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미연이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버둥대는 내 손에 얼굴을 맞았기 때문이다. 나와 소현이는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어떡하지.’
   쉬는 시간이면 나와 소현이는 주로 게임을 했다. 오늘은 ‘손바닥 밀기’였다. 나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게임을 준비했다. 상대의 손을 밀어 발을 움직이게 해야 하는데 이전 쉬는 시간엔 소현이가 계속 이겼다.
   “그거 또 하게?”
   “응. 이번엔 안 져.”
   소현이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내 앞에 섰다.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소현이는 잽싸게 내 손을 피했고 나는 졌다. 이전 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버둥거리는 내 팔에 미연이가 맞았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미연이의 눈에서 물기가 차올랐다. 빨갛게 부어오른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울음소리를 듣고 온 미연이의 친구들이 나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뭐야, 미연이 맞았어?”
   “윤정은이 때린 거야? 아니면 소현이?”
   “내가 봤어! 윤정은이야.”
   “어떡해, 얼굴 빨개졌어. 괜찮아?”
   아이들이 다독이자 미연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때린 거 아니야. 나랑 소현이가 게임 하다가 실수로, 실수로……”
   당황해서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정을 말했지만, 아이들이 나를 보는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원래도 반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나보단 자기 친구들의 말을 들었다.
   말없이 훌쩍이던 미연이는 뭔가 생각난 듯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 안경!”
   미연이의 말에 아이들이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잘 보이지 않는지 미연이는 쭈그려 앉아 바닥을 살폈다. 미연이에게 방해되지 않게 물러서며 함께 바닥을 둘러봤다. 안경은 아이들의 다리 사이에 떨어져 있었다.
   “저기 있다!”
   다리 사이를 비집고 안경을 주워들었다. 쭈뼛거리며 미연이에게 다가갔다.
   “자, 여기. 미안해, 게임 하다가 그만……”
   미연이가 안경을 받으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미연이는 평소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말도 잘하고 인기도 많았다. 볼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였다. 나와는 달랐다.
   미연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자 구멍 난 양말 사이로 살짝 튀어나온 엄지발가락이 보였다. 나는 누가 볼세라 엄지발가락을 움츠려 다른 발가락과 같이 숨겼다.
   ‘하필 구멍 난 양말.’
   엄마는 구멍 난 양말을 버리지 않고 신었다. 나도 엄마를 따라 집히는 대로 양말을 신었다. 어차피 신발이나 실내화를 신으면 보이지 않으니 상관없었는데, 며칠 전 실내화가 사라졌다.
   온 신경이 발가락에 모였다. 몰려든 반 아이들이 내 양말을 보지 않기를 기도했다. 나는 눈만 올려 미연이를 살폈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미연이는 안경을 가까이 들여다보더니 순식간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뭐야, 안경 부러졌잖아!”
   “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디? 아니야. 방금 내가 집었을 때만 해도 멀쩡했단 말이야.”
   안경을 살피기 위해 손을 뻗자 미연이가 내 손을 피했다.
   “손대지 마! 또 어딜 부러뜨리려고!”
   말라가던 미연이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맺혔다. 내 눈앞에 안경을 들이밀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자, 봐. 안경다리가 이렇게 딱 붙어있어야 하는데 한쪽이 바깥으로 벌어져 있잖아. 막 달랑거리고, 뭐야 이게!”
   “어……그게.”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달랑거리는 안경다리를 바라봤다. 떨리는 목소리로 미연이에게 말했다.
   “쓰면, 쓰면 괜찮을 수도 있어. 안경알도 안 깨졌고, 안경다리도 붙어있고…… 우리 엄마도 집에선 안경 쓰는데 엄청 오래됐어. 가끔 안경알도 빠져.”
   미연이는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잘 봐.”
   보란 듯이 안경을 쓰는 미연이를 초조하게 바라봤다. 안경은 심각했다. 대각선으로 뒤틀려 있었다. 한쪽 안경알은 눈 위에, 다른 한쪽은 눈과 볼 사이에 걸쳐있었다. 반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긴다며 킥킥댔다. 미연이가 거칠게 안경을 벗으며 나를 향해 내밀었다.
   “어쩔 거야?”
   미연이와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렇게 시끄럽던 교실 안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입을 벌려도 목이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지, 어떡하지, 어떡해.’
