이버 빌려줄 거야?”
   “아니, 안 돼. 이건 내 복이랑 연결된 물건이거든.”
   “복은 무슨…… 됐어, 안 받아!”
   기분이 상한 소원이는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와 아빠는 소원이보다 훨씬 고집이 셌다.
   동철이가 자전거를, 희연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때 소원이는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그러다 다리나 머리를 다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소원이는 또래 친구들이 많이 갖고 노는 소꿉놀이 장난감도 없었다. 작아서 삼킬 수 있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가 소원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안 돼!”와 “위험해!”였다.
   밖으로 나오면 말리는 사람이 없었고, 덕분에 소원이는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래도 여전히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는 타지 못했다. 자전거 안장에 앉을 때마다 아빠가 안 된다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귀에 쟁쟁 울렸다. 인라인스케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하다고 소리치는 엄마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우종이 엄마와 아빠는 야단을 치고 혼내긴 했으나 드라이버를 뺏지 않았다. 소원이는 우종이가 부러웠고, 마치 우종이 드라이버가 마법사 지팡이처럼 모든 것을 바꾸는 도구처럼 보였다.
   소원이는 우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놀이터에서 그랬듯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큰 소리로 울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들은 척 만 척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놀아. 절대 사 줄 수 없어.”
   “정말 위험하니까 안 사주는 거야.”
   아빠는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틀었고, 엄마는 귀마개를 틀어막고 책을 읽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미워! 엄마랑 아빠가 하는 말, 다 안 들을 거야!”
   소원이는 진심이었다.

   설날 아침, 소원이는 할아버지 댁에서 차례를 지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소원이에게 세배를 받고 복을 받으라는 덕담을 했다. 엄마와 아빠도 소원이에게 세배를 받았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올해에는 정말 새해 복 많이 받길 바란다.”
   소원이는 “반사!”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엎드린 소원이 옆에서 할아버지네 강아지 포동이가 컹컹 짖었다. 마치 “안 돼”처럼 들렸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소원이는 포동이를 슬쩍 밀었다.
   포동이는 컹컹컹 짖다가 갑자기 아우우우 하고 늑대처럼 울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야오옹 하고 고양이가 대답했다. 캥캥캥 오우우우, 또 다른 개가 이어서 짖었다. 아아아앙 아기가 우는 소리가 이어졌다. 바스락바스락, 콩콩, 부엉부엉, 까악까악, 우당탕탕, 왈왈왈왈왈, 소리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어른들은 동물들 소리에 정신이 팔려 소원이가 하는 혼잣말을 듣지 못했다.
   “엄마랑 아빠가 주는 복 반사!”
   바깥에서 나는 소리는 훨씬 강하고 세졌다. 바람결에 “큰일이야, 큰일. 비상!” 하는 소리가 섞여 소원이 귀에 꽂혔다. 소원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잡히지 않는 복 따위 필요 없었다.


   2. 남는 복 수거 단원들, 비상!

