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하는 시 마지막 화에 부치는 첫번째 편지

   안미옥

   승일은 자주 말했다. 한 편의 시를 통째로 아주 큰 현수막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다 붙이고 다니고 싶어. 승일은 우리가 모일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좋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였다. 어디에 붙일까. 누구나 볼 수 있는 곳, 어떤 사람만 볼 수 있는 곳, 이런 곳에 시가 붙어 있어? 할 만한 곳, 광고 현수막처럼 그냥 스쳐지나가며 볼 수 있는 곳. 이를 테면 다리 위나 운동장 골대, 디너쇼 광고 현수막 아래, 지하철 계단 옆, 모르는 사람의 현관문 앞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단단한 창문처럼, 투명한 거울처럼, 펼치면 펼쳐질 것 같은 책처럼, 아무거나 낙서할 수 있는 백지처럼.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 있어도 상관없지만. 반드시 어떤 자리에서 무언가가 되어 있겠지. 그건 시를 쓸 때의 마음과도 같다.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과도 아마 같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생각 정말 좋은 생각이다! 말해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승일의 생각처럼 현수막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세상에 붙이고 다닐 날을. 그러다 겨울이 되었다.



   우리는 세상에 붙이는 대신, 낭독회를 열고 선물 받을 사람을 미리 신청 받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마지막엔 아직 가위질 되지 않아 긴 천으로 둘둘 말려 있는 시를 한 편씩 잘라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우리가 주는 마지막 시 선물이고. 시 선물을 받기 위해선 선물 받는 사람들이 가위를 가져와야 했다. 낭독회를 하기 전까지, 선물 받을 사람들이 누군지 우리는 모르지만 신청자들은 자신이 시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모르고, 그들은 아는 그 며칠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낭독회 시작 전에 셋이 카페에서 만났다. 승일이 진행을 맡아 우리에게 질문을 하기로 했다. 나는 즉흥적으로 대답하길 어려워해서 승일에게 미리 어떤 질문을 할지 알려달라고 했다. 카페에서 처음 받은 질문은,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이었다. 평범한 질문이었는데 너무 어려웠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들 중에 바로 떠오르는 선물이 없다니. 분명 많을 텐데. 왜 나는 그 많은 선물들을 다 잊어버렸나. 한참을 멍 때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있다. 등단할 때 받은 펜 선물인데, ‘breath’라는 각인이 되어 있다. 시쓰기가 호흡이 되어줄 것이라는 편지와 함께.) 생각해보니 살면서 기억에 남을만한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들을 되새기는 시간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순간들은 영원히 기억되는 상자에 넣어서 보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그날 받은 질문이 내게 선물처럼 주어져, 지금껏 받은 많은 좋은 선물들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그다음 기억에 남는 질문은 시에 관한 질문이었다. 시에서 ‘나열’의 방식을 사용할 때 어떤 이유에서 나열을 쓰냐는 질문이었다. 질문이 갑자기 너무 어려워져서 당황했다. 질문을 받으니까, 내 시에서 나열이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열을 사용했지? 최근에 쓴 시에서 왜 나열이 많이 들어가지? 생각했고. 고민 끝에 내가 지금껏 시를 쓸 때는 물방울로 된 방 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나열을 하면서 뾰족한 바늘 같은 것을 만드는 기분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바늘로 물방울을 찔러도 터지지는 않는데, 틈은 생기는 것 같다고. 그게 좋다고. 이 질문은 낭독회 때 실제로는 나오지 않았다. 시간 관계상 그렇게 된 것 같다. 나는 이 질문이 좋았다. 그래서 카페에서 대답을 하고서도, 집에 와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엇일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의 방, 누군가의 집에 붙은 우리가 선물한 시.

   시를 받은 사람들이 시를 집 어딘가에 붙여놓거나, 고이 접어두거나, 둘둘 말아 한 구석에 놓아둘 생각을 하면 재미있다. 그들은 놓아둔 시를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 것이다. 그게 시여도 좋고, 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어떤 생각들을 계속해서 들게 하는 것. 그거면 된다. 그것이 좋다.


   선물하는 시 마지막 화에 부치는 두번째 편지

   김승일

어, 여기 초대장이 있네요. ‘선물 : 커팅시’ 초대장인데요, 모종의 사정으로 아무도 받지 못한 초대장이에요.

