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함과 생생함이 공존하던 노량진에서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된 노량진의 거리는 한산했다. 강연을 듣기 위해, 혹은 수강증을 끊기 위해 줄을 서던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고, 컵밥 거리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임대’ 플래카드를 내건 건물이 드물게 눈에 띄었다.
   아마 시장의 사정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다소 침울한 마음을 품은 채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노량진역에서 내려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1927년 서울역 의주로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수산물 도매시장 ‘경성수산 주식회사’가 모태다. 본래는 전통시장의 구색을 갖춘 수산시장이었으나, 2015년에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대형 현대식 건축물로 탈바꿈했다.

   김애란의 「건너편」(『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은 8년간 연애해온 도화와 이수의 찢어짐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은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나 8년을 사랑하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이별한다. 이 지난하고 서글픈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작가는 ‘노량진’이라는 공간을 통해 찬찬히 되짚는다.

    정아 : 지금 우리 나이에서 딱 10년이 지나야 도화와 이수의 나이가 된다.

    해나 : 10년. 아득하면서도 가깝다. 노량진에 와본 적 있는가?

    정아 : 재수할 때 수학 단과학원을 잠깐 다녔다.

    해나 : 나는 사육신공원에 들르기 위해 한 번, 수산시장 구경하러 한 번 왔다. 확실히 노량진 특유의 기운이랄까, 기세가 있다. 길가에 있는 컵밥 가게나 수산시장의 활기, 입시학원의 엄숙함이나 피로가 공존하며 기이한 기운을 뿜어낸다.

    정아 :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노량진 특유의 분위기가 좀 옅어진 것처럼 보인다.

    해나 : 학원도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으니까. 아무래도 놀러오기엔 좀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곳에 입성하는 사람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모이기 때문에 그 압박감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하고.

    정아 : 공무원 시험은 떨어지면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치는 것 같다.

    해나 : 소설에서도 3년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이후에는 초조해졌다는 대목이 나온다.

    정아 : 시험에 중독되는 거지. 이수가 시험을 그만두는 계기가 특히 마음이 아팠다. 자기 여자친구가 직장 얘기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사회로 나오기로 결심하지 않나. 도화가 직장과 생활을 분리하며 사회 구성원이 되는 모습을 보며 이수는 도화가 자기와 다른, 건너편의 어딘가에 있다고 느꼈을 것 같다.

    해나 :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인데, 이수는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지 않나. 나는 일을 하게 된 다음에 이수가 느끼는 심정도 이해가 가서 더 슬펐다. 내가 ‘있을 뻔’한 곳,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생각하는 부분.

    정아 : 이수가 현실과 이상의 격차를 심하게 느낀 이유는 부동산 일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필이면 고객에게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하는 직업이라 공무원이 못된 것에 미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해나 : 그래서 제목이 ‘건너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수는 넘어가지 못하고, 도화는 넘어간 그 건너편으로 인해 생긴 둘 사이의 실금이 10년이란 시간을 통과하며 점점 깊어진 것 같다.

    정아 :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 건너편에 있는데 10년이나 관계를 지속한 것도 놀랍다.

    해나 : 사랑의 원료엔 농담이나 배려, 정념 외에 일말의 연민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해서 별거 아닌 일에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되는 것 같고.

    정아 : 이수가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혹시나 사고라도 당해 죽는 건 아닌가하고 마음 아파했던 도화가 후에는 이수가 보증금을 까먹은 것조차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소설은 사랑할 때의 감정과 그 감정이 사라졌을 때 심정 모두 담담하게 표현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울컥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수산시장 안은 회를 뜨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싱싱한 해산물과 수조에 넘쳐흐르는 물,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 시장을 찾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이들이 만드는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시장이 활기를 찾고 있었다. 우리가 시장을 찾은 날 역시 사람은 많았지만, 시장의 규모로 짐작해보건대 코로나로 인해 평소보다 인파가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시장을 한참 누빈 끝에 발견한 청해수산. 소설 속에선 폐업한 가게로 나오지만, 현재도 원활히 운영되고 있다. ‘도화와 이수가 이곳에서 돔을 샀지.’ 떠올리며 그곳을 지났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누군가 찾아온대도 안개에 가려 결코 못 알아볼 것 같은 밤. 수백 명이 왕왕거리는 횟집에서, 모두 소리 높여 떠드는 가운데 아무 말도 않는 사람은 이수와 도화 둘뿐이었다.1)

