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로 받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빠가 전화로 물었습니다. 미야는 아빠에게 후옹이 키우는 새끼염소를 사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미야가 자주 품에 안았던 새끼염소였습니다. 미야는 그 하얀 새끼염소를 생일선물로 받고 싶었습니다.
   미야는 그 염소를 어른들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미야는 원하는 것을 끝내 아빠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반대할 거라는 생각이 하고 싶은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미야의 생일선물은 아빠가 직접 골라서 사 오기로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미야는 새끼염소를 갖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습니다.
   미야네는 다른 집들과 다르게 가축이 많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고양이 밥은 미야가 주었습니다. 개밥은 부엌에서 일하는 뚜이 아줌마가 주었습니다.
   아빠와 미야는 할머니가 혼자 사시던 시골집으로 얼마 전에 이사를 왔습니다. 할머니는 시계태엽을 감는 일과 고양이 밥 주는 일을 미야에게 맡겼습니다. 아빠는 근무하는 학교의 교직원 숙소에서 며칠씩 머물러 있곤 했습니다.
   아빠가 집에 왔습니다. 미야의 생일선물을 사 왔습니다. 할머니와 아빠와 미야는 선물꾸러미를 가운데 두고 대청마루에 앉았습니다. 미야는 아빠가 반대를 하더라도 새끼염소를 사달라고 말해볼 걸 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새끼염소가 너무나 갖고 싶어서 마음이 상할 지경이었습니다. 미야는 새끼염소가 젖을 떼면 할머니와 아빠에게 염소를 키우게 해달라고 말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빠가 할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먼저 내놓았습니다. 돋보기안경이었습니다.
   미야의 선물꾸러미는 할머니가 풀어주었습니다. 레이스가 많이 달린 진홍색 원피스와 목이 긴 흰 양말과 빨간 구두가 나왔습니다.
   “아유, 정말 예쁘구나.”
   할머니가 원피스의 양쪽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옷을 들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아빠도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아빠는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미야에게 주었습니다. 『소공녀』였습니다. 책 표지에는 주인공 사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라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여행 가방이 사라 뒤에 놓여 있었습니다. 미야가 이미 여러 번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이사 올 때 가지고 있던 책이 사라졌습니다. 아빠는 새 책을 다시 사 온 것이었습니다.

   생일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미야는 열두 살이 되었습니다. 미야는 아빠가 선물로 사 온 원피스를 입었습니다. 긴 양말도 신었습니다. 할머니는 다른 날보다 더 시간과 공을 들여서 미야의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주었습니다.
   아빠와 미야는 집 뒤편 사당으로 갔습니다. 아빠가 문을 열자 오래된 나무 냄새와 향냄새가 났습니다. 아빠는 다른 날보다 더 깔끔한 양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종을 쳤습니다. 미야는 제단 아래의 문을 열고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엄마 사진을 꺼냈습니다. 다른 조상들은 모두 위패에 글자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직 사진이 있었습니다.
   미야는 엄마 사진을 다른 조상들의 위패 옆에 세워놓았습니다. 사진 속에서 엄마는 웃고 있었지만 한참을 쳐다보면 억지로 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미야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엄마 사진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미야는 눈길을 돌려서 글씨로만 표시되어 있는 다른 조상들의 위패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빠는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고 축문을 읽었습니다. 열두 살 된 미야를 조상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축문이었습니다. 미야는 발가락을 꼬무락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학교에 갈 때에는 좀 더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빠의 축문은 너무 길었습니다. 미야는 시계태엽만 감아주고 학교까지 달려가야 했습니다. 가는 도중에야 고양이 밥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버렸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네는 이상하게 조용했습니다. 사람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야가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각을 하더라도 옷을 갈아입고 올 걸 하고 후회해보았자 이미 늦었습니다. 아무리 친절하게 말을 걸어도 아이들은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상한 얼굴로 미야를 바라보면서 저희끼리 소곤소곤했습니다.