선물 초대장. 먼저 시를 쓰고요, 아니면 쓴 게 있고요, 시를 현수막으로 마구 뽑아서 세상에 붙이고 다니려고 했습니다.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그게 선물이 되라고요. 현수막을 어떻게 잘 뽑으면 인쇄비가 되게 싸다고 해서요. 그런데 알아보니까 생각보다 비싸더군요. 1900*900밀리미터 크기로 인쇄하면 2만원 정도 했습니다. 이거 뭐지 내 친구들이 싸다고 했는데 왜 비싸지. 저희가 사실 1년 동안 이거 하면서 돈을 다 썼거든요. 그래서 돈이 없어요. 그냥 하나 뽑는 거로 생각하면 별로 비싸지 않은데, 많이 뽑아서 세상을 선물로 덮으려고 하면 되게 비싸더라고요. 다시 친구들한테 물어봤더니 이게 열 재단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더군요. 그냥 가로 사이즈를 왕창 길게 해서 예를 들면 5000*900밀리미터로 하고 재단은 우리가 하면 가격이 많이 올라가지 않는다고요. 어 그러면 20000*900밀리미터로 하면 되겠다. 자르기 어렵다는데 괜찮을까? 괜찮아 왕창 뽑아서 조금 실수해도 괜찮을 거야. 그런데 추운데 밖에다가 붙이고 다녀도 괜찮을까? 아 그러면 밖에다가 붙이지 말고 사람들보고 오라고 하자. 마지막으로 낭송회 한번 하면 어떨까. 아 괜찮은 것 같아. 시를 직접 잘라서 주자. 아니면 직접 잘라서 가져가게 하는 거야. 그것도 꽤 괜찮은 생각이다. 그럼 어디서 하지. 그래서 백은선이 알아봤고요. 서점에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독립서점 아침달이란 곳에서 행사를 합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53-16 2층입니다. 2018년 12월 21일에 하고요. 인스타그램 선물하는 시 계정(@gift_poem)을 팔로우하세요.

현수막은 이렇게 디자인을 했어요. 그런데 제 아내가 이거 하나씩 그냥 잘라주는 것보다 더 재밌는 방법이 없을까? 여러 가지 얘기해줬어요. 그러다가 제가 생각했는데요. 여러분 전부 가위를 하나씩 준비해 오셔야 해요. 왜냐면 제가 현수막을 정말 상상초월로 길게 뽑을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 낭독회하고, 선물 얘기하고, 비밀 선물도 하나씩 주고, 어쩌면 낭독 같은 거 안 하고 끊임없이 시로 된 선물을 주고요. 마지막엔 나가서, 길에 죽 늘어서는 거죠. 빌딩 시공식에 라인 커팅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다 같이 하나, 둘, 셋하고 현수막을 잘라요. 그래서 가져가요. 현수막이 잘 잘리지 않을 수도 있고, 예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길게 늘어서서 시 잘라 가진 기억은 어디서도 없는 기억이겠죠. 그런 기억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 많이 오실 수 있도록 현수막 30미터 뽑을게요. 만약에 안 오시면 30미터 현수막 걸 데도 없어요. 그러니까 꼭 오세요. 알았죠. 시 전단도 좀 드릴게요. 선물 줄게 꼭 와줘. 사정사정하는 것도 정말 재밌군. 그러면 안녕히. 감기 조심하세요. 선물 받으려면.

   안녕하세요, ‘선물하는 시’의 김승일입니다. 지난 달 21일에 ‘선물 : 커팅시’ 행사를 하고 왔습니다. 낭독회를 한 다음에 현수막에 인쇄한 시들을 조각내어 나눠 갖는 행사였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다시없을 경험을 하는 것, 그런 경험을 많이많이 제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제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웹진이 어째서 존재하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라지지 않는 의문과, 아주 많은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웹진이 종이잡지가 제공할 수 없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활자를 싼 값으로(별로 싸지도 않습니다) 넷 공간에 흩뿌리는 것 말고도요. 동영상이나 음악을 글과 함께 업로드할 수 있다는 이점도 생각만큼 혁신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은 언제나 혁신적인 형식을 통해 대중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문화예술이고요. 그런데 예술이 대중을 만나는 방식 자체가 너무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선물하는 시’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많이 게을러져서는, 정작 웹진에 업로드를 할 때에는 더 재밌는 형식으로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방식이란 게 뭐냐면요. 이제 사진을 좀 보시게 되겠는데요. 이렇게 사진으로만 보면 뭔가 근사해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을 때는, 형언하기 힘든 감각이 몸에 기억됩니다.