   나는 안경을 쓰지 않지만, 안경값이 비싼 것은 알고 있다. 안경을 새로 바꾼 아이들이 종종 얼마짜리라고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저 안경은 얼마나 할까.’
   ‘똑같은 안경테가 있을까? 없으면?’
   ‘안경알도 같이 바꿔야겠지?’
   여러 가지 걱정이 줄줄이 떠올랐다.
   미연이는 머릿결도 좋고 옷도 매일 바뀌었다. 그런 미연이가 가진 것 중 싼 건 아마 없을 것이다. 구멍 난 내 양말을 보며 똑같이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일을 나간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걱정은 눈물이 되어 왈칵 흘렀다.
   “그냥, 그냥 쓰면……”
   “뭐라고?”
   미연이가 위협적으로 내게 다가섰다. 주위를 살폈다. 내 옆에 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현이도 그랬다. 소현이는 미연이에게 가지도, 내게 오지도 않았다. 우리를 둘러싼 반 아이들처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같이 놀다가 이 상황이 벌어졌는데, 소현이가 저렇게 있으니 나 혼자 잘못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노려보는 미연이보다 소현이에게 더 화가 났다. 미연이의 눈물은 마른 지 오래였다. 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작년에 비슷한 일을 겪어봤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이긴다. 이제 최고 학년인 6학년이 되었으니 잘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의 나와 달랐다.
   나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너 때문이야!”
   억울함을 가득 담아 소현이를 가리켰다. 가만히 있던 소현이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소현이가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만큼 소현이에게 다가갔다.
   “그러게 왜 내 손을 피해? 네가 내 손을 피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미연이랑 부딪치지 않았어.”
   소현이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네가 쳐놓고 왜 나한테 그래?”
   “네가 내 손을 피하지만 않았어도 미연인 안 맞았어.”
   “뭔 소리야. 네 탓이지.”
   “아니, 네 탓이야.”
   반 아이들은 우리의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나를 향하던 반 아이들의 시선이 소현이에게로 나뉘었다. 역시 이 방법이 맞았다.
   소현이가 주먹을 꽉 쥐었다.
   “너 또 남 탓하니?”
   “뭐?”
   “너……”
   “너희 지금 나 놔두고 뭐 하는 거야? 누가 됐든 내 안경이나 물어내!”
   미연이가 소현이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손에 쥔 안경이 흔들리니 결국 한쪽 안경다리가 부러졌다.
   “아!”
   미연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떡해……”
   혼란 속에서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경쾌하게 울렸다. 반 아이들은 잠깐 우리의 눈치를 봤다. 한 명이 자리로 돌아가자 나머지 아이들도 빠르게 흩어졌다. 나와 소현이, 미연이, 셋만이 교실 뒤편에 남았다.
   “선생님 오신다!”
   한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걱정할 것 없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희들 왜 거기 서 있니? 미연이는 왜 그래. ”
   미연이가 울먹거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쟤네가 저 쳐서 제 안경 부러졌어요!”
   미연이가 부러진 안경을 내밀었다. 선생님의 시선이 나와 소현이에게로 향했다. 나는 빠르게 말했다.
   “소현이가 밀어서 부딪쳤어요!”
   “아니에요!”
   소현이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그만.”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미연아, 일단 쓸 수 있으면 이번 시간만 쓰고 있어. 수업 끝나고 얘기하자.”
   “선생님!”
   울먹이는 미연이를 두고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소현이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너 정말 내 탓이라고 생각해?”
   나는 황급히 손목을 뺐다.

   수업을 들으며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들겼다. 소현이가 자리에 돌아가기 전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내 탓이라고 생각해?’
   떠오르는 많은 생각은 정리되지 못한 채 머릿속에 나뒹굴었다.
   나는 그것을 털어내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내 탓이면 안 돼. 내 잘못을 인정하면 안경을 물어줘야 하고, 그럼 엄마에게 이번 일을 얘기해야 하고, 엄마는 또 한숨을 쉬고, 사과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머리가 아팠다.
   ‘소현이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할까?’
   아닐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도 소현이는 나보단 부족하지 않으니까.

   나는 아빠가 없고 엄마만 있다. 하지만 괜찮다. 엄마는 없고 아빠만 있는 집도 있고 둘 다 없는 집도 있고 둘 다 있는데 매일 싸우는 집도 있었다. 나는 엄마랑 둘이서 행복했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괜찮지는 않았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한 명씩 일어나서 부모님의 직업을 말하게 했다. 엄마는 우체부, 아빠는 치킨집 사장, 엄마는 회사원, 아빠도 회사원. 엄마는 경찰, 아빠는……. 다양하게 들리는 직업 속 부모님이 한 명인 집은 없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회사원입니다.”
