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낚시를 가자고 조른 건 진희였다. 숙모가 어린이 입문자용 낚싯대를 사줬는데 시험해볼 기회가 없다며 우는소리를 했다.
   ‘버스 시간 애매해서 우리집에 오기 싫다더니. 해나네 생기니까 잘만 오네.’
   어쩐지 부루퉁한 마음이 들어 단맛이 다 빠진 풍선껌을 딱딱 소리 나게 씹었다. 수덕골까진 버스가 세 번밖에 안 다녀 시간 때를 잘 맞추지 않으면 읍내로 돌아가기가 어려웠다. 버스가 끊기면 어차피 자기 할머니가 데리러 올 텐데 매번 핑계를 대며 놀러오지 않던 진희였다. 그런데 해나가 이 동네로 이사 온 뒤로는 수시로 그 집에서 놀고 갔다. 물론 매번 나를 같이 불러 딱히 서운하진 않았지만 그 속내가 빤히 보여 어이없었다.
   몇 달간 공들여 수리한 해나네 집은 환하고 깨끗했다. 해나 방이 따로 있고 부엌도 거실도 굉장히 넓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진희는 그 부엌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실 나도 그 집이 마음에 들긴 했다. 해나네 아빠가 직접 만들었다는 도자기 공예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엇보다, 공간마다 쉴 틈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문을 여는 곳마다 사람이 있는 우리집과는 전혀 달랐다.
   “근데 왜 하필 자라를 잡자고 해? 어차피 자라 낚시는 금지잖아.”
   “엇, 자라 잡으면 안 돼?”
   자라를 볼 생각에 들떠 있던 해나가 놀라 물었다.
   “야생 자라는 포획 금지야. 저수지에서 많이 잡히긴 하는데 어차피 놔 줘야 돼.”
   “오오. 역시.”
   해나가 능청스럽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해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닐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장난기가 많아졌고 털털해졌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해나도 조금씩 바뀌었다. 이제는 어디든 마구 내달리고 봤다.
   “아니 울 할머니 있잖아. 이따만한 자라 꿈은 머스마 낳는 꿈이라면서 만날 똑같은 말 또 하고 또 하고. 속 터져서 그냥 한 마리 잡아다 안겨 드리려고.”
   진희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신발 코로 마른 흙을 긁어냈다. 그걸로도 성이 차지 않는지 잔뜩 피어 있는 도라지꽃의 씨앗 주머니를 톡톡 터트렸다. 보랏빛 꽃이 진희의 거친 손길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엥? 왜 갑자기 머스마 얘길 하는데?”
   해나가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주우며 물었다.
   “숙모랑 삼촌이 이번 명절에 와서 애 안 낳을 거라고 선언했거든.”
   “진짜? 아야!”
   나는 발로 밤송이를 꾹꾹 눌러 해체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운동화를 뚫고 들어온 가시는 꽤 따끔했다. 반들반들한 밤이 쏙 빠져나왔다.
   
   “조심해. 아 몰라. 아무튼 그 뒤로 할머니가 만날 손주 타령이야. 언제는 우리 공주가 최고라더니. 우리 할머니가 옛날 사람인 거 이번에 처음 알았다니까?”
   진희는 투덜거리다 말고 내가 가시에 찔려가며 까놓은 밤을 냉큼 집어들었다. 하는 짓이 얄미워 눈을 흘겼더니 배싯 웃어 보였다.
   “너 근데 미끼는 끼울 줄 알아?”
   해나가 묻자 진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모르지. 지우가 해 줄 거야. 그치?”
   씩 웃는 진희를 보자 어이가 없었다.
   “아, 서낭당이다. 우리 할머니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하게 해달라고 빌어야겠다.”
   진희는 쪼르르 달려가 조그마한 돌을 하나 주워들었다. 마을 수호와 액운 퇴치, 소원 성취 기원을 하기 위해 원뿔 모양으로 쌓은 돌무더기 서낭당은 산 고갯마루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 옆으로 쭉 돌탑을 쌓아놓았다. 나는 그중 제일 가에 외따로 있는 탑에 돌을 올렸다. 내가 매일 지나다니며 쌓아올린 내 소원 탑이었다.
