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왔다! 왔어!”
   6교시가 끝나기 10분 전. 교실이 술렁거렸다. 나는 의자를 뒤로 조금 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선생님 눈치를 슬슬 살피며 몰래 휴대폰을 켰다.
   “큭큭큭”
   교실 곳곳에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너희 또 오토 보지? 딱 10분만 참을 순 없겠어?”
   선생님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말했다. 아이들은 휴대폰을 끄는 척 또 화면을 힐끔댔다. 딱 10분만 참으면 되는데 안 되는 거. 그게 바로 오토다. 오토는 초등학생들의 일상을 다룬 웹툰 〈오늘의 토끼〉의 준말인데, 도전 만화에서부터 입소문을 타더니 결국 베스트 도전까지 올라간 인기작이다.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리뷰를 와다다 쏟아냈다. 재미있다, 캐릭터가 귀엽다, 반전이 대박이다…… 그중에서 내 귀에 확 꽂히는 한 마디가 있었다.
   “꼭 내 이야기 같지 않냐?”
   리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인데도 들을 때마다 뜨끔했다. 나는 스트레칭을 하는 척 그 말을 한 아이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다행이다. 이번 화는 그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토작은 천재야.”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렇다. 이 웹툰의 작가는 바로 나, 이소민이다. 하지만 필명을 쓰고 있어서, 아이들은 내가 토작인지 모른다. 토작은 웹툰 속 주인공 캐릭터인 토끼와 작가의 합성어다. 가끔은 내가 토작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꾹 참는다. 내 정체를 몰라야 아이들이 솔직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반응은 충분히 확인했다. 나는 높이 솟아오르는 광대를 두 손가락으로 누르고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일주일 동안 웹툰 한 편을 다시 완성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침대 밑에 숨겨둔 노트부터 꺼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쓸만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일기처럼 날짜와 함께 메모해둔 노트인데, 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꼭 이 노트를 한번 쭉 살펴본다. 어떤 씨앗을 골라서 땅에 심을지 고민하는 농부처럼 어떤 소재를 잡아서 웹툰으로 만들지 가늠하는 거다.
   나는 노트를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넘겼다. 동그라미 친 페이지가 연달아 나왔다. 이미 웹툰으로 써먹었단 표시다.
   “사기를 당했다?”
   한 씨앗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아이가 중고 시장에서 태블릿PC를 구매하려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중고 시장은 아이들도 물건을 많이 사고파는 곳이다. 여기에 사기꾼과의 추격전 같은 양념을 뿌리면 그럴싸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공감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거다.
   노트 덕분에 진도가 쭉쭉 나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케치도 금방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짓말 안 해도 돼.
거짓말 아니야. 나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
   한창 콘티를 짜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말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과 좋아하는 사람? 이게 무슨 상황일까? 나는 펜슬을 입에 물고 숨을 죽였다. 분명 말소리였는데. 사방이 다시금 조용해지고는 그네가 삐걱대는 소리만 났다. 나는 방충망을 슬슬 열어 아래를 내다보았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10동 놀이터. 아파트단지 내 놀이터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곳이다. 놀이기구도 많지 않은 데다가 정문에서도 한참 걸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그런 이유로 일부러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비밀을 속닥거리고 싶을 땐 이만한 장소도 없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작업하는 데 집중할라치면 말소리가 바로 옆에서 종알대는 것처럼 들려왔다. 우리 집은 5층인데도 그랬다. 나는 아이들의 비밀이 궁금하지도, 엿듣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였다. 웹툰의 주인공을 나와 나이가 같은 초등학교 6학년 아이로 설정하고 나니까, 말소리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잘 듣는 것만으로도 웹툰 한 편이 뚝딱 나왔다.
좋아해.
   바로 지금처럼. 훅 들려온 고백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둘이 같은 마음이었고 방금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에! 둘은 심지어 쪽, 하고 입맞춤까지 했다.
   나는 노트를 재빨리 펼치곤 새 페이지에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적어넣었다. 오해와 엇갈림 끝에 깨달은 첫사랑. 다음에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씨앗 삼아 웹툰을 그리는 것도 좋겠다. 사랑 이야기는 백전백승. 흥행에 실패하는 법이 없으니까.

