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프로젝트
5화 조금만 있으면 만날 수 있으니까
후회
복순씨가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고생한 얘기를 쓰다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눈물만 나고 가슴이 울렁울렁해서 더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 즐거웠던 이야기를 써보자!”
“즐거운 때가 없는데 어떻게 쓰냐.”
“제주도, 태국 여행 다녀온 것도 있고. 이모할머니들이랑 장구치고 놀았던 것도 있잖아.”
“그게 얘기가 되냐. 어쩌다 한번 놀았던 건데.”
복순씨가 기분 좋게 얘기해오던 일들을 말해도 복순씨는 이야깃거리가 안 된다며 쓰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러다 펜을 들고 다섯 편의 일기를 썼는데 한데 모아놓고 보니 전부 ‘후회’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어언간 스물둘이 되었습니다. 중신하는 사람이 다니더군요. 아빠 엄마한테 좋은 자리 있다고 여의라고 매일 다니며 사정을 하더군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럼 한번 보기나 하자고 허락하셨죠. 그래서 나는 (신랑감이) 오면 문구멍으로 보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중신하는 사람이 오니까 거짓말을 하더군요. 나는 배가 많이 아파서 누워 있는 것이었는데 (엄마가) 거짓말을 하시더군요. 안 간다고 밥도 안 먹고 누워 있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러니까 중신애비가 실망하고 갔지요. 그러다 또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더니 아버지를 모시고 가더군요.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허락했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먼저 한 데가 좋았는데 엄마가 두번째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없으려나요. 보고 싶어요. 찾아주세요.
복순씨에게는 두 번의 중매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중매 자리에 시집을 갔는데 복순씨는 처음 자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남자는 육군 중위로 결혼하자마자 남편의 직장 근처로 가서 부부끼리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복순씨의 마음이 쏠렸는데 어머니의 훼방으로 결국 규화씨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복순씨는 지금도 어머니가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속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때 첫번째 자리가 좋다고 얘기할 걸…… 하고 복순씨는 후회합니다. 그 남자는 은포리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복순씨는 막냇동생과 통화할 때마다 얘기하곤 합니다.
나는 하도 생활이 어려워서 때로는, 여름에 해수욕장에 가서 민박집을 얻어가지고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경험 없이 시작을 했더니 장사가 안 되더군요. 남들은 (해수욕장에) 차가 오면 가서 손님을 잡아오더군요. 나는 하나도 못하는데 남들은 잘하더군요. 나는 혼자 해보지도 않았는데 경험도 없이 시작했더니 손님이 안 오니까 마음이 미칠 것 같더군요. 나도 한 분이라도 올까 하고 잠도 못자고 기다렸지요. 그렇게 날이 새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차 마중 갔지요. 때로는 잠에 취해서 머리를 차에다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민박도 못하겠어서 국수 장사를 했지요. 또 핫도그도 했지요.
“왜 그러고 살았나 싶어. 자나 깨나 자식들 굶을까봐 전전긍긍 그랬는데.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 조느라 주차하는 차에 머리 치받았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복순씨는 뭐든 몰아서 합니다. 일을 할 때는 일만, 잠을 잘 때는 잠만, 텔레비전을 볼 때는 텔레비전만. 젊었을 때 생긴 습관입니다.
아 여러분들 들어보세요. 이 몸은 너무 없다보니 어느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고, 살길이 없어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지요. 서울에 올라가서 돌아다니다보니 (목이 좋은) 시장이 있더군요. 어느 약국 앞에 자리가 있더군요. (약국) 주인 보고 사정해서 물건을 해다 팔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물건을 둘 데가 없어서 복덕방 아줌마를 찾아가서 만났지요. 내가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사정하니까 창고 한 칸을 주시더군요. 고맙다고 하고 낮에는 팔고 밤에는 (물건을) 창고에 넣고 하는데 밤에 잘 데가 없어 곤란을 많이 받았지요. 때로는 그 창고에서 보자기 쓰고 밤을 새기도 했지요. 그러다 주인아줌마한테 들켰지요. 주인아줌마가 보고 깜짝 놀라더군요.
