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특별한 집입니다. 세아네 집 말이에요.
   작년 겨울, 새로 이사하는 집 앞에 섰을 때, 세아는 설레었습니다. 햇살에 붉게 물든 벽돌집이 근사해 보였거든요. 3층짜리 건물에는 여러 집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몇 층일까?’
   세아는 2층 오른쪽 집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봄이 되면 창가에 수선화도 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와 이삿짐센터 아저씨는 짐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세아는 마치 자기 집이 거기란듯이, 위쪽 계단에 올라서서 엄마를 내려다봤습니다.
   “거기 아냐.”
   엄마는 짐을 들고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순간 세아는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누가 보기라도 하는 듯이요. 세아는 계단을 내려가다 한 번 쉬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세아네 집은 한낮에도 어두웠습니다. 머리 위로 작은 창문이 있었지만, 햇빛은 어느 창문보다 먼저 서둘러 세아네 창가를 떠났습니다. 그 창문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창문이기 때문입니다.
   세아네 집 창문을 열면 바로 길이었습니다. 세아는 심심할 때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다리나 발뿐이었지만요. 지금 지나간 치마를 입은 여자는 예쁜 언니일까? 초록색 운동화를 신고 지나간 남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치마를 입은 여자는 마녀일지도 모릅니다. 초록색 운동화의 남자는 키가 3미터일지도 모르고요. 직접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세아는 자기 집이 매우 특별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비밀이 가득한 집이지요.

   세아의 엄마는 마트에서 일했습니다. 엄마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하루는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았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논 날은 시간이 빨리 갔습니다. 하지만 늘 즐거운 날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학원으로 떠나고, 운동장이 텅 비어버리면 세아는 할일이 없었습니다.
   방학 때는 더욱 할일이 없습니다. 시간은 코끼리처럼 느릿느릿 걸어갔습니다. 특히 여름방학은 더욱더 그랬습니다. 비가 오는 날, 세아의 집은 하루 종일 어두웠습니다. 불을 켜도 어둠은 자기가 주인이라는 듯 비켜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다음달부터 세아를 학원에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세아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 학원이지요.
   ‘미술 학원은 참 좋을 테지.’
   세아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꽉 차올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엄마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세아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요.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세아는 창문을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세아를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곧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아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바람같이 손님이 집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정말 바람의 요정이었으니까요.
   “참 용하다. 사람들은 날 잘 못 보는데……”
   요정이 말했습니다.
   세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놀라지도 않고 요정을 반겼습니다.
   “지금 엄마한테 혼나서 도망가는 길이었어. 네 덕분에 잘 숨었네.”
   세아는 작은 아이 같은 바람 요정이 귀엽습니다.
   “왜 혼났는데?”
   “내가 장난을 좀 쳤거든. 하지만 난 아직 작아서 집을 날려보내거나, 나무를 뿌리째 뽑은 것도 아니라고.”
   세아는 바람 요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곳은 바닷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변에 앉아 놀고 있습니다. 바람 요정은 푸른색 옷을 입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립니다. 아기의 모자를 건드려 바다 위로 날려보내고, 먹음직스런 음식 위로 모래바람을 덮어버립니다. 그러다 심심한지 작은 배의 돛 위에 앉아 배를 어지럽게 흔들었습니다. 발길질로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그때 창문이 큰 소리를 내며 덜컹거렸습니다. 세아가 살짝 창문을 열자 뚱뚱하고 덩치 큰 아줌마가 끙 소리를 내며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람 요정의 엄마였습니다.
   “이 녀석! 이 말썽쟁이 같으니라구!” 하더니 한 번에 바람 요정을 들어서 앞치마 주머니에 욱여넣어버렸습니다.
   “아줌마, 그래도 너무 답답할 텐데요.”
   세아가 말했습니다.
   “그런 말 말아라. 이 녀석이 사고친 걸 말하려면 끝이 없다. 어제는 과수원에 가서 익지도 않은 복숭아를 몽땅 떨어트렸다고.”
   오늘은 그만 놀라고 말한 뒤, 바람 요정과 아줌마는 사라졌습니다.
   마침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왔습니다.
   “세아, 배고프지? 무섭지 않았어?”
   벌써 밖은 캄캄했습니다.
   “아니, 안 무서웠어.”
   세아는 싱긋 웃었습니다.

