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학 첫날부터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교실에는 멀쩡한 책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책상이 흔들거린다며 손을 번쩍 들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난처한 표정을 지은 까닭은 그래서였다.
   “서현아, 이번 주 안에는 꼭 새거로 바꿔줄게.”
   거짓말,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전학 온 지 일주일째, 내 책상은 오늘도 어김없이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균형이 안 맞는 책상 위에 있던 연필이 바닥에 떨어져 또로록 굴러갔다. 연필은 구르고 굴러 더 멀리까지 갔다. 국어 시간, 선생님이 읽어주는 시 한 구절을 집중해서 듣고 있을 때였다. 나는 배꼽 밑이 당길 정도로 몸을 쭉 늘려 연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거 하나 줍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희고 긴 손이 나보다 먼저 잽싸게 연필을 낚아챘다. 나만큼 몸을 길게 늘인 어떤 애의 손이었다.
   “여기.”
   “어, 어어.”
   나는 딱히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그애가 건넨 연필을 받아들었다. 연필은 나에게도, 그애에게도 줍기에는 먼 데 가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 오른쪽 뒤편 대각선에 앉아 있는 그애를 확인했다. 그애, 그러니까 고주호가 궁금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이후에도 책상 위 내 물건들은 시도 때도 없이 굴러갔다. 형광펜도 굴러가고, 샤프도 굴러가고, 색연필도 굴러갔다. 구르고 굴러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고주호가 제일 먼저 주웠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그랬다. 내 모든 물건을 제일 먼저 줍는 사람은 무조건 고주호였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의 고주호라면 제일 먼저 연필을 발견할 리도, 그걸 잽싸게 주워들 리도 없었다. 고주호는 알아주는 느림보였기 때문이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벌써 알아차릴 만큼 그랬다. 고주호는 누가 뭘 물어도 금방 대답해주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주호야 조금만 더 시간 줄까?”
   하고 물었다. 그마저도 고주호는 네, 아니오 빨리 대답 않고 한참을 망설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그걸 기다려주는 선생님도, 얼결에 같이 기다리고 있는 반 애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작은아빠에게 고주호 얘기를 했다. 오늘은 꼭 예쁜 달걀프라이를 만들어주겠다던 작은아빠는 터진 달걀노른자를 대충 수습하는 중이었다. 작은아빠는 형이 하던 것처럼 잘 안되네, 하고 중얼거렸다. 배고프다는 내 성화에 그제야 옆구리가 다 터진 프라이를 프라이팬째 들고 오며 말했다.
   “네가 좋은가 보네.”
   나는 달걀노른자 조금과 흰자 조금을 덜어 밥에 얹었다.
   “언제 봤다고 날 좋아해?”
   작은아빠는 명란젓 조금을 내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온종일 쳐다보다 좋아졌나 보지.”
   나는 구시렁대며 크게 한술 입에 넣었다.
   “어이없어.”
   “그래서 계속 보고 있나 보지. 그러니까 그렇게 잽싸게 뭘 주워줄 수도 있지.”
   나는 입안에 든 것을 천천히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맞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마침 전화가 왔다. 작은엄마였다. 어디로 이동하며 전화를 건 것인지 주변이 시끄러웠다. 작은엄마가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현아, 작은아빠가 반찬 뭐 해줬어?
   -달걀프라이랑 명란젓.
   작은엄마의 목소리는 금세 차분해졌다. 마침 주변의 소음도 잠잠해졌다.
   -음, 잠깐 전화 좀 바꿔볼까?
   얼결에 전화를 건네받은 작은아빠는 눈을 꼭 감고 응, 알았어, 다시는 안 그럴게, 응. 이 말만 돌아가며 했다. 나는 안 듣고도 작은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누가 성장기 초등생에게 저녁밥으로 달걀프라이랑 명란젓만 주냐고 뭐라 했을 거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이었다.
   작은아빠는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형한테 미안하지도 않냬.”
