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실은 이동 중이다 (feat. 부업의 방)

   최현진

   ‘자기만의 방’을 구한 첫번째 사람은 나였다. 글쓰기에 있어 후원자를 얻은 것 같이 마음이 들떴다. 공간을 구한 후 곧바로 ‘내 자리’에서 동화쓰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업실을 내준 도서관은 마을버스를 타면 10분 내로 도착하는 거리여서 보따리꾼 신세를 면했다. 그저 휴게실에서 먹을 간단한 간식과 노트북만 챙기면 됐다. 참고할 책은 열람실 내에서 그때그때 찾아볼 생각으로 챙기지 않았다. 까페에서 작업할 때에 비해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 글을 쓰기 위해 카페를 간다고 치면, 커피값만 한 달이면 10만원 정도 들고, 간식거리나 음료를 추가하면 20만원도 넘는 지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도서관 작업실은 훌륭해 보였다. 책상마다 개별 콘센트가 있었고 가까이에 대형 복사기가 놓여 있었다. 정면에는 창문이 나 있어서, 한 번 앉으면 나갈 일 없는 작가에게는 볕을 쬐거나 바깥 풍경을 보기에도 제격이었다. 그런데 도서관 담당자가 일러준 내 자리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비켜달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도서관 담당자에게 말씀드렸다. 담당자는 “아직 다른 분이 쓰고 계셔서…… 어쩌죠?” 하고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나와 약속된 시간 전까지는 다른 사람이 자리를 쓸 수 있도록 해놓은 듯했다. 나는 마치 나처럼 노트북 앞에서 골몰하고 있는 분의 자리를 ‘빼앗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담당자에게 그냥 다른 빈자리에 앉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지만 생각보다 비좁게 느껴졌고 옆자리가 가까워서 신경 쓰였다. ‘이게 내 작업실인가?’ 하는 의문과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림책이라도 몇 권 보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질까 싶어 어린이문학 열람실로 갔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스테디셀러 작품들, 훼손이 심해 유리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추천도서 코너에는 학교별 필독서, 그중에서도 수학, 과학, 역사에 관련한 만화물이 즐비하고, 창작동화나 그림책보다는 공부를 위한 학습동화가 훨씬 더 많았다. 읽고 싶은 작품을 신청하려고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갔으나 하반기에나 신청이 가능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창문 밖 풍경마저도 나를 감상에 빠트렸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여기서 글을 쓰지?’라는 생각을 했다.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거슬렸고, 나중에라도 내가 대량으로 복사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결국 도서관을 나왔다.
   기대와 현실은 어긋난다. 도서관을 박차고 나온 그날, 나는 공원을 걸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처럼 작가에게 ‘글터’가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아무튼 이후로 나의 작업실은 이동 중이다. 가장 좋은 작업 공간은 ‘내 상황에 맞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나는 요즘 일터 근처에서 글을 쓴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부업이 전업이 됐다고 해야 할까. 글 쓰는 일은 출근하기 3~4시간 전에 카페에서 하는데, 효율성 최고다. 정해진 시간 동안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모종의 심리적 응원이 되어 노트북을 켜자마자 쓰게 되는 것이다. 다만 퇴근 후에는 책도 읽지 않는다. 에너지가 일로 인해 소진되기 전, 미리 글을 써두는 것이 내가 나를 위해 지키고 있는 유일한 규칙이다. 일터가 바뀌면 작업 공간도 또 이동하겠지. 일부분은 체념하고 또 일부분은 여전히 꿈꾸면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내 꺼 인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자리.



