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찻잔



   할아버지가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할머니 찻잔에 이가 빠졌다.

   금테 두른 상아색 찻잔에,
   받침잔에, 이가 빠졌다.

   할머니 마음에도 아릿하게
   두 조각 이가 빠지려는데

   할아버지는
   홍콩 찻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홍콩에서는 오랜 시간,
   깨끗이 닦아 쓴 흔적으로
   이 빠진 찻잔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할아버지가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할머니는 홍콩 찻잔을 갖게 되었다.

   향기 나는 항구,
   홍콩을 떠올리면서.

   할아버지는 오늘도
   홍콩 찻잔에 향긋한 차를 담고,
   찻잔을 깨끗이 씻는다.





   빨간 장미



   여왕은
   빨간 장미를
   좋아해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유월은
   온 세상이
   빨간 장미

   (목이 잘리지 않으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여왕은 빨간 장미 대신 흰 장미를 심은 병사의 목을 치라고 명령한다.

박정완

제가 글을 쓸 때 고민하는 것은 ‘울보 아이’와 ‘즐거움’입니다. 아랫입술 삐쭉, 고개 삐딱한 아이를 달래주고 싶습니다. 그 아이는 기억 속의 저이며, 또한 현재의 아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움을 지키려고 합니다. 너무 열심히 하다가 행여 즐거움을 잃을까봐, 대충 슬쩍 넘어가기도 합니다.

2021/01/26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