   나는 밥을 적당히 씹어 삼킨 다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하늘나라 간 아빠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러게. 하나뿐인 조카인데. 형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나는 작은아빠가 울상을 짓는 걸 보고 웃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일 학교에 가면 이제 주워주지 말라고 말해야겠다고 말이다. 내가 알아서 챙길 거라고, 그러니까 그러지 말라고 말이다. 나는 잠이 들 때까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
   이번에는 지우개였다. 울퉁불퉁한 게 어떻게 그 멀리까지 굴러갔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그러니까 고주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고주호의 목소리가 엄청 중요해지고 말았다. 보통 변성기를 지나가는 애들 목소리는 꼭 꼬집힘 당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면 깨물림 당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근데 고주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잔잔하고 고요한데, 넓게 퍼졌다. 나는 이번에도 고주호가 주워준 지우개를 건네받으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다음은 수학 시간이었다. 틀린 답을 고쳐 쓰느라 고주호가 주워준 지우개로 필기를 박박 지우는 바람에 책상이 더 흔들렸다. 어김없이 흔들리는 책상 위에서 샤프 하나가 데구루루, 구르기 시작했다. 귓가에 여기, 하고 넓게 퍼지는 고주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 번만 더 들어보면 내 이상한 마음이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이번에는 고주호가 아니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짝은 하마터면 떨어질 뻔한 샤프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며 씩 웃었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고주호는 심각한 얼굴로 문제를 보고 있었다. 문제를 보는 건지 뭘 보는 건지, 어차피 다 풀지도 못할 거면서. 선생님이 물어보아도 하루 정도는 더 시간 가져야 한다 할 거면서. 나는 괜히 샤프심이 똑똑, 부러지도록 샤프 머리를 여러 번 눌렀다. 그때부터 짝은 책상 위 지킴이가 되겠다고 했다. 쓸데없이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난 웬만하면 잘 안 떨어트려.”
   “안 그래도 되는데.”
   “괜찮아. 안 고마워해도 돼.”
   별로 안 고마운데, 나는 입 모양으로만 말하고 씩 웃었다. 짝은 내가 고맙다 하는 줄 알고 따라서 웃었다. 덕분에 이제 마음껏 뒤돌아볼 수도 없게 됐다. 고주호 옆자리 애랑 눈도 여러 번 마주쳤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수업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여기.”
   잔잔하고 고요한데, 넓게 퍼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잽싸게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주호가 초록색 연필을 들고 있었다. 그걸 고주호 앞자리에 앉은 애가 건네받으며 고맙다 했다.
   그때 깨달았다. 고주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뭘 좀 잘 줍는 애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고주호의 목소리에 냅다 필통을 던졌다. 내 필통은 철제로 된 거라 맞으면 꽤 아플 거였다.
   이후 나는 수학 시간이 끝날 때까지 필통을 통째로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아무것도 떨어트리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누구도 굴러가는 내 물건을 줍지 못하도록 말이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급식 시간이었다. 후식으로 요구르트가 나왔다. 나는 빨대도 안 쓰고 요구르트를 단숨에 들이켰다. 왠지 모르게 속에서 열이 나서 그랬는데, 역시 하나로는 부족했다. 배급하고 남은 요구르트가 있는지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책상이 덜컹거리며 빈 요구르트병이 픽, 하고 쓰러졌다. 어어, 하는 사이 요구르트병이 또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어김없이 고주호가 눈에 들어왔다. 굴러가는 요구르트병 바로 옆에 고주호가 있었다. 고주호는 입안으로 느릿느릿 생선튀김을 집어넣고 있었다. 생선튀김을 먹을 때에는 가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튀김에만 집중해야 한다. 고주호도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반에서 제일 느린 고주호는 떨어진 요구르트병 쪽으로 빠르게 몸을 숙였다. 나는 얼른 소리쳤다.
   “안 돼!”
   나는 냅다 요구르트병을 발로 걷어찼다. 힘 조절을 잘못하는 바람에 오른쪽 실내화까지 휙 날아가고 말았다. 실내화도 요구르트병도 온데간데없고, 그곳에는 놀란 표정의 고주호만 있었다. 나는 헉헉거리며 말했다.
   “야, 안 그래도 돼.”
   고주호는 그동안 본 중 제일 크게 눈을 뜨고 되물었다.
   “어?”
   “안 주워줘도 된다고.”
