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일곱 번째 규칙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져 보았지만 없었다. 안방에 있는 아빠 옷장도 열어보고 부엌으로 가서 찬장이며 수납장도 샅샅이 살폈다. 싱크대 서랍에 있는 물건들까지 다 꺼내보았다. 있을 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지만 엄마의 조각보는 보이지 않았다. 버린 걸까? 눈을 감고 엄마의 조각보를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엄마의 조각보와 똑같은 모양으로 조각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내일 미술 시간에 한지 조각보 만들기를 한다. 한지 색종이를 잘라서 화선지에다 붙여 모양을 내는 조각보다. 선생님이 미리 만들어둔 한지 조각보를 오늘 수업 시간에 보여주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한지 조각보가 내 마음을 쑥 끌어당겼다. 하얗게 나풀거리는 화선지 위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한지 색종이들이 알록달록하면서도 차분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어딘가 엄마의 조각보와 닮아 있었다. 엄마는 종이가 아니라 천으로 된 진짜 조각보를 만들었다. 뒤늦게 시작한 취미가 적성에 딱 맞는다며 틈만 나면 바느질을 했다.
“거기는 파랑 조각!”
나는 조각천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골라 엄마 손에 쥐여주곤 했다. 그러면 현수가 달려와서 자기 멋대로 색깔을 바꾸겠다고 떼를 썼다.
그럴 때면 아빠가 나섰다.
“둘 다 한발 늦었어. 아빠가 이미 골라놓았거든.”
아빠는 아무 조각이나 집어들고 엄마한테 건네며 눈을 찡긋했다. 엄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도 눈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 나는 자투리 천조각들이 엄마의 손끝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조각보 하나씩 만들어서 서현이랑 현수 결혼할 때 선물로 줘야겠다.”
엄마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조각보를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이던 엄마 얼굴이 생각났다. 하지만 엄마는 조각보 한 장을 겨우 마무리하고 바늘을 놓았다. 엄마는 암과 싸워야 했다. 나는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우리 중 누구도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의 시간에 맞춰 떠났다. 누구에게나 정해진 시간이 있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다. 그러니 누구나 시간이 주어졌을 때 각자의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지금 나를 보면 잘하고 있다고 할까?
싱크대 서랍을 너무 끝까지 잡아당겼는지 밀어넣으려고 하니 삐걱대며 잘 닫히지 않았다. 삑삑삑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현수는 학교 끝나고 어디서 놀다 온 모양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현수가 실내화 주머니를 내동댕이쳤다. 코밑에 검붉은 코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너, 코피 났어? 또 누구랑 싸웠어?”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누난 내가 뭐 만날 싸움만 하고 다니는 줄 알아? 실내화 주머니를 막 휘두르면서 오다가, 코에 탁 맞아서 그래.”
“뭐? 네가 네 코를 코피 나게 때린 거야?”
“내가 아니라, 이 실내화 주머니라니까!”
현수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실내화 주머니를 발로 뻥 찼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싸운 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오늘 시험은 잘 봤어? 시험지 줘봐.”
현수네 반은 매주 낱말 시험을 본다. 하지만 시험을 보건 말건 현수는 천하태평이고 매주 마음이 달아서 속이 터지는 건 바로 나다.
“뭐야, 40점?”
“열 개 중에 네 개나 맞았으니 잘한 거지. 아이스크림 없어?”
현수가 냉동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야, 7번 문제, 답이 이게 뭐야!”
‘지구가 물체를 지구의 중심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무엇이라 하는지 묻는 문제였다. 분명 어제저녁에 현수를 붙잡고 ‘중력’을 열 번도 넘게 가르쳐줬었다. 그런데 시험지에는 크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초능력’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제 공부하긴 한 것 같은데, 생각이 잘 안 났어. 그리고 저절로 슉 끌어당기는 힘이니까, 초능력도 맞는 말이지.”
현수가 다가와서 당당한 얼굴로 시험지를 휙 잡아챘다.
“저절로 슉 밀어내는 초능력이 나한테 좀 생겼으면 좋겠다.”
나는 현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빨리 씻고 옷 갈아입어. 그다음엔 ‘숙제 뚝딱, 준비물 착착’ 알지? 그전에는 놀 생각하지 마.”
“알았어, 잔소리 대왕.”
현수가 볼멘소리로 대답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잔소리 안 하게 좀 잘해 봐.”
나는 현수 방문에다 대고 뾰족하게 대꾸를 했다.
