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_역에서_영어는


      Ill-Advised Love Poem
       John Yau

      Come live with me
      And we will sit

      Upon the rocks
      By shallow rivers

      Come live with me
      And we will plant acorns

      In each other’s mouth
      It would be our way

      Of greeting the earth
      Before it shoves us

      Back into the snow
      Our interior cavities

      Brimming with
      Disagreeable substances

      Come live with me
      Before winter stops

      To use the only pillow
      The sky ever sleeps on

      Our interior cavities
      Brimming with snow

      Come live with me
      Before spring

      Swallows the air
      And birds sing



번_역에서_한국어는

      무분별한 사랑시
       존 야우

      이리 와 나와 함께 살자
      우린 얕은 강가 옆

      바위 위에
      함께 앉을 거야

      이리 와 나와 함께 살자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

      도토리를 심을 테고
      그건 땅에게 인사를 건네는

      우리만의 방식이야
      땅이 우리를 밀어내

      눈밭으로 돌려보내기 전
      내키지 않는 물질들로

      가득한
      우리 내면의 구멍들

      이리 와 나와 함께 살자
      하늘이 언제고 베고 자는

      유일한 베개를 사용하겠다고
      겨울이 멈춰서기 전에

      눈으로 가득한
      우리 내면의 구멍들

      이리 와 나와 함께 살자
      봄이

      대기를 삼켜버리고
      새가 노래하기 전에



번_역에서_이 시는

   “제가 화가들로부터 배운 건, 하나의 색 옆에 다른 어떤 색이든 놓을 수 있는 것처럼 단어도 그렇게 다뤄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제 생각입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시에서는 한 단어 옆에 어떤 단어든 놓을 수 있어야 해요. 저는 그림을 보면서 언어를 달리 보게 되었어요.”1)

      존 야우는 1950년생 중국계 미국인 남성이자 시인이며 뉴욕의 저명한 미술평론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를 생년으로, 인종으로, 성별로, 직업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해서 그의 모든 시를 육십대 중반의 남성 예술가의 목소리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읽기 어렵다. 예를 들어 「무분별한 사랑시」는 크고 작은 이미지로 가득한 작품이지만, 정작 사랑하는 너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독자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입안에 도토리를 심을 빈 얼굴의 두 연인뿐이다. 시인이 이미지로 가득 채우는 것은 두 연인의 주변뿐이다. 독자는 몇 발자국쯤 떨어진 곳, 이를 테면 어느 벽에 걸린 그림을 보듯, 두 연인의 주변을 상상하게 된다. 그 주변은 언젠간 ‘우리’를 밀어낼 광활한 땅이었다가, 죽으면 돌아갈 눈밭이었다가, 또다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된다. 야우는 시를 통해 사랑이라는 단어 옆에 무엇이 놓일 수 있는지 끊임없이 실험한다. 요컨대, 사랑을 논하는 이 시에서 우리는 이 시의 화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고자 하는 독법을 추구하거나 각 단어들이 얼마나 유기적인 문장을 이루는지 파악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또 모두가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모두가 이야기하는 사랑이 또 모두의 사랑은 아닐 수 있다는 게 사랑의 “무분별”함이 아닐지.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각각의 사랑을 각각의 목소리로 들어야하는 일일 터,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이 시를 통해 상상할 수 있기를, 그리고 서로를 기꺼이 초대할 수 있기를.


번_역에서_우리는

   아선 : 기묘한 사랑시였어요. 누군가에게 함께 살자고 초대하길래 클리셰처럼 전개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뭔가 불편한 게 등장하면서 좀 당황스럽게 마무리되거든요. 다들 어떻게 읽으셨나요? 천천히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주주 : 제목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사랑시’라고 해서 고백 받을 준비 잔뜩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좀 당황했거든요. “Ill-advised”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그럴까요? 이 단어는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요?

   지민 : “Ill-advised”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무분별한’ ‘분별없는’ ‘경솔한’ ‘걸맞지 않은’ ‘무모한’ 등으로 번역돼요. 다 비슷비슷한 단어 같지만 사실 맥락에 따라 다 다르게 쓸 수 있는 의미망을 가진 단어잖아요. 그래서 좀더 쪼개어 살펴보면, “Ill-”은 부정형을 만드는 접두어고 “advised”는 ‘신중한’ ‘숙고한’ 등의 뜻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원형인 ‘advise’가 ‘조언하다’ ‘충고하다’ ‘알리다’의 의미인 것을 감안한다면……


   정민 : 더욱 미궁이네요.