   깊은 밤, 외딴 숲에 있는 커다란 은사시나무 주변이 시끄러웠다. 고양이, 개, 햄스터, 생쥐, 까마귀, 까치, 청솔모, 다람쥐, 너구리, 참새, 부엉이 등 온갖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남는 복 수거 단원이었으나 평소에는 정체를 숨기고 살았다. 그들 눈에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남는 복이 보였다. 남는 복은 달떡처럼 오묘한 빛을 풍기며 사람들 머리 위에 둥둥 떠다녔는데, 어른들에겐 한두 개였지만 아이들에겐 세 개가 기본이고 많은 아이는 다섯 개까지 있었다.
   남는 복 수거 단원들은 포동이에게 비상 신호를 낸 이유를 물었다. 포동이가 소원이 이야기를 꺼내자 코코가 앞발을 핥았다. 사실 코코도 소원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소원이는 포동이 담당이었다. 소원이 남는 복은 딱 하나였는데, 해마다 크기가 줄어들고 빛깔도 약해져서 걱정이었다.
   “복을 반사하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포동이가 물었다. 은사시나무 위에 앉은 부엉이는 부리를 딱딱 부딪혔다.
   “내 참,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나도 잘 모르겠네. 다 모인 김에 대장을 불러보자.”
   부엉이는 은사시나무 꼭대기로 날아올라 달을 보며 “부엉부엉부어엉!”하고 소리쳤다. 다른 단원들도 달을 바라보며 각자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보름달이 되기 위해 차오르던 달에서 어두운 부분이 볼록볼록 움직였다. 비눗방울처럼 혹처럼 볼록하게 부푼 빛이 둥글게 뭉쳐졌고, 곧이어 아래로 곧장 떨어졌다.
   “남는 복을 수거하고 나면 얼마나 피곤한지 잊었어?”
   옥토끼는 곤하게 잠들었다가 떨어졌는지 푸르스름한 털은 부스스했고, 까맣던 코끝은 회색이었고, 반짝이던 눈동자는 붉게 변한 상태로 하품을 계속했다.
   “대장, 복을 반사하는 아이가 생겼어.”
   하품을 하던 옥토끼가 그대로 멈췄다. 튀어나온 앞니가 바르르 떨렸다.
   “복을 반사하다니, 무슨 그런……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누구야, 도대체?”
   포동이가 앞으로 나섰다.
   “내 담당인 최소원이라는 어린이야.”
   “최소원, 최소원…… 혹시 그 애 친구 중에 김우종이라고 있나?”
   이번에는 코코가 머리를 끄덕였다.
   옥토끼가 귀를 접었다 펴며 생각에 잠겼다. 작년에 우종이가 다른 사람 복을 원했고, 이번에는 소원이가 주는 복을 반사했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남는 복을 잘 걷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야 사람들이 해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그나마 남는 복을 나눠 받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남는 복 수거 단원들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포동이가 조곤조곤 말했다.
   “사실 애들은 엎어지고 깨지고 다치면서 자라는데, 그 집 부모들은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온통 금지투성이라니까.”
   듣고 있던 단원들이 한숨을 쉬었다.
   “남는 복을 나누는 정월 대보름까지 생각해 볼게.”
   옥토끼가 앞발을 번쩍 들자 푸르스름한 빛이 은사시나무 꼭대기까지 번졌다. 올 때처럼 한 줄기 빛으로 옥토끼가 돌아갔다. 단원들도 살금살금 후다닥 집으로 돌아갔다. 은사시나무에 남은 부엉이는 큰 눈을 되록거리며 달에 붙은 혹이 사라지는 것을 쳐다보았다.
   “큰일이네, 부엉.”

   옥토끼는 거둬들인 남는 복을 큰 절구에 넣고 빻기 시작했다. 쿵덕쿵, 쿵덕쿵, 절굿공이가 떡을 뭉쳤다. 억만년 동안 주는 복을 마다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옥토끼가 걱정을 하나씩 할 때마다 절구에서 남는 복들이 튀어나갔다. 반나절 절구질이 끝나자 튀어나간 복떡들이 한 주먹이 넘었다.
   “하이고, 세상에……”
   당황한 옥토끼는 튀어나간 복떡들을 주웠다. 절굿공이에 한번 맞은 복떡들은 탱글탱글하던 원래 형태보다 말랑해졌고 앞발에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밀랍을 발라 떼어내던 옥토끼가 앞발을 철썩 부딪혔다.
   “그래, 그거야!”
   옥토끼가 손뼉 치듯 앞발을 부딪히자 복떡들은 실처럼 늘어났다가 붙었다가 했다. 그 반죽에 옥토끼는 자기 털을 몇 가닥, 달빛을 한 줌 더 넣었다. 늘어났다가 줄었다가 한 반죽은 한참 만에 한 가닥 줄로 변했다.