현수는 원래도 철부지이기는 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점점 더 똥고집을 부리더니 요즘에는 완전 막무가내였다. 3학년인데도 하는 행동은 유치원생이었다. 학교에 숙제도 안 해가고 준비물도 안 챙겨가는 데다 집에 오면 가방을 던져 놓고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툭하면 동네 친구들과 주먹질을 하며 뒹굴고 학교에서까지 싸움을 해대는 바람에 현수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아빠는 전화에 대고 열심히 사과를 했지만 막상 현수만 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현수가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혼내는 시늉을 잠깐 하다가는 금방 현수 편이 되었다. 그래서 현수 버릇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게다가 아빠는 요즘 들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더 늦어졌다. 말수도 많이 줄고 어깨가 점점 굽어가는 아빠에게 현수 일로 신경쓰게 할 수는 없었다. 현수 문제는 내가 나서야 했다. 나도 내년이면 어엿한 중학생이니 말이다. 고민 끝에 나는 ‘우리 집의 평화를 위한 규칙들’을 만들기로 했다. 아빠도 내 계획을 지지해주었다.
“학교 갔다 오면 숙제 먼저 뚝딱하고, 준비물도 착착 챙기기.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연습을 해야지.”
내 말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현이 말이 맞다. 그건 기본이지.”
이렇게 해서 ‘숙제 뚝딱, 준비물 착착’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집에 오면 무조건 이 규칙을 지켜야 놀 수 있다.
“그리고 싸움 금지 규칙도 필요해. 주먹이 사람한테 휘두르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
현수가 억울하다는 듯 변명을 했다.
“다 게네들이 먼저 잘못한 거라고.”
“말로 하면 되잖아. 입은 그럴 때 필요해서 있는 거야.”
이번에도 아빠는 내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 말로 하면 되지. 주먹이나 발이 나가려고 하면, 속으로 ‘동작 그만!’하고 외쳐. 원래 군대에서는 ‘동작 그만!’ 하면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하거든.”
“우리 집이 무슨 군대예요?”
현수가 볼멘소리를 했지만 싸움 금지 규칙은 ‘동작 그만’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씻는 것을 싫어하는 현수를 위해 ‘싹싹 씻고 치카’, 방 청소를 싫어하는 현수를 위해 ‘내 방은 내가’ 같은 규칙들도 만들었다. 3학년짜리 남동생에게 방 청소까지 시키다니,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너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현수는 내가 방 청소를 해주려고 하자 싫다고 펄쩍 뛰었다.
“절대 안 돼! 내 물건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건드리는 건 싫어.”
“야, 나는 네 누나라고.”
“누나는 내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지. 안 돼.”
“그럼 네 방은 네가 청소 좀 하든지.”
“알았어.”
이렇게 해서 ‘내 방은 내가’ 규칙이 만들어진 것이다.
시계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내일은 수학 시험도 있다. 이제는 공부를 해야 했다. 조각보 찾기를 포기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현수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수건 넣는 수납장에 혹시…… 나는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고약한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윽, 냄새! 현수 너, ‘똥 풍덩’ 규칙 안 지킬 거야?”
나는 코를 움켜쥐며 화장실 문을 다시 쾅 닫았다.
‘우리 집의 평화를 위한 규칙들’ 중에는 화장실에서 똥을 누면 물에 풍덩 떨어지는 순간 바로 물을 내려야 한다는 규칙도 있다. 내 코가 좀 많이 예민한 편이다. 현수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현수 방의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며 다시 소리쳤다.
“야, ‘똥 풍덩’ 규칙!”
“그럼, 똥이 세 번에 나눠서 떨어지면 어떡해? 풍덩 할 때마다 물을 내리려면 세 번씩이나 물을 내려야 하잖아. 누나는 6학년씩이나 되면서 뭘 잘 모르나본데,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라고!”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펼치던 현수는 벽에 붙여놓은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그린 물 절약 포스터인데 그 후로는 세수도 양치도 대충대충 하면서 툭 하면 물 부족 국가 어쩌고 한다.
“물 부족 걱정하기 전에, 네 누나가 산소 부족으로 죽을지도 몰라. 제발 규칙 좀 지켜라, 응?”
현수가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에 힘을 주어 현수를 째려본 다음 방문을 닫으려다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현수야, 너 혹시……, 엄마 조각보 못 봤어?”
“몰라.”
현수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침대에 가서 벌러덩 누웠다.
“야, 숙제해야지 왜 드러누워?”
“좀 쉬었다 하려고.”
“시작도 하기 전에 쉰다고? ‘숙제 뚝딱, 준비물 착착!’ 그다음에 눕든지 말든지 하라고.”
“알았으니까 제발 좀 나가!”
현수가 베개를 날렸지만 내가 한발 빠르게 방문을 닫았다. 나는 시험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집중이 통 되지 않았다. 안 풀리는 문제는 대충 건너뛰었다. 연습장에 풀다 만 문제들이 쌓여갔다. 그런데 27번 문제를 읽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색종이 50장을 은혜와 정민이가 7:3으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정민이가 가진 색종이 수를……’
아차, 색종이! 미술 준비물을 깜박했다. 바탕으로 사용할 화선지는 선생님이 나눠준다고 했다. 가위와 풀은 학교에 있으니 한지 색종이만 준비하면 되었다. 그런데 엄마의 조각보를 찾아볼 생각에 서둘러 오느라 문구점에 들르는 것을 깜박하고 만 것이다. 지금 사러 가야 하나? 시험공부도 못 했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누나!”
