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퀴어: 우리는 어디서든
7화 그러나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퀴어문학 앙케이트
올해 봄은 유달리 날씨 변화가 심했다. 무척 따듯하다가 폭설이 내리기도하고, 일주일 내내 여름만큼 따듯하기도 했다. 5회에 걸친 ‘읽는 퀴어’ 세미나가 진행된 날들은 다행히도 대체로 날이 맑았지만, 소풍가는 날을 기다리듯이 매일매일 비나 눈이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었던 읽는 퀴어는 춘천, 청주, 전주, 창원, 제주까지 다섯 번의 세미나를 모두 마쳤다.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퀴어 당사자들을 만나고,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여기서 읽고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다섯 번의 만남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 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은 만나고 새로운 장소를 찾는 일은 보물찾기 같았다. 하지만 제한된 장소와 제한된 시간은 항상 아쉬웠다. 홍보가 부족했던 탓인지 참여자 없이 세미나가 진행되기도 했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다른 목마름이 생겼다. 다른 도시, 다른 퀴어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더 많은 퀴어 당사자의 독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더불어 읽는 퀴어 프로젝트를 통해 퀴어문학에 대한 수량화된 자료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났다. 퀴어문학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 당사자 독자들은 퀴어문학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퀴어문학 앙케이트를.
*
무지개책갈피의 퀴어문학 앙케이트는 2018년 3월 12일부터 4월 11일까지 온라인(구글폼)을 통해 진행했다. 스스로를 퀴어로 정체화하는 총 75명의 독자들이 참여했다. 총 22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설문지는 퀴어문학에 접근하는 방법, 퀴어문학을 수용하는 데 자주 사용하는 매체, 퀴어문학에서 당사자성의 중요성, 좋아하거나 불편한 퀴어문학 등의 내용을 다루었다. 그중 11개 문항을 선별해 여기에 소개한다. 전체 앙케이트에 대한 결과는 이후 종이 출력물로 만들어질 예정이며, 무지개책갈피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1. 퀴어문학을 찾아서 본 적이 있습니까?
2.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퀴어문학을 선호하십니까?
3. 한국에 퀴어문학이 많다고 느낍니까?
퀴어 당사자들은 퀴어문학을 찾아볼까? 이에 대한 대답은 ‘YES!’인 것 같다. 퀴어문학을 직접 찾아본 적 있냐는 질문에 ‘있다’는 답변이 93.3%로 ‘그렇지 않다’는 답변보다 더 많았다.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퀴어문학을 선호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이 70.7%로 많았지만,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다’거나 ‘생각해본 적 없다’는 답변도 30%를 차지했다. 현재 한국에 퀴어문학의 수에 대해서는 ‘매우 적다’ 혹은 ‘적다’로 대답한 비율이 82.7%에 이르렀다.
4. 퀴어문학에 있어 당사자(로 커밍아웃한) 작가가 필요하고 느끼십니까?
5. 당사자 작가의 책을 읽을 때 더 편함을 느낍니까?
6. 평소 퀴어문학을 찾거나 퀴어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는 무엇입니까?
다음은 당사자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퀴어 독자들은 당사자로 커밍아웃한 작가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 많았다(70.7%). 이는 뒷부분에서 설명될 퀴어의 재현 방식과도 연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퀴어 문학에 있어 당사자 작가가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30%에 이른다는 점 역시 주목해볼만 하다. 넓게 보면 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오랜 논쟁과 잇닿는 문항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질문은 당사자 작가의 책을 읽을 때 더 편함을 느끼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특별히 의식한적 없다’ 혹은 ‘읽어본 적 없다’는 대답이 57.3%였다. 그러나 ‘그렇다’(37.3%)와 ‘아니다’(5.3%)의 차이를 볼 때, 이러한 결과는 현재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작가의 수가 압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하는 작가 중 커밍아웃한 작가의 수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적다.
한편 퀴어 당사자가 퀴어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매체로는 예상대로 온라인이 가장 비중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흥미로운 점은 비수도권 거주 응답자의 경우 83.3%(총 30명 중 25명이 해당)가 ‘온라인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대답한 반면, 비수도권 거주 응답자의 경우는 68.9%(총 45명 중 31명이 해당)가 온라인을 통한다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수도권의 경우 온라인 다음으로 ‘대학 중심의 모임’ ‘인권 단체 중심의 모임’ ‘문학 단체를 통한 모임’ ‘사적인 모임’ 등이 제시된 반면, 비수도권의 경우 ‘인권 단체 중심의 모임’ ‘대학 중심의 모임’ ‘사적인 모임’ 순으로 언급되었다.
7. 문학 행사를 위해 거주하는 도시를 벗어나 타지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8. 퀴어 행사를 위해 거주하는 도시를 벗어나 타지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9. 출판과 퀴어문화가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느끼십니까?
