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_역에서
1화 여자애처럼 크게 이기는 법
How to Triumph Like a Girl
Ada Limon
I like the lady horses best,
how they make it all look easy,
like running 40 miles per hour
is as fun as taking a nap, or grass.
I like their lady horse swagger,
after winning. Ears up, girls, ears up!
But mainly, let’s be honest, I like
that they’re ladies. As if this big
dangerous animal is also a part of me,
that somewhere inside the delicate
skin of my body, there pumps
an 8-pound female horse hearts,
giant with power, heavy with blood.
Don’t you want to believe it?
Don’t you want to lift my shirt and see
the huge beating genius machine
that thinks, no, it knows,
it’s going to come in first.
여자애처럼 크게 이기는 법
에이다 리몬
나는 암말들을 최고로 좋아해,
시속 40마일로 달리는 게
낮잠 자거나 풀 뜯는 것만큼 재밌다는 양
모든 걸 쉬워 보이게 하잖아.
나는 그 암말 식의 뽐내는 태를 좋아하거든,
승리한 뒤에 말이야. 귀를 세워, 여자애들이, 귀를 세운다고!
하지만 대개는, 솔직해져볼게, 나는
걔들이 암말이라서 좋아. 이 커다랗고
위험한 동물이 내 일부라는 것처럼,
내 몸의 연약한 피부 안쪽 어딘가에 8파운드짜리
힘으로 거대하고, 피로 무거운
암컷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거지.
그걸 믿고 싶어지지 않니?
내 셔츠를 걷어올려서 보고 싶지 않니,
자기가 일등으로 들어오리라
생각하는, 아니, 아는
그 커다랗게 약동하는 끝내주는 기관을?
켄터키 옥스(Kentucky Oaks)라는 경마 대회가 있다. 미국의 3대 경마 대회 중 하나인 켄터키 더비(Kentucky Derby)의 자매 경기로, 켄터키 더비의 출전 조건이 3년생 말인 데 반해 이 켄터키 옥스에는 오직 3년생 암말만이 출전할 수 있다. 일종의 부속 여자 리그인 셈이다. 리몬은 가장 큰 경마 대회가 아니라 이 자매 대회에 간다. 그리고 경마 대회의 우승마가 아니라 이 대회에 출전한 “암말들”을 “최고로 좋아한다”고 쓴다. 멋들어지게 뽐내는 단단한 근육과 전혀 힘들이지 않고 내쳐 달리는 그 생생한 열기 때문만이 아니다. 리몬은 고백한다. “나는/걔들이 암말이라서 좋다”고. 평균 300킬로그램을 넘어서고 시속 65킬로미터에 준하는 속도로 달리는 이 3년생 암말들과 나는 전혀 닮은 바 없어 보이지만, 사실 내게도 “암컷의 심장”이 뛰기 때문에. 내쳐 달릴 수 있고, “여자애”로서 뽐낼 수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약동하는” 심장이 있기에 “자기가 일등으로 들어오리란” 걸 저절로 알게 되는 “암컷의 심장”이 있기 때문에. 비평가 론 찰스(Ron Charles)는 이 시의 낭송을 듣고 이렇게 외쳤다. “페미니스트 찬가로군!”
아선 : 이 시를 번역하면서 생각난 영상이 있어요. “여자애처럼 뛰는 건 어떤 거야?”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각자 갖고 있는 ‘여자애’의 이미지대로 뛰는 모습을 흉내내는 영상.1) 기억하세요? 어떤 성인 남자는 무릎을 모은 채 이상한 자세로 뛰고, 어떤 성인 여자는 날리는 머리카락을 신경 쓰느라 제대로 뛰지 못하는 모습을 표현해요. 어떤 남자애는 엉덩이 흔들면서 뛰고. 그러다가 진짜 여자애들에게 똑같이 물어보거든요. “여자애처럼 뛰는 건 어떤 거야?” 그러면 이 여자애들은 전속력으로 뛰어요. 두 주먹 꽉 쥐고, 이 악물고. 딱 이 시 같았어요.
주주 : 저도 그 영상 기억나요. 볼 때마다 눈물이 나던데(웃음), 이 시에는 여자애들에게 어떤 면이 있어서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여자애들이 여자애라서 좋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잖아요.
아선 : 시어 선정에서도 그런 게 드러나요. 낭송회 같은 데서 이 시를 소개할 때 리몬은 ‘filly’라는 단어를 쓰거든요. ‘암망아지’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시에는 그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고 “female horse” “lady horse” “girls” “ladies” 등 성별을 드러낼 수 있는 시어들이 등장해요. 말(horse)을 특정하기보다 “여자애”를 떠올릴 수 있는 장치를 심어둔 것처럼 느껴져요.
지민 : 그 부분 번역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말인 걸 지워버릴 수도 없는 맥락이고.
아선 : 맞아요. 제가 여러분께 도움을 구하는 부분인데(웃음), 말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1행, 5행, 8행, 12행에 나오는데 각각 조금씩 달라요. 기본적으로는 전부 암말을 가리키는 시어들이지만, ‘female’과 ‘lady’가 함의하는 건 다르니까. ‘lady’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암컷을 조금 정중하게 부르고 싶은 시인의 의도가 녹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lady horse”를 “암말”이라고 번역했는데, 12행의 “female horse”는 좀더 동물적인 감각을 살려야 할 것 같아서 “암컷”이라고 했어요.
지민 : 저도 그렇게 구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경마장의 말들도 ‘lady’고 자신도 ‘여성’이라는 일종의 동질감이 화자에게 형성된 다음에 등장하는 시어가 12행의 “lady horse”잖아요. ‘female’이라는 속성을 공유하는 존재들로서 공동의 기반이 생긴 거죠.