방문이 벌컥 열렸다.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연필심이 툭, 부러졌다.
“깜짝이야! 똑똑똑, 노크도 모르니?”
나는 괜히 동생에게 성질을 부리며 소리를 질렀다.
“가족끼리 뭘 그래?”
현수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가족일수록 예의를 지켜야지! 자기 방에는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서!”
“가족일수록 편하게 지내야지. 누나도 내 방문은 벌컥벌컥 열면서 뭘 그래?”
아무래도 규칙을 또하나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앞으로는 방문 열 때 문을 똑똑 두드리고 열자. 규칙 하나 새로 생겼다. ‘문 똑똑’ 규칙이라고.”
“너무 했어. 그럼 벌써 규칙이 여섯 개나 돼. 다 외우지도 못하겠어.”
현수의 입이 쑥 나왔다.
“여섯 개인 줄 아는 걸 보니, 다 외우고 있네 뭐.”
내가 지지 않고 대답했다. 현수가 한숨을 쉬더니 손을 내밀었다.
“돈 줘. 미술 준비물 사야 해. 지점토.”
“응? 준비물 사러 갈 거야?”
갑자기 내 목소리가 부드러워지자 현수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현수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재빨리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지갑에는 달랑 천 원밖에 없었다.
“현수야, 지점토는 아빠 오시면 사.”
“아빠 늦게 오시잖아. 문구점 문 닫을걸.”
“그럼 내일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사.”
“그러다 지각할걸. ‘숙제 뚝딱, 준비물 착착’ 규칙도 지켜야지.”
평소에는 싫어하는 규칙을 이럴 때는 잘도 갖다 붙인다. 나는 현수를 째려보며 지갑에서 천 원을 꺼냈다. 한지 색종이는 내일 등굣길에 사는 수밖에 없었다. 현수가 내 손에서 잽싸게 돈을 낚아채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야, 거스름돈 챙겨와!”
나는 현수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다시 수학 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준비물이 생각났으니 색종이 문제는 고마운 마음으로 풀었다. 다음 문제였다.
‘김밥 2인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밥이 320g 필요합니다. 김밥 7인분을 만들려면……’
생각이 훨훨 날개를 달고 제멋대로 날아올랐다. 엄마는 김밥을 단단하게 잘 쌌다. 나는 엄마가 싸주는 김밥을 좋아했다. 엄마와 함께 김밥을 만들어 먹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은 특별한 날도 아니었는데 엄마가 김밥을 만들자고 했다. 현수도 비닐장갑을 끼고 다 터진 김밥을 만들었다. 나는 엄마를 열심히 따라 해봤지만 김밥이 자꾸만 흐물흐물해졌다.
“김밥이 문어 다리 같아!”
현수가 놀렸다.
“괜찮아. 만들기 힘들면 사 먹으면 되지.”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뭐 하러 사 먹어요? 엄마가 싸주는 게 제일 맛있는데.”
내 말에 엄마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내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의 손이 따뜻했다. 눈물이 한 방울 툭, 문제집 위에 떨어졌다. 수학 문제집에 무슨 김밥 만드는 이야기가 이렇게 나오는지…… 나는 휴지를 꺼내 문제집을 꾹꾹 눌렀다. 삑삑삑삑, 철커덩. 현관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현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나 왔어. 돈이 모자라서 지점토 못 샀어.”
“모자라다니, 무슨 소리야!”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나가 보았다. 현수가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너, 그거 뭐야?”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 먹고 지점토 사려고 했는데, 돈이 모자랐어.”
“천원으로? 당연히 모자라지! 너 정말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준비물 살 돈을 그렇게 써버리면 어떡해!”
“그럴 수도 있지. 가게 앞에서 친구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길래 나도 하나 사 먹은 건데 뭐.”
현수의 태연한 대꾸에 나는 화가 점점 더 치밀어 올랐다.
“내 준비물도 안 사고 너한테 준 돈이란 말이야! 넌 도대체 왜 이렇게 속을 썩이니?”
나는 한 옥타브나 올라간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빠 오면 다시 돈 달라고 해서 사면되지 뭘 그래? 잔소리 좀 그만해. 엄마도 아니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현수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엄마도 아니면서’라는 말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있으면 내가 왜 잔소리를 하겠니? 네가 이러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거야. 너 속 썩이는 거 때문에!”
앞뒤 생각 없이 내 입에서 날카로운 말이 쏟아졌다. 현수의 눈이 커졌다.
“엄마는 암으로 돌아가신 거잖아.”
“암이 왜 생기는데? 그게 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거야.”
“그럼 나도 암으로 죽겠네. 누나가 나한테 만날 스트레스 주니까!”
