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며칠째 집에 못 오고 병원에서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내 방문이 쾅하고 열렸다. 방문 너머에 언니가 서 있었다.
   “야.”
   언니는 평소처럼 내 이름 대신 이렇게 불렀다. 내 방에 들어와서 ‘보람아.’ 하고 다정하게 부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왜?”
   나 역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언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물었다.
   “우리 병원 갈래?”
   갑작스러운 언니의 말에 멍해졌다. 언니는 지금 엄마한테 가자는 말을 하는 거였다. 내가 그렇게 가자고 졸라도 귀찮다고 싫다던 언니였다. 당황한 탓에 대답을 못했는데 언니는 “싫음 관두고.”라고 말하며 돌아섰다.
   “아, 아냐. 알았어! 가자!”
   언니의 마음이 바뀔까봐 냉큼 대답했다. 병원은 우리 집에서 꽤 멀고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나 같은 길치가 혼자 찾아가기란 꿈도 못 꿀 일이다. 전에는 아빠가 주말에 종종 데리고 갔는데 요즘엔 주말에도 일이 많은지 한동안 그러질 못했다.
   언니는 빨리 준비하라고 다그치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나는 신이 나서 가방에 이것저것 담았다. 다이어리랑 필통, 동화책이랑 내가 아끼는 스티커까지. 분명히 지하철에서 언니와 나는 서로 말없이 앉아 있을 테니 심심하지 않도록 준비를 제대로 해야 했다. 문득 어제 학원 앞에서 샀던 빵을 아직 못 먹었다는 생각에 학원 가방에서 얼른 꺼내 챙겼다. 내가 좋아하는 딸기 맛 생크림이 듬뿍 들어 있는 거였다. 두둑한 가방이 만족스러웠다. 가방을 다 싸고 나오니 언니는 가방 하나 없이 가벼운 차림이었다.
   ‘이따 지하철에서 심심하다며 동화책 빌려 달라고 해도 안 빌려줘야지.’
   나는 얄미운 언니에게 작은 복수를 기대하며 집을 나섰다. 갈 길이 멀었다.

   석 달도 전의 일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는 점점 더 거동이 불편해져서 어쩔 수 없이 외동딸인 엄마가 돌보기로 했다. 아빠는 우리가 어리니까 간병인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어릴 때 할머니 속을 많이 썩였거든. 그 빚 이제 좀 갚으려는 거야.”
   엄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작은 캐리어에 짐을 쌌다. 아픈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는 건 싫다고 했다. 할머니는 말수가 없고 낯을 많이 가리시니까 말씀은 안 하셔도 불편해하실 거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지내는 기간이 길어졌다. 엄마가 열심히 간병을 하는데도 할머니의 상태는 더 안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덩달아 엄마도 많이 핼쑥해졌다.
   가장 힘든 건 나였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언니는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지 시비 걸 꼬투리만 찾는 것 같았다. 아빠는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 상관없겠지만 마주칠 시간이 많은 나는 끔찍했다.
   “야, 오천 원만 줘 봐.”
   “왜?”
   “언니가 달라는데 뭔 말이 많아. 그냥 줘.”
   “없어.”
   “그저께 아빠한테 용돈 받는 거 봤다.”
   “그건 내가 써야지.”
   이쯤 되면 언니의 표정은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무섭다. 그렇게 해서 언니한테 뺏긴 돈도 꽤 된다. 그렇다고 언니가 내 돈으로 뭐 대단한 걸 사는 것 같지도 않다.
   집 밖에서 모르는 언니들한테 돈을 뜯기는 애는 봤어도 집에서 이런 일을 겪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다.
   물론 경찰 대신 아빠한테 신고해 봤다. 그러자 언니는 아빠와도 한바탕하고 방문을 쾅 닫아 버리고는 집에 있는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빠도 속상해져서 집 분위기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날 이후부터 더이상 아빠한테 말하지 않게 되었다.
   “언니가 사춘기라서 그래.”