문학 관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타지에 가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26.7%, 퀴어 관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타지에 가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37.3%로 퀴어 당사자들은 퀴어 행사에 대해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퀴어 행사가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개최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응답자가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답변을 살펴보면, 수도권 거주 응답자는 타 지역 문학 행사에 가본 경우가 22%, 타 지역 퀴어 행사에 가본 경우가 35%였다. 비수도권 거주 응답자는 타 지역 문학 행사에 30%, 타 지역 퀴어 행사에 40%가 가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수도권 거주자보다 비수도권 거지주가 타 지역으로 이동한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출판과 퀴어문화가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중 78.7%가 그렇다고 느꼈다(‘매우 그렇다’ 44%, ‘그렇다’ 34.7%).
*
다음으로는 주관식 문항에 대한 응답을 공개한다. 국내 퀴어문학의 좋았던 점과 불편한 점에 대한 응답으로, 퀴어 당사자들이 ‘지금, 여기’의 퀴어문학을 읽고 느낀 감상을 엿볼 수 있다. 본 문항은 주관식 답변이었으므로 구체적 수치를 나타내기는 어렵지만,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을 순위 없이 공개한다.
국내 퀴어문학을 향한 긍정적인 감상평으로 ‘문화가 같아서 이해되는 면이 많다’ ‘한국에 있는 퀴어문화에 대한 간접경험이 가능하다’ ‘서술이 아름답다’ ‘퀴어가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한국이라는 시공간적 토대가 같음에서 오는 안정감, 경험 등이 좋았던 부분으로 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국내 퀴어문학을 접하면서 불편하게 다가왔던 점이나 한계라고 느껴지는 점으로 언급된 것은 다음과 같다. ‘비극적인 결말,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가 많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내용이 많다’ ‘다양한 퀴어를 드러내지 못하고, 게이·레즈비언 정체성 중심의 서사가 많다’ ‘퀴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소비적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퀴어 베이팅 포함)’ ‘수가 적고 찾아보기 어렵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퀴어 독자들의 응답 속에는 퀴어문학이 퀴어의 삶의 모습을 실제적으로 담아내기보다는 소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이 보였다. 또한 과도한 폭력과 착취 등과 연관하여 퀴어 캐릭터를 드러내는 점, 특정 정체성 중심의 서사 역시 불편한 지점으로 제시되었다. 이는 더 많은 퀴어 당사자 작가의 작품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까닭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겠다.
*
끝으로 2018년의 퀴어 독자들이 좋아하는 책을 알아보았다. 국내, 해외 작품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앞에 소개한 문항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 언급된 작품을 순위 없이 소개한다.
이어서 퀴어 독자들이 이야기한 해외 작품도 살펴보자.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원작 소설인 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메리언 데인 바우어를 포함한 13명 작가의 단편을 묶은 『앰 아이 블루?』와 줄리 앤 피터스의 『너를 비밀로』도 자주 언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전으로 불릴만한 사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 역시 여러 번 언급되며 퀴어 당사자 독자들에게 여전히 읽히고 있음을 증명했다.
*
읽는 퀴어 앙케이트는 ‘퀴어 당사자 독자로서 느끼는 퀴어문학’에 대해 다양하고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당연하지만 퀴어로 묶여 불리는 ‘우리들’사이에도 수많은 결이 존재한다. 하물며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문학에 있어서는 누군가에게 좋은 작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읽는 퀴어 프로젝트는 독자의 거주 지역을 하나의 결로 보고 그것을 붙든 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거주 지역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느슨한 것인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앙케이트 결과에 담겨진 독자들의 생각은 거주 지역이라는 조건만으로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희미한 것들 중에서도 몇 가지 빛나는 것들이 있었다. 퀴어 당사자 독자들이 있다는 것. 퀴어의 삶은 일시적이고 ‘힙’한 것이 아니라 문학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의 삶처럼, 각자의 서사를 지닌 채 계속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문학을, 더 많은 퀴어문학을 원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읽는 퀴어 앙케이트는 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앙케이트를 작성할 때부터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던 문제들도 있다. 개인의 경험이 과연 거주 지역과 직결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특히 거주 지역을 고정하여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앙케이트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비수도권에서 십대를 모두 보내고 수도권에 거주한지 이제 막 4년차가 되는 나는 과연 몇 퍼센트의 수도권 사람일까?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퀴어·문학 행사를 찾아온 나의 경험은 서울에서 퀴어·문학 행사를 찾아다니는 나의 경험과 얼마나 분리될 수 있는가?