   아선 : 시가 전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가 설득되어야 제목을 번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럼 왜 사랑시가 되는지 그것부터 얘기해볼까요? 오늘 많이 돌아 돌아 가겠네요. 마지막 연재분인데. 사랑이 원래 이런 건가.(웃음)

   주주 : 사랑…… 정말 뭘까요.(웃음) 참, 야우가 사랑시라고 제목 붙인 작품이 하나 더 있어요. 「빌려 쓴 사랑시 Borrowed Love Poems」이고, 야우가 2002년에 출판한 시집의 표제시죠. 이 시에서 화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What can I do?)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사랑을 정의해보려는 시도를 해요.

   지민 : 이 시는 진짜로 시를 빌려 썼더라고요. 우리가 지난 호에서 다뤘던 록사나 베넷(Roxanna Bennett)의 시와 비슷한 구성이죠. 베넷은 어떤 대항으로써 구절들을 빌려왔는데 야우는 달라요. 만델스탐(Osip Mandelstam)이라는 러시아 시인과 데스노스(Robert Desnos)라는 프랑스 시인의 시에서 몇 구절을 가져왔는데, 두 시인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강제수용소에 있을 당시에 사랑시를 썼다는 것이에요.

   아선 : 강제수용소라면 사랑을 이야기하기 가장 어려운 공간이면서 또 사랑이 가장 절박해지는 공간이었을 것 같아요. 사랑이 가장 희소하면서도 절박할 때 사랑에 대해 노래한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씀으로써 시인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주주 : 우스갯소리일 수 있지만 야우는 다른 남성 시인들에게서 더이상 사랑시를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너무 많이 쓰였고, 또 늙은 남성 화자가 쓰는 사랑시는 매력이 없다고요.

   지민 : 동의한 걸까요?(웃음)

   주주 : 「빌려 쓴 사랑시」나 우리가 읽고 있는 「무분별한 사랑시 Ill-Advised Love Poem」를 쓰신 걸 보면 동의 못한 것 같죠? 어떻게든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반증이니까. 사랑에 대해서 가장 절박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의 말을 빌려오고, 사랑시의 상투적인 전개를 비트는 시도로도 보여요. 사랑에 대해 말해보려는 시인의 시적 실험일 거라 생각해요.

   아선 : 그리고 그 실험 방법 중 하나를 감히 추측해보자면 화자를 숨기는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번역 톤을 완전히 다정하게 잡았다가 여러분들과 합평하면서 바꿨잖아요. 저는 처음에 이 시를 아주 예쁘게 읽었어요. 고백해보자면 “이리 와 나와 함께 살자”가 꼭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정서 같았거든요. 그러다보니 시를 좀 처연하면서도 예쁘게 번역하고 싶었고, 그 의도가 반영이 됐는데 그러다가 시가 제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니까 나중에 수습이 안 됐죠.

   주주 : “come live with me”는 소위 사랑시에서 거의 클리셰처럼 인용되는 말이니까 잘못 읽으신 건 아니죠.(웃음) 16세기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크리스토퍼 말로우(Christopher Marlowe)에 의해서 당시 굉장히 유명해졌던 구절이 “당신 내게 와서 내 사랑이 되어주시오”(come live with me and be my love)였는데, 너무 유명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The Merry Wives of Windsor〉의 대사로 변주되기도 했거든요.


   지민 : “이리 와 나와 함께 살자”는 초대가 야우의 시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면 이 시가 왜 “ill-advised” 되었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네요. 화자는 청자를 초대하면서 “강가에 함께 앉”는 일처럼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사랑의 행위를 요청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입속에 도토리를 심”는 행위를 하겠다고 해요. 그리고 그게 “땅에게 인사를 건네는 방식”이라고 했어요.

   아선 : 그런데 그렇게 청자를 초대하고, 무언가를 심으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인사를 하는 시의 흐름이 5연부터 균열이 일어나죠. 다정한 목소리로 상대를 초대하던 화자가 그런 정서와 반하는 내면의 공허함, 여기서는 “구멍들”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런 ‘공동’의 상태를 보여주더니 굉장히 추운 시간을 지내고 있다는 걸 드러내거든요.

   주주 : 추운 계절을 보내고 있는 이 “구멍들”은 무언가를 길러내지 못하는 공간일 텐데, 이조차 “내키지 않는 물질들”로 가득하다고 말해요. 그러고 보면 이 시엔 상투적인 사랑 표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요. “밀치다”(shove), “삼키다”(swallow), “내키지 않는 물질들”(Disagreeable substances), “구멍”도 물론 그렇고요.