“죽어도 내가 먼저 죽을 테니 걱정 마!”
나는 현수를 쏘아보며 발을 쾅, 굴렀다. 현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현수는 잠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대로 서 있더니 현관문을 벌컥 열고 나가버렸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치, 내가 무슨 스트레스를 준다고. 자기가 나한테 주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줄곧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지만 슬금슬금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너무 현수를 몰아세우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현수는 현수지 내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현수를 나한테 맞추려고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몇 번이나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 하늘이 구름을 안고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놀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끄럼틀 옆에서 남자아이 둘이 바닥에서 뒹굴며 싸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였다. 동네 친구 승호랑 씩씩거리며 치고받고 있었다. 나는 현수를 향해 최고 속도로 달렸다.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지만 그냥 달렸다. 나는 둘 사이에 뛰어들어 싸움을 말렸다.
“현수야, 승호야, 동작 그만! 그만해!”
“아이고, 얘들아! 지금 뭐하는 거야?”
어느새 달려온 승호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내 등짝을 철썩 후려쳤다. 정말 매운 손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둘이서 한 애를! 아유, 얼굴에 이 상처 좀 봐!”
조금 전까지 주먹을 불끈 쥐고 투지를 불태우며 싸우던 승호는 엄마를 보자 갑자기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승호 엄마가 안쓰러운 얼굴로 승호의 볼을 쓰다듬었다.
“엄마가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폭력적인지 모르겠다니까. 아니, 말로 해도 될 일을 왜 주먹을 쓰냐고.”
엄마의 등장에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승호가 목소리를 높이며 더 크게 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등이 아직도 후끈거렸다.
"그러는 아줌마는 왜 폭력을 써요?"
갑자기 현수가 앞으로 나서며 승호 엄마를 노려보았다. 놀란 승호가 울음을 뚝 그쳤다. 승호 엄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아니, 얘가 근데!"
"승호가 먼저 나더러 바보라고 놀렸단 말이에요! 자기도 40점 맞아놓고! 우리 누나는 싸움을 말리고 있었는데 왜 누나를 때리느냐고요!"
현수가 당당하게 따졌다. 말썽만 피우던 철부지 동생이 누나를 두둔하고 나서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왠지 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안 그래도 우리 누나가 맘이 아픈데, 누나 죽으면 다 아줌마 탓이에요!”
현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뭐? 마, 많이 아파?”
승호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맘이’를 ‘많이’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누나, 죽지 마!”
현수가 나한테 와락 안겼다.
“아니, 얘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어, 저, 정말 미안하구나. 아줌마가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승호 엄마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니 뭐 해? 너도 빨리 사과해. 뭘 잘했다고 친구를 놀리고 그래?”
승호 엄마가 승호 뒤통수를 한 손으로 푹 눌러 억지로 인사를 시켰다. 그러더니 재빨리 승호의 팔을 낚아채고는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야, 갔어. 연극 그만해도 돼, 이제.”
내가 현수를 떼어내며 속삭였다. 그런데 현수의 눈에서 진짜로 굵은 눈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현수야, 왜 그래?”
현수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아예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진짜, 아줌마는 왜 누나 등을 때려? 때릴 거면 내 등을 때려야지!”
한번 터진 현수의 울음은 멈출 것 같지가 않았다.
“현수야, 난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내 속에서 단단하고 뜨거운 돌 같은 것이 목을 아프게 밀고 올라왔다. 사실은 괜찮지가 않았나보다. 꾹꾹 눌러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나도 현수 옆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 누나. 이제 진짜로 안 싸울게. 누나 말도 잘 들을게.”
현수가 울음을 삼키고는 내 등을 토닥였다.
“이제 집에 오면 숙제부터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 규칙도 전부 다 지킬게.”
현수가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내 슬리퍼 한 짝을 찾아와서 내 발에 신겨주었다. 내가 대꾸를 안 하자 현수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누나, 엄마 조각보 줄게.”
“뭐? 조각보 어디 있는지 알아?”
나는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내 침대 이불 밑에 있어. 엄마 생각날 때 꺼내보려고 넣어놨어.”
나는 현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현수의 두 눈이 아직도 촉촉했다.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왔다.
“그리고 규칙을 누나만 만드는 건 불공평한 것 같아. 나도 하나 만들었으니까, 누나가 잘 지켜야 돼. 알았지?”
“규칙이 뭔데?”
“오래오래 살기.”
“뭐?”
“누나가 아까 그랬잖아. 죽어도 누나가 먼저 죽을 거라고. 나는 누나가 먼저 죽는 거 싫어.”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 같아 나는 일부러 현수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마구 헝클었다.
“그거 알아? 규칙은 만든 사람이 제일 잘 지켜야 하는 거야.”
구름이 옅어졌는지 어두워진 저녁 하늘에 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현수의 손을 꼭 잡고 일어섰다.