   가장 많이 나온 직업으로 고른 거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빠르게 말한 뒤 앉았다. 나는 한참을 불안해했다. 쉬는 시간에 누군가 아까 사실 거짓말을 했다며 자기 엄마 없다고 말하기 전까지, 그 말에 하나둘 자신도 직업 거짓말을 했다며 고백하기 전까지.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다르지 않았다. 더 특별하지도, 더 불쌍하지도 않았다. 다만 돈이 조금 없을 뿐이다.
   평소에는 잘 몰랐다. 엄마는 자주 천 원씩 용돈을 줬다. 나는 그걸로 문구점에서 소시지 하나, 꿀빵 하나, 야쿠르트 하나를 사 먹었다. 가끔은 친구들 것도 사줬다. 천 원은 하루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돈이었다.
   문제는 천 원보다 큰돈이 필요할 때였다. 나는 5학년 때 큰 사고를 쳤다.
   내 생일날이었다. 엄마와 나는 케이크를 사서 초를 켰다.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였다. 옆에는 엄마가 만든 떡볶이도 가득 있었다. 행복한 생일이었다.
   다음날 나는 케이크에 꽂았던 초와 성냥을 학교에 챙겨갔다. 친구들과 한 번 더 켜보기 위해서였다. 점심시간에 두 명의 친구와 학교 뒤뜰에 가서 초를 켜며 놀았다. 잠깐이었다. 그 뒤 뒤뜰엔 불이 났다.
   우리가 쓰레기통에 버린 초 때문이었다. 분명 불을 끄고 버렸지만 제대로 꺼지지 않은 불씨가 쓰레기통에서 살아났다. 커진 불은 학교 뒤뜰을 태웠다. 불이 크게 난 것은 아니지만 소방차가 와서 꺼야 할 정도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불을 봤다. 내가 일으킨 불이었다.
   선생님들은 불을 일으킨 범인을 찾았다. 나와 친구들은 무서웠지만, 함께 교무실을 찾아가 사실대로 고백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친구들도 그랬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불러야겠단 말을 하자, 내 옆에 서 있던 친구가 황급히 말했다.
   “정은이가 초랑 성냥 가져왔어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정은이가 가져오지 않았다면 저희도 놀지 않았을 텐데……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는 순식간에 이 셋 중에서 가장 잘못한 사람이 되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왜 가지고 놀았나부터 시작해서, 위험한 줄은 몰랐냐, 학교에 불이 옮겨붙었으면 어쩔 뻔했냐, 다친 사람이 없으니 망정이지 하고 혼을 내셨다. 마지막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게 왜 초를 가져왔냐.”
   셋이 잘못해서 같이 혼나는 것인데도 어쩐지 나만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초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불은 나지 않았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선이, 교무실의 공기가 내게 그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손에 땀이 나서 바지를 움켜잡았다. 회전 모양으로 바지 주름이 잡혔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선생님이 부모님을 불렀다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친구들의 부모님이 왔다. 친구들은 부모님을 보자 울면서 안겼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엄마는 가장 늦게 도착했다. 허둥지둥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식당 일 하다 전화 받고 바로 온 것 같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두 손을 힘없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안아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엄마의 얼굴은 너무 피곤해 보였다.
   다가와서 한숨을 쉬더니 등을 밀어 선생님을 향하게 돌렸다. 엄마는 내 뒷머리를 눌러 고개를 숙이게 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을 붙잡고 죄송하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은 이렇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들어왔을 때 몇 번 한 것이 다였다. 하지만 엄마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그리고 말했다.
   “돈을 조금 적게 낼 수는 없을까요?”
   친구들의 시선이 엄마에게 닿았다. 나는 엄마의 후줄근한 옷도, 몸에서 나는 음식 냄새도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돈을 적게 내려고 굽실대는 엄마는 부끄러웠다. 창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엄마를 말릴 수도 없었다. 엄마가 허리를 굽히는 것은 내 잘못 때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뒤뜰을 복구하는 비용은 부모님만 따로 불러 말했다. 얼마나 나왔는지 몰랐다. 엄마의 한숨 소리에 큰돈이 들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집에 가는 길 내내 엄마는 말이 없었다. 초조하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엄마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창피했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엄마가 내 손을 꼭 쥐었다. 나는 그제야 왈칵하고 눈물이 났다. 엄마가 교무실에서 말했던 ‘죄송합니다’가 내 머릿속에 울렸다. 고개를 숙인 엄마가 떠올랐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울음소리는 돌덩이가 되어 내 목을 무겁게 짓눌렀다.
