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문예창작학과에서도 웹소설에 대해 가르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르문학’은 종종 타자화되거나 멸시당하고,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마치 존재하지 않거나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읽고 쓰는 분야처럼 다루어졌다. 이전부터 쭉 나름의 역사를 쌓아온 것을 두고 이런 것은 처음 본다는 식으로 나오거나, 혹은 해당 장르 자체의 특징을 마치 어떤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인 것처럼 해석하는 일도 있었다. 여러 권의 책을 내고 꾸준히 이름을 알린 작가라도 “그래도 등단은 해야지” 같은 말을 듣기도 하고, 30년 가까이 장르문학을 써 온 사람을 인터뷰하며 공공연히 멸시해 놓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문예지도 있었다. 어떤 장르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작품이 있을 때, “순정만화를 넘어섰다”거나 “SF를 넘어섰다”며 해당 장르를 넘어선 작품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거나, 어떤 장르 작가가 탁월한 성취를 거두면 갑자기 그 장르에서 딱 분리하여 “한국문학의 미래”라고 추켜세운다. 마치 그 장르는 별 볼 일 없지만 너는 뛰어나니까 분리해서 생각해 주겠다고 선심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칭찬도 선심도 아닌 멸시의 연장이다. “흑인치고 뛰어나다”거나 “여성치고는 잘한다”는 말이 칭찬이 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전문성을 의심받는 경우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SF나 판타지와 같은 장르문학, 만화와 같은 서브컬처, 만화 안에서도 순정만화가 늘 겪어왔던 이야기였고, 창작의 문제 이전에 분야를 막론하고 소위 메인스트림이 약자, 소수자들에게 꾸준히 자행해오던 일이기도 했다.
   구분 짓기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을 구분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것은 대개 앎의 시작이 된다. 하지만 그 구분 짓기가 나와 타인, 혹은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나누는 잣대로 쓰일 때, 강자나 다수자가 약자나 소수자를 구분 짓고 타자화할 때, 단순히 개념적으로 구분되었을 뿐 사실은 이어져 있는 것에 굵은 경계를 긋고 그 양쪽을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생각할 때, 그 구분 짓기는 종종 폭력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 이편과 저편을 왔다갔다하며 다리를 놓는다. 무지개의 색상이 다섯 색, 여섯 색, 일곱 색으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아는 것과 같이, 구분이 완전한 분리를 뜻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두 세계를 오가며 이해한다.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라 해도, 언젠가는 그 꾸준하고 느린 걸음이 경계를 허물고 벽을 무너뜨리며 오랜 편견을 넘어서, 끊어져 있는 듯 보였던 두 세계가 사실은 서로 이어져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그리고 SF 작가 전삼혜는 바로 그 분리된 세계를 잇는 다리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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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삼혜는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문학 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백일장에 나가는 문학청년이었다. 그의 첫 청소년소설인 『날짜변경선』에는, 소위 인문계 출신 ‘백일장 키드’였던 그의 고등학교 시절 모습이 자전적으로 그려져 있다.