“어서 가자. 아빠 오시겠다.”
내일 미술 시간에 한지 조각보 만들기를 한다. 한지 색종이를 잘라서 화선지에다 붙여 모양을 내는 조각보다. 선생님이 미리 만들어둔 한지 조각보를 오늘 수업 시간에 보여주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한지 조각보가 내 마음을 쑥 끌어당겼다. 하얗게 나풀거리는 화선지 위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한지 색종이들이 알록달록하면서도 차분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어딘가 엄마의 조각보와 닮아 있었다. 엄마는 종이가 아니라 천으로 된 진짜 조각보를 만들었다. 뒤늦게 시작한 취미가 적성에 딱 맞는다며 틈만 나면 바느질을 했다.
“거기는 파랑 조각!”
나는 조각천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골라 엄마 손에 쥐여주곤 했다. 그러면 현수가 달려와서 자기 멋대로 색깔을 바꾸겠다고 떼를 썼다.
그럴 때면 아빠가 나섰다.
“둘 다 한발 늦었어. 아빠가 이미 골라놓았거든.”
아빠는 아무 조각이나 집어들고 엄마한테 건네며 눈을 찡긋했다. 엄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도 눈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 나는 자투리 천조각들이 엄마의 손끝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조각보 하나씩 만들어서 서현이랑 현수 결혼할 때 선물로 줘야겠다.”
엄마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조각보를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이던 엄마 얼굴이 생각났다. 하지만 엄마는 조각보 한 장을 겨우 마무리하고 바늘을 놓았다. 엄마는 암과 싸워야 했다. 나는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우리 중 누구도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의 시간에 맞춰 떠났다. 누구에게나 정해진 시간이 있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다. 그러니 누구나 시간이 주어졌을 때 각자의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지금 나를 보면 잘하고 있다고 할까?
싱크대 서랍을 너무 끝까지 잡아당겼는지 밀어넣으려고 하니 삐걱대며 잘 닫히지 않았다. 삑삑삑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현수는 학교 끝나고 어디서 놀다 온 모양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현수가 실내화 주머니를 내동댕이쳤다. 코밑에 검붉은 코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너, 코피 났어? 또 누구랑 싸웠어?”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누난 내가 뭐 만날 싸움만 하고 다니는 줄 알아? 실내화 주머니를 막 휘두르면서 오다가, 코에 탁 맞아서 그래.”
“뭐? 네가 네 코를 코피 나게 때린 거야?”
“내가 아니라, 이 실내화 주머니라니까!”
현수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실내화 주머니를 발로 뻥 찼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싸운 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오늘 시험은 잘 봤어? 시험지 줘봐.”
현수네 반은 매주 낱말 시험을 본다. 하지만 시험을 보건 말건 현수는 천하태평이고 매주 마음이 달아서 속이 터지는 건 바로 나다.
“뭐야, 40점?”
“열 개 중에 네 개나 맞았으니 잘한 거지. 아이스크림 없어?”
현수가 냉동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야, 7번 문제, 답이 이게 뭐야!”
‘지구가 물체를 지구의 중심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무엇이라 하는지 묻는 문제였다. 분명 어제저녁에 현수를 붙잡고 ‘중력’을 열 번도 넘게 가르쳐줬었다. 그런데 시험지에는 크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초능력’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제 공부하긴 한 것 같은데, 생각이 잘 안 났어. 그리고 저절로 슉 끌어당기는 힘이니까, 초능력도 맞는 말이지.”
현수가 다가와서 당당한 얼굴로 시험지를 휙 잡아챘다.
“저절로 슉 밀어내는 초능력이 나한테 좀 생겼으면 좋겠다.”
나는 현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빨리 씻고 옷 갈아입어. 그다음엔 ‘숙제 뚝딱, 준비물 착착’ 알지? 그전에는 놀 생각하지 마.”
“알았어, 잔소리 대왕.”
현수가 볼멘소리로 대답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잔소리 안 하게 좀 잘해 봐.”
나는 현수 방문에다 대고 뾰족하게 대꾸를 했다.
현수는 원래도 철부지이기는 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점점 더 똥고집을 부리더니 요즘에는 완전 막무가내였다. 3학년인데도 하는 행동은 유치원생이었다. 학교에 숙제도 안 해가고 준비물도 안 챙겨가는 데다 집에 오면 가방을 던져 놓고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툭하면 동네 친구들과 주먹질을 하며 뒹굴고 학교에서까지 싸움을 해대는 바람에 현수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아빠는 전화에 대고 열심히 사과를 했지만 막상 현수만 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현수가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혼내는 시늉을 잠깐 하다가는 금방 현수 편이 되었다. 그래서 현수 버릇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게다가 아빠는 요즘 들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더 늦어졌다. 말수도 많이 줄고 어깨가 점점 굽어가는 아빠에게 현수 일로 신경쓰게 할 수는 없었다. 현수 문제는 내가 나서야 했다. 나도 내년이면 어엿한 중학생이니 말이다. 고민 끝에 나는 ‘우리 집의 평화를 위한 규칙들’을 만들기로 했다. 아빠도 내 계획을 지지해주었다.
