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포럼’은 장르를 불문한 예술에서 ‘위험을 감수하고’라는 수식을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어휘 주변에 가까이 두기로 한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의 사업입니다. ‘위험포럼’은 모둠을 이룬 창작자들이 함께 ‘자발적 워크숍’을 진행하며 공동창작을 위해 달려가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웹진 《비유》에서 소개할 ‘위험포럼’은 이 글과 다섯 모둠의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한 매개자와 작가들의 글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문학의 범주에서 ‘위험포럼’을 소개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만나고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개방된 형태로 공유될 수 있기를 바라서입니다. ‘위험포럼’은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의 입주 작가 다섯 명과 함께 신당창작아케이드, 연희문학창작촌, 서울무용센터의 일부 예술가들 그리고 기획자가 전략적으로 동행을 요청한 다섯 명의 예술가와 함께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위험포럼’ 전체 참가자가 모여 크게 둘러 앉아 있다. 사람들은 서찬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날 라운드 토크에서는 공동창작을 할 때의 어려움과 문제들, 그리고 창작 워크숍을 이끄는 방안들을 함께 나누었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위험포럼 2차 라운드 토크 ‘공동창작이란?’ 현장

장애인을 만나면 일단 착해져야 합니다. 말을 조심하게 되거나 안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시선 처리의 불편함을 느끼거나 시혜적인 태도로 장애인을 대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시각은 사회에서 ‘장애’라는 어휘를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질문하기 전에 생각했나요?’라는 질문은 질문자에게 큰 부담을 줍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마련한 사회 장치로서의 밈이지만, 이는 질문자가 뭘 모르고 있다는 전제이기도 하고, 낯선 상황을 맞닥뜨린 이는 단박에 역사를 관통해야 하는 부담을 받습니다. 부담스러운 만남에는 반대급부의 꺼풀이 끼기 마련이죠. 사회 속에서 ‘장애’는 ‘트리거 워닝’이라는 우려와 맞물려 난처, 곤란, 조심, 부담 등 부정적인 단어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예술의 범주 앞에 서봅니다. 예술은 시도, 도전, 상상, 개진 등 확장하는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예술가가 장애를 가졌을 때는 어떨까요? 장애가 전면에 있을 경우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호혜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도전을 하기 전에 극복이 되고, 개진을 하기 전에 인정이 따릅니다. 잘못된 방식이죠. 실수할 기회와 바로잡을 기회를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돕는다는 명목으로 또는 분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 따라 ‘장애’를 세세히 구분하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구분의 한계점을 만나게 됩니다. 인간은 복잡하니까요. 분류를 명확히 하다보면 처음에 의도했던 바와 멀어지기 일쑤입니다.
  ‘위험포럼’은 공동창작의 과정에서 ‘장애’나 ‘예술’ 혹은 ‘함께한다’는 의미가 실제로 작업하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관찰하고 발견한 후 이야기 나누는 움직임입니다. 참여자는 사회가 주입한 관성을 자기 안에서 찾고, 출구를 마련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위험원칙’을 세웠습니다. ‘위험원칙’은 사업으로 만나 함께해야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솔직할 수 있는 가상의 구역을 만든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경험이나 통찰이 필요한 이들에게 오류에 도달하거나 직면할 기회를 주기도, 나의 객관적인 상태를 확인하게도 합니다. 예술의 범주에서도 ‘위험원칙’은 작동합니다. ‘위험원칙’은 동료들과 아름다움에 관한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미의 사회정치적 근거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위험포럼’은 서너 명의 멤버, 다섯 모둠 체제로 2023년 8월부터 11월까지 넉 달 동안 진행됐습니다. 각 모둠 구성원의 창작주기나 생애주기는 모두 달랐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상황이나 입장도 모두 다릅니다. 이를 생각하면 ‘공동창작’은 다소 무리한 계획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편이나 손해 따위로 대변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전환의 틈을 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동행하는 창작자들은 ‘위험원칙’을 수행해보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처음에는 ‘위험원칙’을 즐기듯 서로를 탐색하기도, 원칙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질문을 하거나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타인이나 자아에 대한 질문도 일어났습니다. 한 달이 지나니 구성원의 조합에 따라 모둠마다의 특징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의견이 다르기도 했고 개별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동기나 목적이 다 달랐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이는 제도권이 제공한 창작 지원 구조 안에서 우리의 활동이 사업을 위한 사업에 그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술가들의 개인 작업을 조합하고 디자인하는 것 역시 공동창작이지만 ‘위험포럼’이 추구하는 바는 개별 세계관의 조우입니다. 사업의 중턱을 넘어서자 공동창작을 위한 구체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사업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저는 서울장애예술센터 작가들을 처음 만났던 시점에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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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소개할 모둠은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의 김진주 작가가 속한 모둠입니다. 김진주는 구족화가협회 회원으로 발로 펜을 쥐고 천천히 드로잉을 합니다. 작가는 주로 식물이나 꽃을 그리고 짧은 문구를 드로잉과 함께 남깁니다. 드로잉마다 작가의 시간과 수고가 느껴져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작가님 빠르게 그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녀는 숨겨두었던 작업을 꺼내어 보여주었습니다. 단조로운 색의 드로잉과는 다르게 다양한 색채로 자신의 감정을 상상의 세계로 펼쳐낸 거친 드로잉들이 쏟아졌습니다. “너무 못 그렸죠?” ‘못 그린다’라는 말은 저를 자극했습니다. 현실세계에서 부딪혔던 작가의 어려움이 상상의 이야기에 버무려지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면 글도 쓰세요?” 그녀는 제게 몇 개의 문서파일을 보내주었습니다. 파일 안에는 먼지가 주인공인 시놉시스가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함께 사업에 참여하는 동료들에게 작가의 작업을 공유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작가가 말합니다. “그걸 공유하셨어요?” 그녀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후 작가는 작업을 편안하게 공개하고 다른 작가들과 고민을 나누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저도 당황했지만 지나고 보니 작가에게 감사한 일입니다. 완성도 있는 시놉시스를 써보고 싶다는 김진주 작가를 연희문학창작촌의 신영은 극작가, 그림을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김민이 작가와 연결했습니다. 김진주가 신영은을 만나 시놉시스를 더 전문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를 바랐고, 김민이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또다른 상상력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김진주 작업실 내에서 김진주, 신영은, 김민이의 자발적 워크숍이 열리고 있다. 가운데에서 김진주는 의자에 앉아 발을 작업대에 올리고 그림을 그린다. 김민이는 우측에서 김진주, 신영은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있고, 신영은은 김진주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띠고 있다.
김진주, 신영은, 김민이 모둠.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위험포럼’ 자발적 워크숍