   정민 : 화자는 우리가 돌아갈 곳, 그러니까 원래 우리가 왔던 곳을 눈밭으로 상정했는데, 10연에서 우리 “구멍들” 안에 “내키지 않는 물질” 역시 눈이라고 했어요. 이 눈은 어떤 의미일까요?

   주주 : 눈을 죽음으로 읽어보면 어떨까요. 죽음은 바깥에도 있지만 우리 몸 안에도 있다는 의미로. 우리는 보통 봄이 어떤 시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재생, 재활의 이미지로서 많이 등장시켜왔는데, 엘리엇(T.S. Eliot) 덕에 영미시에서 봄은 무언가를 시작해내는 계절에서 재생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품게 됐죠. 이 시도 그 전통을 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외부와 내부에는 “눈”으로 가득한 “구멍들”이 있고, 그것과 불화하는 와중에 봄이 다가온다면, 그리고 이 순간에 청자를 초대하고 있다면, 이 역설을 어떻게 소화시킬 수 있을까요.

   아선 : 그걸 명쾌하게 설명해내는 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시를 이해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같이 살자”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읽기가 되는 것 같아요. 춥고 외롭고 눈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같이 와 살자.

   정민 : 저도 비슷한데, 제가 이해한 바를 최선으로 말해보자면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우리는 죽어간다. 그렇지만 네가 이리 와서 나와 함께 살면 좋겠다.’ 정도에요.

   지민 : 그래서 분별력 없는 사랑일까요.

   아선 : 분별력 없고 무분별하고 경솔하고 어설프고 다 맞네요.(웃음)

   주주 : 이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화자(인간)가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라서인 것 같아요. 이전 작품들에서는 화자가 이것저것 하며 몸을 움직이고 변화를 상상했잖아요. 이 시에서는 화자가 할 수 있는 일,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같이 살자고 청원하면서도 ‘우리가 함께했을 때 그릴 수 있는 아름다운 미래’? 이런 거 없어요. 보통 그렇잖아요. 우리 같이 콩 볶고 깨 볶고 알콩달콩 살아보자, 내가 다 해줄게.(웃음) 이 화자는 고작 하는 게 바위에 앉아 서로 입속에 도토리를 심는 거예요.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가 굉장히 적게 드러나고, 따라서 인간이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요. 오히려 곧 땅에게 밀쳐질 존재일 뿐이고요.

   아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함께 살아야 하는가, 화자는 청자에게 왜 함께 살자고 하는가, 그 질문이 사랑을 정의해보려는 시인의 시도인가봐요.

   지민 : 약간 다른 말 같지만 저는 이 시 읽을 때 화자가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제가 요새 개인적으로 하는 작업들(생태시 연구)이 인간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들이 아니고, 오히려 비인간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에 관한 것이다보니, 화자를 사람이라고 상정하는 게 약간 낯설기까지 했어요. 제게는 화자가 ‘사람’이기보단 썩을 준비를 하는 무언가로 보이더라고요.

   아선 : (!!!!)

   주주 : 마지막 연을 읽으면 화자가 인간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강력하게 드네요. 계절에도, 땅에도 활유법이 사용되었는데 그렇다면 화자도 인간이 아닌 어떤 다른 자연물일 수 있겠죠. 곧 부식될.

   지민 : 사람이든 뭐든 간에 그 안에서 썩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화자가 그 어떤 자연물이든 자기 자신 안에 썩어가는 구멍이 있다는 게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언제나 자연에서 썩는 행위는 무언가가 분해되어(decompose) 다시 이 세계를 구성하는(compose) 요소들로 살게끔 만드는 동력이니까요.

   아선 : 주어를 인간으로 상정했을 때는 인간 내의 “내키지 않는 물질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가 어려웠는데 화자가 인간이 아닌 어떤 다른 자연에 존재하는 뭔가라면 저 단어가 그렇게 어렵게 이해되지 않기도 해요. 지민의 말을 통해 화자를 인간에서 인간이 아닌 걸로 보게 하는 게 나름 설득이 된 것 같은데, 그럼 우리 인간으로 상정했던 것을 아예 다 바꾸어 읽어야 할까요?

   주주 :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인간의 언어로 쓰였으니까요. 다만 제목에 대해서는 조금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분별”한 건 확실한 것 같거든요.

   아선 : 그럼 제목을 “무분별한 사랑시”로 하죠.


번_역에서_흐르는 말은

총 1분 21초.

   빈센트는 테오에게 말했다. “인생은 수수께끼 같아. 그리고 사랑은 수수께끼 안의 수수께끼지.”라고.