  작의(作意)만의 방

   곽시원

   지난 몇 달간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근과 퇴근이 없는 삶’이 고되게 느껴져, 진실로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지역의 친한 부동산 사장님에게 전기만 간신히 들어오는 지하방을 소개받아 둘러보기도 하고, PC방에 5만원어치 정액권을 끊기도 했으며, 생경해진 의정부에 가보기도 했다.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공동으로 쓰는 작업실도 알아보았으나 흡연이 불편하거나 스태프 회의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방에 있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나를 괴롭혔다. 빨래 건조대의 습기, 식탁의 음식 냄새, 기타의 즐거움, 침대의 나른함. 특히 침대만 보면 눕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육신 때문에 괴로웠다.
   의외의 일이 생긴 것은 약 한 달 전이었다. 평소 동경하던 극단과 공연을 할 기회를 얻게 되며 연습실의 사무실을 사용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집과 가까웠다.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작가님들께 좋은 소식을 알리려는 찰나, 이 제안에 응해도 되는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지인의 도움을 받지 말 것’이라는 조항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작업실은 구할 수 있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미션은 완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침대가 더이상 날 유혹하도록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한 작업실은 무서웠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등 뒤에 위치한 방대한 양의 포스터와 공연 자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천천히 훑어보며 작업실과의 친목을 도모했다. 개중에는 아주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의 프로그램북도 있었다. 순간 ‘내가 과연 이런 곳에서 작업을 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작품들이 태어난 곳이었으니까.
   노크 소리와 함께 연출님이 들어와 작업실은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나는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매우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조금 위축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불편함도 잠시, 나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택배 기사님의 기습적인 방문도 불가능했고, 밀린 집안일과 마주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2시간 쯤 지났을 무렵, 공간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곳도 글 쓰는 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점점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때, 뜬금없이 군것질이 하고 싶어졌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그저 먹는 시간 동안 놀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음식 냄새를 풍기는 건 또 싫었다. 하는 수 없이 잠자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충동들을 나름의 합리화로 다독이고 잠재웠다. 그러나 역시 최강의 적은 졸음이었다. 몇 년 전부터 이야기가 조금만 막혀도 잠이 쏟아졌다. 스트레스를 회피하려는 몸의 반응인지도 모르겠다. 이날도 그랬다. 이야기가 막힐 때면 빈번히 잠이 쏟아졌다. 나는 실소가 터졌다. 말 그대로 진짜 가지가지 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 침대는 몇 정거장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고, 여기에는 내가 조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있는 힘껏 나를 놀려줄 연출님이 있었다.
   나는 그날, 이틀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작업을 불과 여덟 시간 만에 끝냈다.

   작업에서의 첫날을 기념하며 연출님과 함께 근처 고깃집에 들어가 술잔을 기울였다. 연출님은 내게 소감을 물었다. 나는 폐관 수련하는 무림 고수의 심정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분 또한 내가 사무실에 있으니 더 의욕적으로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해주셨다. 우리는 술잔이 고꾸라질 때까지 서로의 빈 잔을 채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랜만에 ‘퇴근’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 기념비적인 날. 나는 말 그대로 단잠을 잤다.

   나는 그 이후로도 계속 작업실을 들락날락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곳에는 오직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의 나만 존재한다.
   다른 것들은 잠시 남겨두고 방 안에 들어선다.

   나에게는 작의(作意)만의 방이 있다.

작업을 할 때에는 과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주 많아요

   백은선

이제는 사라진 책방만일을 위해
그 공간과 내가 거기 머문 시간을 위해
나에게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신 이승주님을 위해



   나는 한 달 동안 책방만일에서 작업을 했다. 책방만일이 사라지기 전날까지.

   책방만일에 작업실을 구하게 된 계기는 이러하다. 작업실 구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벽에 부딪혀 있을 무렵, 자기만의 방 멤버들과 카페에 모여 회의를 했다. 나는 독립서점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고, 내가 카페에서 오래 일했고 커피도 만들 줄 알고 서비스직의 경험도 잘 살려서 고객응대와 동시에 작업을 이어나가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좋을 것 같다고, 그런 얘기를. 얘기 중에 정지돈 소설가가 책방만일에서 일일 책방지기를 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나도 책방만일에서, 만일 내가 책방만일에서 책방지기를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얘기였다.
   그리고 다음날 조용한 시간에 생각을 해보았다. 왜 다음날 생각을 해보았냐면 우리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대부분 혼자 조용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 얘기에 열광했을까 싶은 허황된 이야기들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0만원으로는 작업실을 구하는 것이 요원하니 모두의 돈을 모아 비트코인을 사볼까? 경마장에서 10만원을 불려보자! 아니면 로또를 살까? 찾아가는 낭독회는 어때?(이건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 이야기할 땐 너무 신나고 진짜 정말 당장 모든 게 이루어질 것처럼 부풀고 들뜨는 이야기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너무 헛소리 같아서 우리가 열광했던 이야기와 시간이 진짜 있었던 일인가 의심스러운 그런…… 나는 생각의 끝에 책방만일에 연락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요즘 책방만일이 자주 닫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걱정도 되었지만 두드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거니까 우선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어쩐지 부동산에 전화를 하는 일보다는 훨씬 근사하고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뻤다.