   잘못은 내가 했다. 엄마는 잘못이 없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사과해야만 했다.
   “엄마, 미안해. 미안해……”
   내 사과는 엄마보다 늦었다. 나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때 결심했다. 속 썩이지 않는 착한 딸이 되기로. 다시는 엄마가 한숨 쉴 일이 없게, 엄마가 나 때문에 죄송하다고 말하는 일이 없게.
   그런 내 바람과 달리 나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쟤가 걔야. 그 불 지른 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나는 ‘불 지른 애’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다. 그동안 들어왔던 ‘착하다’, ‘친절하다’, ‘재미있다’, 나를 설명하는 수많은 단어는 입에 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자기가 불 질러놓고 다른 친구들 탓을 했다는 말도 들었다. 아니라고 해도 내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였다.

   그렇게 겨우겨우 학교에 다녔다. 엄마는 몰랐다.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일 역시 엄마의 귀에 들어가선 안 됐다.
   돈을 물어주지 않으려면 내 탓은 없어야 했다. 소현이 탓으로 돌리면 된다. 작년에 내가 당해봤으니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소현이가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다. 소현이와 게임만 하지 않았어도, 소현이가 내게 말을 걸어주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소현이와 친해지지만 않았어도, 같은 반만 아니었어도, 같은 학교만 아니었어도……
   ‘그랬다면 정말 오늘 일이 안 벌어졌을까?’
   나는 고개를 돌려 소현이를 찾았다. 소현이는 나보다 앞자리라 뒷모습만 보였다.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끈은 내게 받은 머리끈이었다.
   소현이를 처음 만난 학기 초를 떠올랐다. 새로운 반에 적응하기도 전에 반 아이들은 소문을 듣고 내게 벽을 쳤다. 나는 포기했다.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면 나는 늘 엎드려있었다. 내게 말을 걸어준 건 소현이뿐이었다. 같이 밥도 먹었다. 같이 놀았고, 같이 웃었다. 소현이가 없었다면 나는 계속 혼자였을 것이다.
   소현이가 아주 좋았다. 나는 소현이가 없으면 안 됐다. 하지만 소현이와 싸우는 것보다 엄마가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더 싫었다. 소현이보다 엄마가 더 소중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수업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은 책 정리를 하며 나와 소현이, 미연이의 이름을 불렀다. 복도로 따라오라고 했다. 내가 일어섰을 때 소현이가 말했다.
   “선생님, 잠시만요.”
   소현이가 내게로 다가왔다. 아니, 내게로 다가오는 줄 알았다. 소현이는 미연이에게로 향했다. 미연이가 테이프로 엉성하게 붙인 안경을 벗어 던졌다.
   “미연아, 안경 부러뜨려서 미안해. 나랑 정은이랑 반씩 해서 물어줄게.”
   나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화냈다.
   “누구 맘대로 반씩 물어줘? 너 때문이잖아! 네가……!”
   “그만해!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속이 시원해? 너도 잘못했고 나도 잘못했어! 원래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네가 다 내 탓으로 돌리니까 나도 화나서 똑같이 했잖아!”
   크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냐, 난 잘못 없어.”
   고집밖에 남지 않은 나를 노려보며 소현이가 내 쪽으로 손을 털었다.
   “아, 그래 됐어. 너 내지 마. 한 푼도 내지 마. 끝까지 잘못 하나 없대, 재수 없어……”
   미연이가 소현이의 등을 토닥이며 네가 참으라고 말했다. 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반 친구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돈을 물어주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이긴 셈이었다. 당하기만 하던 작년의 나와는 다른 상황이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 맞았다. 나는 잘못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데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내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옳은 행동을 했지만, 소현이에겐 아니었다. 미연이에게도 아닐 것이다.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편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없어, 난……’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입가에 맴돌다 사라졌다. 그 쉬운 한마디를 할 수 없었다. 교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주위만이 조용할 뿐이었다.

박지희

감당할 수 있는 짐만이 작은 손에 쥐어지길.

2020/07/28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