   “네가 이해해. 그럼 나중에 네 사춘기 때도 언니가 이해해 줄 거야.”
   
   언니가 나한테 째려보고 화내고 가끔 욕도 하면서 불량배처럼 굴 때면 엄마와 아빠는 이렇게 나를 달랬다. 내가 보기엔 엄마 아빠도 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도대체 사춘기가 뭐길래 사람이 저렇게 변할까 싶다.
   예전에 언니는 말도 예쁘게 하고 바쁜 엄마 아빠 대신에 내 숙제도 잘 도와줬다. 친구들은 착한 언니를 둬서 부럽다는 말도 했다. 나 역시 말 안 듣는 동생보다는 든든한 언니를 두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아니 같았다. 이젠 생각이 바뀌었으니까.
   ‘나도 사춘기 되어 봐. 진짜 막 나갈 거야.’
   나는 집에 오자마자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쾅 닫아 버린 언니의 방문을 보며 이를 갈기도 했다.

   그랬던 언니와 간만에 함께 있으려니 역시나 불편했다. 언니는 어른과 나 같은 아이의 중간에 껴 있는 사람 같았다. 그 어디도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야. 앞 좀 잘 보고 걸어. 승강장 사이에 빠지면 죽어.”
   언니가 또 구박했다. 이젠 거기에 빠질 정도로 작지도 않은데. 그래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언니가 날 버리고 혼자 가버리면 지하철 미아가 될 테니까.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남은 자리도 없었다. 우리는 아무데나 서서 서로 딴 곳을 보고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그다음 역에서 두 자리가 딱 비었다. 그것도 한 아저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가 막 따로 앉으려는 참이었다.
   “학생들, 자매지? 같이 앉아.”
   아저씨가 엉덩이를 들고 미끄러지듯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저씨는 “이래야 센스 있는 어른이지!”라며 흡족한 듯 웃었다. 우리는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따로 앉는 게 더 좋은데……’라는 눈길을 말이다. 언니 역시 아쉬운 눈치였지만 아저씨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감사합니다. 야, 너도 인사해.”
   집에서 보던 언니와 달랐다. 나는 언니가 ‘누가 양보해 달랬어요?’라며 쌍심지를 켤 줄 알았다. 얼떨결에 나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언니랑 몸이 바짝 붙어 있으니 더웠다. 원래는 다이어리를 꾸미고 싶었는데 저번에 언니가 내 다이어리를 보고는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다이어리 또 샀냐?’
   ‘글씨 진짜 못 쓴다. 발로 써도 그것보단 낫겠다.’
   ‘맞춤법도 다 틀렸네.’
   이번에도 시비를 걸까봐 일부러 동화책을 꺼냈다. 친구가 재미있다고 추천한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됐다. 이제 막 재밌어지려는 참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르르르륵.
   휴대전화 진동이었다. 언니의 것이 분명했다. 워낙 언니 몸이 바짝 붙어서 내 몸에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하지만 언니는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았다. 진동 탓에 동화책에 몰입했던 게 확 깨져버리는 것 같았다.
   “언니 폰에서 뭐 오는 것 같은데?”
   “신경 꺼.”
   “자꾸 진동이 느껴져서 내 엉덩이까지 떨린단 말야. 쉬 마려우려고 해.”
   “뻥치네.”
   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순간 “큭.” 하고 웃었다. 그러다 다시 정색을 하고는 괜히 발을 까딱거렸다.
   “근데 언니 왜 요즘 그 운동화 안 신어?”
   나는 언니의 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엔 아끼던 하얀 운동화 대신 그전에 신었던 회색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
   “신경 꺼라.”
   “알았어.”
   나는 다시 동화책을 펼쳤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언니랑 얘기하는 것보다는 동화책 읽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진동도 어느새 멈춘 것 같았다.
   그런데 진동이 또 울렸다. 사람들도 느꼈는지 누구 휴대전화인지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나는 진동 소리가 벨 소리만큼이나 크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내리자. 갈아타야 해.”