   작업 노트 5

   누군가 제게 사랑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우리를 잡아당기는 중력보다 더 대단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이 대답을 오래 준비해두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물어보진 않아 마음속에만 간직해두었는데 이번 연재를 통해 꺼내놓을 수 있게 되었네요.(웃음) 서로가 서로를 당기는 그 힘은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불가하잖아요. 더하여 당기기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붙들고 유지하는 힘도 필요로 하니까요. 그리고 그 힘의 시작은 시의 첫 행 “이리 와 나와 함께 살자“와 같은 말로 출발하겠지요. 부드러운 권유이자 고백처럼 들리는 이 시는 사랑하는 대상을 계속해서 당겨오는 시인 것 같아요. 그 대상에는 땅과 하늘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고요. 너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계속해서 메꾸고 당겨 ‘사랑’을 피워내는 이 시의 아름다움 가까이 여러분도 가닿으셨기를 바라요. 그리고 지난 연재를 이어오며 함께 서로를 당기고 다양한 말들을 붙이고 심어온 저희 팀원분들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_정민

   몇 년 전 친구에게 어려운 미션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몬드 한 알을 오 분 동안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굴려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뭐든지 안 씹고 바로 삼키는 걸로 저희 집에서 유명하거든요.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통아몬드 초콜릿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래 굴려보았어요. 입안의 감각에 집중하려다 보니까 다른 일을 못 하겠더라고요. 말하거나, 서성이거나, 잠들거나 하지 못했어요. 이 시의 화자는 사랑하는 이가 그에게 오면 서로의 입속에 도토리를 심을 것이라고 말하잖아요. 그 대목을 읽으면서 아몬드 생각이 났거든요. 정확히는 내 입안에 있는 작고 동그란 것에 집중하느라 가만히 멈춰 있던 기억이요. 그래서 그런지 이 시는 묵독할 때 더 좋은 것 같아요. 나와 함께 흐르는 시간을 감각하면서, 이 세상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큰 힘들이 있음을 다시금 새기는 일. 그동안 함께해주신 필진님들 입에도 도토리 하나씩 넣어드리고 싶어요.(웃음) 우리 계속 번역하고 멈춰보고 사랑해요. _주주

   가장 많이 말해지고 흔하고 가볍고, 동시에 그만큼 귀하고 소중하고 어려운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무분별한” 사랑시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냥 보여주는 그 방식이 정말 좋았어요. 서로의 안에 후에 피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심는 것, 환영받지 못하는 그 어떤 곳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꼭 새가 노래하고 새싹이 피어나는 그런 계절이 아니어도 함께할 수 있는 것.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함께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서로를 돌보고 있는지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이번이 마지막 원고니까요. 저는 여기서 무분별하게 사랑을 고백해볼게요. 지난 몇 개월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제 안에 많은 말들을 심어주셨던 필진님들 사랑해요.(하트) _지민

   마지막 원고네요. 이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일단은 그동안 함께 작업했던 날들 너무 즐거웠어서 그게 끝난다니까 속상해서고요. 동시에 이제 더이상 마감할 게 없다니까 속이 시원해서이기도 합니다.(웃음) 근데 진심으로 아쉬워요. 왜냐하면 이렇게 영미시 이야기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시를 찾고 번역하고 읽고, 한 줄 한 줄 같이 뜯어보던 모든 과정과 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고 팀원분들께 꼭 전하고 싶고요. 어딘가에서 우리 또 이런 작업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얼른 뒷풀이 날짜 잡아요.) 마지막으로, 저희가 나누어드린 주제에 대해서 어딘가에서 이야기 나눠주신 독자분들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당신이 어디에 계신지, 무얼 하고 계시는지 알 수 없지만 글로나마 마음껏 “무분별”해도 되는 사랑을 전해봅니다. 우리 어딘가에서 다시 꼭 연결되기로 해요! _아선

   *Thanks to Ada Limon, Donika Kelly, Muna Abdulahi, Roxanna Bennett and John Yau for allowing us to translate and share their amazing works with Korean readers. Thank you to editor Koeun Lim and Jieun Nam, mentor Jaeyoun Ha, and the team at 《View》 for their time, work, and bravery in carrying on this ‘HaDa’ project. Without the support of the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we would not have had the space to write on and about English-Korean poetry translations. A special thank-you to professor Eun-Gwi Chung, who has always encouraged us and read our works with care and honesty.



흡사

영문학 전공자 박선아, 박민지, 반주리와 김민정으로 이루어진 시 번역 그룹입니다.
언어와 이미지로서의 번역을 통해 다음 역으로 나아갑니다.

2023/02/28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