그렇기에 무지개책갈피의 질문과 응답자들의 대답은 기록되고 남겨져야 하는 동시에, 더 이야기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맥락이 얼마나 공고하며 동시에 허구적인지를 생각해보는 논의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퀴어라고 불리는 ‘우리들’에 대한 논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는 담아지지 않는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다섯 번의 만남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 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은 만나고 새로운 장소를 찾는 일은 보물찾기 같았다. 하지만 제한된 장소와 제한된 시간은 항상 아쉬웠다. 홍보가 부족했던 탓인지 참여자 없이 세미나가 진행되기도 했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다른 목마름이 생겼다. 다른 도시, 다른 퀴어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더 많은 퀴어 당사자의 독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더불어 읽는 퀴어 프로젝트를 통해 퀴어문학에 대한 수량화된 자료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났다. 퀴어문학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 당사자 독자들은 퀴어문학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퀴어문학 앙케이트를.
무지개책갈피의 퀴어문학 앙케이트는 2018년 3월 12일부터 4월 11일까지 온라인(구글폼)을 통해 진행했다. 스스로를 퀴어로 정체화하는 총 75명의 독자들이 참여했다. 총 22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설문지는 퀴어문학에 접근하는 방법, 퀴어문학을 수용하는 데 자주 사용하는 매체, 퀴어문학에서 당사자성의 중요성, 좋아하거나 불편한 퀴어문학 등의 내용을 다루었다. 그중 11개 문항을 선별해 여기에 소개한다. 전체 앙케이트에 대한 결과는 이후 종이 출력물로 만들어질 예정이며, 무지개책갈피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1. 퀴어문학을 찾아서 본 적이 있습니까?
2.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퀴어문학을 선호하십니까?
3. 한국에 퀴어문학이 많다고 느낍니까?
퀴어 당사자들은 퀴어문학을 찾아볼까? 이에 대한 대답은 ‘YES!’인 것 같다. 퀴어문학을 직접 찾아본 적 있냐는 질문에 ‘있다’는 답변이 93.3%로 ‘그렇지 않다’는 답변보다 더 많았다.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퀴어문학을 선호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이 70.7%로 많았지만,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다’거나 ‘생각해본 적 없다’는 답변도 30%를 차지했다. 현재 한국에 퀴어문학의 수에 대해서는 ‘매우 적다’ 혹은 ‘적다’로 대답한 비율이 82.7%에 이르렀다.
4. 퀴어문학에 있어 당사자(로 커밍아웃한) 작가가 필요하고 느끼십니까?
5. 당사자 작가의 책을 읽을 때 더 편함을 느낍니까?
6. 평소 퀴어문학을 찾거나 퀴어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는 무엇입니까?
다음은 당사자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퀴어 독자들은 당사자로 커밍아웃한 작가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 많았다(70.7%). 이는 뒷부분에서 설명될 퀴어의 재현 방식과도 연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퀴어 문학에 있어 당사자 작가가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30%에 이른다는 점 역시 주목해볼만 하다. 넓게 보면 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오랜 논쟁과 잇닿는 문항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질문은 당사자 작가의 책을 읽을 때 더 편함을 느끼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특별히 의식한적 없다’ 혹은 ‘읽어본 적 없다’는 대답이 57.3%였다. 그러나 ‘그렇다’(37.3%)와 ‘아니다’(5.3%)의 차이를 볼 때, 이러한 결과는 현재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작가의 수가 압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하는 작가 중 커밍아웃한 작가의 수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적다.
한편 퀴어 당사자가 퀴어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매체로는 예상대로 온라인이 가장 비중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흥미로운 점은 비수도권 거주 응답자의 경우 83.3%(총 30명 중 25명이 해당)가 ‘온라인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대답한 반면, 비수도권 거주 응답자의 경우는 68.9%(총 45명 중 31명이 해당)가 온라인을 통한다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수도권의 경우 온라인 다음으로 ‘대학 중심의 모임’ ‘인권 단체 중심의 모임’ ‘문학 단체를 통한 모임’ ‘사적인 모임’ 등이 제시된 반면, 비수도권의 경우 ‘인권 단체 중심의 모임’ ‘대학 중심의 모임’ ‘사적인 모임’ 순으로 언급되었다.
7. 문학 행사를 위해 거주하는 도시를 벗어나 타지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8. 퀴어 행사를 위해 거주하는 도시를 벗어나 타지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9. 출판과 퀴어문화가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느끼십니까?
문학 관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타지에 가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26.7%, 퀴어 관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타지에 가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37.3%로 퀴어 당사자들은 퀴어 행사에 대해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퀴어 행사가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개최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응답자가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답변을 살펴보면, 수도권 거주 응답자는 타 지역 문학 행사에 가본 경우가 22%, 타 지역 퀴어 행사에 가본 경우가 35%였다. 비수도권 거주 응답자는 타 지역 문학 행사에 30%, 타 지역 퀴어 행사에 40%가 가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수도권 거주자보다 비수도권 거지주가 타 지역으로 이동한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출판과 퀴어문화가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중 78.7%가 그렇다고 느꼈다(‘매우 그렇다’ 44%, ‘그렇다’ 34.7%).