당시에는 지낼 곳이 없는 복순씨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주인아줌마가 야속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놀랐을까 싶다고, 창고에서 자고 있던 복순씨를 보고 놀랐을 주인아줌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디로 갈 데가 없는데 복덕방 아줌마가 나서서 돌아다니며 방을 얻어주시더군요. (저는) 밤이나 낮이나 혼자 뛰었지요. 한번은 광천 장에 갔더니 장항에서 생선을 갖고 새벽에 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막차 타고 가서 역전에서 밤을 새고 물건(을 실은) 차가 오면 생선을 세 박스, 네 박스 이렇게 가지고 와서 장을 봤지요. 하루는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서 하도 피곤하여 방문도 닫지 못하고 금방 잠이 들었던가 봐요. 옆에서 장사를 하던 분이 화장실을 갔다가 일을 보고 와서 내 앞치마에 있던 돈을 다 가져갔더군요. 잠에서 깨고 보니 하늘이 빙빙 돌더군요.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잃은 적도 많았습니다. 한번은 기차에서 강도를 만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렸는데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허리에 두르고 있던 복순씨의 돈 가방을 노리고 강도가 면도칼로 여기저기 찢어놓은 바람에 바지 앞섶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손발이 덜덜 떨리는 채로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봤더니 다행히 꽁꽁 숨겨놓은 돈은 못 꺼내갔더랍니다.
(승주는) 어릴 때 친했던 친구입니다. 승주랑 이웃에서 살았지요. 너무나 다정하게 지냈지요. 그러다 내가 먼저 시집을 갔지요. (시집가기 전에 승주와) 그 우정 변하지 말자고 팔에다 ‘우정 뜨기’도 했지요. 나는 스물둘에 출가를 했지요. (시집가기 전까지 승주와) 일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자고 그렇게 지냈지요. (시집간 뒤에) 한번 만나기를 원했지요. 그래서 사방으로 연락을 해보니까 세상을 떴다고 하더군요. 내가 실망했습니다.
복순씨의 오른팔에는 새끼손톱 반만 한 작은 점이 있습니다. 처녀 적에 친구와 같이 ‘우정 뜨기’를 한 거라고 합니다. 서로의 팔에 새겨놓은 우정. 몸에 생기는 검버섯, 점들은 빼고 싶다고 해도 팔에 새긴 우정은 볼 때면 마음이 아리다고 합니다. 한번 만나서 허심탄회 얘기라도 해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는 복순씨의 얼굴에 그리움이 드리웠습니다.
고생한 얘기를 쓰다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눈물만 나고 가슴이 울렁울렁해서 더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 즐거웠던 이야기를 써보자!”
“즐거운 때가 없는데 어떻게 쓰냐.”
“제주도, 태국 여행 다녀온 것도 있고. 이모할머니들이랑 장구치고 놀았던 것도 있잖아.”
“그게 얘기가 되냐. 어쩌다 한번 놀았던 건데.”
복순씨가 기분 좋게 얘기해오던 일들을 말해도 복순씨는 이야깃거리가 안 된다며 쓰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러다 펜을 들고 다섯 편의 일기를 썼는데 한데 모아놓고 보니 전부 ‘후회’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첫사랑
어언간 스물둘이 되었습니다. 중신하는 사람이 다니더군요. 아빠 엄마한테 좋은 자리 있다고 여의라고 매일 다니며 사정을 하더군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럼 한번 보기나 하자고 허락하셨죠. 그래서 나는 (신랑감이) 오면 문구멍으로 보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중신하는 사람이 오니까 거짓말을 하더군요. 나는 배가 많이 아파서 누워 있는 것이었는데 (엄마가) 거짓말을 하시더군요. 안 간다고 밥도 안 먹고 누워 있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러니까 중신애비가 실망하고 갔지요. 그러다 또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더니 아버지를 모시고 가더군요.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허락했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먼저 한 데가 좋았는데 엄마가 두번째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없으려나요. 보고 싶어요. 찾아주세요.
복순씨에게는 두 번의 중매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중매 자리에 시집을 갔는데 복순씨는 처음 자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남자는 육군 중위로 결혼하자마자 남편의 직장 근처로 가서 부부끼리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복순씨의 마음이 쏠렸는데 어머니의 훼방으로 결국 규화씨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복순씨는 지금도 어머니가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속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때 첫번째 자리가 좋다고 얘기할 걸…… 하고 복순씨는 후회합니다. 그 남자는 은포리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복순씨는 막냇동생과 통화할 때마다 얘기하곤 합니다.