   3. 특별한 복

   정월 대보름 달이 밝았다. 슈퍼문이라는 붉은 달이 뜬 보름이었다.
   은사시나무에 모인 남는 복 수거 단원들은 옥토끼가 나눠주는 복떡을 저마다 메고 온 가방에 넣었다. 포동이는 작은 상자를 덤으로 받았다.
   “이건 소원이 머리맡에 둬.”
   “오케이.”
   단원들은 상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으므로 재빨리 각자 맡은 구역으로 돌아갔다.
   포동이는 자신이 맡은 집을 돌아다니며 복떡을 이마나 입과 코 사이에 놓았다. 엎드려 자고 있으면 뒤통수에 놓기도 했다. 사람 체온이 닿은 복떡은 순식간에 그 사람에게 스며들어, 자신이 복떡을 먹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원이는 입술을 앙다물고 잠들어 있었다. 소원이에겐 복떡 대신 상자를 전해야 했다. 포동이는 머리맡에 그 상자를 내려놓은 뒤 재빨리 몸을 숨겼다.

   늦은 아침에 일어난 소원이는 베개 옆에 놓인 딱딱한 상자에 머리를 부딪혔다. 처음 보는 상자였는데, 아래는 푸르고 뚜껑은 붉었다. 상자에는 머리 고무줄 굵기와 비슷한 줄이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줄에서 어리비쳤다. 손으로 쓴 설명서가 같이 있었다.
   ‘복 줄을 최소원에게 선물함. 단, 추석 때까지만 쓸 수 있음.’
   소원이 다 읽자 설명서가 스르르 사라졌다. 곧이어 상자가 사라졌다. 소원이에겐 줄만 덜렁 남았다. 귀신에 홀린 듯했다.
   소원이는 연휴를 즐기느라 늦잠을 자는 아빠와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아빠. 혹시 이 줄을 내 방에 뒀어?”
   두 사람이 실눈을 뜨고 소원이가 내민 손을 살폈다.
   “무슨 줄?”
   “얘가 자다가 뭔 소리야? 빈손이잖아. 졸려, 아침 챙겨 먹어라.”
   소원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자고 일어나니 이상한 상자가 있었고, 그 상자에 든 복 줄만 남고 상자와 설명서는 사라진 데다 엄마와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소원이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마침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희연이를 만났다.
   “희연아, 이거 보여?”
   희연이가 소원이에게 달려왔다.
   “우와, 예쁘다. 이런 색은 처음 봐. 야광 줄이야? 고무줄인가? 쭉쭉 잘 늘어나네.”
   소원이 심장이 쾅쾅 뛰었다. 어른들에겐 안 보인다는 설명서가 진짜였다.
   “싫어, 내 거야.”
   소원이가 고집을 부리자 손에 쥔 줄이 희미해지더니 깜박거렸다. 곧 사라질 것처럼 투명해진 줄을 본 소원이는 당황했다.
   “아, 알았어. 하, 한 번 만져 봐.”
   그러자 다시 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소원이는 이 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희연이가 하고 싶다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희연이가 그 줄을 잡아당기며 인라인을 타자 골목 끝까지 늘어났다. 소원이는 희연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골목 끝까지 달려갔다 돌아오는 모습에 눈을 고정했다.
   “희연아, 나 한 번만 타보면 안 될까?”
   말을 꺼낸 소원이는 깜짝 놀랐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희연이도 깜짝 놀랐다. 잠깐만 쓴다고 뺏는 게 아니라 타보고 싶다고 부탁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타 보고 싶어?”
   “응. 나 태워주면 이 줄 갖고 놀게 해줄게.”
   그러자 줄이 조금 전보다 더 단단해졌고 더 늘어났으며 더 환하게 빛났다.
   희연이는 방싯 웃었다. 잠깐 잡고 달렸을 뿐인데 줄이 늘어날 때마다 환한 빛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엄마에게 혼났던 속상한 마음이 싹 사라졌다.
   “좋아, 내가 가르쳐줄게.”
   희연이는 인라인스케이트를 빌려주었다. 소원이 발에도 잘 맞았다. 헬멧과 무릎 보호대까지 빠짐없이 찬 다음 소원이 허리에 그 줄을 단단히 묶었다. 반대쪽 끝은 희연이 허리에 감았다.
   소원이는 희연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서 있기 힘들어서 휘청거렸지만 그럴 때마다 줄이 팽팽하게 소원이를 지탱했다. 첫발을 떼고 골목 끝까지 간 소원이는 흥분해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희연아, 나 이번에는 줄 없이 타보고 싶어. 그래도 돼?”
   희연이는 다시 놀랐다. 뭐든 자기 맘대로 하는 최소원이 또 부탁했기 때문이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니, 멀쩡해.”