“학교 갔다 오면 숙제 먼저 뚝딱하고, 준비물도 착착 챙기기.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연습을 해야지.”
내 말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현이 말이 맞다. 그건 기본이지.”
이렇게 해서 ‘숙제 뚝딱, 준비물 착착’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집에 오면 무조건 이 규칙을 지켜야 놀 수 있다.
“그리고 싸움 금지 규칙도 필요해. 주먹이 사람한테 휘두르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
현수가 억울하다는 듯 변명을 했다.
“다 게네들이 먼저 잘못한 거라고.”
“말로 하면 되잖아. 입은 그럴 때 필요해서 있는 거야.”
이번에도 아빠는 내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 말로 하면 되지. 주먹이나 발이 나가려고 하면, 속으로 ‘동작 그만!’하고 외쳐. 원래 군대에서는 ‘동작 그만!’ 하면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하거든.”
“우리 집이 무슨 군대예요?”
현수가 볼멘소리를 했지만 싸움 금지 규칙은 ‘동작 그만’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씻는 것을 싫어하는 현수를 위해 ‘싹싹 씻고 치카’, 방 청소를 싫어하는 현수를 위해 ‘내 방은 내가’ 같은 규칙들도 만들었다. 3학년짜리 남동생에게 방 청소까지 시키다니,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너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현수는 내가 방 청소를 해주려고 하자 싫다고 펄쩍 뛰었다.
“절대 안 돼! 내 물건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건드리는 건 싫어.”
“야, 나는 네 누나라고.”
“누나는 내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지. 안 돼.”
“그럼 네 방은 네가 청소 좀 하든지.”
“알았어.”
이렇게 해서 ‘내 방은 내가’ 규칙이 만들어진 것이다.
시계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내일은 수학 시험도 있다. 이제는 공부를 해야 했다. 조각보 찾기를 포기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현수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수건 넣는 수납장에 혹시…… 나는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고약한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윽, 냄새! 현수 너, ‘똥 풍덩’ 규칙 안 지킬 거야?”
나는 코를 움켜쥐며 화장실 문을 다시 쾅 닫았다.
‘우리 집의 평화를 위한 규칙들’ 중에는 화장실에서 똥을 누면 물에 풍덩 떨어지는 순간 바로 물을 내려야 한다는 규칙도 있다. 내 코가 좀 많이 예민한 편이다. 현수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현수 방의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며 다시 소리쳤다.
“야, ‘똥 풍덩’ 규칙!”
“그럼, 똥이 세 번에 나눠서 떨어지면 어떡해? 풍덩 할 때마다 물을 내리려면 세 번씩이나 물을 내려야 하잖아. 누나는 6학년씩이나 되면서 뭘 잘 모르나본데,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라고!”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펼치던 현수는 벽에 붙여놓은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그린 물 절약 포스터인데 그 후로는 세수도 양치도 대충대충 하면서 툭 하면 물 부족 국가 어쩌고 한다.
“물 부족 걱정하기 전에, 네 누나가 산소 부족으로 죽을지도 몰라. 제발 규칙 좀 지켜라, 응?”
현수가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에 힘을 주어 현수를 째려본 다음 방문을 닫으려다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현수야, 너 혹시……, 엄마 조각보 못 봤어?”
“몰라.”
현수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침대에 가서 벌러덩 누웠다.
“야, 숙제해야지 왜 드러누워?”
“좀 쉬었다 하려고.”
“시작도 하기 전에 쉰다고? ‘숙제 뚝딱, 준비물 착착!’ 그다음에 눕든지 말든지 하라고.”
“알았으니까 제발 좀 나가!”
현수가 베개를 날렸지만 내가 한발 빠르게 방문을 닫았다. 나는 시험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집중이 통 되지 않았다. 안 풀리는 문제는 대충 건너뛰었다. 연습장에 풀다 만 문제들이 쌓여갔다. 그런데 27번 문제를 읽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색종이 50장을 은혜와 정민이가 7:3으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정민이가 가진 색종이 수를……’
아차, 색종이! 미술 준비물을 깜박했다. 바탕으로 사용할 화선지는 선생님이 나눠준다고 했다. 가위와 풀은 학교에 있으니 한지 색종이만 준비하면 되었다. 그런데 엄마의 조각보를 찾아볼 생각에 서둘러 오느라 문구점에 들르는 것을 깜박하고 만 것이다. 지금 사러 가야 하나? 시험공부도 못 했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누나!”
방문이 벌컥 열렸다.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연필심이 툭, 부러졌다.
“깜짝이야! 똑똑똑, 노크도 모르니?”