   수많은 신춘문예 당선자와 문학상 입상자를 배출해 온 명지대학교에서 평론가 신수정과 소설가 박범신 등에게 사사한 전삼혜는 제8회 대산대학문학상으로 재학 중 등단한다. 그야말로 문학청년에서 빛나는 신예작가로 이어지는, 전통적이고 정석적인 행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전삼혜의 다른 한 발은 인터넷 세계에 걸쳐져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게임 〈마비노기〉를 시작했다. 〈마비노기〉는 전투 위주의 레벨 업이 아닌 각종 생활 스킬을 통해 판타지 세계에서의 일상을 구현한 데다, 공식 사이트에 유저들의 팬픽이나 팬아트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등 유저들의 참여를 환영하다 보니, 당시 많은 현업 창작자들과 예비 창작자들이 이 게임에 모여들었다. 현재 만화나 장르 소설, 게임 시나리오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에는 그 당시 〈마비노기〉 소설 게시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이들이 적지 않은데, 전삼혜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아니, 진실을 말하자면 마비노기 소설 게시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었다. “게임 팬픽을 공식 카페에 연재하다 지망 대학을 정했다”고 말할 만큼, 그에게 〈마비노기〉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한국 문화예술위원회의 사이버 문학광장 《글틴》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문학 사이트로, 만 20세가 되기 전까지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이 사이트는, 예고 출신이 아닌 전삼혜에게 있어 문학에의 꿈을 이어가게 하는 공간이었다. 그의 소설 『날짜변경선』에서 백일장 키드들이 온라인 카페 ‘날짜변경선’에서 교류하듯이, 전삼혜는 이곳에서 백일장이나 청소년 문학 모임에 함께 갈 친구를 만나고, 소설을 올려 조언을 받거나 소설 「하향유하」로 주장원 상을 받기도 했다. 주장원 상을 받은 것은 대학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 이후였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수상 경력이 비록 입시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 이곳은 작가 전삼혜가 문학청년으로서 성장하고 문학에 대한 자신감을 쌓아나갈 수 있던 또 하나의 학교였다. 《글틴》이 배출한 1호 소설가로서 학생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 그는, 스무 살이 넘은 회원들과 합평회를 하거나, 《글틴》 캠프의 도우미로 활동하기도 했다. 시간이 더 지난 뒤에는 강사로 《글틴》 캠프에 초청받기도 했다.
   김연수와 박범신을 존경하는 문학도이자, 게임 〈마비노기〉의 ‘덕질’을 하던 마니아이고, SF 작가이자 장르문학 편집자인 이문영이 청소년들에게 소설을 지도하던 《글틴》에서 활동하며 청소년문학에 가까이 닿아 있던 전삼혜는, 이미 등단 당시에도 서로 다른 세계들 사이에 서 있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정석적인 문학도의 길과 필명으로 팬픽을 쓰던 덕후의 길, 그리고 성인과 청소년 사이의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던 전삼혜는 SNS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SF 판타지 도서관’의 단골이 된다. 그리고 그의 관심 분야는 더욱 확장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한국 SF는 전성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SF를 읽고 쓰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SF 작가가 될 방법도, SF를 출판할 방법도 딱히 없는 상태였다. 2004년에는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전이 있었지만 3년 만에 공모전이 중단되었다. 몇몇 출판사에서 국내 창작 SF 출판을 시도했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작가들은 꾸준히 SF를 쓰고 있었다. 우선은 1990년대부터 평론과 SF 소설로 꾸준히 활동해 온 Djuna와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전이 배출해낸 박성환, 김보영, 배명훈, 김창규, 배지훈, 정소연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작가들은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비롯한 몇몇 창작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단편 소설들을 발표했다. 이들은 과학 교양지 《과학동아》나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 APCTP)의 웹진 《크로스로드(Crossroad)》에 SF를 발표하기도 하고, 단편을 모아 앤솔러지를 만들거나,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을 엮는 등, 작품을 발표하고 창작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게임회사에 들어가 SF 요소가 담긴 시나리오를 쓰거나, 청소년소설이나 라이트 노벨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망망대해 같은 인터넷에서 게시판이나 블로그, SNS로 서로를 발견하고 느슨하게 이어지며 생존 신호를 주고받곤 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전삼혜에게 닿았다.