   다음날, 세아는 바람 요정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공기가 고여 있는 듯 바람 한 점 없었습니다. 오후 늦게 회색 구름이 낮아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아는 또 창문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텅 빈 창문입니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후둑후둑 떨어지더니 눈물처럼 흘러내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이번에도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마치 그냥 빗소리 같았지만, 세아는 분명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살짝 창문을 열자 들이치는 비에 세아의 손등이 젖었습니다. 빗방울들은 금세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형한테 얘기 들었어.”
   “너도 바람의 요정이니?”
   세아가 물었습니다.
   “아니. 난 비의 요정이야. 우리 엄마가 하늘의 여신이거든.”
   그 덩치 크고 뚱뚱한 아줌마가 여신이라니…… 세아는 어쩐지 웃음이 났습니다.
   “형의 그림이 멋지더라. 내 그림도 그려줘!”
   세아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럼 네 얘기를 해줘.”
   “내가 가본 가장 멋진 곳은 밀림이었어.”
   세아는 비가 내리는 밀림을 그렸습니다. 그곳의 나뭇잎은 모두 우산같이 넓고, 꽃들은 접시만큼 컸습니다. 새빨간 꽃들 사이로 노란 새들이 깡충깡충 날아다녔습니다. 새들의 꽁지깃은 짙은 주황색이었는데 눈을 찌를 듯 아름다웠습니다. 비가 내리는 숲속에 생명이 가득합니다. 모두 자라기에 바쁩니다. 비 요정은 초록색 옷을 입고, 표범을 타고 늠름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비 요정은 그림이 썩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습니다.
   “난 이제 가봐야겠어. 저녁 시간에 늦으면 엄마한테 혼나거든.”
   세아는 여신 아줌마의 앞치마가 떠올랐습니다.
   비 요정은 짧은 인사를 남기고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마침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세아, 배고프지? 무섭지 않았어?”
   밖은 이미 어두웠습니다.
   “아니, 안 무서웠어.”
   세아는 대답했습니다.
   “이제 엄마 야간근무 다음주면 끝나.”
   그리고 미안한지 얘기했습니다.
   “다음주에 미술 학원에 가자.”
   ‘미술 학원에는 예쁜 선생님도 있을 테지?’
   세아는 일주일쯤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엄마가 밤늦게 돌아와도, 어두운 집에 혼자 있어도 세아는 이제 무섭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해 질 녘이면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그렇대도 세아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역시 화창한 날입니다. 그런 날이면 오후 잠깐 세아의 집에도 볕이 듭니다. 네모난 빛을 바닥에 드리웁니다. 세아도 마음이 환해집니다.
   빛이 떨어진 방바닥에 스케치북을 폈을 때입니다. 작은 그림자가 스케치북 위에 어른거렸습니다. 세아가 창문을 조금 열자, 얼굴로 빛이 쏟아졌습니다. 햇살 요정은 그렇게 세아의 집에 왔습니다.
   햇살 요정은 하늘 여신의 딸이었는데, 눈웃음이 예뻤습니다. 사람들이 해를 그릴 때 왜 웃는 눈을 그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언제 오나 기다렸어.”
   세아가 먼저 말했습니다.
   “나도 오고 싶었는데, 우리 오빠들 고집이 너무 세서 말이야.”
   햇살 요정이 수줍게 웃었습니다.
   지난주부터 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었습니다. 엄마는 장마라고 말했습니다.
   “장마에다 지하에 있으니 빨래가 마르질 않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드라이기로 옷을 말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반짝 해가 난 것입니다.
   요정은 다 안다는 듯이, 자기가 겪은 재밌는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세아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너 햇살 나라 알아? 저어기 남쪽에 가면 끝이 안 보이는 넓은 들판이 있거든.”
   나무마다 가지가 휠 듯 붉은 열매들이 열렸고, 들판에는 하얀 꽃이 끝없이 피어 있습니다. 들판의 가운데 흐르는 개울은 햇살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입니다. 아이들은 개울에 들어가 물놀이를 합니다. 실컷 놀고 나면 햇살에 젖은 옷을 말리며, 맛있는 도시락을 먹습니다. 그러고 나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그네를 탑니다. 세아는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아이들 웃음소리까지 그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똑같다!”
   햇살 요정은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나도 가보고 싶다. 하지만 난 요정이 아니니까……”
   세아가 말했습니다.
   “넌 공주니까 갈 수 있어.”
   햇살 요정이 말했습니다.
   ‘공주? 할머니도 날 공주라고 불렀는데……’
   세아는 생각했습니다.