   “소민아, 달리는 동작은 어떻게 그려?”
   짝꿍이 자기 그림을 보여주며 물었다. 체육대회 때 달리기 1등 한 일을 그리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짝꿍이 설명하는 대로 인물의 자세를 잡아 그려주었다.
   “와. 역시. 고마워.”
   짝꿍이 말했다. 이번에는 반장이 학예회 무대에서 춤추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동작이 복잡해서 그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이다. 나는 반장이 말해준 아이돌 음악의 춤을 떠올렸다. 포인트 안무를 부각해서 그리면 완성이다.
   몇몇 아이들이 반장 뒤로 줄을 길게 늘어섰다. 미술 시간에는 선생님 다음으로 내가 가장 바쁘다. 숨기고 숨겼는데도 그림 실력은 어쩔 수 없이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다음 아이가 내 앞으로 왔다. 그 아이는 내게 도화지 대신 태블릿PC를 대뜸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아, 나는 다른 도움이 좀 필요한데……”
   김준서가 말끝을 흐리며 태블릿PC 화면을 켰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그림이 나타났다. 줄 서 있던 아이들이 그림을 힐끗대며 감탄했다. 김준서는 자신감을 얻고 더 많은 그림을 보여주었다.
   “이걸 나한테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그게…… 학예회 전시에서 네가 그린 만화를 봤어. 거기에 적어둔 이니셜로 검색하니까, 베도에 올린 작품도 있더라. 오늘의 토……”
   “잠깐! 잠깐만.”
   나는 김준서의 말을 싹둑 잘랐다. 신나게 말하던 김준서가 입술을 오므리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그림을 첨삭해주는 척 김준서에게 책상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너 뭐야. 알고 있었어?”
   내가 한껏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김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내 정체를 알아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웹툰이 너무 현실감 돋는다고 작가가 초등학생 아니냐는 댓글을 받은 적은 있어도. 아마 그 댓글을 쓴 독자도 토작이 진짜 초등학생일 줄은 몰랐을 거다.
   “원하는 게 뭐야?”
   내 물음과 동시에 선생님이 그만 마무리하고 그림을 제출하라고 소리쳤다. 줄 서 있던 아이들이 투덜대며 흩어졌다.
   “할 말 없으면 말고.”
   나는 서랍에 넣어둔 도화지를 꺼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나 좀 도와줘. 나도 웹툰을 잘 그리고 싶어.”
   김준서가 내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네가 진짜로 도와줄 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다. 김준서가 눈치 없이 말끝마다 ‘오토’, ‘오토’거리며 아이들의 주목을 끌줄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김준서는 내가 대단한 작가라도 되는 양 우러러보는 듯했다. 내 도움 한 스푼이면 자기 웹툰도 잘 될 거라고 굳게 믿는 모양이고.
   나는 방 한가운데에 상을 펴고 노트북과 드로잉 태블릿을 가져왔다.
   “우와. 이게 베도 작가가 쓰는 장비인 거지?”
   김준서가 감탄하듯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토작이란 건 비밀이야. 알겠지?”
   내가 웹툰 사이트에 접속하며 말했다. 김준서가 제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이트 상단에 카테고리가 ‘웹툰-베스트 도전-도전 만화’ 순으로 걸려있었다. 나는 중간에 있는 ‘베스트 도전’에 들어갔다. 조회 수 기준으로 정렬하니까, 오토가 위에서 세 번째 줄에 떴다. 한 달 전만 해도 첫 페이지에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인기 베스트에 한번 들고 나니까 조회 수가 확 뛰었다.
   “조회 수 대박이다. 베도는 진짜 다르구나.”