   처음 그가 읽고 충격을 받았던 작품은 네뷸러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문의 소설, 『어둠의 속도』였다. SF 작가 정소연이 번역한 이 소설은, 임신 중 자폐를 미리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대, 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태어난 마지막 자폐인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원 자폐인으로 구성된 A 부서에서 근무하는 루 애런데일과 그의 동료들이 사내 연구소에서 새로 개발 중인 ‘정상화 수술’을 강요당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이 소설은, “자폐가 사라지더라도 나는 과연 나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독자에게 정상과 비정상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한다. 또한 중국계 미국인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도 전삼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SF에 관심을 갖게 된 전삼혜가, 마침내 직접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자 촉매는, 《크로스로드》에 실린 김보영의 소설, 「0과 1 사이」였다. 과거의 질서인 뉴턴역학의 세계가 아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확률로써 존재하는 이들의 이야기 위에, 청소년과 그 부모의 갈등이라는 고전적이고 익숙한 소재가 레이어처럼 덮여 있는 이 이야기는, 서로 다른 세계들 사이에 서 있던 전삼혜에게 그 세계를 표현할 또 다른 방법을 열어주었다. 그는 2013년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열린 김창규의 SF 창작 강의를 수강하고, 이 합평에 훗날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단편 「창세기」를 발표한다. 이후 전삼혜는 「소년소녀 진화론」을 비롯한 SF 소설들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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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의 주된 테마는 경이감, 그리고 다른 세계나 존재와의 낯선 조우를 통한 변화다. 이는 청소년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겪는 본질적인 문제들과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이들은 언젠가부터 몸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몸 여기저기에 전에 없던 털이 나고, 갑자기 몸에서 피가 나더니 앞으로 주기적으로 피를 흘리게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리는 바람에 몸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팔다리가 휘청거리고, 몸의 형태도 변화한다. 불과 1, 2주 만에 원래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낯선 목소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이 변화는 마치 낙원에서 추방당한 것처럼 비가역적이다. 사전 지식 없이 갑작스레 겪는다면 저주나 마법, 혹은 외계인에게 납치당해 몸이 개조되는 것처럼 느껴질 만한 이런 변화들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것처럼 취급된다.
   사회적인 위치도 변한다. 이제 어린이가 아니니까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하지만, 막상 어른답게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다. 어린이로서 받았던 보호는 상당 부분 사라지고,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상태에서 이중 구속을 당하게 된다. 여기에 대학 입시까지 겹쳐진다. 한때 어린이였던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세계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당하며 모든 일을 감시당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실제로 그들을 둘러싼 환경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도, 그들의 일상은 순간순간 낯설고 불친절한 세계에 던져지는 것의 연속이다. 이 낯설고 불친절한 어른들의 세계, 어른들이 만들어낸 관습과 규범에 적응하고 맞추어 가거나, 혹은 어른들이 제시하지 않은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것이 경계에 선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한편 사춘기라 불리는 이 시기, 청소년들이 겪는 사건 중 상당수는 인생에서 처음 겪는 경험이자,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강렬한 것이다. 한 개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세계이자 우주라면, 가장 가까운 타인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두 세계의 만남이 된다. 두 세계가 마주 바라보는 큰일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친구와의 우정이나 사랑이 세상 전부와 바꿀 수 없는 일이 되고, 싸움이나 절교, 이별은 한 세계가 사라져버리는 것에 맞먹는 비극이 되기도 한다. 이 격렬하고 충격적인 감정들은 그 자체로 생의 경이감과 맞닿아 있다.
   전삼혜는 바로 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들, 경계인으로서 낯선 세계와 조우하며 겪는 문제들과 이 시기의 격렬한 감정들을 SF에 투영한다. 이들은 성인의 입장에서는 아직 ‘완전한 성인’이 되지 못한 부족한 존재들이고, 때로는 장애를 갖고 있거나 성소수자이거나 가족을 갖지 못한, ‘정상성’의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이다. 천선란이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를 소개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단 하나의 자격이 필요하다면 바로 간절함”이라고 말했듯이, 전삼혜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편견을 넘어 더없이 간절하게 세상과 맞선다. 전삼혜의 손끝에서 그려진 이들의 목소리는 조금 퉁명스럽고, 냉정하려 애쓰며 때로는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거리를 두려는 듯 보이지만, 그 목소리들에 담긴 ‘최초’의 이야기들은 읽는 사람의 내면의 상처와 기억까지 섬세하게 끌어내며 공명하게 한다. 시인 김진경이 “예리하게 파고드는 날카로운 메스로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미지의 전율을 끌어 올릴 것”이라고 그에 대해 평한 것과 같이, 전삼혜는 살아가며 한번은 겪게 되는 그 ‘최초’의 감정들을, 극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되새기게 한다.
