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영은 형근에게 한 감독을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약속을 잡으려고 그 감독에게 전화를 한 다영은 형근에게 말했다. 그 감독이 길고양이를 구조해야 해서 언제 시간이 가능할지 모른다고 했다고.
   한편 정한은 <늙은 연꽃>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감독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 감독이 친절한 답변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URL을 공유해주었단다.
   다영과 정한이 말한 사람이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된 우리는, 우리 셋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그를 ‘you,a sentence’의 마지막 인터뷰이로 초대했다. 다영, 형근, 정한 셋이 장윤미 감독1)을 만나 묻고 답했다.

*

   윤형근(이하 ‘윤’) : 요즘 무슨 책 읽으시는지?

   장윤미(이하 ‘장’) : 『까대기』(이종철, 보리, 2019)라는 만화책을 읽고 있어요. 물류센터 상하차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인데요. 실제로 이 책의 작가가 생계를 위해 택배 일을 6년간 했다고 해요.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서 현장감이 느껴져요.

   윤 : ‘까대기’가 무슨 뜻이죠?

   장 : 물류센터에서 큰 차에 실려 있는 택배들을 다 내려서 분류하고, 다시 실어주는 일을 말해요. ‘상하차’랑 같은 말인 것 같아요.

   윤 : 그걸 왜 까대기라고 하나요?

   장 :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네요. 사전을 찾아보니 ‘가대기’2)가 맞는 표현 같네요. 저도 전에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어서 공감하며 책을 읽고 있어요.

다 각기 따로 있는데, 모든 것들이 집중하는 상태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윤미님도 손가락도 커피도 책도 의자도 공간도. 모두 자기만의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걸 무중력 상태라고 하나.


   차라리 내 돈으로 믹스커피 사주겠다


   김다영(이하 ‘김’) : 감독님은 어떤 계기로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신 거예요?

   장 : 2018년 초에 물류센터에서 두 달 정도 일을 했거든요. 돈을 벌어야 해서 무작정 시작했어요. 그때 학교 방학이었는데, 물류센터 일이 돈을 제일 많이 주더라고요. 물건을 누가 주문을 하면 그걸 집어오는 일(피킹)이랑 그걸 포장하는 일(패킹)을 했어요. 스캔 찍고 포장해서 내보내는 일이죠. 이 책을 보면서 그때 만났던 사람들 얼굴도, 서러웠던 것도 다 떠오르고 그랬어요.

   황정한(이하 ‘황’) : 책의 어떤 장면에서 서러웠던 감정이 떠올랐는지.

   장 : 책에 믹스커피 얘기가 나오는데요. 물류센터에서 알바들한테 밥이나 간식 같은 걸 아무 것도 안 주거든요? 근데, 어떤 직원 한 분이 “차라리 내 돈으로 믹스커피 사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물류센터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나더라고요. 일하다가 너무 춥고 배고파서 직원 사무실에 들어가서, 믹스커피 하나만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직원이 되게 한심하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순간 너무 서러웠어요.

   김 : 치사하네요.

   장 : 이후 어떤 날은 휴게실에 믹스커피가 많길래, 알바들 먹으라고 사다놨나보다 싶었어요. 커피 봉지를 뜯는 순간, 직원 분이 “남의 것인데 묻지도 않고 지금 뭐하시는 거냐. 다 개인 물품이니 함부로 먹지 말라.” 하더라고요. 제 경험 때문인지 책에 그려진 에피소드가 더욱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어요.

   김 : 왜 그렇게까지 치사하게 구는지. 물류센터 일은 대부분 금세 그만두고 하니까 사람 관계라고 할 게 없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장 : 한 달 일하면 많이 하는 거니까, 텃세도 심해지는 거 같아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인간적인 게 없어지는 게 더 섭섭하더라고요.


“여기에 표시해둔 까닭은, 옛날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 생각나서요. 제 또래도 많았고 주부도 많았고 아예 나이 많았던 분도 계셨고. 그분들이 일하던 모습이나 잠깐씩 나눴던 얘기가 가끔 생각나요.”


   아, 나 다시는 여기 안 온다


    황 : 다른 알바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장 : 대학교 졸업하고는 식당 알바도 해보고 편의점도 했고요. 최근에 하는 건 방송국 녹취 알바에요. 1시간 분량의 영상을 녹취록 작성하면, 2만 4천원 정도 받거든요? 근데 그 1시간 분량의 영상을 풀기 위해 4시간 정도 일해야 되니까, 시급 6~7천원 정도 일이에요.

