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이어 손주까지. 복순씨는 언니와 저를 돌보며 살았습니다. 일도 하고, 애도 돌보고, 살림도 해야 하고…… 복순씨는 늘 바빴습니다.

안산 밭에서. 시골집에는 뒤꼍이 있었습니다. 뒤꼍에 서면 밭에서 일하는 복순씨의 모습이 보이곤 했습니다. 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제가 밭에서 일하는 복순씨를 보며 악을 쓰고 울었다고 합니다. 언니는 쏙 나와서 복순씨의 모습을 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저는 집 앞을 지나가던 당숙이 찾아와 달래줄 정도로 울었습니다. 제 울음소리에 복순씨는 마음이 급해져 쉬지도 않고 빨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막내아들



   남편이 세상 떠난 후 몇 달 안 지나서 서울 동생네 집으로 바람이나 쐬려고 갔습니다. 그때 세 살 난 막내아들이 있었지요. 아들과 함께 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아들은 초등학생인 조카와 함께 문방구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혼자 문방구에 가서 과자를 달라고 하더래요. 그래서 (주인이) 집에 가 돈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는데 아들이 집을 못 찾아 딴 데로 갔습니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지요. 동사무소에 연락하고 파출소에도 전화했는데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나는 미친 사람이 되었지요. 다시 동사무소에 찾아가 연락 안 왔냐고 묻고 있는데 다른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찾아가보니 과연 거기 있더군요. 그래서 나도 살았습니다.


    규화씨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 보내고 아들까지 잃어버렸으면 못 살았지.” 지금이야 가족들이 모였을 때 얘기하며 웃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때 막내아들을 찾지 못했더라면 복순씨는 살아갈 수 없었을 거라는 말에 다들 수긍했습니다. 복순씨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일날


가족사진. 복순씨의 생신에 맞춰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들 내외, 딸, 손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까지 함께했습니다. 사진관에서 정식으로 찍는 사진은 처음이었던 터라 다들 설렘과 긴장 어린 표정이었습니다. 복순씨를 중심으로 양옆, 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두 카메라를 바라보며 크게 웃음 지었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혼자 의자에 앉아서 독사진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 눈물이 나더군요.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은 한 백 년 살고 싶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지요.


독사진. 가족사진을 찍은 뒤 복순씨는 독사진을 찍었습니다. 크게 웃음을 터트렸던 가족사진에서의 표정과는 달랐습니다. 자식, 손주들이 쳐다보는 앞에서 홀로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복순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반주를 곁들인 식사였습니다. 복순씨는 금세 취기가 올라왔습니다. “사진까지 찍었으니까 이제 다 준비했다.”
   떠날 준비를 끝냈다는 복순씨. 장롱 한쪽에는 보자기로 곱게 싸놓은 수의가 있습니다. 시골에 사는 동생네 집에 놀러갔다가 맞춘 수의입니다. 복순씨가 저에게 돈을 부치라고 전화했었지요. 저는 나중에 더 좋은 걸로 함께 맞추러 가자고 했지만, 복순씨는 수의를 맞춰왔습니다. 내가 직접 보고, 내 손으로 맞춰야 한다면서, 동생들도 산다고 하니 나도 같이 살 거라는 이유를 들어 끝끝내 홀로 준비한 수의였습니다.
   취기가 오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복순씨의 노래. 복순씨에게는 복순씨만의 가락이 있습니다. 제멋대로 가사를 붙여 부르는 노래인데 그걸 들으면 괜스레 눈물이 차오르곤 했습니다. 늘 한탄과도 같은 노래였는데 그날은 왠지 모를 후련함이 느껴졌습니다. 복순씨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함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순도순 고슴도치

할머니와 손녀가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할머니 한복순씨는 농부, 상인, 엄마, 할머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손녀 박경서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복순씨의 기록을 기록하기 위해 구성된 팀입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그림일기를 통해 삶을 기록합니다.

2019/03/26
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