나는 괜히 동생에게 성질을 부리며 소리를 질렀다.
“가족끼리 뭘 그래?”
현수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가족일수록 예의를 지켜야지! 자기 방에는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서!”
“가족일수록 편하게 지내야지. 누나도 내 방문은 벌컥벌컥 열면서 뭘 그래?”
아무래도 규칙을 또하나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앞으로는 방문 열 때 문을 똑똑 두드리고 열자. 규칙 하나 새로 생겼다. ‘문 똑똑’ 규칙이라고.”
“너무 했어. 그럼 벌써 규칙이 여섯 개나 돼. 다 외우지도 못하겠어.”
현수의 입이 쑥 나왔다.
“여섯 개인 줄 아는 걸 보니, 다 외우고 있네 뭐.”
내가 지지 않고 대답했다. 현수가 한숨을 쉬더니 손을 내밀었다.
“돈 줘. 미술 준비물 사야 해. 지점토.”
“응? 준비물 사러 갈 거야?”
갑자기 내 목소리가 부드러워지자 현수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현수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재빨리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지갑에는 달랑 천 원밖에 없었다.
“현수야, 지점토는 아빠 오시면 사.”
“아빠 늦게 오시잖아. 문구점 문 닫을걸.”
“그럼 내일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사.”
“그러다 지각할걸. ‘숙제 뚝딱, 준비물 착착’ 규칙도 지켜야지.”
평소에는 싫어하는 규칙을 이럴 때는 잘도 갖다 붙인다. 나는 현수를 째려보며 지갑에서 천 원을 꺼냈다. 한지 색종이는 내일 등굣길에 사는 수밖에 없었다. 현수가 내 손에서 잽싸게 돈을 낚아채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야, 거스름돈 챙겨와!”
나는 현수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다시 수학 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준비물이 생각났으니 색종이 문제는 고마운 마음으로 풀었다. 다음 문제였다.
‘김밥 2인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밥이 320g 필요합니다. 김밥 7인분을 만들려면……’
생각이 훨훨 날개를 달고 제멋대로 날아올랐다. 엄마는 김밥을 단단하게 잘 쌌다. 나는 엄마가 싸주는 김밥을 좋아했다. 엄마와 함께 김밥을 만들어 먹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은 특별한 날도 아니었는데 엄마가 김밥을 만들자고 했다. 현수도 비닐장갑을 끼고 다 터진 김밥을 만들었다. 나는 엄마를 열심히 따라 해봤지만 김밥이 자꾸만 흐물흐물해졌다.
“김밥이 문어 다리 같아!”
현수가 놀렸다.
“괜찮아. 만들기 힘들면 사 먹으면 되지.”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뭐 하러 사 먹어요? 엄마가 싸주는 게 제일 맛있는데.”
내 말에 엄마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내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의 손이 따뜻했다. 눈물이 한 방울 툭, 문제집 위에 떨어졌다. 수학 문제집에 무슨 김밥 만드는 이야기가 이렇게 나오는지…… 나는 휴지를 꺼내 문제집을 꾹꾹 눌렀다. 삑삑삑삑, 철커덩. 현관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현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나 왔어. 돈이 모자라서 지점토 못 샀어.”
“모자라다니, 무슨 소리야!”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나가 보았다. 현수가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너, 그거 뭐야?”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 먹고 지점토 사려고 했는데, 돈이 모자랐어.”
“천원으로? 당연히 모자라지! 너 정말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준비물 살 돈을 그렇게 써버리면 어떡해!”
“그럴 수도 있지. 가게 앞에서 친구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길래 나도 하나 사 먹은 건데 뭐.”
현수의 태연한 대꾸에 나는 화가 점점 더 치밀어 올랐다.
“내 준비물도 안 사고 너한테 준 돈이란 말이야! 넌 도대체 왜 이렇게 속을 썩이니?”
나는 한 옥타브나 올라간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빠 오면 다시 돈 달라고 해서 사면되지 뭘 그래? 잔소리 좀 그만해. 엄마도 아니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현수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엄마도 아니면서’라는 말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있으면 내가 왜 잔소리를 하겠니? 네가 이러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거야. 너 속 썩이는 거 때문에!”
앞뒤 생각 없이 내 입에서 날카로운 말이 쏟아졌다. 현수의 눈이 커졌다.
“엄마는 암으로 돌아가신 거잖아.”
“암이 왜 생기는데? 그게 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거야.”
“그럼 나도 암으로 죽겠네. 누나가 나한테 만날 스트레스 주니까!”
“죽어도 내가 먼저 죽을 테니 걱정 마!”