   윤 : 녹취 알바하면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장 : 녹취를 하다보면 방송에 나오지 않은 B컷이나 현장 소리들을 많이 듣게 되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돼요. 이를테면 방송국 PD들이 출연자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정말 많이 요구해요. 짧은 시간 안에 화면을 만들어야 하니까 한편으로 이해는 가고요. 방송국 PD 중에 프리랜서도 꽤 많은데, 그분들은 노동환경이 열악하니까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원하는 걸 출연자에게 행동해달라고 하는 거 같아요.

   김 : 노동착취 당한 사람이 또 누군가를 착취하는 느낌이네요.

   윤 : 제 주변에 방송국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주어진 시간 안에 무슨 일이 있든지 화면을 만들어오는 사람들이 능력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일을 안 주고, 어떻게든 만들어오는 사람들에게만 계속해서 일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장 : 제가 방송국에서 조연출로 2년간 일했어요. 프리랜서 PD랑도 일해보고 정규직 PD랑도 일해봤어요. 정규직 PD가 만들려는 프로그램에는 투자도 많이 해주고 시간을 가지면서 만들 수 있게 해주는데, 프리랜서 PD는 훨씬 더 시간에 쫓기고 차별이 심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물류센터보다 조연출 일이 더 힘들었네요. 잠도 못 자고 허드렛일을 다 해야 했어요. 2년 계약 끝나고 ‘아, 나 다시는 여기 안 온다’ 생각하면서 다른 곳에 취직했어요. 출판사에 취직해 3년 정도 일했어요.

   김 : 출판사도 힘든데……

   장 : 출판사 일은 좋았어요. 정규직이기도 하고 주말도 다 쉴 수 있었어요. 거기서는 마케팅을 했는데, 다큐멘터리에 미련을 못 버려서 그만둔 거예요.

   김 : 약간 피가 육체적 노동에 끌리는 타입인가봐요.

   장 : 그러다 힘든 일하면 또 후회하고.(웃음)


“인터뷰를 할 때는 윤미님이 눈을 감는 걸 보지 못했는데, 사진기는 눈을 감은 모습을 발견했다. 우리가 다른 곳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한, 윤미님의 또다른 이야기들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일자리


   장 : 『까대기』를 보면, 작가가 주변 사람들한테 부끄러워서 본인이 까대기 알바한다고 말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이상하게 저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힘든 노동이므로 더욱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퇴근할 때면 꾀죄죄해져서 집에 가니까 지하철 타기도 그렇고 숨고 싶더라고요.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김 : 일하는 현장에서부터 존중받지 못했기에 더 그랬던 것 아닐까요. 내가 나를 존중할 수 없는 환경과 주변 인식 때문에요.

   윤 : 저는 제가 무슨 일을 맡아서 하든 스스로를 존중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허드렛일이든 아니든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거잖아요.

   황 : 전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서울 올라와서 영화판에서 일했는데, 고졸이라는 콤플렉스가 아직도 있어요. 저는 소위 노가다나 공장에서 일하는 게 창피하진 않아요. 저한테는 당연한 삶이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의 차이가 엄청 커진 거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장 : 저도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할 수는 있는데, 그 안에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는 점이 스스로를 위축시킨 것 같아요. 물류 일을 할 때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 보면서 갔거든요. 직원이 대놓고 말해요. CCTV 돌려봤는데, 화장실을 다들 너무 많이 간다고.

   황 : 저는 이런 일이 ‘막장’이라고 생각해요. 이놈의 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고, 노동자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고요.

   장 : 말하신 대로 바뀔 만한 환경은 안 되어 있는 거 같아요. 저부터도 솔직히는 갈등하게 되더라고요. 물류 일을 같이 하는 동료가 노조를 만들면 나도 동참하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냥 내가 이곳을 나가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도 했고요. 개개인의 생각과 입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일 같아요.


계속해서 말하고 계속하고 바라고 계속해서 기도하다보면, 어쩌면. 혹은 어느새.


   노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 :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장 : 구미에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어요. 1년 정도 촬영했고 이제 편집하려고요. 서울과 구미를 오가면서 일하고 있어요. 서울에 돌봐야 하는 고양이가 있어서요.

   김 : 안 그래도 고양이 얘기를 좀 하려고 했는데요.(웃음) 연락 드렸을 때 길고양이 구조로 바쁘셨던 게 생각나요.

   장 : 아, 그때 제가 정신이 나가 있었어요. 돌보던 길고양이가 팔 한쪽이 부러져서 나타났거든요. 구조에 실패하면 다신 나타나지 않을 테니 신중해야 했어요.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성공했어요. 영화제에서 받은 상금 반을 다 병원비로 썼어요. 나머지 반은 부모님 드리고.(웃음) 어쨌든 지금 그 고양이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황 : 좋은 가족이 생겼네요.(웃음)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요. 어떤 노동조합 찍으시는 거예요?