   ‘꼭 멀리 있는 중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빠르게 소원을 빌고 힐끗 옆을 봤다. 두 손을 딱 붙여 모으고 정성껏 뭔가를 빌고 있는 해나가 보였다. 저런 애는 어떤 소원을 빌까? 문득 궁금했다.
   도시 애. 반 애들은 다 해나를 그렇게 불렀다. 막상 해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이없어했지만.
   “소도시도 도시는 도시지만 도시 애라고 불리는 건 좀……”
   어깨를 으쓱거리며 머쓱해하는 모습까지 도시 애답다며 반 애들은 까르르 웃곤 했다.
   해나를 보면 종종 이사 선물로 받은 밥그릇이 떠올랐다. 해나 아빠가 만들어준 밥그릇은 작고 하얬다.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였다. 안쪽에 손톱만한 새끼 고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소복이 밥을 쌓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밥을 반쯤 먹으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집에 있는 것 중 유일하게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것. 나는 그 밥그릇이 너무 좋았지만 가끔은 그걸 벽에 던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조각난 그릇들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했다.
   “으악, 야, 여기 두꺼비 있어. 와 저거 울 할매가 봤으면 또 떡두꺼비 같은 아들 타령했겠지?”
   주먹만한 두꺼비가 수풀 사이로 풀쩍 뛰었다. 그러자 진희는 불끈 쥔 주먹을 허공에다 휘두르며 구시렁거렸다. 하는 걸 보니 한동안 저 얘기만 할 듯싶었다.
   우리는 오솔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오르막길이 나오면 부러진 나뭇가지를 짚고 비틀비틀 걷고, 내리막길이 나오면 나뭇가지를 집어던지고 내달리듯 걸었다. 사방에 마른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왠지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흰 여기 살면 안 무서워? 사람도 잘 안 다니고. 엄청 무서울 것 같은데.”
   진희가 문득 부르르 몸을 떨며 물었다.
   “참나. 여기도 사람 사는 데거든?”
   기분이 좀 상해 대번에 대꾸하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내가 이사나 전학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가 하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가 만날 하던 말을 따라 한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엄마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코끝을 마구 문질렀다. 닭이나 돼지의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가끔 집에서 닭을 잡았다. 목이 잘린 닭들은 한참을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녔다. 목이 잘려도 단번에 죽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엄마 아빠는 직접 고기를 손질했다. 어차피 먹을 것. 아빠는 짐승들을 그렇게 불렀다. 고깃덩어리. 살아 있는 것은 죽기 마련이고 죽은 것은 고기가 된다. 그것은 법칙 같은 것이었다.
   아빠는 종종 덫을 놓고 멧돼지를 잡아오곤 했다. 깊은 산에는 멧돼지가 살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계속 따라 올라가다 보면 진흙이 훅 파인 자리가 흔히 보이곤 했는데, 멧돼지가 파놓고 간 흔적이었다. 목욕을 하고 가는 웅덩이도 꽤 있었다. 가끔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뜨면 애들은 귀엽겠다며 저희들끼리 키득거렸다. 행여나 진짜로 멧돼지를 마주칠까 봐 꼭 긴 우산을 챙겨 다니는 나는 거기 끼어 웃을 수가 없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자 피 맛이 났다. 침을 퉤 뱉는데 해나가 불쑥 말했다.
   “우린 같이 다녀서 괜찮아.”
   나도 모르게 멈칫하며 해나를 돌아봤다. 연보라 스웨터를 입은 해나는 꼭 마카롱 같았다. 색이 곱고 예쁜 마카롱. 도시에서 많이 파는 작고 사랑스러운 디저트. 몇 번 그걸 먹어본 적이 있는데 입안에서 파스스 부서지던 그 과자의 단맛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다. 나도 그런 것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달콤하고 반짝이고 환한 것들이 있는 곳.