    해나 : 노량진은 참 요상한 동네다. 사육신공원, 수산시장, 학원가, 고시촌까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모여 있는 동네다. 거기다 화장품이나 식료품도 값싸 외국인도 많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아 : 물가가 그 지역에 상주하는 사람들의 경제 사정에 따라 차이가 있는 점이 흥미롭다. 주머니 사정을 봐주는 느낌이다. 얼핏 보면 공통점이 없는 것들이 모인 동네로 보일 수는 있지만, 고시촌과 수산시장 모두 전국에 있는 사람과 해산물이 모인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횟감은 모두 비싼데, 그 횟감을 구매해서 가져간 가게는 허름하고 회의 값어치에 비해 회를 담는 그릇은 고작 일회용 그릇인 점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생 와사비도 없다. 가격에 비해 환경이나 서비스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노량진 수산시장의 특징이라 생각이 들었다. 시장은 많지만, 이렇게 비싼 식재료를 다루는 시장은 드물지 않나.

    해나 : 그런 것 같다. 생선은 눈앞에서 회를 쳐서 먹을 때 가장 신선하다고 느끼지 않나. 소설에서도 시장의 싱싱함을 전달하는데, 정작 도화와 이수의 관계는 싱싱함보다는 미적지근하다고 할까. 다 식었다고 해야 할까. 그 대조가 좀 아팠다. 그 번잡한 식당에서 침묵을 지키는 이들이 두 사람뿐이라는 점도.

노량진은 노량진동에 위치했던 나루터를 의미한다. 노량진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배가 이곳을 드나들며 교통의 요지로 발전해왔다. 1971년 서울에 수산물 도매시장이 노량진에서 개장한 것도 이런 특징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현대화사업의 결과로 수산시장이 새로운 건물로 옮겨져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사진 출처: 서울 스토리)

1970년대 말 정부의 인구분산정책으로 종로의 유명 입시학원들이 사대문 밖으로 내쫓기게 된다. 그중 대성학원이 노량진에 자리를 잡고, 이후 다른 학원들이 이곳으로 몰리며 노량진은 입시학원 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동네가 되었다. 노량진역에서 내려 출구 밖으로 나오면 번화가부터 먼저 보이지만 안쪽 골목의 고시촌으로 들어갈수록 동네는 조용해진다.(사진 출처: 문병희)

   도화가 고개 들어 이수 얼굴을 봤다. 이수는 시선을 피했다. 명학이 그때서야 ‘누구?’ 하는 얼굴로 도화를 슬쩍 바라봤다. 명학의 서글서글한 눈에 선의와 호기심이 가득했다. 도화는 속으로 ‘아직 덜 실패한 눈……’이라 중얼거렸다. 오래전 저 눈과 비슷한 눈을 가진 사람을 본 적 있다고. 자신도 가져본 적 있는 눈이라고 생각했다.2)

    해나 : 수산시장에서 명학이라는 인물을 만났을 때 도화는 명학의 눈을 ‘덜 실패한 눈’이라고 일컫는다. 이때 도화는 자신들이 덜 실패했을 때를 상기하며 그 순수한 시절은 다 가고 막이 내렸음을 깨달았을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속에서 울컥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민다.

    정아 : 맞다. 읽을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는 부분을 자꾸 발견한다.

    해나 : 사랑의 온도라는 게 일정치 않지 않나. 그 온도가 서로 다를 때 가장 슬픈 것 같다.

    정아 : 그렇다. 그리고 이별은 단순히 온도에 변화가 생기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온도를 알 수 없이 살아가야 할텐데, 마지막 장을 읽으며 ‘두 사람은 이제 각자 어디로 갈까’ 하고 궁금해졌다.


   *11월에는 박민정 작가의 「신세이다이가옥」을 읽고 후암동에 갑니다.



경계 없는 작업실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소설가 성해나와 건축학도 원정아. 문학 안에는 사람이, 사람 안에는 건축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 안에 있는 건축을 본다.

2020/10/27
35호

1
김애란, 「건너편」, 『바깥은 여름』, 116쪽.
2
같은 책, 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