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순씨는 매년 봄이 되면 큰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습니다. 6년 전, 림프종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예후가 좋아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을 하는 중에 있습니다. 며칠 전, 복순씨의 검사 결과를 들었습니다. 1년 만에 마주한 의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아주 깨끗해요. 이제 졸업합시다.” 졸업. 매우 적절한 어휘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의사는 서로 악수를 나눴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복순씨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졸업해도 된대!” 웬일인지 복순씨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몸이 이렇게 아픈데 졸업은 무슨. 똑바로 본 거 맞는지 몰러.”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고, 졸업을 하면 다시 입학을 하게 마련이죠. 설 대목 이후부터 복순씨는 어깨 통증 때문에 많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진통제로 버티다 통증의학과에 찾아가 검사를 받았고, 오른쪽 어깨의 인대가 완전 파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비수술적 치료를 통해 통증 조절을 하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청춘



   내가 생각해보니 오육십대에는 한참 좋았던가 봐요. (동네 사람들과) 계모임 해가지고 여럿이 차도 타고, 배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지요.) 여럿이 다니니까 너무 많이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또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데도 다리가 많이 아파서 못갑니다. 너무 슬픕니다.

유채꽃밭에서.

   개나리, 매화, 목련…… 요즘 저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복순씨에게 밖에서 찍은 꽃 사진을 보여주곤 합니다. 노란 개나리를 보고 복순씨가 말했습니다. “노란 꽃, 내가 좋아하는 꽃이 있는데 제주도에서 많이 피는 꽃 있잖아.” 복순씨는 20년 전, 동네 계모임으로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유채꽃을 처음 봤다고 합니다. 너른 들판에 노랗게 만개한 꽃을 보면서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습니다. 복순씨는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벌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올해는 놓쳤지만, 내년에는 함께 꼭 제주도에 가서 유채꽃 축제를 즐기자고 약속했습니다.


   일상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그림일기입니다. 이사를 다니면서 일기장을 대부분 분실하였는데, 책장을 정리하다가 파일에 꽂혀 있던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저녁에 함께 밥을 먹으며 어릴 때 쓴 일기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언니는 재미있다고 웃었지만 복순씨는 심드렁하게 듣기만 했습니다. 그러더니 저녁상을 치우는 저에게 “너는 어려서부터 그런 걸 좋아했나보다!” 하고,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좋아서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썼던 일기와 같이 복순씨는 오늘도 일을 하고 저는 설거지를 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일상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사




   나는 글도 모르고 국민학교도 못 나왔습니다. 쓸 줄 모르는 글을 말도 잘 안 되게 썼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받아주시어서 고맙습니다. 눈이 안 보여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인사 문구를 적고 있는 복순씨에게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좋았다.” 글을 쓰는데 헷갈리게 왜 묻느냐고, 복순씨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복순씨와 저는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림일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복순씨와 저의 일상은 그대로였지만, 지나간 일상을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되었습니다.

   독자님들의 일상에서 ‘그림일기 프로젝트’가 잠깐 쉬어갈 수 있는, 또는 환기가 될 수 있는 자리였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함께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들 힘내세요.


오순도순 고슴도치

할머니와 손녀가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할머니 한복순씨는 농부, 상인, 엄마, 할머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손녀 박경서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복순씨의 기록을 기록하기 위해 구성된 팀입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마주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그림일기를 통해 삶을 기록합니다.

2019/04/30
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