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4화 왜 안 될까?
1. 짐작과는 다른 일들
장은정 : 안녕하세요. 저는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 기획자로서 오늘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네 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방을 구하는 시도를 해본 후에 모인 자리인데요. 그동안 다들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곽시원 : ‘어떤 공간이라도 찾자’는 마음으로 최대한 기대치를 낮췄는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예상 밖으로 올해 겨울이 너무 추웠다는 것입니다.
(일동 웃음)
최현진 : 도서관에 작업실을 구하기 전 호텔에 묵은 적이 있어요. 친구가 하는 말이, 호텔 관리자에게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보라는 거예요.
일동 : 어떡해요. 민망해.
최현진 : 유명 연예인을 협찬하는 곳이었거든요. 친구 말은 ‘너도 작가니까 가능하지 않겠냐’는 거였죠. 결국 “실은요, 저는 작가인데요……” 하고 말을 꺼냈는데 관리자분이 굉장히 반가운 표정으로 되묻길 “와, 정말요? 드라마요? 아니면 영화?” 하시더라고요. 동화작가라고 대답하자 관리자분은 “아, 네……” 하고는 별다른 말씀이 없더라고요. 말도 못 꺼냈어요.
임현 : 저는 작업실로 마음에 쏙 드는 카페가 있었어요. 제안을 해볼까 싶었는데, 아무리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봐도 카페 사장님 입장에서 10만원에 저를 위해 테이블을 배정하는 게 손해일 것 같더라고요. 설령 어렵게 말을 꺼낸다고 해도, 만약 제안을 거절당하게 되면 이 카페에 손님으로서도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았어요.
장은정 : 아, 그럴 수 있겠네요. 프로젝트 ‘이후의 삶’이라는 것이 있으므로.(웃음) 여러 장르 중 얼마나 폭넓은 수용자 층을 가졌는지에 따라서, 작가의 제안이 사회 속에서 받아들여질지 그 여부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최현진 :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업실을 금방 구했다는 것이 제게는 가장 예상 밖의 일이었어요. 또하나는 주변 지인들에게서 저희 연재 중 3화가 재미없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는 거예요.(웃음) 갑자기 너무 무거워졌다고 하더라고요.
장은정 : 3화는 각자 자기만의 방을 구하러 다닌 경험을 담았습니다. 네 분의 경험과 시도가 글 안에서 개성적으로 드러나리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네 분의 글이 놀랍게도 비슷했어요.(웃음)
백은선 :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하는 네 명이지만, 방 구하기를 둘러싼 주어진 조건이 동일해서인 것 같아요. 각자의 개성이 무색할 만큼 현실적인 조건은 똑같았으니까요.
곽시원 : 또 예상 가능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방을 구하러 다녔지만 역시 구할 수 없었다’는 예상대로 답안이 나왔어요.
최현진 : 제가 도서관에 작업실을 구한 것도 독자에겐 그리 놀라운 답안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도서관 정도야 뭐……’ 하고 예상 가능한 범주에 있으니까요.
백은선 : 그럼 우리의 실패가 왜 독자들에겐 즐거움이 되지 못했을까요? 뻔히 실패할 것을 알지만 그걸 보면서 느끼는 재미도 있을 텐데 그것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아요.
장은정 : 기상천외한 실패가 아니라 예상 가능한 방식의 실패였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드라마틱한 구성을 만들어내기에는 현실적, 심리적 장벽이 높은 것 같아요. 부동산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저희에겐 큰 도전이었죠.
백은선 : 처음엔 저마다 원하는 작업실의 조건이 달랐잖아요. 그런데 10만원이라는 조건을 가지고는 달성하기 어려우니까 소극적인 방식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어요. 만약 1억씩 주고 “자,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해봐”라고 했다면 과정이나 결과가 달라졌겠죠. “하고 싶은 걸 해봐, 단 10만원으로.” 우리 프로젝트는 전자의 조건이 후자에 가로막힌 셈이었어요.