   우선 책방만일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할 수 없는 번호라고 했다.

   한참 고민 끝에 장문의 글을 적었는데 내가 잘 적은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자기만의 방’ 단톡방에 내가 쓴 글을 올리고 ‘이렇게 연락을 드려보려는데 어떨까요?’ 모두에게 물었다. 다들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 글을 전송했다. 그리고 다음은 기다림의 시간.

   이틀 뒤에 책방만일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천만다행으로 사장님께서 나를 알고 계셨고 내 시집을 읽었다고 답변을 주셨다.(시집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나를 소개할 물성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며칠 후에 사장님과 만났다. 마치 면접을 보러 가는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생강차를 마시며 자기만의 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자연스럽게 작업이 가능한 요일에 대한 논의를 했다. 나는 그렇게 목요일과 금요일, 책방만일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책방만일에 머문 시간이 긴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거기서 실비아 플라스와 레이디 가가에 대한 산문을 썼고, 시를 세 편 썼다. 한 달, 그중 8일 동안 한 작업이니까 꽤 많은 양의 작업을 했던 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글들은 몹시 내 마음에 들었다. 작은 빛이 있는 책으로 가득한 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난로를 쬐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쓴 글들이다. 발효되고 있는 반죽들 같은 글들. 그것을 다른 장소에서 썼다면 글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공간이라는 것이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보는 중요한 계기를 가져다준 시간들이었다.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책을 구경하다가 그냥 가버렸다. 몇 명은 나에게 사장이냐고 묻기도 했는데 내가 아니요, 저는 여기서 작업을 하면서 책방을 대신 돌보고 있어요, 말하면 풉, 하고 웃는 손님도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다음주에 또 와서 내가 추천해준 책을 읽고 있다고 좋다고 하면서 초콜릿도 주고 갔던 좋은 손님이다. 내가 너무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그 손님이 오늘도 또 올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뒤로는 오지 않았지만 작게나마 책방을 한다는 것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기다리기, 손님의 마음에서 생각해보기, 기뻐하기, 생각하기, 다시 기다리기.

   그 중간중간 뜻깊은 방해들 속에서 글을 한 줄 한 줄 쓰면서 가끔 성가셔하면서 가끔 웃으면서 가끔 울면서.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저도 잘 몰라요.”

   고백하면서. 산문과 시를 썼다. 이제 그곳이 더이상 없다고 생각하니 아끼던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시작은 그렇게 오랫동안 장소가 사라지고 한참 후에 판자가 뒤따라 사라질 때까지. 1) 이건 영업 마지막 날 책방만일에 붙어 있던 말들이다. 한 장소의, 긴 시간의 문을 닫는 말.

   나는 내가 작업실을 구할 줄 몰랐다. 그런데 구했고 그게 책방만일이라서 좋았다.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종종 얼굴 비출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 프로젝트도 끝나고 책방도 없다.

   진짜 끝인가봐. 길고 긴 길을 따라 걷다가 언덕을 넘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따듯한 슬픔이다.

   덧붙임의 말: 함께 작업실을 썼던 그림 그리는 윤미원언니와의 만남도 너무 기쁘고 좋았다. 승주님과 미원언니와 셋이서 만일이 사라지고 며칠이 지났을 때 다 같이 모여 술을 마셨다. 내가 너무 술을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은 말을 했다. 그리고 토하고 집에 갔다. 다음날 사과의 문자를 보냈다. 그후에 두 분께 연락이 오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언젠가 또 같이 놀았으면 좋겠어요.

책방만일이 문 닫던 날. 한 장소의, 긴 시간의 문을 닫는 말.