   더 안 좋은 일은 선생님이 미야의 옷차림을 칭찬하면서 앞으로 나와서 노래를 하라고 시킨 것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미야는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미야가 부를 줄 아는 노래는 아이들이 몰랐습니다. 미야는 로렐라이 언덕을 불렀습니다. 어떤 여자아이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더 심한 일이 마지막 쉬는 시간에 미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야가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로 돌아와 보니,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이 미야의 책상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소공녀』가 놓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을 들어서 아이들에게 책 속의 그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어주며 어떤 이야기를 그린 그림인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 미야에게 아주 나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몰랐습니다. 미야는 선생님이 자기 책을 사용해서 아이들에게 잘난 척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야는 척척척 걸어갔습니다.
   “좀 비켜주세요.”
   미야는 화가 난 사라처럼 쌀쌀맞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흩어졌고 선생님은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아무 말 없이 들고 있던 책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 뒤로 학교가 끝날 때까지 미야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해도 허락 없이 남의 물건을 함부로 손대는 일은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없어.’
   미야는 이런 말을 속으로 되풀이하면서 간신히 나머지 시간을 견뎠습니다. 그 시간 내내 몹시도 따듯한 새끼염소를 품에 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더 슬픈 일이 미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야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가방만 집에 두고 곧장 새끼염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새끼염소를 품에 안으면 이 모든 일이 다 없었던 일처럼 기억에서 녹아내려 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후옹은 나무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후옹의 얼굴도 다른 때와는 달리 어두웠습니다.
   후옹은 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학교 아이들과는 달리 미야의 옷차림이나 새 구두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후옹은 미야와 나이가 같았는데도 키는 미야 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미야가 후옹에게 빵을 내밀었습니다. 빵은 아직도 따끈따끈했습니다. 집에 들렀다가 뚜이 아줌마가 솥에서 막 꺼내놓는 빵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옹은 빵을 받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연못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미야도 후옹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염소들이 연못가에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새끼염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엄마가 시장에 데리고 갔어.”
   후옹이 얼굴만큼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모두 다 네 염소라고 했잖아?”
   미야가 깜짝 놀라서 따져 물었습니다.
   생일인데, 너무 안 좋은 일들만 연달아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미야는 할머니를 따라서 장에 갔다가 후옹네 엄마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후옹네 엄마는 장이 열리는 날이면 장터 입구 늙은 측백나무 아래 평상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당사주를 봐주었습니다. 할머니는 후옹네 엄마가 꾀가 많고 용한 점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측백나무 맨 아래 가지에는 염소 두세 마리가 묶여 있었습니다. 사주를 본 사람들 중에는 염소가 필요한 사람들이 꼭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염소를 사 갔습니다.
   후옹네 엄마는 엄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었습니다. 할머니라고 해야 마땅했습니다. 어떤 때는 미야네 할머니보다 더 늙어보였습니다.
   “젖 먹는 새끼염소를 팔다니.”
   미야는 뒷말을 꾹 삼켰습니다. 하마터면 못된 노파라고 후옹네 엄마에게 나쁜 말을 할 뻔했습니다. 빵을 손에 든 채로 후옹 옆에 주저앉았습니다.
   “아침에 내가 엄마를 말렸어. 네가 사 갈 염소라는 말도 했어.”
   후옹이 미야를 달랬습니다.
   미야는 굽힌 무릎 위에 이마를 댔습니다.
   ‘일 년에 딱 한 번뿐인 생일인데 해도 너무들 하는 거 아냐?’
   속으로 투덜거렸습니다. 딱히 꼬집어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분명하게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없었습니다.
   “안 팔리면 다시 데려올 거야.”
   후옹이 다시 말했습니다.
   “한번 시장에 데리고 나갔다가 안 팔린 염소 있었니?”
   미야가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니.”
   후옹의 대답도 퉁명스러워졌습니다. 후옹도 잘못한 것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연못 위로 잠자리들이 날고 있었습니다. 잠자리들은 가끔가끔 꼬리를 물에 담그면서 동심원을 만들었습니다.
   “뿔을 만지게 해 줄까?”