장은정 : 기획을 하면서 10만원이라는 조건을 내건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번째는 예술인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외국의 사례에서는 그 도시의 평균 월세의 1/5을 예술인의 월세로 책정했더라고요. 서울의 대학가 월세 평균이 50만원인데, 그중 1/5이 10만원이었어요. 두번째는 한국에서 예술인들이 자신의 예술 작업으로 벌어들이는 평균 수입이 17만원이라고 해요.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 중 일부를 자신의 작업을 위해 재투자하려고 한다면, 10만원 정도가 적합하다고 봤고요. 즉 10만원은 작가가 벌어들이고 있는 현실적 금액이기도 하지만, 작가들이 사회 속에서 글을 쓰기 위해 구성원들이 동의해줘야 하는 목표 금액으로서 상징성을 가지리라 생각했던 거죠.
백은선 : 말씀하신 외국의 사례는 10만원으로 얻을 수 없는 공간을 국가 및 공공기관의 지원을 통해 예술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일 텐데, 우리나라엔 그러한 경우가 없어요.
임현 : 연희문학창작촌, 21세기문학관 등이 있긴 하지만, 단기 입주만 가능해요. 몇 년씩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장은정 : 네, 현재 국가 및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공간은 사실상 예술인들에게 장기적인 도움은 안 되고 있죠.
곽시원 : 우리 프로젝트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건 서울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지방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최현진 : 네, 제가 가장 먼저 작업실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서울이 아니라 안양이라서 가능했을지도요.
장은정 : 대다수의 작가들이 지방으로 갈 수 없는 이유는 글쓰기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일 텐데요. 부업을 해야 생활비를 버는데, 생활비를 벌려면 일자리가 모여 있는 서울에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요.
곽시원 : 지방에서 일자리를 만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작가들이 모여 수업을 하는 학교를 연다든지. 그럼 돈도 벌고, 글도 쓰고.
백은선 : 그런데 지방에는 학생이 없어서 학교가 문을 닫아요. 우리가 선생으로 가봐야 가르칠 학생이 없을 수 있어요. 만약 그런 시도가 성공하려면, 서울에 인구가 집중된 현상을 퍼트릴 수 있는 국가의 개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술인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겨우 일자리를 자체적으로 만들어낸다고 한들 생활이 가능한 월급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임현 : 근데 전 나쁜 생각이 먼저 들어요.(웃음) 작가들이 지방으로 가서 그 일대가 활성화되면 집값이 오르면서 작가들이 쫓겨나지 않을까요?
최현진 : 작업실을 구하러 다니면서 든 생각이 ‘국가는 왜 작가에게 봉사를 강요하지?’였어요. 지역사회 안으로 예술가가 들어가려고 하면 재능 기부나 봉사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도서관에 특강을 오시는 분들을 보면 전문가인데도 왕복 차비 정도의 급여를 받더라고요. 예술고등학교 같은 경우에도 낮은 급여로 강사를 고용하고요. 공공기관, 사립학교 등 적절한 대우를 받는 경우를 못 봤어요.
장은정 : 근본적인 문제는 원고료가 너무 낮다는 점인 것 같네요. 콘텐츠에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일까요?
백은선 : ‘어느 시인의 시집을 읽어야 하는데 올려줄 사람 있느냐’는 요청을 SNS에서 본 적이 있어요.(웃음)
최현진 : ‘작가 너희들은 좀 가난해도 되는 거 아니야?’라는 거.
곽시원 : ‘배고파야 진짜 예술하지!’라는 거.
임현 : 잔고가 많을 때, 글이 제일 잘 써집니다.
(일동 웃음)
2. 끊어진 다리 사이에서
장은정 : 각자가 원하는 ‘자기만의 방’과 10만원이라는 현실적 조건 사이엔 큰 격차가 있는데, 개인이 혼자서 이 격차를 메우려고 하니까 힘든 것 같아요. 끊어진 다리 사이에 무엇이 있으면 가장 큰 도움이 될까요?
백은선 : 크게 보면 ‘공공기관의 개입이나 보호’가 아닐까요.