   언니는 이렇게 말하고는 문 쪽으로 후다닥 나갔다. 언니를 쫓아나가다가 승강장 사이에 동화책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발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던 언니 말이 저주였을지도 모르겠다.
   “아 좀 미리 말해 주지! 언니 때문에 책 떨어졌잖아.”
   내 말에 언니는 대답을 하지 않고 손부채질을 하면서 딴말을 했다.
   “아 에어컨 왜 이렇게 약하게 트는 거야. 더워 죽는 줄 알았네.”
   “난 별로 안 덥던데.”
   “시끄러워. 동전 좀 줘 봐. 음료수나 사 먹게.”
   언니는 자판기 앞에 서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목이 말라서 흔쾌히 돈을 건네주었다. 언니는 자기 걸 먼저 꺼내고 내 것도 뽑아주었다. 언니가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긴 언니가 저렇게 괴팍해진 게 오래된 일은 아니니까. 몇 개월 사이에 우리 사이가 이렇게 변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우리는 음료수를 손에 들고 조금 떨어져서 갈아탈 곳까지 걸어갔다.
   “우리가 탈 지하철은 아직 멀리 있네.”
   전광판을 보며 언니가 말했다.
   “심심한데 뭐 하면서 기다려? 이게 다 언니 때문이야.”
   “지가 어리바리하게 잃어버리고 왜 내 탓이야? 그러니까 내가 승강장 사이 조심하랬잖아.”
   ‘언니가 나 빠지는 거 조심하랬지, 책 조심하랬냐?’ 따지고 싶었지만 언니 말이 완전 틀린 말은 아니라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기분은 나빴다. 언니가 미리 어느 역에서 내릴 건지 말해 줬다면 나도 조용히 책을 덮고 내릴 준비를 했을 거다.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은 언니 잘못도 있다.
   나는 작전을 바꿨다. 다이어리를 꺼냈다. 이제 언니랑은 말 한마디도 안 하고 병원에 가는 길을 세세하게 적기로 했다. 치사해서 다음엔 기필코 혼자 갈 거다. 나는 다이어리에다 여기까지 오던 길을 적기 시작했다.
   ‘집에서 쭉 걷다가 행복슈퍼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돌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그다음에는 벌써 까먹었다. 지하철 타는 곳만 들어오면 머릿속이 새까맣게 된다. 아는 것부터 적어야지.
   ‘아무튼 우리 집 앞의 역이 초록색 줄이고 여기는……’
   아뿔싸! 갈아타는 역도 초록색이다. 새싹 같은 예쁜 초록색이랑 어두운 초록색으로 적고 있는데 언니가 또 끼어들었다.
   “야. 2호선이랑 7호선이라고 적으면 되잖아. 바보냐? 무슨 초록색 타령이야.”
   “왜 남의 다이어리를 훔쳐봐!”
   “글씨는 왜 아직도 저학년처럼 크게 쓰냐? 4학년이면 이제 좀 작게 써야지.”
   언니의 시비가 또 시작되었다.
   내 입이 툭 나오자 언니는 잠시 조용하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내가 노선도 보면서 설명해 줄게.”
   휴대전화의 화면이 켜지자 반대로 언니 표정은 어두워졌다. 언니는 다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네 휴대전화 줘 봐.”
   나는 잠자코 내 걸 건네주었다. 언니는 지하철 노선도를 검색하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여기 2호선 역에서 타고 7호선에서 갈아탄 다음 또 6호선으로 갈아타면 되는 거야. 6호선은 갈색이야.”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적기 싫었지만 언니가 불러준 대로 다이어리에 메모했다. 텔레비전에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지하철 노선도를 다 본 것 같은데 언니는 여전히 내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았다. 무언가 떠올린 듯 언니가 별안간 채팅 어플에 접속했다. 내 친구 목록이 주르륵 떴다.
   “아, 뭐야. 그걸 왜 봐.”