   저수지에 도착한 우리는 마른 잎들을 모아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판판하고 둥근 돌을 낑낑거리며 옮겨 그 위에 미끼를 올려뒀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맨손으로 잡자 진희가 “으!”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반면 해나는 내가 미끼 끼우는 걸 뚫어져라 쳐다봤다. 낚시를 많이 다녀본 건 아니라 바늘에 걸리는 대로 미끼를 뚫었다. 미끄덩거리는 살에 바늘이 꽂히는 감각은 썩 좋지 않았다. 우리는 잠잠한 저수지에 낚싯대를 던졌다. 딱히 뭔가가 진짜로 잡히길 기대한 건 아니었다. 간간히 바람이 불어왔다.
   “어차피 뭐가 잡히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낚싯대 써봐서 좋다. 울 할매가 봤으면 가시나들이 어딜 싸돌아다니냐고 또 뭐라 했겠지?”
   진희는 종일 할머니 얘기만 하기로 작정을 했는지 또 입을 댓 발 내밀고 툴툴댔다.
   “야, 너희 할머니가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고 만날 입이 닳도록 말하던 건 까먹었냐?”
   볼멘 투정을 한참 듣다 한소리 얹었더니 그제야 진희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진희 할머니는 읍내에 소문이 파다한 여장부였다. 남자가 어쩌고 여자가 어쩌고. 그런 말을 진희 할머니가 한다는 게 영 상상이 안 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멱살을 잡고 끌어다 앉혀 놓고 일장 연설을 할 사람이 진희 할머니였다. 그렇게 깨인 분도 아들 부부가 자식 안 낳겠다는 얘기엔 충격을 먹는구나 싶었다.
   “아니, 근데 왜 굳이 아들 타령을 하냐고. 서럽게.”
   진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돌멩이 몇 개를 줍더니 그걸로 우는 얼굴 모양을 만들었다. 그 말엔 나도 별로 해 줄 말이 없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았다. 할머니랑만 살며 온갖 사랑을 다 받고 자란 진희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겠다 싶었다.
   “너 집에 가면 할머니한테 꼭 사과해달라고 해. 안 그럼 여기가 콱 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해나가 돌 몇 개를 더 가져와 우는 얼굴을 웃는 얼굴로 바꿔주며 말했다. 웃으며 자기 목 조르는 시늉을 하는 해나를 보자 몸 어딘가가 뜨끔거렸다. ‘그런 생각은 할 줄 모르는 애’라고 생각했던 게 콱 걸려서.
   “너는…… 어른한테 사과받아본 적 있어?”
   어쩐지 목구멍이 조이듯 따끔거려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 몇 번? 근데 딱히 좋진 않았어. 엄마 아빠 이혼할 때, 갑자기 여기로 전학 왔을 때, 집에 혼자만 있을 때 등등? 보통 미안해할 때는 안 좋을 때잖아.”
   무심한 해나의 대답에 진희가 “별로 좋지도 않았다면서 왜 사과를 받으래?” 하고 되물었다.
   “그래도 말 안 하면 모르잖아. 네가 상처받았다는 거.”
   그 말에 진희는 입을 딱 다물었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싫어 나는 부러 주위에 널브러진 낙엽들을 몽땅 쓸어 내뿌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한 발짝을 떼고 제자리에서 빙글 한 바퀴를 돌았다.
   “있지, 나는 내 세상이 딱 이만큼 같을 때가 있어.”
   닭똥 냄새가 먼저 나는 집 마당으로 들어설 때, 제자리에서 목줄을 몇 번씩 감고 끙끙거리는 새끼 개 멍구를 볼 때, 말이 없는 아빠와 피로한 얼굴의 엄마를 볼 때……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나는 혼자인 진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혼이란 단어가 영원한 금기어인 것처럼 구는 엄마 아빠를 둔 나는 해나의 마음 역시 더듬어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사과받고 싶을 때가 있었다.