곽시원 : 작가들이 글만 써도 생활이 될 만큼의 ‘높은 원고료’가 가장 도움이 되겠죠. 원고료가 낮게 책정되는 이유를 출판시장이 작기 때문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요. 한편으론 이런 의문이 들어요. 읽는 사람이 많아져야 재밌고 좋은 글이 많이 나오는 걸까요, 아니면 좋은 글이 있어야 읽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까요?
백은선 : 넷플릭스는 이용자들의 취향을 반영해서 제작에도 반영해요. 사용자의 기호에 맞추다보니 점점 더 자극적으로 가는 콘텐츠의 경우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글도 그렇게 더 쉽고 재밌게 쓰는 것만이 옳을까요?
장은정 : 독자가 적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 같아요. 작품 이외의 요소는 없을까요?
곽시원 : 또 책을 읽는다는 건 투자한 시간에 비해 얻는 즐거움이 적은 것 같아요. 유투브 영상도 3분을 넘기면 길고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고 해요.
백은선 : 우리 사회는 독자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 같아요. 입시 과목으로 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문학에 대한 흥미를 떨어트리기 위한 과정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렇게 문학을 배워서 성인이 된다고 한들 그들이 독자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임현 : 넷플릭스 이용자는 독서 인구이기도 해요. 자신의 기호를 제작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즐기는 이용자는 대체로 독서 취향을 가진 독자들이기도 하거든요. 넷플릭스와 문학, 책은 대척점에 있지 않아요.
장은정 : 유투브 이용자는 어떨까요?
임현 : 유투브를 즐겨 보는 사람들도 독서의 긍정적인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학생이고 직장인이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데 어떻게 독서에 시간을 할애하겠어요. 만일 남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자연스럽게 독서 인구가 늘겠죠.
장은정 : 독자가 적은 이유가 크게 세 가지로 나온 것 같아요. 첫째, 독자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적어서. 둘째, 영상 매체에 비해 즉각적인 즐거움을 얻기 어려워서. 셋째, 저녁 없는 삶으로 인해 독서할 시간이 부족해서. 이 세 가지가 별개의 이유 같지만 한편으로는 이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임현 : 만일 ‘건강한(?) 문학계’라고 하는 것을 상정할 수 있다면, 독자의 기호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소신껏 쓸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한 문학’이라고 여기는 입장과, ‘독자가 있어야 작가도 있는 거지 아무도 읽지 않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라고 반박하는 입장이 항상 공존하잖아요. 두 입장이 상충하는 것 같지만 실은 상호보완적이죠. 독자가 작품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은정 :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 밤 8~9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하는 사람에게는 평일 여가 시간은 두세 시간이 안 될 거예요. 페이스북이나 유투브를 보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낮 동안의 업무로부터 분리되는 휴식일 수 있겠죠. 그런데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작가로 데뷔한 후에 신인에서 기성으로 문단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익히고 발달시켜야 하는 감각은 직장인들이 모였을 때 나누는 이야기들과 너무 다른 것이 아닌가. 작가들이 세상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작가들이 속해 있는 환경이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며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임현 : 소설의 경우는 그런 것 같아요. 신인 소설가들의 경우, 단 한 편이라도 잘 쓰지 못한 채로 발표하면 소설가로서 지면이 끊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요. 어떤 문학이 좋은 문학인지는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 기준이 있는 거죠. 제 경우는 기분이 좋거나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상태일 때는 소설이 안 써져요. 그런데 이때 소설이 안 써진다는 건 문단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소설을 쓰기에 적합한 정서 상태가 아니란 뜻이죠. 그렇지만 저도 재밌거나 밝은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건 이 소설이 수용될 것 같은 지면에게만 발표를 하게 되더라고요.
장은정 : ‘자기만의 방을 왜 이렇게 구하기 힘들까’를 분석하다보니 낮은 원고료, 한국 출판 시장의 규모, 성인 독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문학교육, 독자의 삶과 작가의 삶 자체의 괴리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다소 멀리 간 것 같이 보이지만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을 모색하는 데 있어 이런 다양한 한계들을 의식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앞으로의 계획들을 이야기해볼까요?
_다음화에 계속 됩니다.
작가들
곽시원(극작가), 백은선(시인), 임현(소설가), 최현진(동화작가)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