   내가 휙 낚아채려 했지만 팔이 짧아 실패했다. 언니는 몇 개 안 되는 내 단톡방들을 휘리릭 훑어보았다.
   “친구 되게 없네.”
   언니는 이 말을 툭 던지고는 내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언니는 무언가 안심이 된다는 표정이었다. 언니가 왜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지 모르겠다. 집에서처럼 입 꾹 다문 악마처럼 굴면 되지 오늘따라 왜 자꾸 말을 걸고 없던 관심을 보이는 걸까?
   “짜증 나.”
   나는 언니를 쏘아보았다. 혹시 언니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 이야기라도 있는지 채팅 내용을 확인했다. 다행히 어제 짝을 바꾼 이야기나 학원 이야기뿐이었다.
   그때 안내방송이 들렸다. 우리가 탈 지하철이 고장이 나서 3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거였다. 망했다.
   꼬르륵.
   언니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음료수를 먹은 탓에 배가 일찍 꺼진 모양이었다. 나는 언니를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가방에서 빵을 꺼냈다. 언니한테 한 입도 안 주고 혼자 냠냠 맛있게 먹어야지.
   그때 언니가 손을 확 뻗어서 내 빵을 빼앗아가 버렸다. 그러더니 비닐을 벗기고는 빵을 한입 크게 베어먹었다. 손으로 브이를 그리면서.
   “뭐야!”
   “너도 혼자 먹으려고 했잖아. 맞지?”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래. 먹고 살이나 더 쪄라.’라고 말했다. 물론 머릿속으로만.
   “아까 동화책 무슨 내용이었냐?”
   언니는 벌써 한 입만 남기고 다 먹어치웠다. 빈 봉지를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휙 던졌다. 입가에 분홍색 생크림이 아주 얄밉게 묻었다.
   “몰라.”
   “여태껏 읽고서 몰라?”
   “착했던 언니가 사춘기를 겪고 악마가 된 이야기야.”
   그냥 뱉은 얘기였는데 언니가 흠칫 숨을 잠시 멈추는 게 느껴졌다.
   “그딴 재미없는 책은 읽지 마.”
   언니는 이렇게 말하고는 남은 빵까지 입에 욱여넣었다.
   “그럼 뭐 읽어?”
   언니는 “음.” 하면서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요새 언니가 책 읽는 걸 통 못 봤다. 예전엔 나한테 그림책도 읽어주던 언니였는데.
   그때 또 진동이 울렸다.
   “제발 좀 휴대폰 좀 봐. 아니면 끄든지.”
   언니는 한숨을 푹 쉬더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나한테는 안 보이게 핸드폰을 비스듬히 들었다. 남자친구라도 생긴 모양이다. 난 별로 엿보고 싶지 않은데 혼자 난리다. 나는 ‘착했던 언니가 사춘기를 겪고 악마가 된 이야기’가 정말로 있다면 결말이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분명 해피 엔딩은 아닐 것이다.
   언니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나는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느라 조용히 시간이 흘렀다.
   꾸르륵.
   어? 이번에도 내 배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언니 배에서 나는 소리긴 한데, 아까와는 달랐다. 언니 표정도 좋지 않았다.
   “아 배가 왜 아프지? 너 뭐야. 저거 상한 거 아냐?”
   나는 언니가 봉지를 버린 쓰레기통 앞에 가보았다. 봉지를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유통기한은 아직 남았지만 더운 여름 가방에 둔 탓에 생크림이 상한 모양이었다.
   언니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나도 언니를 놓칠세라 따라 뛰었다. 언니는 화장실 빈칸에 날아가는 듯이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요란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고소한 마음도 들었지만 언니가 괴로워하니 약간은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거기 있냐?”
   언니가 안에서 물어왔다.
   “응. 속 많이 안 좋아?”
   “다 들었으면서 뭘.”
   “흠. 아직 멀었어?”
   “응. 기다려. 괜히 나갔다가 길 잃어버리지 말고.”