   말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던 진희가 뒤따라 일어났다. 그리곤 나를 슬쩍 떠밀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자 내가 혼자 그린 원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앞으론 그만큼 빼고 다 네 세상이라고 생각해. 됐지?”
   짓궂게 웃는 걸 보자 빳빳해졌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우와, 완전 다 강지우 세상이네. 너 이제 어디든 다 가겠다.”
   해나가 옆에서 거들며 키득키득 소리 내 웃었다. 그때 멀리 던져둔 찌가 움찔 움직였다.
   “엇? 뭐 물었나 본데?”
   “야, 당겨! 당겨!”
   튕기듯 달려간 내가 제일 앞에서 낚싯대를 당기고 진희랑 해나가 뒤에서 내 허리춤을 당겼다. 물고기치고는 너무 묵직한 무게에 몸이 휘청 앞으로 쏠렸다.
   “놓지 마! 뭐야, 느낌 이상해! 바윗돌 같은데? 아니 상언가?”
   “저수지에 상어가 어디 있어!”
   “헛소리하지 말고 당겨 이것들아!”
   우리는 왁자그르르 비명을 내지르며 있는 대로 힘을 썼다. 맨 뒤에 있던 해나가 먼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그 위로 진희가 주저앉았다. 둘이서 서로 무겁네 가볍네 투덕거리고 있는 사이 나는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뭐야. 진짜 잡혔잖아? 어떡하지?”
   버둥거리며 낚싯대에 딸려온 건 진짜 자라였다. 대야만한 자라가 떡하니 잡힌 것이었다. 저수지 밑바닥의 색처럼 짙은 진녹색을 띤 자라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쉴 새 없이 바동거렸다. 제법 힘이 세 움직일 때마다 낚싯대가 따라 출렁거렸다. 해나가 저만치 굴러다니는 깨진 양동이 하나를 챙겨 왔다. 내가 단단히 낚싯대를 움켜쥐고 있는 사이 진희는 낚싯줄을 들어 자라를 양동이 안으로 밀어넣었다. 우리는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자라를 들여다봤다. 이걸 우리가 잡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무늬 없이 맨질맨질 부드러워 보이는 등껍질을 만져보고 싶었다.
   “와, 목 좀 봐. 진짜 길다.”
   “흙 속에 파묻혀서 목만 쭉 빼고 숨 쉬려고 그렇대.”
   “자라도 거북이처럼 느린가?”
   “아니. 쟨 등이 그냥 피부야, 피부. 그래서 엄청 빨라. 놔주면 바로 도망갈걸?”
   “자라한테 손가락 물리면 잘린다던데. 진짠가?”
   “아마 그럴걸? 턱 힘이 무시무시하대. 이빨도 대박 날카롭잖아.”
   진희랑 해나가 번갈아 묻는 말에 나는 꼬박꼬박 대꾸해줬다. 둘 다 눈이 동그래져 날 쳐다보는 게 웃기기도 하고 좀 으쓱하기도 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라를 들여다봤다.
   “놔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찌 때문에 어떡하지?”
   진희가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진짜로 잡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잡힌 자라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른 흙이 부스스 무너지는 소리, 저벅저벅 걷는 발소리가 이어서 났다.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등산복을 입고 작은 배낭을 멘 아저씨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희끼리 있니?”
   아저씨는 주위를 휘휘 보더니 우리 얼굴을 번갈아가며 봤다. 잠깐 머물렀다 휙 스친 시선에 머리칼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가끔 등산객들이 등산로를 오가곤 했지만 샛길로 빠져야 하는 여기까진 잘 오지 않았다. 엉거주춤 서 있던 진희랑 해나는 아저씨가 가로막고 서 있는 길목 저편을 힐끔거렸다.
   “아…… 아빠는 미끼 가지러 갔어요. 지렁이보단 돼지고기가 잘 문다고 해서요. 집이 요 앞이라 금방 오실 거예요.”