주주 : 한국어에서는 확실히 ‘암컷’이라는 말이 좀더 동물적인 감각을 주는 것 같아요. 인간도 포함되고. 저는 시인이 “female”이란 시어를 선택해서 ‘암컷’이란 말의 감각 혹은 동물성이 전달되게끔 구조해놓은 것에 좀더 주목해보고 싶어요. 사십대 이후 여성의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조명하는 웹사이트 ‘변화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 Women’s Voices for Change’2)에서 이 시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시인이 직접 작성한 작가 노트를 보면 리몬은 자신이 상실감에 휩싸일 때나 약하다고 느껴질 때면 동물들의 격렬함, 그들이 절실히 짜내는 힘의 감각에 대해 생각한대요. 그러면서 이 시를 여성들, 소녀들,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해 싸울 이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시라고 설명하더라고요.
아선 : 같은 맥락에서 제목도 그냥 ‘win’이나 ‘beat’가 아니라 “triumph”라고 한 게 의미가 있겠죠. 사실 이 시에서는 상대를 특정해놓고 그 상대를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triumph’는 훨씬 크고 장엄한 개념이잖아요. 성취를 감각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고.
지민 : 원문을 구현하려거든 ‘승리하다’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가 여성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의지가 담겨 있다는 걸 감안하면 “크게 이기다”라는 제목이 받아들여졌어요. 좀더 멋을 부린 제목이니까 눈길을 끌기도 하고.(웃음)
해동 : “triumph”라는 시어는 5, 6행에서 화자가 그려낸 말들의 태도와도 닮아 있어요. 개선장군 들어오는 듯한 태도 있잖아요, 사람으로 치면 어깨 이렇게 펴고 의기양양하게 걷는 모습. 말이니까 귀를 세우는 것일 테고. 다른 상상도 가능해요. 이기고 들어왔으니까 귀 쫑긋 세워서 사람들의 환호를 들어보라는 거라든가.
주주 : 하지만 결국은 아무 말이나 보여줄 수 있는 ‘뽐내는 태’(swagger)가 아니라 “lady horse”만 보여줄 수 있는 태가 있다는 게 이 시의 명확한 메시지인 것 같아요.
아선 : 사실 영미시에서 말은 이렇게 동원되어오지 않았잖아요.
지민 : 이렇게 암말이라고 특정되는 경우도 많지 않죠.
해동 :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를 생각해보면 그래요.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를 생각해보니까, 화자는 늘 말과 함께 다니는데, 자기 주인이 맨날 가던 곳에 안 가고 망설이니까 이 말이 이상해서 목에 매단 벨(bell)을 흔들거든요. 뭔가 잘못된 게 있냐면서.
정민 : 화자의 심경을 읽고 어떤 액션을 취하는 존재로 나오는 거네요.
아선 : 라이트(James Wright)의 시 「은총 A Blessing」도 약간 비슷한 맥락이에요. “두 마리 인디언 포니”(two Indian ponies)가 숲에서 나와서 나와 친구들을 반겨주는 구절이 나오고, 깜깜한 밤에 그 말 두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데, 화자가 그 말들과 교감하거든요. 그러다가 막바지에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내가 만약 내 몸 밖으로 걸어나왔더라면 나는/ 피어나리라는 걸”(Suddenly I realize/ That if I stepped out of my body I would break Into blossom)이라고 시를 마쳐요.
주주 : 말을 통해서 나의 서정을 그려내는……
지민 : 휘트먼(Walt Whitman)의 시는 더해요.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를 보면 32번 섹션에서 말의 멋지고 탄탄한 모습에 대해 경이로워하고 (여기엔 “stallion”이란 단어로 말을 지칭해요, 종마, 씨말 등을 의미하고요) 거기에 올라타는 나 자신에 대한 묘사가 잠시 나온 다음에 “하지만 나는 너를 잠시 이용하고, 내려온단다, 종마여/ 나 자신만으로도 그들을 앞서갈 수 있는데, 너의 속도가 어째서 필요하겠는가?/ 내가 서거나 앉아만 있어도, 그대보다 빠르게 달릴 텐데.”(I but use you a moment, then I resign you, stallion;/ Why do I need your paces, when I myself out-gallop them?/ Even, as I stand or sit, passing faster than you)라고, 정말로 말을 이용하죠.
아선 : 확실히 그런 시들과 리몬의 시는 다른 것 같아요. 지금 거론된 시들을 거칠게 정리해보면 결국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말이 동원되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리몬의 시는 정말로 화자와 말이, 그리고 독자인 제가 동기화된 느낌이 들었거든요. 말을 통해서 나를 긍정하고 이해해보려는 시도이면서도 그 말과 분리된 나만의 서정을 그리지는 않잖아요.
정민 : 번역하시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암말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압도당하는 상상을 했어요. 어쩌면 나의 심장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힘을 갖고 있지 않을까, 계속해서 “암말”의 자리에 저를 넣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시를 반복해서 읽을수록 ‘말’(horse)이 ‘말’(word)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암말이 여성의 말(word)인 거죠. 당당하고 단단한 어조로 자신의 말을 부드러우면서도 힘있게 읊는 여성들의 말이요. “나는 그 암말 식의 뽐내는 태를 좋아하거든/ 승리한 뒤에 말이야. 귀를 세워, 여자애들이, 귀를 세운다고!” 할 때의 태도도 정말 완벽하게 들어맞았어요. 자신의 힘을 믿고 있는 여성들의 말을 들을 때면 저는 그들에게서 어떤 “뽐내는 태”가 흘러나오는 걸 보고 힘을 얻었거든요!
주주 : “자기가 일등으로 들어오리라”는 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는” 그런 태도 말이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