   언니가 혼자 있기 무서워 그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서 있으려니 심심하고 다리도 아팠다. 나는 옆 칸에 가서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았다. 누가 들어오면 일어나면 되니까.
   “언니, 나 옆에 있어.”
   “응. 그래. 거기 있어. 근데 거기 휴지 있어?”
   힘이 빠진 탓인지 아니면 부탁하느라 그런 건지 언니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나는 옆 벽과 바닥 사이의 좁은 틈으로 언니에게 휴지를 건넸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언니의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진동도 끊이질 않았다. 어느 틈에 드라마 배경음악처럼 익숙해져 버렸다.
   “언니 나 심심해.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내가 벽을 치며 말했다. 분명 툭툭 쳤는데 언니는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앗!”
   언니의 짧은 비명이 들리고는 휴대전화가 툭 내 쪽으로 떨어졌다. 언니가 서둘러 손을 뻗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잡히지 않았다. 나는 얼른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단톡방이 보였다.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한눈에 들어올 만큼 화면엔 욕설이 가득했다. 모두가 언니에게 욕을 하고 있었다. 언니만 조용한 단톡방이었다.
   “야, 내 폰 거기로 갔지?”
   “응.”
   나는 모르는 척하며 건넸다. 건네받는 언니의 손이 약간 떨렸다.
   “너 혹시 봤어?”
   “아냐. 난 하나도 안 봤어. 진짜야.”
   언니는 한숨을 쉬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내가 조금 더 침착하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내가 본 걸 들킨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언니의 하얀 운동화가 다시금 떠올랐다.
   “언니 혹시 그 운동화……”
   “보람아.”
   갑자기 언니가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올해 들어 처음이었다.
   “내가 읽은 재밌는 동화책이 있는데 말이야. 들려줄까?”
   “응.”
   “한 아이가 있었어.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가방도 멨어. 학교에 가야 하니까. 근데 아무리 신발장을 뒤져도 평소에 아끼던 운동화가 없는 거야. 이러다가 학교에 지각하겠네 싶을 때 진동이 드르르륵 하고 울렸지.”
   그 순간에도 진동이 울려서 나와 언니는 둘 다 숨을 멈췄다. 벽이 가로막고 있어도 느껴졌다. 언니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문자가 온 거야. ‘안녕, 나는 네 흰 운동화야.’라고 적혀 있었어. 아이는 ‘너 어디야? 내가 얼마나 찾고 있었는데.’ 하고 답장을 보냈지. 그러자 그 운동화는 ‘너보다 멋진 주인이 생겼어. 새 주인은 인기도 많고 힘도 세.’라고 대답했어. ‘이젠 날 찾지 말고 다른 걸 신어. 회색도 아직 쓸만하잖아?’라고도 덧붙였어.”
   “에이, 그런 이야기가 어디 있어?”
   나는 툴툴거렸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야기였다.
   “아냐. 진짜 있어. 암튼 그래서 아이는 회색 운동화를 신었어. 물론 하얀 운동화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신을 만했어. 운동화는 운동화일 뿐이니까.”
   “회색 운동화를 신고 하얀 운동화를 찾으러 가면 되잖아. 나랑.”
   내 말에 언니는 다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야, 이거 동화인데 네가 왜 나와.”
   “아니, 동생이랑.”
   “얘는 동생 없거든? 외동이야.”
   언니는 잠시 말이 없더니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근데 그 스토리도 괜찮겠다.”
   “응. 그러니까 더 들려줘.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날 화장실에서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처음엔 별로였지만 갈수록 재미있었다. 특히 아이가 하얀 운동화를 되찾고 나, 아니 동생이랑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는 장면이 최고였다. 언니한테 제목을 물었더니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하더니 “지하철에서.”라고 말끝을 흐리듯 대답했다. 나는 퍽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우리는 안에서 한참을 더 있었다.

김우주

언니는 정말 사춘기였던 걸까?

2021/03/30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