   후옹이 멋진 생각을 해냈다는 듯 외쳤습니다.
   미야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미야는 아직까지 큰 염소들 가까이로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조금 무서웠습니다. 처음 후옹이 새끼염소를 품에 안겨줄 때 미야는 그것이 새끼염소인 줄도 몰랐습니다. 너무 슬픈 일이 있어서, 아무도 없는 길가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을 때였습니다. 후옹은 그때 염소들 사이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야는 아무도 없는 줄로 알았던 것이었습니다.
   큰 염소들은 모두 묶여 있었습니다. 염소 목을 묶은 줄 끝에는 쇠꼬챙이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쇠꼬챙이를 땅에 꽂아두는 방법으로 염소들을 연못가에 묶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후옹은 땅에 꽂아두었던 쇠꼬챙이들을 뽑았습니다. 염소들은 한데 모여서 스스로 집을 향해 걸어갈 줄을 알았습니다. 목에 묶인 줄을 질질 끌면서 걸어갔습니다. 줄 끝의 쇠꼬챙이들이 풀밭을 지날 때에는 시시시 소리가 났습니다. 길에서 끌릴 때에는 달그락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후옹은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미야도 가끔 후옹 뒤를 따라갔습니다.
   새끼염소는 묶여 있지 않았습니다. 새끼염소는 저를 낳은 엄마 염소 주위를 맴돌면서 놀았습니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엄마 젖을 쭉쭉 빨아먹었습니다. 새끼염소는 아직 뿔도 없었습니다.

   “좋아.”
   미야는 후옹에게 빵을 내밀었습니다. 후옹에게 큰 염소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습니다. 후옹은 빵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면서 연못가로 달려갔습니다.
   “이리 와 봐!”
   후옹이 가장 크고 늙은 염소 한 마리를 끌어안고 외쳤습니다. 뿔이 가장 큰 검은 염소였습니다. 미야는 그쪽으로 갔습니다. 염소는 노란 눈으로 미야를 바라보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용기가 조금 났습니다.
   미야는 두 손으로 염소의 뿔을 하나씩 잡았습니다. 뿔은 나무보다 더 단단했습니다. 나무보다 따뜻했습니다. 염소가 메에 하고 울면서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미야는 어금니를 악물고 뿔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염소는 고개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한 번 더 메에 하고 울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연못가의 물풀들이 서로서로 몸을 스치면서 스스스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
   미야는 손을 놓았습니다. 후옹도 염소를 놓아주며 일어섰습니다. 염소는 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멀리 달아났습니다.
   “고양이 밥 줘야 한다는 것을 깜박했어.”
   미야가 말했습니다. 미야는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먼 하늘에서부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밥그릇은 괘종시계 아래에 있었습니다.
   “나비야! 나비야!”
   미야는 고양이 밥그릇을 들고 나비를 불렀습니다.
   “냐옹.”
   고양이가 대답하면서 할머니 방에서 나왔습니다. 미야는 고양이 밥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고양이도 따라왔습니다.
   뚜이 아줌마와 후옹네 엄마가 부추를 다듬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엌으로 들어서는 미야를 돌아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미야가 후옹네 엄마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후옹네 엄마는 장에서 벌써 돌아온 모양이었습니다.
   “아유, 세상에 인사성이 밝기도 하지.”
   후옹네 엄마가 반짝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새끼염소가 떠올라서 미야의 마음은 조금 어두워졌습니다.
   미야는 말없이 찬장을 열었습니다. 고양이가 미야의 발목에 몸을 비볐습니다. 미야는 밥 두 숟가락을 고양이 밥그릇에 담고 마른 멸치 다섯 마리를 밥 위에 얹었습니다.
   “예쁜 옷을 입었구나. 아빠가 사다 준 것이냐?”
   후옹네 엄마가 물었습니다.
   “네.”
   미야가 숟가락으로 고양이 밥을 비비면서 대답했습니다. 고양이가 멸치와 밥을 같이 먹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이 미야 생일이잖아요.”