   「소년소녀 진화론」의 주인공인 나루는 바닷속에서 살고 있다. 심해연구원인 엄마는 인공 자궁으로 나루를 낳았고, 나루의 꿈은 엄마와 마찬가지로 심해연구원이 되는 것이지만, 나루는 주기적으로 물 밖의 공기로 호흡해야 하는 ‘고래증후군’을 앓고 있다. 해저 도시의 산소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는 아가미 수술을 하고 나면 나루는 ‘정상’이 될 수 있겠지만, 대신 그 수술을 하고 나면 공용어를 말할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나루는 수면 위로 올라갔다가 물에 빠진 가하를 구하고, 해저 도시의 소녀와 공중 도시의 소년은 공용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서로 가까이 있고 싶지만,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다. 나루가 자신의 꿈인 심해연구원이 되려면 아가미 수술을 받고 공용어를 버려야 한다. 머리카락만 있어도 상대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지만, 바닷속의 사람들과 공중 도시의 사람들은 이미 유전자가 달라져 서로의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함께 할 길은 없다고, 나루의 엄마는 단호하게 포기를 종용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SF의 관점에서 다시 그려낸 이 이야기는, 자신들의 앞에 놓인 편견과 현실적인 장벽들을 넘어 새로운 답을 찾으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인간이 바닷속과 하늘 위로 나뉘어 살고 오랜 세월이 흘러, 유전자 단위에서 서로 다른 종으로 분화하고 있는 미래에, 두 사람은 분리된 세계를 넘어 만나기를 꿈꾼다. 나루는 가하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건네준다. 가하의 시점에서 그려진 「하늘의 파랑, 바다의 파랑」에서는 본래 진학해서 인공위성 관제센터로 가고 싶어했던 가하가, 나루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경비대에 자원한다. 세상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현실적으로도 두 사람은 서로 그리워하는 것밖에 할 수 없겠지만, 두 사람은 이 세계의 만남 속에서 ‘진화’라는 다른 길을 꿈꾼다. 이 ‘진화’는 과학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진화가 아닌, 언젠가 이 분열된 세계의 경계를 넘어 그들이 놓은 새로운 다리 위에서 다시 만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창세기」 연작을 모은 소설집,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가 그려내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제네시스’에 모여 있는 아이들은 부모를 잃었거나 장애가 있어 버려졌거나, 여러 사유로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 “후견자가 없는 아이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아이들, 지켜야 할 것은 오직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것뿐인 아이들”이다. 부모나 소중한 사람을 잃고, 절박함 속에서 능력을 꽃피운 아이들, 제네시스로 갈 것을 선택한 아이들.
   제네시스의 우주기상통제국에서 근무하는 아이들은 머지않아 소행성이 지구의 문명 대부분을 박살 낼 것을 알게 된다. 소행성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충돌 지점을 계산하고, 위성 무기들로 요격하고, 결국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소행성이 제네시스에 떨어지도록 궤도를 튼다. 그리고 평행선이 아닌 교차점과 같은 인연으로 다른 아이들과 얽힌 제네시스의 아이들은, 서로를 걱정하고 사랑하며 비밀을 지켜주는 마음의 연대로, 결국 인류의 문명 대부분이 파괴될 후에도 누군가를 구하려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소행성 충돌로 멸망하는 인류 문명 최후의 순간에 인류를 구하려 한 ‘제네시스’의 역사를 배경으로, 세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유리아를 구하고 싶었던 세은과, 지구의 멸망을 목격한 뒤 마지막 힘을 다해 세은의 이야기를 풍화되지 않는 달 표면에 기록해 남기려던 유리아, 멸망을 앞두고도 절실한 마음들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남았던 제네시스의 아이들을 그려낸다. “너는 나의 세계였으니, 나도 너에게 세계를 줄 거야.”