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묻고 싶은 말 / 나 대신에
묻고 싶은 말
도대체 넌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또야?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듣겠니?
아니, 이래 가지고 되겠어?
쿡쿡 쑤셔대는 그 말
땅속 깊숙이
묻어버리고 싶다
앙큼한 대답이
주렁주렁 열리겠지
어른들은 그 아래 지날 때마다
기가 막히겠지
나 대신에
수도꼭지 돌려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을 받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물을 긷기 위해 먼 길을 걷고 있을 너
나 대신 네가 거기 있는 게 아닐까?
다리 까딱이며 동화책 읽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밤낮없이 벽돌 나르고 돌을 깨고 있을 너
나 대신 네가 거기 있는 게 아닐까?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하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탄 때문에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너
나 대신에 네가 거기 있는 게 아닐까?
너 대신에
너희들 대신에
내가 여기 있는 게 아닐까
황남선
뒤집어 보고 돌려도 보면서 말의 깊이를 생각합니다. 지구가 좀 덜 아팠으면 좋겠고 지구별 사람들이 행운을 골고루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2021/06/29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