두번째는 박유석 작가의 모둠입니다. 박유석은 기계적인 빛을 이용해 시각적인 일루전을 만들어냅니다. 작가는 그간 실험 음악가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선보여왔습니다. 기존 작품이 주로 협업이었기 때문에 박유석 작가에게 주도적으로 전체를 아우르고자 하는 욕구가 없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작가님이 연출한 경험은 없었나요?” 그는 십여 년 전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거대한 천이 무대 전체를 감싸고 무용수 두 명이 천을 뚫고 나와 움직이며 빛과 어우러지는 공연이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영상 속 공연은 작은 규모가 아니었고 작품의 내용을 보고 작가의 정서나 생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안무가와의 작업을 바랐고, 저는 특정한 물리적 형태의 결과물을 상상했습니다. 하나의 박자를 분절하면서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는 아하무브먼트의 하지혜 안무가와 섬유에 성실하게 패턴을 새겨 넝쿨이 증식하는 듯한 작품을 보여주는 안은선 작가를 빛으로 만들어내는 생명, 숨, 제한된 공간, 움직임 등을 만들어내는 박유석 작가와 연결했습니다. 작가의 주요한 매체인 빛과 색채 그리고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는 차지량 작가와도 충분히 공감대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기획자가 가진 가느다란 연결고리로 만나게 된 작가들은 편함과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했고 서로의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다른 장르의 창작자들과 작업 방법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면서는 자신이 다루지 않는 장르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하지혜 안무가는 ‘썬더볼트’라는 모둠명을 제안했고 구성원 모두 동의했습니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박유석 작업실 내에서 박유석, 안은선, 차지량, 하지혜가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부풀린 검정 풍선을 만지고 있다. 작가들은 검정 풍선을 다른 물체로 상상해보고 대상화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유석, 안은선, 차지량, 하지혜 모둠.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위험포럼’ 자발적 워크숍