   고주호는 잠깐 멈칫하더니 기름에 반질거리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제야 말귀가 트였나 보다. 뭐 대단한 말이 나오려나,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
   그러면서 고주호가 내게 뭔가를 건넸다. 많이 익숙한 그건 내 필통이었다. 내 물건에 손도 대지 못하도록 요구르트병까지 발로 찼는데, 그사이 또 떨어진 거다. 그것도 수업 내내 손에 꼭 쥐고 있었던 그 필통이었다. 나는 고주호가 내민 필통을 낚아채며 말했다.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날아간 실내화는 칠판 앞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마저 고주호가 주워다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양말 바람으로 잽싸게 챙겨 왔다. 나는 실내화를 고쳐 신으며 중얼거렸다.
   “이제는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라고. 진짜로.”
   고주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고주호가 남은 생선튀김을 남김없이 먹었는지 아닌지는 보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업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짝이 뭘 건넸다. 신문지를 여러 번 접어 두껍게 만든 조각이었다. 짝은 그걸 가장 짧은 책상다리 밑에 껴두면 덜 흔들릴 거라고 했다. 나는 짝이 준 걸 손에 올려놓고 가만히 서 있었다. 보다 못한 짝은 그걸 다시 뺏어서는 책상다리 밑에 직접 껴 넣어주었다. 책상 옆에 꼿꼿하게 서서 상체만 숙인 채로 말이다. 무거운 가방이 아래로 쏠려 자기 뒤통수를 계속 치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이렇게 하면 돼.”
   피가 쏠려 얼굴이 새빨개진 짝이 웃으며 말했다. 그걸 보고도 고맙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입 모양으로 별로 안 고마운데, 라고 말했다. 짝은 또 내가 고맙다고 한 줄 알고 웃으면서 또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는 대신 내일 보자고 말했다.

   그날 저녁, 나는 또 작은아빠와 밥 먹으면서 고주호 얘기를 했다. 안 그러려고 했는데 저절로 말이 나왔다. 저녁 메뉴가 청양고추 참치 찌개였기 때문이다. 초록색 연필. 청양고추. 고주호가 건네주던 초록색 연필을 청양고추처럼 송송 썰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찌개에 있던 청양고추만 건져서 숟가락으로 난도질을 하는 걸 보던 작은아빠가 물었다.
   “요즘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니?”
   삼촌은 내가 공부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그런 걸 물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 작은아빠는 그것참 다행이라 했다.
   매운 걸 좋아한다던 작은아빠는 나보다 매운 걸 못 먹었다. 애들은 입에도 못 댈 걸 만들겠다더니 작은아빠만 입을 못 대고 있었다. 애랑 살면서 왜 애가 입도 못 댈 걸 만들고 싶어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작은엄마에게 들키면 또 엄청나게 혼이 날 걸 뻔히 알면서 말이다.
   나는 작은아빠가 샘이 날 정도로 맛있게 찌개 국물을 퍽퍽 떠 마셨다. 고주호 얘기를 듣던 작은아빠는 매운 걸 달래가며 간신히 말했다.
   “습, 스읍,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뭐가?”
   “그냥, 스읍, 마냥 착해서 그런 건 아닐 거 아니야.”
   “아냐. 걔는 원래 그런 애야.”
   작은아빠는 끝까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그게 매워서인지, 고주호 얘기가 이해가 안 돼서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무튼 찌개도 못 만들고, 고주호 마음도 못 알아맞히고. 작은아빠는 정말 쓸모없었다. 작은엄마랑 나를 아침에 깨워주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모두가 내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화가 났다. 나는 작은아빠가 그마저도 먹지 못하도록 찌개를 혼자 다 먹은 다음 먼저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거실에 있던 작은아빠가 속이 쓰리네, 배가 고프네 구시렁대는 소리를 끝까지 못 들은 척했다. 늦은 시간에 들어온 작은엄마가 설거지통에 담긴 찌개 냄비를 보고 작은아빠를 혼내는 소리도 들었지만, 그것도 끝까지 못 들은 척했다.
   다음날,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선생님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교실에 들어왔다.
   “드디어 서현이 줄 책걸상을 구했어.”
   선생님은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 애들 다 보는 데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흔들리는 책상을 쓰지 않아도 됐다. 자꾸만 생색내는 짝이랑 말 섞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주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참 다행이었다.
   선생님은 어디서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나더러 다목적실에 다녀오라 했다. 거기에 새 책상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더니 내 뒤에 있는 누구 한 명을 콕 집어 따라갔다 오라 했다.