   김준서가 말했다. 하지만 가장 상위에 있는 ‘웹툰’에 입성하려면 성적이 더 나와야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도전 만화’로 넘어갔다. 김준서가 3개월 전부터 연재한다던 웹툰은 도전만화 메인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한 10페이지를 넘게 거슬러 올라가서야 3일 전에 올라온 가장 최신작이 나왔다. 조회 수는 8이고,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1화부터 찬찬히 웹툰을 살폈다. 김준서가 미술 시간에 보여준 우주 그림을 배경으로, 외계행성 간의 결투가 펼쳐졌다. 솔직히 별 기대는 없었는데, 세계관이 꽤 흥미로웠다. 3개월 동안 펑크 없이 성실하게 연재한 것도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어때?”
   김준서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고민하는 척 뜸을 들였다. 일단 연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당장 손 봐야 할 문제가 있었다.
   “얘랑 얘가 같은 인물이야?”
   김준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인공의 얼굴이 장면마다 달랐다. 이렇게 얼굴이 달라진다면 독자들은 인물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어려워진다. 나는 주인공의 얼굴 이미지 데이터를 한곳에다 모았다. 그런 뒤에 얼굴형과 피부색, 머리 모양, 그리고 이목구비 하나하나까지 김준서와 상의해서 표준 캐릭터를 만들었다.
   “일단 이 캐릭터만 똑같이 10번 그려봐.”
   여러 번 반복해 연습하면 감이 잡힐 거다.
여기 아무도 없어.
너 비밀 꼭 지켜야 한다.
   “무슨 소리 들리는 거 같은데?”
   김준서가 연습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뭔 소리? 난 안 들리는데. 집중이나 해.”
   나는 헛기침을 큼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창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다.
   “이건 뭐야?”
   김준서가 침대 밑에 숨겨둔 노트를 꺼내며 물었다.
   “야! 남의 걸 왜 봐.”
   나는 김준서에게 달려들었다.
   “혹시 토작의 작가 노트? 뭐 그런 거야?”
   김준서가 내 반응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날쌔게 몸을 피하며 노트를 펼쳤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나 봐선 안 되는 노트였다. 아무나 보라고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건 이야기의 주인인 아이들도 원치 않을 터였다.
   “어? 근데 여기 중고 시장 사기……”
   김준서가 멈춰 서서 노트 한 페이지를 가리켰다. 기회였다. 노트를 확 가로채려는데, 김준서가 방향을 바꿔 창가로 달려갔다. 차라리 잘 됐다. 나는 김준서의 옷을 잡아당겼다. 김준서가 나를 밀어내며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김준서가 휘청하더니, 그만 노트를 놓치고 말았다.
   노트가 페이지를 펄럭이며
   툭.
   1층 화단 수풀 사이로 떨어졌다. 나는 곧장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노트가 마지막으로 떨어진 수풀 사이사이를 샅샅이 뒤졌다.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나무 위와 화단 옆에 나 있는 하수구에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람에 날아갔을까? 아니면 그새 누가 가져갔을까?
   “미안해. 나도 베도에 가고 싶어서…… 그걸 보면 비법이 나와 있는 줄 알았어.”
   김준서가 쉬 마려운 강아지처럼 나를 졸졸 따라오며 말했다. 나는 김준서를 무시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오니까, 김준서의 태블릿PC가 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태블릿PC를 살짝 건드리자, 김준서와 함께 만든 주인공 캐릭터가 화면에 나타났다. 나는 화면을 뒤집어엎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김준서의 마음이 뭔지는 나도 잘 알았다. 인기를 얻고 싶었을 거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사람들이 왜 안 봐주는지 고민도 많았을 거다. 다 안다. 그래도 화가 났다. 그 노트는 그냥 노트가 아닌데.
   