다음으로는 주관식 문항에 대한 응답을 공개한다. 국내 퀴어문학의 좋았던 점과 불편한 점에 대한 응답으로, 퀴어 당사자들이 ‘지금, 여기’의 퀴어문학을 읽고 느낀 감상을 엿볼 수 있다. 본 문항은 주관식 답변이었으므로 구체적 수치를 나타내기는 어렵지만,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을 순위 없이 공개한다.
국내 퀴어문학을 향한 긍정적인 감상평으로 ‘문화가 같아서 이해되는 면이 많다’ ‘한국에 있는 퀴어문화에 대한 간접경험이 가능하다’ ‘서술이 아름답다’ ‘퀴어가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한국이라는 시공간적 토대가 같음에서 오는 안정감, 경험 등이 좋았던 부분으로 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국내 퀴어문학을 접하면서 불편하게 다가왔던 점이나 한계라고 느껴지는 점으로 언급된 것은 다음과 같다. ‘비극적인 결말,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가 많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내용이 많다’ ‘다양한 퀴어를 드러내지 못하고, 게이·레즈비언 정체성 중심의 서사가 많다’ ‘퀴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소비적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퀴어 베이팅 포함)’ ‘수가 적고 찾아보기 어렵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퀴어 독자들의 응답 속에는 퀴어문학이 퀴어의 삶의 모습을 실제적으로 담아내기보다는 소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이 보였다. 또한 과도한 폭력과 착취 등과 연관하여 퀴어 캐릭터를 드러내는 점, 특정 정체성 중심의 서사 역시 불편한 지점으로 제시되었다. 이는 더 많은 퀴어 당사자 작가의 작품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까닭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겠다.
끝으로 2018년의 퀴어 독자들이 좋아하는 책을 알아보았다. 국내, 해외 작품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앞에 소개한 문항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 언급된 작품을 순위 없이 소개한다.
이어서 퀴어 독자들이 이야기한 해외 작품도 살펴보자.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원작 소설인 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메리언 데인 바우어를 포함한 13명 작가의 단편을 묶은 『앰 아이 블루?』와 줄리 앤 피터스의 『너를 비밀로』도 자주 언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전으로 불릴만한 사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 역시 여러 번 언급되며 퀴어 당사자 독자들에게 여전히 읽히고 있음을 증명했다.
읽는 퀴어 앙케이트는 ‘퀴어 당사자 독자로서 느끼는 퀴어문학’에 대해 다양하고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당연하지만 퀴어로 묶여 불리는 ‘우리들’사이에도 수많은 결이 존재한다. 하물며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문학에 있어서는 누군가에게 좋은 작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읽는 퀴어 프로젝트는 독자의 거주 지역을 하나의 결로 보고 그것을 붙든 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거주 지역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느슨한 것인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앙케이트 결과에 담겨진 독자들의 생각은 거주 지역이라는 조건만으로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희미한 것들 중에서도 몇 가지 빛나는 것들이 있었다. 퀴어 당사자 독자들이 있다는 것. 퀴어의 삶은 일시적이고 ‘힙’한 것이 아니라 문학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의 삶처럼, 각자의 서사를 지닌 채 계속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문학을, 더 많은 퀴어문학을 원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읽는 퀴어 앙케이트는 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앙케이트를 작성할 때부터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던 문제들도 있다. 개인의 경험이 과연 거주 지역과 직결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특히 거주 지역을 고정하여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앙케이트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비수도권에서 십대를 모두 보내고 수도권에 거주한지 이제 막 4년차가 되는 나는 과연 몇 퍼센트의 수도권 사람일까?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퀴어·문학 행사를 찾아온 나의 경험은 서울에서 퀴어·문학 행사를 찾아다니는 나의 경험과 얼마나 분리될 수 있는가?
그렇기에 무지개책갈피의 질문과 응답자들의 대답은 기록되고 남겨져야 하는 동시에, 더 이야기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맥락이 얼마나 공고하며 동시에 허구적인지를 생각해보는 논의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퀴어라고 불리는 ‘우리들’에 대한 논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는 담아지지 않는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무지개책갈피
"한국에도 퀴어문학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작된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퀴어문학이라는 장르조차 생소한 한국에서 퀴어를 다루는 소설을 모으고 읽고 씁니다. 읽고 쓰는 당사자 작가와 독자를 응원합니다. 그리하여 대답하려 합니다. "네. 한국에도 퀴어문학은 있습니다.”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