   “햇살 나라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공주고 왕자야.”
   세아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참말 그런 곳이 있을까요?
   마침 햇살 요정의 엄마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왔습니다.
   “또 만나는구나.”
   아줌마는 집이 떠나갈 듯 재채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5백 년쯤 사니까 없던 알레르기가 생기지 뭐니. 특히 이런 지하는 공기가 안 좋아.”
   세아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엄마, 세아도 햇살 나라에 같이 가면 안 될까요?”
   햇살 요정이 말했습니다.
   “이런 철딱서니하고는.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냐. 거기가 얼마나 먼 곳인데.”
   아줌마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엄마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주면 금방 갈 수 있잖아요.”
   햇살 요정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너희들 간수하기도 벅차. 그만 집에 가자!”
   햇살 요정이 떠나자 하늘에는 보랏빛 노을이 번졌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왔습니다.
   “오늘 비 많이 온다니까 절대 창문 열지 마.”
   엄마가 출근 전에 세아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내일 쉬는 날이니까 미술 학원도 가보자.”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은 좋아서 콩콩 뛰고 싶었지만, 왠지 기쁜 마음도 아껴야 할 거 같았거든요. 너무 티를 내다가 사라져버리면 어떡해요.
   그날의 시간은 어느 쪽인가 하면, 코끼리 걸음이었습니다. 얼른 하루가 지나고 내일이 되었으면 하고 세아는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차려놓은 점심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낮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하지만 잠이 올 리 없죠. 창문을 올려다봐도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다들 조용하네.’
   그런 생각을 할 때입니다. 우르릉 쾅쾅! 천둥이 쳤습니다. 유리창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그리고 툭! 툭! 투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아예 퍼붓듯이 쏟아졌습니다. 밖은 완전히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섭게 퍼붓는 비가 길에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빠르게 불어나더니 턱을 넘어 세아네 집 계단으로 넘쳐내렸습니다. 마치 작은 폭포처럼 물이 지하로 쏟아졌습니다. 이미 세아네 창문은 물에 잠겼습니다. 그 창문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창문이기 때문입니다. 창틀 사이로 빗물이 줄줄 흐르며 들이치기 시작했습니다. 현관문 틈으로도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의 불은 나가버렸습니다. 세아는 무서워서 울며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물은 세아의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귀를 찢는 천둥소리 사이로 멀리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창문 밖에서 손전등 불빛이 왔다갔다했고, 사람들은 창문을 부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세아는 알지 못했습니다. 물은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얼음보다 차가운 물에 세아는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세아는 엄마를 불렀습니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세아, 배고프지? 무섭지 않았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나 무서워!”
   세아가 소리쳤습니다.
   그때입니다. 집안이 불이 켜진 듯 환해졌습니다.
   “아가, 무서워 마라.”
   하늘의 여신 아줌마였습니다. 아줌마는 진짜 여신처럼 빛이 나고 아름다웠습니다. 얼굴의 미소는 따뜻하고 어찌 보면 슬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줌마는 손에 흰 장미를 들고 있었습니다. 아줌마가 장미로 천장을 건드리자 천장은 성당의 그것처럼 높아졌습니다. 벽을 건드리자 벽이 물러나며 드넓은 초원이 되었습니다. 노란 수선화가 수천 송이 피어 있고, 하얀 새들이 햇살 속에서 날아다녔습니다. 무지개 아래에서 많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집안 가득했던 흙탕물은 어느새 맑디맑은 냇물이 되었습니다. 싱그럽고 달콤한 향기가 공기에 가득했습니다. 햇살 나라였습니다.
   세아는 물이 목까지 차오른 것도 잊었습니다. 이제 춥지도 않고, 눈물도 멈추었습니다.
   “나랑 가자.”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세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면 엄마는 어떡하죠?”
   세아가 물었습니다.
   여신 아줌마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햇살 나라의 공주니까, 언제든지 엄마에게 올 수 있단다. 햇살은 사라지지 않지.”
   세아는 희미하게 웃으며, 여신 아줌마의 손을 잡았습니다.
   눈물이 한 방울 똑 떨어졌습니다.
   하늘의 여신은 아기처럼 소중하게 세아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먼먼 하늘을 날아 햇살 나라에 갔습니다.
   이것이 세아가 진짜 공주가 된 이야기입니다.

이반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보편적 진실이 담긴 동화를 쓰고자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의 사람들이 읽어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2022/09/27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