   순간 혀가 목구멍으로 말려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빠르게 말을 뱉었다. 다행히도 아저씨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이 큰 걸 너희끼리 잡았을 리가 없지.”
   아저씨는 우리가 잡은 자라를 보며 감탄을 했다.
   “크, 고아 먹으면……”
   뒷말은 아주 작은 혼잣말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아저씨의 말을 또렷이 들었다. 빠르게 오가는 눈빛으로 서로의 굳은 얼굴을 확인했다. 아저씨는 우리가 얼어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자라 배를 뒤집어 깠다.
   
   “이야, 이거 미끼를 그대로 먹었구나. 줄이 끊어져버리면 바늘 못 빼는데. 이럼 평생 목구멍에 바늘 끼고 살아야 될 수도 있어요.”
   아저씨는 혀를 쯧쯧 차며 뒷말을 길게 늘였다. 우리는 바짝 얼어붙어 주춤주춤 서로 몸을 붙였다. 아저씨가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뒤돌아 마구 내달리고 싶어졌다. 비죽 식은땀이 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너무나 익숙했던 풍경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이곳의 해는 일찍 졌다. 그늘이 먼저 깊어지고 저수지의 색이 가장자리부터 캄캄해지고 바람 소리가 웅웅 낮게 울렸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새파랗게 질린 진희와 해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티 나지 않게 주위를 둘러봤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걸 찾기 위해서였다. 내가 들 수 있는 돌, 내려칠 수 있는 막대기. 소리 없이 두리번거리며 우리는 언제쯤 뛸까 손가락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애들만 있는데 거서 뭐 합니까?”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걸걸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 엄마였다. 하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났다. 너무 빠르게 뛰던 심장이 그제야 제 박자를 찾았다.
   “아…… 아니 보기 드문 자연산 자라 아닙니까? 신기해서. 이거 파는 겁니까?”
   아저씨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애매하게 웃었다.
   “야생 자라는, 포획 금지에요.”
   엄마가 그 자리에서 돈을 받고 자라를 내어줄까 봐 나는 얼른 입을 뗐다. 이상하게 목이 메고 목소리가 떨렸다. 진희랑 해나가 불안한 눈으로 우리 엄마랑 아저씨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들었죠? 못 파니까 괜히 군침 삼키지 말고. 어딜 다니든 그쪽 맘이긴 한데, 애들한테 괜히 말 걸면서 끼웃거리진 맙시다.”
   힐끗 아저씨를 본 엄마는 딱 잘라 말하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커터 칼을 꺼낸 엄마가 고갯짓으로 나를 불렀다. 단단히 혼날 준비를 한 나는 자라처럼 고개를 움츠리고 주춤주춤 다가갔다.
   “이걸로 낚싯줄 잘라. 방생해줄 거면.”
   “낚싯바늘이 그대로 있는데요?”
   진희가 걱정이 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나도 같은 말을 하고 싶었는지 두 손을 모으고 꿈지럭거렸다.
   “시간 지나면 알아서 뱉을 거야. 억지로 빼면 오히려 다쳐. 안 갑니까?”
   아직도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아저씨를 보며 엄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머쓱한 얼굴로 턱을 문지른 아저씨가 쩝, 하고 돌아섰다. 엄마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그 아저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지켜봤다. 나는 엄마가 건네준 커터 칼로 낚싯줄을 잘라냈다.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짧게 잘라주자 자라가 뾰족한 코를 움칠거렸다.
   “그…… 아까 그 아저씨가 평생 목에 걸려 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해나가 울상을 지으며 말꼬리를 흐리자 엄마가 낮게 혀를 찼다.
   “아 낚싯대 던질 땐 그런 생각 안 했어? 미끼 물면 상처 나는 거야 당연하지. 그래도 어째. 저들도 맛있는 거 한 번 먹어보겠다고 냉큼 물었겠지.”
   냉정한 엄마의 말에 진희와 해나의 어깨가 축 처졌다.