   장 : 반도체를 만드는 구미공단인데요. 구미에 최초로 세워진 반도체 공장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구미공단 근처에서 일하셔서 소개를 해주셨는데요. 30년 만에 여성 대표 지회장이 선출된 거예요. 보통 대표는 남자가 많이 하거든요. 한편 노조와 사측이 남녀 임금차별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흥미가 갔어요.

   황 : 노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 : ‘필요하다’ 그 이상의 의미 아닐까요? 다음에 취직하면 1년 동안 구미에서 배운 거 갖고 노동조합해보고 싶어요. 힘들긴 하겠지만, 그나마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그런 걸 해야 할 거 같아서.

   황 : 저도 기본적으로 노조가 필요하다 생각하는데요. 어느 부분은 노조도 이익집단이라고 생각해서, 어찌됐든 돈 때문에 노조가 끝까지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돈 말고 노조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다른 이념이나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 :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노조 위원장을 본 적이 있는데, 제가 봤던 그 사람은 노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의 행동을 안 했던 거 같아요.(웃음)

   황 : 노조라 하면 약간 윤리적인 기준이 좀더 들어가게 되는 거 같아요. 그걸 벗어나면 별로라고 생각이 되고. 근데 시간 지나서 보면 나라도 그러겠다싶더라고요. 사람이니까.

   윤 : 저는 노동이나 노조보다는 기본소득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아요. 노동을 해야 돈 벌 수 있다고, 노동은 가치 있는 거라고 기본적으로 배워왔는데, 노동의 유무와 재산에 관계없이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저는 지금하고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만약 내 한 몸을 불살라서 운동한다면 기본소득 보장을 위해 싸울 것 같아요.(웃음)

   장 : 그러면 좋긴 한데, 될 수 있을까요?(웃음) 각자의 자리에서 운동하고 분투해주면 좋겠네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윤 : 감독님이 생각하는 ‘나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요?

   장 : 적어도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입 밖으로 꺼내서 말할 수 있으면 나아질 것 같아요. 제가 일하면서 참고 묵인했던 게 많아서 그런 게 많이 후회되거든요. 그리고 고양이들이 좀더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바래요. 고양이랑 살게 되면서, 주변에 다른 길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소리도 더 잘 들리더라고요. 제 집에 사는 고양이만 행복하게 해준다고 해서 제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윤 : 감독님이 만드는 다큐멘터리도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 중 하나인 듯해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you,a sentence’ 프로젝트를 마치며


매번 인터뷰이의 사진만을 담다가, 이번에는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담았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 또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you,a sentence의 표어는 ‘누구나 한 문장은 있다’인데요. 책과 문장을 매개로 많은 사람과 많은 말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경계 없이 수다를 나누듯 편하게 대화했던 많은 현장이 기억나네요. 저는 앞으로 개인 작업에 힘을 쓸 생각입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마무리하는 올해가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_황정환

   그동안 만난 문장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 일상에서 반짝이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만남이 있길 바라며 우리의 기록을 소개할 수 있게 도와준 《비유》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요즘 독립 다큐멘터리 <불빛 아래서>의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8월 개봉을 앞두고 협동배급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네요. 텀블벅 펀딩도 진행 중인데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후 또다른 작당모의로 뵙겠습니다. 뿅! _김다영

   마무리하며 이것저것 좋은 말을 끄적이다 몇 번을 지웠습니다. 그러다 프로젝트 소개글을 다시 읽었는데, 역시 처음 생각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의 프로젝트 소개를 한번 더 인용하며 마치려 합니다. 일상에 나누는 대화들이 반짝이는 순간, 그것을 기록합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담아내고 살피면서 그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장과 세계를 발견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 대화를 다르게 바라보기를, 당신이 하는 말에는 당신만의 것이 있단 걸 알아차려주기를. _윤형근


B&M friend

윤형근, 김다영, 황정한. 전혀 다른 세 삶을 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잠시 비슷한 삶을 살았다. 각자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세 갈래의 삶을 살고 있으나, 이 프로젝트를 빌미로 또다른 삶의 접점 하나가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2019/06/25
19호

1
다큐멘터리 감독. <공사의 희로애락>(2018), <콘크리트의 불안>(2017), <늙은 연꽃>(2015),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4),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2012) 등을 연출했다.
2
창고나 부두 따위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따위의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또는 그 짐.(출처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