   웹진이 해야 하는 일은, 단순히 글을 편집해서 올리고, 홍보하고(이 홍보라는 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작업할 사람들을 구인하고, 세련된 UI를 만든다고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정도만 해도, 이 정도 하면, 조금 특이하니까, 사람들이 기억하겠지. 그렇게 기대하는 것은 대중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웹진 《비유》의 모든 프로젝트와 글들을 읽어보았고, 이제껏 있었던 웹진과 차별화되는 꼭지가 단 하나도 없었다고 판단합니다. 저희가 쓴 글을 포함해서요. 물론 모든 작업들과 모든 작품들이 각자의 길을 걷고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희가 했던 작업을 포함해서요. 저희가 길에서 처음 전단지를 나눠줬을 때의 그 부끄러움은 제가 처음 겪을 일이었고, 누군가가 길에서 제 시를 받고 뒤적이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막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담는 그릇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작은 책방이자 출판사인 ‘아침달’에서 행사를 했고요. 언제나 그렇듯이 모르는 사람들이 넓지 않은 공간에 가득 찼고요. 극장에 불이 꺼지는 기분, 누구나가 꽤 좋아하는 그런 기분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웹진에 접속했을 때, 게시물의 제목에 커서를 가져다댈 때,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언가가 시작되려나보다. 내가 참여할 수 있나보다. 이제껏 활자를 읽을 때 했던 경험 말고도, 어떤 다른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설렘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일단. 웹진의 디자인을 규격화하여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도 마감이 꼭 있어야 하나 싶습니다. 기간이 꼭 정해져야 하는가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더 소수만 고용하여 프로젝트를 맡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더 많은 일반 시민의 글을 게시하여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예술가가 되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마이크를 건네고 싶었다면, 사실은 이미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블로그나 트위터를 리트윗하는 기능만으로도 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제가 마지막 화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웹진이라는 공간에 너무 많은 애정이 있기 때문이고, 웹진 《비유》에서도 큰 노력을 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웹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는 그 속사정을 모르지만, 앞으로 웹진을 만들 사람들,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저보다, 그리고 올해 수고하셨던 우리들보다 멋진 결과물을 냈으면 좋겠기 때문입니다. 선물하는 시를 진행하면서, 낭독회나 선물회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웹진 《비유》를 보시냐고, 보시면 좋겠다고. 사람들은 보지 않았어요. 다음 행사에 찾아온 사람들도 전혀 한두 번 들어가 보고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어요. 이유가 뭘까요? 국가 예산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지요. 제가 이미 너무 낭비해버린 것 같은 부채감에 여기까지 썼습니다. 웹진에 필요한 것은 각각의 작업물에 레이아웃을 최적화하고 다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이고, 작가들에게도 코딩 교육이 필요하다. 나도 노력하겠다. 이게 저의 결론입니다. 마지막 행사 얘기를 하면서 마칠게요.

   마지막 행사 분위기는 마치 ‘선물하는 시’를 처음 하는 것처럼 신이 났어요. 저는 사회를 보았고, 미옥 언니와 은선이와 함께 서로의 시를 낭독했어요. 그리고 종이를 나눠줬고요. 관객들이 각자 선물을 만드는 동안 우리는 또 낭독을 하거나 최대한 재밌는 얘기를 해봤어요. 그 시간의 정적이 마음에 들었어요. 약간 지루한 듯, 살짝 흥분된 듯, 뭐 여기까지 와서 공작을 하라고 해? 그런 불평불만의 아우라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대망의 자르기 시간. 저랑 은선이가 현수막을 쭉 펼쳤어요.



