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 / 아무도 모르게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
깊은 밤, 화장실에 갔다가
등 뒤에서 서늘하게
“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
묻는 귀신을 만난다면
눈을 꽉 감은 다음
쉬지 말고 또박또박 따져 물어
넌 아직도 종이 쓰니? 우리는 요즘 휴지 써.
그리고 색깔은 두 가지뿐이야?
더 다양해져야 하지 않겠니?
질문도 벌써 몇 년째 같은 거지?
귀신학교에선 뭘 배우길래 여태 그 모양이니?
너도 나처럼 학원 좀 다녀야겠다.
그러면 넌 높임말도 할 수 있고
20센티미터를 줄까 30센티미터를 줄까 하는 문제도 낼 수 있고
휴지가 필요하냐고 영어로도 말하게 될 거야.
길 건너 학원 어때?
거기도 화장실이 있으니까
배운 걸 바로 해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정신을 쏙 빼놓은 다음
얼른 일어나서
방으로 가는 거야
절대 중간에 뒤를 돌아봐선 안 돼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아무도 모르게
친구들이랑 줄지어
선생님 따라가며
학교 한 바퀴 돌아볼 때
서영이랑 살짝
손잡았다
거리 두기 하랬는데
친구 몸에 손대지 말랬는데
선생님 모르게
아이들도 모르게
맨 뒤에서
손을 잡았다
마스크를 낀 우리는
귓속말도 했다
방주현
아이들이 건네주는 빈 소라껍데기와 고무줄 반지를 좋아하고 함께 동시를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2020년에 첫 동시집 『내가 왔다』를 냈습니다.
2020/11/24
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