   며칠 뒤, 아파트 중앙 게시판에 노트 사진과 함께 종이가 붙었다.

이 노트의 주인을 찾습니다.
010-000-0000

   휴대폰에 번호를 입력하니까, 짝꿍 이름이 나왔다. 나는 종이 속 번호와 짝꿍의 번호를 번갈아 보았다. 똑같다. 설마 짝꿍이 내 노트를 주운 걸까? 그렇다면 노트도 읽었을까?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심장 박동인지 머릿속 경고등인지 뭔가가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허겁지겁 학교로 뛰어가 교실 문을 벌컥 열었다. 짝꿍이 벌써 와있었다. 나는 짝꿍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짝꿍이 손에 쥐고 있는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 노트의 주인이라고 입을 떼려는 찰나였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고? 그럼 이 노트는 뭔데? 네가 쓴 게 아니라면 왜 내가 너한테만 말한 얘기가 여기 적혀있는 건데?”
   짝꿍이 반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진짜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냐?”
   반장이 억울한 듯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짝꿍이 책상 위로 노트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노트를 가져가 돌려보기 시작했다. 어, 어,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아이들을 말리지도, 그렇다고 노트를 가져오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이거 내 이야기 아니야?”
   “잠깐만. 이 부분. 내가 비밀로……”
   노트를 본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몇몇은 특정 페이지를 찢어서 교실을 뛰쳐나갔다.
   한참 아이들 손을 타고 훌렁훌렁 넘나들던 노트가 너덜너덜해진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주워가도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이었다.
   몸이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 노트를 찾느라 아파트 단지 곳곳 안 찾아본 구석이 없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은 잠까지 설쳤다. 괜히 눈알만 되록되록 굴리는데, 교실 뒷문에 우뚝 서 있던 김준서와 눈이 딱 마주쳤다. 김준서도 내 노트를 알아본 듯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손바닥에는 땀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노트를 그대로 지나쳤다. 모른 척 자리에 가 앉는 순간, 사물함이 쾅 닫혔다. 짝꿍이 교실 뒤편으로 눈을 흘겼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교실을 둘러보았다. 곧 수업이 시작되는데도 빈자리가 듬성듬성 있었다. 교실을 뛰쳐나간 아이들이 아직도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분명 노트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신상을 유추할 만한 정보도 가능하면 빼거나 바꿔 적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금방 알아보았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 적을 땐 몰랐다. 아이들이 말하는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란 말의 무게를 말이다. 왜 진작 몰랐을까. 나도 내가 토작인 걸 그렇게 숨기고 싶어 했으면서. 내 비밀은 중요했는데, 왜 다른 아이들의 비밀은 들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냥 들려오기 때문에? 이유가 있었으니까?
   6교시가 끝나갈 때였다.
   “뭐야? 왜 안 올라왔지?”
   교실이 술렁거렸다. 선생님이 집중하라며 칠판을 똑똑 두드렸다. 아이들이 휴대폰을 끄는 척 새로 고침을 시도했다. 페이지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들이 기다리던 웹툰은 오늘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토작이 다음 화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이 쳤다. 나는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습관처럼 펜슬을 쥐었다. 원래는 그리고 싶은 게 많았다. 앉았다 하면 몇 시간은 기본으로 스토리를 짜고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지금은 하얀 화면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펜슬을 내려놓고 웹툰 사이트에 접속했다. 새로운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푸른계절님 정주행 중인데 왜 아직도 안 올라왔나요ㅠㅠㅠ
   지은이이지은님 토작 한 번도 펑크 낸 적 없었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사랑해님 작가님, 건강 괜찮으세요? 힘들면 쉬엄쉬엄하세요. 기다릴게요!

