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
7화(최종화) 천원
소리의 겨를 줍다
장소 : 노인 복지관과 노인 목욕탕 사이의 공터
시간 : 오전 열한시 반
소리의 겨를 살피다
소리를 채집하는 손. 채집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 천원.
낙엽도 별로 안 떨어지고.
앞뒤로 넓어가지고.
아예 그러믄 계단 같은 거 쓰도 않겄구만, 그래.
계단은 아예……
이층도 안 하고 오층도, 오층하고 이층하고.
오층은 저, 인자 애들허고.
버스가 몇시에 있어요?
열한시 반이네.
열한시 반?
지금 열한시 반 안 됐니?
조금 안 됐네.
딱 됐네.
여기 또 몇시에 와야지.
그려.
나 이천원.
왜 여기 나와 있어.
예? 언니, 왜 여그 와서 있어.
응?
왜 여그 와서 있어.
아무것도 없어. 인자 걸어온대.
내려올래, 아이고, 못 살어. 아, 저 가서 앉았지.
여기 지금 오네. 걸어온대?
걸어온댔어.
얼마씩이에요?
천원. 싸게. 다 다듬었어. 이거 움적거려, 이거이거.
천원이면 싸요.
시장보담 싸! 천원짜리 없어. 시장에서 그냥 줬어 이거는. 이건 말하자면 시장에서 천오백원 이천원 받는 거여.
둘 다 천원 이거.
(버스 엔진 소리)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소리)
가서 만들어야지.
여기서도 만들어?
그럼.
아무거나 여기 건 없어요?
여기 건 없어요.
아, 그랑게.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조심해요.
회장 안 온 거 같은데.
내가 가볼게. 저기 가 앉어 있어. 안에 들어가서.
아니, 안에 들어가서 앉어.
회장 안 온가 봉께.
회장 차에 있나.
조심해.
형님, 목욕 가실 거야?
점심 잡숫고 가.
안 돼, 나 바로 갈 거야.
어어.
시간, 시간이 없어.
어어.
바로 가고 거기 나 시장 갔어.
거기?
응.
할머니, 언제 집에 가?
모르겠어, 나 시간이 어떻게 되나.
응, 나도 그래.
얼른 갔다오셔.
응.
징그러워. 올해 병원에……
(자동차 경적 소리)
병원 갔다 오시나봐?
아이고, 힘들어.
힘들져.
아, 아니야, 아니야.
(탁, 탁, 탁, 탁, 탁, 지팡이 짚는 소리)
겨로 만든 미니 픽션 : 「천원」
―돈을 더 준대도 안 받아.
―안 받아?
―안 받아. 천원도 더 안 받아.
김반장이 말한다. 흰 장갑을 끼고 머리를 올려 묶은 김반장은 마을버스를 모는 운전기사다. 나는 버스를 탈 때 김반장이 있으면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김반장에게 말을 건다. 운전도 잘하고, 동네 계모임 반장이라 나는 그를 김반장이라 부른다.
―일을 더 하는데 더 받아야지.
―더 드린대도 안 받으신다니까.
―왜 안 받으실까.
―몰러. 안 받아. 이만원에서 십원도 더 안 받아.
김반장은 핸들을 끝까지 돌린 다음 천천히 풀어 버스를 회전시킨다. 완두콩처럼 짙은 연두색 마을버스가 로터리를 돌아 초등학교를 지난다. 김반장은 운전 솜씨가 좋아 과속방지턱도 부드럽게 지나간다. 내가 장에 들러 짐이 많을 땐 다른 사람에게 내 짐을 들어주라고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저 아줌마 짐 좀 옮겨주세요.’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안경 쓴 여자가 내 짐을 들어줬다. 나는 시장에서 싱싱한 열무를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다.
―청소를 두 시간 하지?
―버스가 빨간불에 멈추자 나는 김반장에게 묻는다.
―일곱시부터 아홉시.
김반장이 말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해본다. 복지관 목욕탕을 청소하는 ‘여사님’은 매일 저녁 두 시간씩 일하고 이만원을 받는다. 얼마 전 목욕탕에 쑥 찜질기가 들어와 여사님은 찜질기가 있는 방도 청소하게 되었다. 일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도 여사님은 여전히 이만원만 받으신다는 거다.
―여사님은 어디 사셔?
―나는 운전에 방해되지 않게 상황을 봐가며 김반장에게 묻는다.
―부천.
―부천?
―응.
―거기서 여기까지 와?
김반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또 머릿속으로 계산해본다. 부천에서 복지관까지 한 시간 반이 걸린다. 한 시간 반 동안 지하철을 타고 와 두 시간 일하고 가면 이만원을 받는 거다. 나이도 일흔이 넘으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받으셔야 한다. 그런데 복지관에서 돈을 더 주겠다고 해도 여사님은 안 받는다고 한다. 원래 받을 돈에서 천원도 더 안 받는다고. 여사님은 왜 돈을 더 안 받으실까.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와 축구공을 든 아이가 탄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가 놀란다. 목에 건 카드지갑을 뒤지더니 먼저 탄 친구에게 묻는다.
―야, 삼백원 없냐.
―없는데.
목에 때 국물이 세 줄로 낀 아이가 말한다.
―내가 한 번 더 찍을까?
―있다. 천원 있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가 천원짜리 한 장을 요금함에 넣는다. 김반장이 육백오십원을 거슬러준다. 나는 짐차가 쓰러지지 않게 한 손으로 짐차 허리를 붙잡고서 왜 여사님이 돈을 더 안 받는지 생각해본다. 여사님은 왜 돈을 더 안 받으실까. 분명히 더 받으셔야 하는데.
―나 가.
―사우나 안 가고?
―열무 다듬어야지.
―얼마씩 샀어?
김반장이 묻는다. 그때 갑자기 버스가 콱 멈춘다.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김반장이 창문을 열고 소리친다. 축구공이 통통 튀어 내 앞으로 오더니 계단으로 떨어진다.
―노인네 저러다 큰일 나지. 신호도 안 보고 막 건너 그냥. 안 다쳤어?
김반장이 묻는다. 안경 쓴 여자가 내 짐차를 일으켜 세워준다.
―고마워요, 아가씨.
나는 시큰거리는 무릎을 짚으며 일어선다.
―야, 저기도 있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가 말한다. 아이들이 내 대추를 주워준다. 한 바구니에 삼천오백원 주고 산 내 왕대추가 버스 안을 굴러다닌다.
멜라겨해나
소설가 김멜라와 배우이면서 영상을 만드는 이해나.
둘 다 ‘겨’울에 태어났으며 냉면을 좋아합니다.
2019/04/30
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