   뚜이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그러잖아도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점심까지만 장을 지키다가 온 것인데, 잠깐 이야기 좀 하자꾸나.”
   후옹네 엄마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섰습니다.
   미야는 어쩐지 기분이 좀 으스스해졌습니다. 할머니는 후옹네 엄마가 용하다고 했습니다. 후옹네 엄마가 자기보고 못된 노파라고 미야가 속으로 험담한 것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얼른 부엌을 나왔습니다.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고양이가 발길에 걸렸습니다. 미야는 하마터면 밥그릇을 들고 넘어질 뻔했습니다.
   미야는 고양이 밥을 괘종시계 아래 놓아주었습니다. 고양이는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미야는 태엽을 감았습니다. 시계 밥은 아침에 주었지만 한 번 더 주었습니다.
   “후옹한테서 네가 그 새끼염소를 좋아하고 키우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긴 했다만.”
   언제 왔는지 후옹네 엄마가 마루에 걸터앉으면서 말했습니다.
   “올라오세요.”
   미야가 방석을 후옹네 엄마 가까이에 놔주면서 말했습니다.
   “괜찮다, 어른들은 아무도 안 계시지?”
   후옹네 엄마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후옹네 집은 동네 서쪽 끄트머리에 다른 집들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외따로 있었습니다. 후옹네 엄마는 동네 앞길을 놔두고 꼭 뒷길로 와서 미야네 집 뒷문을 통해서 부엌으로 들어왔습니다. 꼭 물이 흘러들어오고 스며들어오는 것처럼 들어왔습니다.
   후옹네 엄마는 늘 부엌에만 머물다가 다시 뒤란을 지나 뒷문으로 집을 나갔습니다. 부엌에 있는 것들은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이것저것 만져보고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대청마루 위로 올라온 적이 없었습니다.
   “네, 할머니는 삼촌 집에 갔고 아빠는 학교 가셨어요.”
   미야가 말했습니다.
   마당을 바라보던 후옹네 엄마가 미야를 보며 돌아앉았습니다.
   “그럼, 잘 되었다. 이리 와서 좀 앉아봐라. 내가 너랑 할 이야기가 있다.”
   후옹네 엄마가 마루 위를 손바닥으로 짚으면서 말했습니다. 미야는 후옹네 엄마가 손바닥으로 짚어준 곳에 가 앉았습니다.
   “그 흰 새끼염소는 갈 데가 따로 있었어. 짐승이고 사람이고 만나서 같이 살 인연은 따로 정해져 있는 법이니까, 너도 그렇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나 후옹이한테 화를 내면 안 되는 법이다. 알겠냐?”
   미야는 말없이 두 주먹을 쥐었습니다. 조금 전에 염소 뿔을 움켜쥐었던 손이었습니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고 해도 젖 먹는 새끼염소를 어미에게 떼어내서 팔아버린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야는 후옹이네 엄마를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괜히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대문 옆 석류 나무에 매달린 붉은 석류들을 쏘아보았습니다.
   “네가 화가 많이 났구나. 봐라, 집을 이렇게 깔끔하게 해 놓고 사시는 네 할머니가 집에서 염소 키우는 것을 허락할 거라고 보냐?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네 할머니 깔끔한 것은 이 근동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단다.”
   미야는 후옹네 엄마 말에 찬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미야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고양이를 잘 보살피는 것처럼 염소도 잘 키울 자신이 있다고 말하면 할머니는 자기 말을 들어 줄 것이었습니다.
   후옹네 엄마는 큼큼 헛기침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소리를 조금 낮추어서 말했습니다.
   “그, 그 하양 새끼염소는 말이다.”
   미야가 후옹네 엄마를 돌아보았습니다.
   “다른 선생님 댁에 갔어. 네 아빠도 선생님이고 내가 네 할머니와 아빠 덕도 많이 입었지만, 그 선생님은 어느 날인가 내가 앉아 있는 장터 평상으로 와서 턱 하니 앉더니, 나한테 그러더라, 나나 후옹 같은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귀하게 대접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그러더라. 그렇게 우리 후옹을 귀하게 말해주는 것이 감사해서 내가 아침에 그 염소 가져다줬으니까, 너는 너무 화내면 못 쓴다.”