민박집
나는 하도 생활이 어려워서 때로는, 여름에 해수욕장에 가서 민박집을 얻어가지고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경험 없이 시작을 했더니 장사가 안 되더군요. 남들은 (해수욕장에) 차가 오면 가서 손님을 잡아오더군요. 나는 하나도 못하는데 남들은 잘하더군요. 나는 혼자 해보지도 않았는데 경험도 없이 시작했더니 손님이 안 오니까 마음이 미칠 것 같더군요. 나도 한 분이라도 올까 하고 잠도 못자고 기다렸지요. 그렇게 날이 새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차 마중 갔지요. 때로는 잠에 취해서 머리를 차에다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민박도 못하겠어서 국수 장사를 했지요. 또 핫도그도 했지요.
“왜 그러고 살았나 싶어. 자나 깨나 자식들 굶을까봐 전전긍긍 그랬는데.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 조느라 주차하는 차에 머리 치받았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복순씨는 뭐든 몰아서 합니다. 일을 할 때는 일만, 잠을 잘 때는 잠만, 텔레비전을 볼 때는 텔레비전만. 젊었을 때 생긴 습관입니다.
서울살이1
아 여러분들 들어보세요. 이 몸은 너무 없다보니 어느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고, 살길이 없어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지요. 서울에 올라가서 돌아다니다보니 (목이 좋은) 시장이 있더군요. 어느 약국 앞에 자리가 있더군요. (약국) 주인 보고 사정해서 물건을 해다 팔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물건을 둘 데가 없어서 복덕방 아줌마를 찾아가서 만났지요. 내가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사정하니까 창고 한 칸을 주시더군요. 고맙다고 하고 낮에는 팔고 밤에는 (물건을) 창고에 넣고 하는데 밤에 잘 데가 없어 곤란을 많이 받았지요. 때로는 그 창고에서 보자기 쓰고 밤을 새기도 했지요. 그러다 주인아줌마한테 들켰지요. 주인아줌마가 보고 깜짝 놀라더군요.
당시에는 지낼 곳이 없는 복순씨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주인아줌마가 야속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놀랐을까 싶다고, 창고에서 자고 있던 복순씨를 보고 놀랐을 주인아줌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살이2
어디로 갈 데가 없는데 복덕방 아줌마가 나서서 돌아다니며 방을 얻어주시더군요. (저는) 밤이나 낮이나 혼자 뛰었지요. 한번은 광천 장에 갔더니 장항에서 생선을 갖고 새벽에 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막차 타고 가서 역전에서 밤을 새고 물건(을 실은) 차가 오면 생선을 세 박스, 네 박스 이렇게 가지고 와서 장을 봤지요. 하루는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서 하도 피곤하여 방문도 닫지 못하고 금방 잠이 들었던가 봐요. 옆에서 장사를 하던 분이 화장실을 갔다가 일을 보고 와서 내 앞치마에 있던 돈을 다 가져갔더군요. 잠에서 깨고 보니 하늘이 빙빙 돌더군요.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잃은 적도 많았습니다. 한번은 기차에서 강도를 만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렸는데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허리에 두르고 있던 복순씨의 돈 가방을 노리고 강도가 면도칼로 여기저기 찢어놓은 바람에 바지 앞섶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손발이 덜덜 떨리는 채로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봤더니 다행히 꽁꽁 숨겨놓은 돈은 못 꺼내갔더랍니다.
내 친구
(승주는) 어릴 때 친했던 친구입니다. 승주랑 이웃에서 살았지요. 너무나 다정하게 지냈지요. 그러다 내가 먼저 시집을 갔지요. (시집가기 전에 승주와) 그 우정 변하지 말자고 팔에다 ‘우정 뜨기’도 했지요. 나는 스물둘에 출가를 했지요. (시집가기 전까지 승주와) 일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자고 그렇게 지냈지요. (시집간 뒤에) 한번 만나기를 원했지요. 그래서 사방으로 연락을 해보니까 세상을 떴다고 하더군요. 내가 실망했습니다.
복순씨의 오른팔에는 새끼손톱 반만 한 작은 점이 있습니다. 처녀 적에 친구와 같이 ‘우정 뜨기’를 한 거라고 합니다. 서로의 팔에 새겨놓은 우정. 몸에 생기는 검버섯, 점들은 빼고 싶다고 해도 팔에 새긴 우정은 볼 때면 마음이 아리다고 합니다. 한번 만나서 허심탄회 얘기라도 해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는 복순씨의 얼굴에 그리움이 드리웠습니다.
오순도순 고슴도치
할머니와 손녀가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할머니 한복순씨는 농부, 상인, 엄마, 할머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손녀 박경서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복순씨의 기록을 기록하기 위해 구성된 팀입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그림일기를 통해 삶을 기록합니다.
2019/02/26
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