  미괄식 초대장

   임현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지난 5개월간의 작업량을 정리해보았다. 원고지로 환산하면 500매가 조금 안 되는 분량이었고, 자주 가던 카페에 지불한 금액은 50만원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딱 맞아떨어져도 되나 싶게 한 달 평균 작업량 ‘100매’, 지출액 ‘10만원’이라니, 안정적인 단위가 나름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정작 구하라는 작업실은 구하지 않고 여전히 가던 카페에만 머물러버린 탓에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고백하자면, 원고 쓰느라 바빠서 작업실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당장 마감이 촉박할 땐 택시에서도 쓰고, 지하철에서도 쓰고, 버스는 멀미가 심해 자주 쓰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너무 급한 날엔 어쩔 수가 없었다. 바쁘면 자기만의 방이 아니라 남의 방에서도 마구 쓰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성실함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시간을 들여 더 노력을 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알리는 데 더 애썼더라면 선량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얼마 뒤 관련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누군가는 개인 서재를 대여해주겠다며 댓글을 달기도 했다. 다만 인천까지는 너무 멀었다.
   물론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어서 또다른 누군가는 잘 키운 블로그 하나면 대리급 월급도 가능하다거나, 작가하지 말고 연예인을 하라며 전업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중 대부분이 제법 그럴 듯하게 들렸는데 작가보다는 역시 연예인이 더 대우를 받으니까. 아침방송에 출연하는 파워 블로거를 나도 여럿 본 적 있으니까. 아주 틀린 말 같지가 않았다.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아 작업 공간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나 나름의 해결책 등을 공유하는 과정이 될 거라고 예상한 이 프로젝트가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도 아마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말하자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그걸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그걸 내가 하지 않으려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남들처럼 건강하게 낮에 일 하는 습관을 길렀더라면 선택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의 폭은 훨씬 넓어졌을 것이다. 발품을 팔아 월세 10만원 하는 사글세방을 어떻게든 구해본다거나 아니면, 적당한 노동을 하고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작가적 재능을 너무 한곳에만 집중해서 낭비할 게 아니라, 블로그 운영에 분산 투자하며 고수익을 노리고 그것으로 돈도 벌고 작업실도 구하고 내친 김에 연예인도 되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내가 가진 것 중 무언가를 교환하거나 포기하거나 하면 해결될 매우 자명한 문제인데도 혼자 너무 욕심 부리고 있던 것 아닌가.

   물론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작가로서 아무것도 잃지 않고 작업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 그러니까 앞서 말한 선량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의 부담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경우. 이때의 나는 여기에 고작 감사한 마음 정도의 비용만을 지불하면 된다. 상대가 원한다면, 내 글 어딘가에 그의 이름을 등장시키거나 ‘작가의 말’을 빌려 “덕분에 이번 소설도 무사히 쓸 수 있었어요.” 고마움을 전하면 될 일이다. 제공 받은 공간이 진짜 유용한 곳인가 하는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그러나 이 경우는 또 지나치게 우연이나 운의 문제 아닌가. 더구나 나의 부담을 함부로 떠넘기기도 어려우므로 무얼 한다기 보다는 무얼 해주어야만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다.
   예상할 수 있는 빤한 결론이겠지만, 선량한 저 개인의 자리를 국가나 공공기관으로 대신 채워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연히 좋은 운을 만나서가 아니라 예술인에게 제공되는 보편적인 복지로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 우리의 논의가 한동안 예술인의 기본소득 문제에 머물렀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더 많은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더 노력하고 성실한 개인과의 형평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예술인의 특권과 보편적인 복지 간의 거리를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그리고 우선은 이러한 말을 함께 나누고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우리의 생각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문학3》에서 다루었던 ‘예술-( )-기본소득’ 기획은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에도 좋은 참고가 되었다. 그리고 앞선 연재에서도 언급되었듯, 이 대화의 시작을 《문학3》과 함께 하기로 했다.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말과 상상력이 공유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마지막 문장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쯤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24시간 카페 확산을 공약하는 후보가 있었더라면, 뽑았을지 모른다.





작가들

곽시원(극작가), 백은선(시인), 임현(소설가), 최현진(동화작가)

2018/06/26
7호

1
사무엘 베케트, 『죽은-머리들/소멸자/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임수현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