   “아직 젖도 안 뗐잖아요?”
   미야가 따졌습니다. 후옹네 엄마는 다시 큼큼 기침을 하면서 화단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풋대추들이 나무에서 떨어졌습니다.
   “그 선생님은 네 아빠처럼 도회지에서 잘 배운 사람이지만 내 평상에 척 걸터앉아 준 것만도 나는 감사하였다. 우리 후옹을 귀하게 말해주어서 내가 그 하양 새끼염소 아침에 그 댁에 가져다주었으니 너는 너무 화내지 말아야 한다. 너도 알다시피 그 염소는 우리 후옹이 것이니까.”
   후옹네 엄마가 이번에는 마당을 구르는 풋대추들로 눈길을 주며 말했습니다.
   “젖 떼면 내가 사려고 했어요.”
    미야가 말했습니다.
   “후옹이가 오늘 아침에야 그 말을 했어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거야. 그 댁에서는 사람 먹이는 우유를 먹이겠다고 했다. 젖 못 뗀 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다음에 더 예쁜 새끼 태어나면 내가 한 마리 가져다주마. 그러니 너무 화내면 못 쓴다.”
   후옹이네 엄마가 마루에서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헛기침을 두 번 하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미야는 대청마루에 엎드렸습니다. 밥을 다 먹은 고양이가 곁에 와 누웠습니다. 바람이 대청마루까지 밀려들어왔습니다.
   “미야, 비 올 것 같아서 집에 좀 다녀올게. 할머니 오셔서 나 찾거든 집에 빨래 널은 것 걷으러 갔다고 말해 줄래.”
   뚜이 아줌마가 부엌문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말했습니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쯤 와요?”
   미야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아줌마의 얼굴은 이미 부엌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미야는 부엌으로 나가봤습니다.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뚜이 아줌마도 후옹네 엄마처럼 뒷문을 통해서 집에 드나들었습니다. 미야는 뒤란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아줌마는 없었습니다. 벌써 집으로 간 모양이었습니다.
   미야는 다시 마루에 와 엎드렸습니다. 고양이가 미야의 등 위로 올라와 누웠습니다. 할머니는 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아침에 아빠 그리고 삼촌네 식구들이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미야의 생일을 축하할 거라고 했습니다.
   미야는 고양이를 끌어내려 품에 안으며 모로 누웠습니다. 오늘이 자기 생일인데 꼭 모르는 아이의 생일 같았습니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데도 고양이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디 가 있는지도 모르는 새끼염소가 생각나는 게 이상했습니다.
   미야는 품에 안았던 새끼염소가 꿈틀꿈틀하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꿈틀거렸다고는 하지만 미야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뒤치락거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끼염소는 품에 안기면 조금 꿈틀거리다가 이윽고 얌전해지곤 했습니다.
   미야는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미야는 눈을 떴습니다. 눈을 깜박이면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미야는 자기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대청마루 벽과 천장이 만나는 곳에 사진들이 들어 있는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미야는 차츰 이곳이 할머니 집이라는 것과 자기가 마루에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비야!”
   고양이는 대답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미야는 다시 마루에 엎드렸습니다. 낙숫물 방울들이 떨어지는 곳에는 작은 도랑이 생겼습니다. 낙숫물 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물에는 동심원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습니다. 미야는 쓸쓸했습니다.
   “미야.”
   누군가 미야를 불렀습니다. 미야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대문채 처마 아래에 아빠가 서 있었습니다. 미야는 가만히 일어나 앉았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아빠를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아빠가 집으로 곧바로 들어오지 않고 대문채 처마 아래에서 자기를 부르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미야는 아빠가 자기 모습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미야.”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미야를 다시 한번 더 불렀습니다.

신현이

사람들이 거느리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 중에서, 들숨과 날숨을 이어주는 순간과도 같은 어느 지점을 찾아내어,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써나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2019/09/24
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