   내가 웹툰을 완성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노트가 없으니까. 언젠가부터 노트 없이는 웹툰을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노트를 보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엿들어야만 안심이 됐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연재 중단 공지를 내면 된다. 건강상의 이유? 학업 문제? 핑계는 많다. 노트야 내가 쓴 게 아니라고 잡아떼면 될 것이다. 굳이 나서서 나라고 밝힐 필요도 없다. 필명과 익명에 기대 적당히 숨어있으면 된다.
들리냐? 이소민, 내 말 들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누가 날 부르고 있었다.
저기 진짜 미안해. 내가 마음대로 노트를 보지만 않았더라도…… 근데 말이야.
중고 시장 사기당한 얘기, 그거 내 얘기 맞지? 내가 여기서밖에 얘길 안 했거든.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까, 소리가 타고 올라가서 높은 데서도 잘 들린다던데.
설마 진짠가? 그럼 완전 대박인데.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살폈다. 미끄럼틀 위에서 몸을 말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안 그래도 작은 몸집이 더 작아 보였다. 나는 가방을 챙겨들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 사이에 아이가 그냥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가도 계속 있었으면 했다.
   “뭐야? 진짜 들린 거야?”
   김준서가 미끄럼틀을 주르르 내려오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내 김준서에게 건넸다.
   “나 용서해주는 거야?”
   김준서가 엉거주춤 일어나 태블릿PC를 받아들며 물었다.
   “나도 잘한 건 아니잖아. 네 얘기 엿들은 거.”
   “뭐…… 난 상관없는데? 어차피 비밀도 아니었고.”
   “미안해.”
   내내 혀끝에서 맴돌던 말을 내뱉으니까, 속이 좀 시원했다.
   “사과받자고 온 건 아니고…… 나도 널 이해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소재가 넝쿨째 굴러들어오는데 유혹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잖아.”
   김준서의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이렇게 쉽게 이해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됐어. 엿들은 거잖아.”
   “소리가 들려오는데 별수 있어? 내가 너랑 같은 라인에 사는 애한테 물어봤는데 걔도 다 듣고 있었대.”
   “……걘 나처럼 노트에다 적진 않았겠지.”
   “비밀인데, 걔도 엿들은 이야기를 자기가 겪은 것처럼 일기에 쓴 적 있대. 정말 쓸 말이 없었던 날에.”
   김준서가 말했다. 거짓말이다. 진짜 비밀이면 여기서 말할 수 없었을 거니까.
   “오늘 웹툰 안 올라왔더라. 연중할 거야?”
   “잘 모르겠어. 그릴 것도 없고, 그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내가 뭘 그리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그냥 네 이야기를 하는 건 어때?”
   “내 이야기?”
   “응. 네 이야기는 괜찮잖아. 남의 이야기 말고.”
   김준서가 말했다.

   “올라왔다! 왔어!”
   6교시가 끝나기 10분 전. 교실이 술렁거렸다. 나는 교실을 둘러보는 대신 눈을 감았다. 세상이 깜깜해지니까, 신경이 온통 귀에만 쏠렸다. 평소 같으면 이쯤에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들려와야 했다. 선생님의 체념한 듯한 핀잔도 뒤따라오고 말이다. 교실은 꼭 아무 반응도 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처럼 조용했다.
   웹툰 〈오늘의 토끼〉는 방금 마지막으로 업로드됐다. 토작, 아니 내가 연재를 그만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정하기 전에는 아깝고 아쉬운 것만 잔뜩 떠올랐는데,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까 속이 다 시원했다. 이제 매일매일 시간에 쫓기며 마감하지 않아도 된다. 소재를 찾는답시고 비밀을 엿듣는 일도 더 없을 거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시 가득 채워지는 날이 올까? 아마 꼭 올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리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날을 위해서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입술이 덜덜 떨렸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또 그럴 수는 없었다. 모두 내가 시작한 일이니까.
   나는 마지막 화를 마무리하는 대사를 마법의 주문처럼 외우며 감은 눈을 떴다.

   저는 율곡초등학교 6학년 3반 이소민, 토작입니다.

조은비

32호에 수록된 동화 「푸른 계절」과 함께 보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2022/05/31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