라는 그 말처럼, 세계와 세계가 온전히 마주 보는 절박한 사랑의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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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삼혜의 목표는 “한국 청소년들이 한국 SF를 더 많이 접하게 하는 것”이라지만, 그가 오직 청소년을 위한 SF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등단 전 〈마비노기〉의 팬픽으로 먼저 필명을 알렸던 그는, 게임회사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한편, 게임회사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 「당신이 나의 히어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신이 나의 히어로」에서 5년 전 종료된 게임을 리메이크하라는 미션을 던져놓은 전삼혜가 주목한 것은, 세 진영의 주군 중에서 가장 마이너했던 진영을 되살리는 과정이었다. 플레이한 사람이 많지 않은, 그래서 남아 있는 자료를 찾기도 어려운 부분이지만, 그 부분을 온전히 되살리지 않으면 게임의 완전한 리메이크는 불가능하다. 주류에서 벗어난, 그래서 소외되고 때로는 배척되는 이들이라 해도 그들이 사라진 사회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전삼혜는 게임 회사와 게임 마니아의 이야기를 통해 은유해낸다. 설령 대세를 따르지 않는 마이너란 존재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일 수 있다는 믿음 역시 이 작품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누군가를 혼자 두지 않는 간절하고 강렬한 사랑의 마음, 그것은 전삼혜에게 있어 뜯겨나간 세계를 다시 연결하는 다리와도 같다.
   전삼혜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메인스트림에서 밀려나 있다. 그들은 남다른 능력을 지녔지만 그 능력을 함부로 말할 수 없거나 그 능력 때문에 배척당하기도 하고, 혹은 어릴 때는 두각을 나타냈지만 자라면서 평범해져 외곽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었거나 장애인이거나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현실에서 정상성의 밖으로 밀려나 있지만, 전삼혜는 그들의 가장 특별하고 모난 면이 아닌, 가장 평범한 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수를 하고, 반항을 하고, 때로는 징계를 받는다. 가장 현실적인 배경에서부터 인류의 문명이 끝나는 미래의 어떤 순간까지, 그들은 수많은 현실의 다른 모습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절박하게 다른 세계를 향해 손을 뻗는다. 현실에서는 종종 차별받거나 타자화되고 멸시당하는 이들은, 이윽고 절박한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세계와 마주 선다. 전삼혜는 그 사랑과 세계와 마주 서는 이들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애정을 담아, 그러나 범상하게 그려나간다. 그런 것은 아주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다시 몇 번이나 강조하듯이. 그는 그 간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너와 나 사이에 함부로 선을 그을 수 없음을, 구별 짓는다 해도 그것은 칼로 잘라낸 듯 두 덩어리로 딱 분절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죽 이어져 있는 연속 스펙트럼과 같다는 것을 거듭하여 말하고 있다.
   사랑하고 연대하며 세계를 잇는다는 것은 전삼혜의 소설 속에서만 거듭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고 출신은 아니었지만 문예창작학과를 지망했고, 문학청년에서 출발해 문단의 일원이 되었지만 장르문학과 게임에 대한 애정을 계속 품고 있었으며, 마침내 청소년문학이라는 길을 찾아 장르문학, 그중에서도 SF에 도달하며 분리된 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작가 전삼혜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수많은 세계들을 애정과 연대의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다. 《글틴》의 학생들에게 언니이자 선배로서 함께 하고, 동료 작가들과 연대하고,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임원으로서 봉사하며, 그는 몇 번이나 거듭하여 소외되고 잘려나간 세계들을 절박한 사랑과 다정한 연대로 이어붙이는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은 문단의 정석적인 데뷔 경로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SF에 도달한 이 젊은 작가가, 스스로 찾아낸 자신만의 길일 것이다.

전혜진

비교적 근미래의 현실적인 한국인의 삶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주로 쓴다.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소재를 다루지만, 마음의 뿌리는 SF와 한국 순정만화에 있다. 좌우명은 ‘성실한 입금 확실한 원고’.

2021/11/30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