   허리에 묶었던 줄을 풀고 소원이는 천천히 나아갔다. 조금씩 자신감이 붙어 속도를 높이자 더 많은 바람이 소원이를 반겼다. 제자리로 돌아온 소원이는 두 전봇대 사이에 줄을 묶은 희연이를 발견했다. 희연이는 줄을 다리에 감았다 놓았다 하며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사촌 언니가 가르쳐 준 고무줄놀이야. 같이 할래?”
   “응.”
   소원이는 희연이에게 고무줄놀이를 배웠다. 웃으며 폴짝폴짝 뛰는 두 사람 목소리는 골목 곳곳으로 퍼졌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같이 뛰었다.
   “쟤들은 허공에 왜 발길질이야?”
   어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그럴수록 아이들은 신이 났다. 어른들이 모르는 대단한 비밀을 가지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소원이는 친구들과 줄을 갖고 놀았다. 이제 소원이는 친구들 장난감을 뺏지 않았다. 같이 노느라 바빠서 그럴 짬이 없었다.
   줄을 본 우종이가 배시시 웃었다.
   “너 혹시, 옥토끼 만났냐?”
   “몰라. 일어나니까 머리맡에 있더라.”
   “그게 혹시 대보름날 밤이었어?”
   “아마 그럴걸? 땅콩 깨 먹은 다음 날이니까.”
   우종이가 소원이 손을 꼭 잡았다.
   “너 진짜 복 많이 받겠다. 이런 선물을 또 누가 받겠냐?”
   우종이는 섣달그믐에 만난 옥토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해 첫날 사람들이 받은 복을 일 년 내내 쓰다가 남으면 남는 복 수거 단원이 걷는다고 했다. 남는 복은 정월 대보름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자기가 욕심을 부려서 우찬이 형 남는 복으로 하루를 살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소원이는 복 줄을 움켜쥐었다. 엄마와 아빠 복을 반사하자, 포동이와 동물들이 울부짖었고 다음 날 복 줄이 생겼다.
   “그런데 복이 뭐야?”
   “나도 확실하게 모르는데, 자기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비슷하대. 많을수록 좋대.”
   “나도 그거 가질래. 어떻게 하면 돼?”
   “다른 사람들이 잘하는 걸 따라 해 봐. 나는 올해 우찬이 형을 따라해 보려고.”
   소원이는 희연이와 동철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동물들에게 친절한 희연이를 따라 길고양이 밥을 주었고, 동철이를 따라 킥보드와 자전거를 닦았다.
   달라진 소원이에게 친구들은 빠르게 적응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달랐다.
   “무릎은 왜 이래?”
   “아, 인라인스케이트 타다가 넘어졌어.”
   “인라인? 절대 안 된다고 했지? 팔꿈치는 어쩌다 까졌어?”
   “그건 자전거 타다가.”
   엄마는 기겁을 했고 아빠는 손부채질을 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이번에는 소원이도 물러서지 않았다.
   “친구들한테 빌려 탔어. 조심해서 타면 괜찮더라. 다른 친구들은 다 탔는데, 나만 이제 타는 거야. 계속 탈 거야.”
   아빠가 위험하다, 그러다 크게 다친다, 얌전히 있어라, 걱정시키지 마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소원이는 손사래를 쳤다.
   “난 지금 내 복을 늘리는 중이야. 그러니까 무조건 할래.”
   엄마와 아빠는 “뭐, 복?” 하며 당황했다. 소원이는 복 줄로 실뜨기를 하며 놀았다. 어른들은 더 당황해서 소원이가 실뜨기하는 한복판으로 손을 휘저었지만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안 보이지, 엄마랑 아빠는? 이 줄이 보이면 엄마랑 아빠 말 들을게.”
   두 사람은 오래전에 들었던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를 떠올렸다. 착한 사람에게 보인다는 옷이 진짜 있나 보다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특별히 잘한 것도 없는 듯했다.
   “그, 그럼 조심해서 놀아.”
   엄마가 한 발 물러났다. 설날 소원이에게 덕담을 할 때 ‘제발 얌전히 좀 있어’라고 생각했던 일이 꺼림칙했다.
   “친구들이랑 하면 괘, 괜찮겠지.”
   아빠도 한 발 물러났다. 설날 덕담을 하면서 ‘말썽부리지 말았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던 일이 걸렸다.
   두 사람은 소원이가 복 실로 하는 실뜨기를 한참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실이 보이지 않았지만 소원이는 진짜 실이 있는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였다. 머리가 지끈거린 아빠는 바람을 쐬러 나갔고, 엄마는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4. 추석은 복을 왕창 늘리는 날