   그리고 잘랐어요. 이상하게 춥지가 않았어요. 바로 다음 날부터 너무너무 추웠는데. 그날은 바람이 별로 안 불었어요. 그래서 누구는 삐뚤빼뚤, 누구는 주욱주욱 현수막을 잘랐고요. 황학동 시장에서 옷 고르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현대 미술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다들 만족감이 얼굴에 번졌어요.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제가 시를 쓸 때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에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좋지. 뭐를 한 것 같지. 뭐를 했으니까 한 거겠지. 자 여러분 현수막 디자인 보이죠. 여기 다운받으세요. (현수막 다운로드) 그리고 현수막 업체 가서 현수막으로 뽑으세요. 친구들하고 죽 늘어서서 잘라보세요.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아요. 되게 예뻐요. 고마워요. 저는 2019년에 글을 많이 쓸 거고요. 웹진 《비유》에서도 저한테 뭐 더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기쁘겠어요. 안녕.



   선물하는 시 마지막 화에 부치는 세번째 편지

   백은선

   ‘선물하는 시’ 프로젝트는 이 글로 끝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좋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를 10년은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기존의 시가 소비되는 방식 자체에 균열을 만들고 시를 다른 방식으로 전유할 수 있게 하고자 하는 원대한 목적을 갖고 시작했으며 다른 멤버들의 의견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엄청나게 기대했다. 지금 최초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것이 잘 되었는지 질문해봤는데, 잘 모르겠다. 그래도 최소한 몇 명에게는 잊히지 않는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그 정도라면 선물로써는 충분한 기능을 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이건 꼭 시를 쓰기 전에 우주 최고 시 쓸 것 같다가 막상 쓰고 보면 그냥 쫌 좋은 시 써버렸을 때 마음하고도 유사한 형식이라는 생각도 방금했다. 우리 그렇게 매번 미끄러지면서도 다시 겨냥하고 기어오르고 돌진하니까 그런 것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마음도 들고. 어쩌면 나는 약간 폭력적으로 시를 마구마구 폭탄처럼 던지고 싶었다는 것.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해서 부유하는 채 선물과 유사한 선물의 형식을 가진 ‘선물처럼처럼’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안 괜찮지 그럼.
   더 제대로 선물을 했어야지.

   괜찮은데?
   이 정도면 충분히 근사하거든!

   이런 두 마음.

   ‘선물하는 시’ 프로젝트는 이 글로 끝이다.

   끝이라는 말이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네.

   우리 ‘선물 : 컷팅시’ 시작 전에 셋이 엄청 힙한 카페 갔잖아. 너무 힙해서 약간 현기증 나는 카페였고 거기서 시 얘기 선물 얘기 엄청 열심히 했잖아.

   내 시의 화자가 있는 곳과 내 시가 물레 위의 도자기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 만드는 무늬하고 그 무늬들이 돌고 돌면서 너무 빨라지면 멈추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발소 등처럼 동맥하고 정맥처럼.

   그리고 더 할 수 없이 선물이라는 개념에 가까이 다가가서 봤잖아. 울고 있는 사람을 웃게 하는 마법을 말이 없던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할 때의 긴장을. 다 봤잖아. 그걸 셋이 보고 좋아서 그래서 주고 싶었던 거지? 선물.

   승일의 「유리해변」에 숨겨진 리듬을 폭로하고, 「홈」의 움푹함과 예리함이 땔 수 없이 뒤섞여 한데 빛이 되는 순간의 멈춘 공기를, 「히시」의 한 구절을 영원히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던 트랙 같은 예감을.

   좋았다고 말하면 너무 아쉬운데 좋았다.


   다들 빈 종이를 받고 골몰하며 조용해진 순간에 어쩔 줄 몰라서 뭔가 말을 쏟아버리던 노래를 부르던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오해와 이해는 역시 사이좋은 쌍둥이 자매 같고 손잡고 빙글빙글 돌면 길고 긴 시가 끝없이 펼쳐져 펼쳐져서

   산 넘고 바다 건너 지구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의 시에 닿는 그런 상상을 한다.

   또 같이 재미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럼 안녕.

   매일 테디베어가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야!



만나서 시 쓰기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우리는 세 사람이다. 우리는 시인이고 친구들이다. 종종 만나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누가 만나서 밥만 먹지 말고 시도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만나서 시 쓰기’가 되었다. 밥 먹는 거랑 시 쓰는 거 말고 재밌는 거 뭐 없나. 고민하다가 이걸 하게 되었다. 이건 ‘선물하는 시’다. 시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2019/01/29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