송상원 작가가 속해 있는 모둠은 ‘곤란포럼’입니다. 대답하기 곤란할 때 말을 얼버무리거나 ‘이거 참, 곤란하네요’라고 말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지어진 모둠명입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여러 가지 실수나 시도를 해보자는 ‘위험포럼’의 취지는 작가에게 곤란하게 여겨졌습니다. 송상원 작가는 몇 년 전 한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서찬석 작가를 처음 만났습니다. 워크숍에 함께 참여했던 동료를 지속해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작가에게 안정감을 주는 듯 보였습니다. 이들은 실로 텍스트를 꿰매며 수행적 작업을 하는 이현화 작가, 사람을 관찰하고 글 쓰는 걸 즐기는 이주현 작가와 함께 모둠을 이루었습니다. 서로의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송상원 작가는 거침없이 감상평을 내뱉었습니다. 마감을 하지 못한 작가에게는 내용과 관계없이 최하점을 주었습니다. 다른 이의 작품에 대해선 대체로 좋지 않게 평했지만 본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작가들은 송상원 작가의 솔직함에 놀랐습니다.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가 뿌리가 썩은 장미 그림을 보여주며 “장미가 예쁘지요? 하지만 뿌리는 어둡네요. 아, 이게 풍자 작품을 해버렸네요. 이제 보니, 이 대목에서 딱 걸렸지만.” 하고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작업에 대한 권태나 한계를 느껴온 작가들은 몇 주간 함께 주제를 정하고 새로운 작업을 하며 송상원 작가의 거침없는 비평을 들었습니다. 송상원 작가 또한 항상 평가받는 입장에서 평가를 하는 입장에 놓이니 형식적인 말들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창작에 있어 비평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작가들은 무의미한 비평을 관두고 하고 싶었던 일을 찾고 그것을 함께하기로 합니다. 케밥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전시를 보러 미술관 나들이를 가기도 하면서 말이죠.

송상원, 서찬석, 이주현, 이현화 작가가 이태원역에서 만나 케밥을 나누어 먹고 리움미술관 전시를 함께 관람했다. 작가들은 리움미술관 2층 라운지에 둘러앉아 있고, 태블릿으로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송상원을 서찬석, 이주현, 이현화가 지켜보고 있다.
송상원, 서찬석, 이주현, 이현화 모둠.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위험포럼’ 자발적 워크숍

유다영 작가는 앞으로 전개할 작업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저는 해외진출을 꿈꾸는 작가에게 이미 국제적 경험이 많은 니키노, 이나래, 임미정 작가와의 만남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니키노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수학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역 상황에 맞추어 아크릴로 대체해 작업을 합니다. 이나래 작가는 프랑스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장애지원센터에 있는 작가들과 활동합니다. 임미정 작가는 프랑스에 거주하며 글을 쓰는데 작가들과 교류하고 싶어 연희문학창작촌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성만으로 모둠이 구성되다보니 솔직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보다 쉽게 오갑니다. 이들은 학업, 연애, 결혼, 이주, 육아 등 삶의 흐름 속에서 경험했던 것을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온 궤적을 교차시켜봅니다. ‘위험포럼’은 시작부터 ‘장애’라는 단어를 전면에서 작동시켰습니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의 작가와 협업해보고자 하는 작가들을 모셨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작가들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장애’를 명확히 하고자 했습니다.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고 숨어 있을 수도 있는 장애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불편한 시간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안정된 구분을 위한 위험한 구분짓기는 작업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장애가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 국내에 있는 사람과 해외에 있는 사람이 구분되는 현상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반면 구분지어진 이는 자신에 대한 표면적인 구분짓기에 대해 반문하기도 합니다. 긴 시간 다른 문화권을 오가면서 만들어진 이방인의 몸과 그 몸에 적체된 제어 불능했던 삶의 변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장애로 규정하고 싶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작가들이 함께하는 과정은 ‘사회적인 키워드’로 정의되는 단어가 실은 얼마나 단면적인지 체감하는 과정이라 하고 싶습니다. 이 시간이 공동창작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서울연극센터 세미나실에서 여섯 시간 동안 유다영, 니키노, 이나래, 임미정 작가들의 릴레이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그들은 한 시간 반씩 릴레이로 글을 썼고, 책상 위에 각자가 가져온 소품과 창작의 재료를 올려놓고 자유롭게 활용하며 영감을 얻었다. 이 화면은 전체 과정을 녹화하고 편집한 결과물 〈내가 살아 있었을 때〉의 스틸 샷으로, 니키노와 임미정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고 있다. 스틸 샷의 우측 상단에는 창문 형식으로 글이 써 내려가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유다영, 니키노, 이나래, 임미정 모둠.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위험포럼’ 자발적 워크숍