   “가는 길도 알려주고 좀 도와주라. 네가 그래도 서현이를 좀 잘 챙기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애들이 우우우, 소리를 냈고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선생님이 콕 집은 애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선생님까지 알 정도면 말 다 했다 생각했다. 오해라고, 쟤는 그냥 뭘 좀 잘 줍는 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참았다.
   나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씩씩하게 앞만 보고 걸었다. 내가 혼자서만 너무 빨리 걸었나 보다.
   “저기.”
   그애가 말했다. 여전히 잔잔하고 고요한데, 넓게 퍼졌다. 이 순간에도 좋은 목소리로 말하는 게 미웠다. 나는 휙 돌아 그애를 노려보았다. 고주호는 반대쪽을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다.
   “저쪽인데.”
   고주호가 가리킨 쪽 복도 끝에 ‘다목적실’이라고 적힌 푯말이 있었다. 이 와중에 고주호 말이 맞는 것도 미웠다.
   “뭐야. 맨날 바닥만 보고 있는 줄 알았더니.”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확 틀어막았다.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나는 곁눈질로 고주호의 표정을 보았다. 뭔 생각을 하는 건지, 뭘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한 건지.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고주호는 다행히 내가 한 말을 잘 못 들은 것 같았다. 나는 할 수 없이 고주호 가는 대로 고분고분 뒤따라 걸었다.
   다목적실에 들어가자 책걸상이 보였다. 책상 위 대충 찢은 공책 조각에 ‘전학생 가져가세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새 책걸상이라더니, 그냥 주인 없는 책걸상이었다. 글씨체가 삐뚤빼뚤한 걸 보니 청소 담당인 애가 써둔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나는 냅다 책상부터 들었다. 고주호는 나더러 잠깐만 내려놓으라더니 책상 위에 붙은 공책 조각을 두 번 접어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더니 책걸상을 들기 좋게 정리한 다음 혼자서 가뿐히 들었다. 나는 왈칵 화가 났다.
   “그거 내껀데 왜 네가 다 들어?”
   고주호는 입을 오물거렸다. 나는 선생님처럼 시간을 좀더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콧구멍에서 바람이 쉭쉭, 뿜어져나올 즈음 고주호가 말을 이었다.
   “도와주고 싶어서.”
   나는 순간 이 사람 저 사람 다 도와주는 고주호를 상상했다. 나도 도와주고, 내 옆자리 애도 도와주고, 고주호 앞자리 애도 도와주는 모습 말이다. 도와줄 수 있는 모두를 다 도와주고 있는 고주호를 상상하니 도무지 말을 안 할 수 없었다.
   “넌 뭘 그렇게 다 도와줘?”
   고주호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책걸상을 고쳐 들며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애도 막 도와주고 그러더만. 막, 이거저거 다 주워주고.”
   나는 말실수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두 손을 쥐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실수가 아니다. 고주호 때문에 맨날 고주호 생각만 했다. 참다 참다 하고 싶은 말을 한 것뿐이다. 부끄러워하면 그때부터 실수가 되니까 꾹 참았다. 가만히 책걸상을 들고 한참 서 있던 고주호는 뭐가 생각난 듯 아아, 하며 말했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그럼 그렇지, 나는 다목적실 문을 열고 먼저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느 틈에 고주호가 바로 옆까지 따라와 있었다. 그러면서 입을 오물거리다 겨우 한다는 말이,
   “뭐……”
   나는 별로 관심 없는 척했지만 작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는 건지, 들어가려는 건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너 보고 있다가 그런 거지.”
   알아주는 느림보, 고주호가 헛기침을 하고는 먼저 걸어갔다. 나보다 앞장서서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고주호의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고주호부터 따라잡아야 했다. 우리 반에서 제일 느린 고주호를, 내 책걸상을 혼자 다 들고 가는 고주호 뒤를 바짝 쫓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정말, 어이없어.”
   나는 데굴데굴, 구르듯 고주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당 작품은 구두룬 맵스의 「루카-루카」의 일부 이미지를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강인송

무궁무진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궁금한 매일을 사는 어린이들을 몽땅 데려다가 주인공 시켜주고 싶습니다.

2022/09/27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