   추석날 대보름달은 아주 밝았다. 할아버지 집에서 송편을 먹던 소원이는 주머니에 든 복 줄을 만지작거렸다. 기회는 오늘 하루뿐이었다.
   포동이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소원이는 포동이를 안은 다음 속삭였다.
   “몇 시간밖에 안 남았으니까 복 줄 갖고 어른들이랑 놀고 싶어.”
   소원이의 간절한 바람을 들은 포동이가 소원이 뺨을 핥았다. 포동이가 소원이 품을 떠나면서 앞발이 주머니에 닿았고, 소원이는 주머니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소원이가 복 줄을 꺼내자 엄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웬일이니, 착한 사람한테만 보인다더니. 진짜 보여.”
   아빠도 화들짝 놀라며 그 줄을 낚아챘다.
   “세상에, 정말 있네.”
   할아버지와 삼촌, 숙모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다가왔다.
   소원이는 줄 끝을 단단하게 묶어 실뜨기를 시작했다. 밤늦도록 가족들은 실뜨기를 했다. 실을 만진 사람들 입꼬리는 올라가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와 아빠도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렸다. 엄마는 처음 스케이트를 타다가 팔을 크게 다친 다음부터 스케이트를 타지 않았다. 그 뒤로 다치진 않았지만 결국 스케이트를 배우지 못했다. 아빠는 처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이마를 다친 다음부터 자전거 안장에 앉지 않았다. 그 뒤로 무사했지만 자전거를 타진 못했다.
   “좀 다쳐도 괜찮다고 믿어줄 걸 그랬지. 사실, 소원이가 우리 딸로 온 게 가장 큰 복인데.”
   “그 말이 맞네.”
   실뜨기를 하는 사람들 머리 위로 남는 복들이 퐁퐁퐁 생겼다. 늘 한 개뿐이던 소원이 남는 복은 무려 일곱 개로 늘어나 있었다. 포동이는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 이 기쁜 소식을 얼른 단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컹컹컹컹, 아우우우 아우우우.”
   설날처럼 다시 동네가 소란스러워졌고, 소리는 멀리까지 오래오래 퍼졌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실뜨기를 하던 어른들이 중얼거렸다.
   “추석이잖아요. 복을 왕창 늘리는 날!”
   소원이가 말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할아버지가 크게 외쳤다. 소원이도 따라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컹컹컹 아우우우 부엉부엉, 신호를 받은 옥토끼가 껄껄 웃었다. 둥근 보름달에 볼록한 방울들이 솟았다가 톡 터졌다.

김하은

새해에 받는 복들은 일 년 동안 다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어린이 청소년 책 작가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자기 기준으로 정하는 어른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란다. 어린이들은 덜 자란 사람이 아니라 자랄 가능성이 풍부한 우주임을 믿고 있다.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