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우편 프로젝트
6화 그의 편지談
5월의 일반우편, 김형우
소설가 김형우가 보내온 편지 글을 받아보고 한참을 웃었다. ‘특이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그보다 더 특이한 사람이었네’, 웃으며 생각했다. 소설가가 쓴 편지여서 그런가, 생각하다가 ‘김형우’라는 사람이 쓴 편지여서 그렇다고 결론지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김형우의 첫 소설 「행운목」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지난겨울, 아직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은 그의 작품을 읽으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었다. 극적이진 않지만 어딘가 날카롭고, 담담하지만 마음을 휘적거리는 그의 소설 속에 잠시 빠져들었다 나왔더랬다.
어쩌면 ‘소설가’라는 말이 어색할 수도 있을 만큼, 김형우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있는 떨림과 경직이 그에게서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내려 마시는 커피처럼, 자신의 속도를 아는 사람이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커피와 같이 그도 조금씩 ‘소설가’라는 단어에 다가가고 있다.
Q. 간략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형우입니다. 3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작년에 처음으로 「행운목」이라는 짧은 소설을 썼습니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시간과 관련된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며 등단을 준비하고 있어요.
Q. 디자인을 전공하시다가 글을 쓰게 되셨다고 들었어요. 시각적인 매체로 자신을 표현하시다가 ‘글’로 자신을 표현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면서는 편집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마디로 책을 만드는 일이었죠. 책을 디자인할 때는, 책의 표지와 내지, 그리고 그 안에 글자들의 배열, 크기, 글자체, 이런 것들을 정해나가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이나 그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들, 문장들의 호흡, 느낌들도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점점 책 읽는 것에 빠져든 것 같아요.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가 하나둘 생기고, 거기에 꽂혀서 한 몇 달 동안 정신없이 그 작가의 글들만 읽고, 그러다보니까 저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Q. ‘편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편지와 관련된 이야기 혹은 작품(문학, 음악, 공연 등)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셔도 됩니다.
편지하면,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 중에 「필경사 바틀비」라는 작품이 생각나요. 이 작품은 1853년에 쓰인 작품으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게 되면서 점점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을 바틀비를 통해 보여주는데, 꽤 오래전에 쓰인 건데도 지금 읽어봐도 손색없는 작품이에요. 근데 이 작품 말미에 바틀비가 과거에 배달 불능 우편물을 취급하는 일을 하다가 해고당했다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 이후로는 편지하면 다시금 배달 불능 우편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하고 떠올리게 돼요. 누군가에게 보내졌지만 죽거나 주소가 바뀌어 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편지들.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못한 말들.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인 바틀비. 이것들이 무슨 의미들을 가질까 하는 거죠.
제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아보자면, 이것들이 가리키고 있는 건 ‘소통 불가능성’인 것 같아요. 여기서 편지라는 것은 그것을 통해 무언가 전해지고, 또 전달받기를 원하는 소통의 매개체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소통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서 무시되는 건, 소통불가능성인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늘 소통에 목말라하지만, 누구든지 나 자신과 남을 구분하는 부분은 소통 불가능한 영역에 있잖아요.
요즘은 소통이 더 중시되는 사회여서 그런 생각을 좀더 많이 하게 돼요. 모든 것을 투명하게, 모든 것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점점 ‘나’의 고유한 지점을 만들어내는 소통 불가능한 부분들이 점점 무시되고 사라져간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간 기분이네요……
그럼에도 편지라는 건, 늘 개개인마다 고유한 소통 불가능한 지점을 소통하고자하는 좋은 시도인 것 같아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내밀하게 나를 보여주고, 인스턴트 메시지들과 비교하면, 어느 때보다 느리고 복잡하게 전해주잖아요.
Q. ‘5월의 일반우편’은 독자 여러분께 띄우는 형우님의 편지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셨을까 궁금하네요.
시간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편지에도 적었지만 시간에서 풀려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시작이었죠. 시간이라는 건 우리가 속한 세계에 우리를 구속하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를 마치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 대학교, 그다음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그 끊임없이 주어지는 사회적 미션들을 생각해보면, 그것들이 우리를 계속해서 시간에 묶이게 만드는 것 같거든요. 또 한편으로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규정짓고 있는 거대한 서사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어떤 역사 이야기 속에 있나,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그건 끊임없이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가도록 규정하고, 그렇게 세계가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거죠.
그런데 ‘내 머릿속의 시간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나?’ 하는 물음을 던져봤을 때,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만한 특별한 체계가 있는 것 같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시간에서 풀려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이런 편지를 쓰게 된 것 같아요.
Q. 일반우편 프로젝트 주제가 ‘느리고 복잡한’인데요. 작가님께 느리고 복잡한 일상은 무엇인가요?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 그리고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는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기, 종이에 손으로 글을 쓰는 일, 또 작게는 작업실 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오는 일, 빗자루로 바닥 쓸기, 이런 작은 일들까지―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고 어떻게 보면 시시한 일상이지만― 더 편하게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점차 애착을 가지고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시하지만 아주 천천히 무언가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거든요.
Q. 소설을 쓰는 일은 편지를 쓰는 일과는 다를 것 같아요. (비록 일반우편 프로젝트는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의 편지가 구체적인 대상에게 특정한 말을 전하는 것이라면, 소설을 쓴다는 건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설정하고 그 속을 오가는 여러 ‘말들’을 창작하는 일이라는 점이 특히 다른 것 같아요. 소설을 쓰는 일과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일,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소설은 한편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 같아요. 물론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설정하고, 그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을 창작하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계속해서 하는 것 같지만, 소설 쓸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된 것을 쓰려고 해요. 그 진실이란, 내 안 가장 깊숙한 곳에서 꺼내올 수 있는 것들이죠. 다시 말하자면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했던 가장 내밀한 것들을 쓰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소설을 쓰는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제 소설을 읽을 때 그 사람이 저와 굉장히 친한 사람이라면, 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것 같아요. 제 마음 속 모든 것을 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 테니까요.
Q. 이 편지를 어떤 이들이 받기를 바라시나요. 편지를 받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을까요?
이 편지도 진심을 다해서 썼어요. 가장 내밀하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썼어요.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한숨 돌리고, 잠시 시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요. 궁금한 이야기가 생긴다면 답장 주세요. 꼭 답장할게요.
월간비둘기
월간비둘기는 손 편지 정기구독 프로젝트입니다. 정찬처럼 자리를 잡고 먹어야 하는 긴 글 덩어리 말고, 빵 쪼가리처럼 뜯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편지 한 장을 써서 띄웁니다. 그리고 우편함 속 전기세 고지서, 백화점 전단지, 예비군 소집 통지서, 슈퍼마켓 광고지 사이에서 우연히 사람이 쓴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작은 희열을 아낍니다.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