나는 현수를 쏘아보며 발을 쾅, 굴렀다. 현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현수는 잠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대로 서 있더니 현관문을 벌컥 열고 나가버렸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치, 내가 무슨 스트레스를 준다고. 자기가 나한테 주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줄곧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지만 슬금슬금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너무 현수를 몰아세우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현수는 현수지 내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현수를 나한테 맞추려고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몇 번이나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 하늘이 구름을 안고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놀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끄럼틀 옆에서 남자아이 둘이 바닥에서 뒹굴며 싸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였다. 동네 친구 승호랑 씩씩거리며 치고받고 있었다. 나는 현수를 향해 최고 속도로 달렸다.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지만 그냥 달렸다. 나는 둘 사이에 뛰어들어 싸움을 말렸다.
“현수야, 승호야, 동작 그만! 그만해!”
“아이고, 얘들아! 지금 뭐하는 거야?”
어느새 달려온 승호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내 등짝을 철썩 후려쳤다. 정말 매운 손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둘이서 한 애를! 아유, 얼굴에 이 상처 좀 봐!”
조금 전까지 주먹을 불끈 쥐고 투지를 불태우며 싸우던 승호는 엄마를 보자 갑자기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승호 엄마가 안쓰러운 얼굴로 승호의 볼을 쓰다듬었다.
“엄마가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폭력적인지 모르겠다니까. 아니, 말로 해도 될 일을 왜 주먹을 쓰냐고.”
엄마의 등장에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승호가 목소리를 높이며 더 크게 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등이 아직도 후끈거렸다.
"그러는 아줌마는 왜 폭력을 써요?"
갑자기 현수가 앞으로 나서며 승호 엄마를 노려보았다. 놀란 승호가 울음을 뚝 그쳤다. 승호 엄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아니, 얘가 근데!"
"승호가 먼저 나더러 바보라고 놀렸단 말이에요! 자기도 40점 맞아놓고! 우리 누나는 싸움을 말리고 있었는데 왜 누나를 때리느냐고요!"
현수가 당당하게 따졌다. 말썽만 피우던 철부지 동생이 누나를 두둔하고 나서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왠지 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안 그래도 우리 누나가 맘이 아픈데, 누나 죽으면 다 아줌마 탓이에요!”
현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뭐? 마, 많이 아파?”
승호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맘이’를 ‘많이’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누나, 죽지 마!”
현수가 나한테 와락 안겼다.
“아니, 얘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어, 저, 정말 미안하구나. 아줌마가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승호 엄마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니 뭐 해? 너도 빨리 사과해. 뭘 잘했다고 친구를 놀리고 그래?”
승호 엄마가 승호 뒤통수를 한 손으로 푹 눌러 억지로 인사를 시켰다. 그러더니 재빨리 승호의 팔을 낚아채고는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야, 갔어. 연극 그만해도 돼, 이제.”
내가 현수를 떼어내며 속삭였다. 그런데 현수의 눈에서 진짜로 굵은 눈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현수야, 왜 그래?”
현수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아예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진짜, 아줌마는 왜 누나 등을 때려? 때릴 거면 내 등을 때려야지!”
한번 터진 현수의 울음은 멈출 것 같지가 않았다.
“현수야, 난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내 속에서 단단하고 뜨거운 돌 같은 것이 목을 아프게 밀고 올라왔다. 사실은 괜찮지가 않았나보다. 꾹꾹 눌러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나도 현수 옆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 누나. 이제 진짜로 안 싸울게. 누나 말도 잘 들을게.”
현수가 울음을 삼키고는 내 등을 토닥였다.
“이제 집에 오면 숙제부터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 규칙도 전부 다 지킬게.”
현수가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내 슬리퍼 한 짝을 찾아와서 내 발에 신겨주었다. 내가 대꾸를 안 하자 현수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누나, 엄마 조각보 줄게.”
“뭐? 조각보 어디 있는지 알아?”
나는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내 침대 이불 밑에 있어. 엄마 생각날 때 꺼내보려고 넣어놨어.”
나는 현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현수의 두 눈이 아직도 촉촉했다.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왔다.
“그리고 규칙을 누나만 만드는 건 불공평한 것 같아. 나도 하나 만들었으니까, 누나가 잘 지켜야 돼. 알았지?”
“규칙이 뭔데?”
“오래오래 살기.”
“뭐?”
“누나가 아까 그랬잖아. 죽어도 누나가 먼저 죽을 거라고. 나는 누나가 먼저 죽는 거 싫어.”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 같아 나는 일부러 현수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마구 헝클었다.
“그거 알아? 규칙은 만든 사람이 제일 잘 지켜야 하는 거야.”
구름이 옅어졌는지 어두워진 저녁 하늘에 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현수의 손을 꼭 잡고 일어섰다.
“어서 가자. 아빠 오시겠다.”
추수진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제가 펼치는 조각보에 조각난 마음들이 어린 새처럼 날아와 앉았다 가기를 바랍니다. 주고 싶은 그 위로를 글을 쓰면서 제가 받고 있습니다. 특별한 자리에서 동시와 동화의 조각보를 한꺼번에 펼쳐 보이게 되어 마음이 설렙니다.
2021/09/28
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