   “1, 2년 정도는 암 것도 안 먹어도 사는 게 자라 녀석들이야. 물로 돌려만 주면 꾸역꾸역 뱉어내고 또 잘 살 거다. 얼른 풀어주고 와.”
   애들의 새무룩해진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엄마가 괜찮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자애들끼리 나와 노니 저런 사람이 꼬이는 게 아니냐고 한바탕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는 복잡한 눈으로 우리 셋을 훑어보고는 너무 늦게 다니지 말란 말만 하고 돌아섰다. 아저씨가 사라지고 엄마마저 자리를 뜨자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던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우리는 풀이 죽은 채로 가만히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이 양동이를 옮겼다. 셋이 같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자라 자체가 가벼워서인지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깨진 양동이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냉큼 미끼를 꿀떡 삼켰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신세가 된 자라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까?
   저수지 기슭에 서서 우리는 말없이 양동이를 엎었다. 어리둥절한 채로 목을 쭉 빼던 자라가 곧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미끄러지듯 저수지 속으로 사라지는 자라의 모습을 우리는 말끄러미 보고 서 있었다. 짧게 출렁이던 저수지의 물결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잠잠해졌다.
   “아아. 바늘 꼭 빠졌으면 좋겠다. 자라야 잘 살아! 너 오늘 삶아질 뻔했어!”
   우중충해진 분위기를 깨고 싶었는지 진희가 두 손을 모아 입에다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엉뚱한 그 말에 나랑 해나는 동시에 “뭐래.” 하며 풉, 웃고 말았다. 아까 그 아저씨가 다시 불쑥 나타날까 봐 아직도 가슴께가 떨렸지만 한층 밝아진 둘을 보니 썩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주고 간 커터 칼이 바지 주머니에 그대로 있다는 것도 좀 든든했다.
   “진짜 괜찮겠지? 안 되겠다. 앞으론 미끼 없이 던져야겠어.”
   진희가 다짐하듯 중얼거리자 해나가 곧장 반박했다.
   “미끼 없이 무슨 재미로 낚시를 해? 다음번엔 내가 미끼 끼울 거야.”
   “그런가? 으으. 그래도 자라는 다신 안 낚고 싶다. 머스마 타령 그만하고 그냥 나로 만족하라고 우리 할머니를 세뇌시키는 게 낫겠어.”
   부르르 몸을 떨며 종알거리는 진희의 모습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진희가 한 말 중 제일 그럴싸한 말 같았다.
   “됐고, 집에 가게 얼른 다 챙겨. 늦는 사람 두고 간다!”
   나는 휙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었다. 같이 가자고 애들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우리 다음에 또 오자. 그땐 각자 호신 무기 하나씩 챙겨 오자.”
   해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손도끼라도 챙겨 다녀야 하나? 그래, 뭐, 까짓 거 챙기면 되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진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아, 맞다. 여기 어차피 다 강지우 세상 아니야? 이만큼 빼고 다 강지우 세상 하기로 했잖아.”
   진희가 한 발짝을 떼고 제자리에서 빙글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곤 어깨에 멨던 낚싯대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니까 우린 맘대로 돌아다닐 거다!”
   진희는 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곤 뛰기 시작했다.
   “그럼, 그럼. 우린 같이 다녀서 괜찮아. 그치?”
   해나가 눈이 휘도록 웃으며 물었다. 어쩐지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해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느끼듯 저만치 앞서 뛰어갔다. 아까 내가 그랬듯 이번엔 애들이 저 길 끝에 서서 팔랑팔랑 손을 흔들었다.
   “얼른 와! 안 오면 두고 간다!”
   말도 안 되는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아무리 늦게 가도 그 애들이 거기 있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주머니에 든 칼을 잠깐 만지작거리다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든 갈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윤슬

어딘가에 내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어린이에게. 어디든 가고 싶은 데로 씩씩하게 달려가기를 바라며.

2022/09/27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