마지막 다섯번째는 라움콘 모둠입니다. 라움콘은 양치질이라는 말입니다. 몇 년 전 편측마비가 생긴 Q레이터의 웅얼거림으로 탄생한 송지은 커플의 모둠명이기도 합니다. 영상을 만들고 조각을 하는 최황, 시를 쓰고 퍼포먼스도 하는 김해솔, 몸을 분절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주희가 함께 모둠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생활하던 당시 Q레이터는 사업을 기획하고 지원금을 신청했습니다. 5명의 편측마비 환자들이 좀비인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 면접에서 심사위원은 “이걸 다른 장애인이 보면 어떻겠어요?”라고 질문했고, 작가는 상관없다고 답했지만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Q레이터는 아쉬웠던 마음을 동료들에게 털어놨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좀비 이야기에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구성원들은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대상화해보라고 부추기는 Q레이터가 낯설고 웃기기도 했습니다. ‘내가 왼쪽이 마비니까 오른쪽이 마비인 장애인을 섭외하면 완벽하겠다’ ‘입원실 동기들을 불러다가 좀비 역할을 시키면 정말 그럴싸할 거야’라는 등의 말은 장애라는 단어의 무게를 덜고 그를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을 만들어냈습니다. 모둠을 함께 이루는 작가들은 ‘장애인 좀비는 어떻게 걸을까? 빨리 걸을까, 천천히 걸을까?’라는 질문에 천천히 걸으면 좀비가 아닌 이유를 대기도 하고,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어떻게 될지 현재 한국 사회를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들은 좀 더 본격적으로 공동창작물을 완성하기 위해 구성원별로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서울무용센터에서 열렸던 주희의 안무 워크숍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각자의 걸음걸이와 몸을 쓰는 서로의 방식을 보며 웃기도 하고 동료의 몸에서 창작의 단서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서울무용센터에서 주희의 주도하에 움직임 워크숍이 진행됐다. 모둠 구성원들은 서로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봤다. 연습실에서 가까이 모인 일곱 명의 사람은 주저앉은 듯한 낮은 자세로 움직이고 있다.
라움콘, 김해솔, 주희, 최황 모둠.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위험포럼’ 자발적 워크숍

기획자라는 몸을 통해 발화된 ‘위험포럼’의 단상은 여기까지입니다. 결과를 예상하고, 모둠을 구성하고, 설득하며 진행해왔지만 지금의 상황은 제가 처음 상상했던 것과는 정말 다릅니다. 공동창작의 안과 밖에서 ‘위험포럼’의 관찰자가 짚어내지 못한 위험한 순간들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작가들을 반응시켰을 겁니다. ‘위험포럼’은 자신에게 어떤 불리함이 있을 것 같더라도 비판적인 시각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내팽개치지 않길 권장했습니다. 어떤 과정을 겪고 있을지언정 작가들은 다소 낯선 기획의 틀 안에서 제시된 메시지를 안고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면 이 열정은 현실의 빠른 속도나 무기력함 또는 바쁜 일정과의 힘겨루기가 필요했습니다. 자발적 워크숍에 시간을 분배하고 생각한 만큼 기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또 단순하게 창작을 제공하려던 입장에서 공동창작의 무목적성을 찾아야만 하는 데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작가들은 이미 만나게 되었고, 공동창작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에게 궁금증을 갖고 공통의 주제를 찾아가거나, 다른 이에게 비추어 나를 돌아보며 새로움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험포럼’의 다음 원고에서는 각 모둠이 만들어낸 질문이나 결과물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이지혜

문화매개실천연구소 대표. 작가와 전시공간을 사랑하는 큐레이터다. 작가들의 신경다양성에 관심을 두고 지원하고 있다. 플레이스막 큐레이터, 경희대학교 강사 등으로 활동했으며 사단법인 로아트 설립을 주도했다. 문화매개실천연구소는 정체성과 진정성, 대중성과 예술성, 정책과 산업 사이에서 보다 자유로운 문화예술 방법론을 찾는 연구자 모임으로 파주 매개자 포럼 ‘문발당’과 수원 창작스튜디오 ‘완보작업실’을 운영한다.

그릴 수 없는 것을 쉽게 쓰고 싶습니다.

2023/12/20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