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
현숙의 학교에 미선씨 혼자 갔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미선
혼자 갔으면…… 부끄러워하면서 주저주저했겠죠. ‘여기서 사진 찍어도 되나?’ 하면서.
미선
네. 그리고 계속 의심하겠죠. ‘나 미친 짓 하고 있나?’
미선
네. 혼자는 그 장소에 아마 안 갔을 거예요. 가더라도 금방 나왔거나 현숙에게 말 걸어보거나 했을 거예요. “현숙아, 잘 있냐? 나 네가 사진 찍었던 그 장소에 와봤다.” 그렇게 말했을 거 같아요. 언젠가 정윤씨가 집 옥상에서 하늘 보면서 문희3) 언니에게 말 걸었듯이. 정윤씨는 만약에 현숙의 학교에 혼자 갔다면 어떠셨을 거 같아요?
정윤
안 갔겠죠. 어딘지 몰라서 못 갔을 거고요.(웃음)
미선
제가 어딘지 알려주고 “정윤씨, 저는 도저히 못 가겠어요.” 하면요?
정윤
저 혼자는 안 가죠. 미선씨의 동생이기 때문에 미선씨가 간다고 하면 같이 가고.
미선
그렇군요.(웃음)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서 정윤씨가 언제부턴가 ‘현숙을 보는 저’를 보게 됐다고 했어요.
정윤
네. 현숙에 대해 애도 작업을 하는데 제 영상에 미선씨가 많이 보이죠. 미선씨를 통해서 현숙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만약 제가 미선씨를 통해 현숙을 알지 못했다면, 현숙이 다니던 학교 화장실에 찾아갔을 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겠죠. 현숙을 보는 미선씨를 통해, 저는 그 화장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촬영하면서 ‘현숙은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해볼 수 있었어요.
미선
그런데 그날 정윤씨는 정윤씨 사진을 몇 장 찍지 않았던 거 같아요.
정윤
네, 제 모습을 사진 찍기보다는 미선씨가 사진 찍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영상으로 담았어요. 미선씨가 거울을 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보니 초점이 잡히지 않은 이미지가 촬영 모니터에 많이 보였고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에는 캠코더로 거울에 비친 저와 미선씨 모습을 담다가, 뒤쪽 탈의실에 있는 거울에 보이는 제 모습도 찍었어요. 미선씨는 사진 촬영에 열중하느라고 제가 뭐하는지 모르더라고요.
정윤
제가 미선씨에게 그곳에 혼자 갔으면 어땠을지 물어본 건, 제가 문희랑 처음 만났던 동물원에 혼자 가서 촬영했던 게 기억나서요. 미선씨랑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 비 오는 날 혼자 동물원에 갔어요.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좋기도 했는데 나 혼자 있으니까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선씨랑 이 대화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모든 걸 혼자 안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마음도 아주 무겁고 몸에 무언가 가득했던 거 같아요. 문희 생각만 계속하면서 서 있었는데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동물이었어요.
정윤
주변에 동물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갇혀 있는 동물을 보고 웃는 소리에 몹시 짜증이 나는 반면, 카메라로 들어오는 동물의 눈망울이나 비에 털이 젖어서…… 빗물을 털어내고 무겁게 걸어가는 다리를 보고 있는데…… 그게 위로가 많이 되었어요.
미선
동물들이 동행자가 되어준 거네요. 동물 친구들 없었으면 마음이 훨씬 무거웠을 거 같아요.
정윤
그곳에 오래 있지 못했을 거 같아요. 거기에 네 시간 정도 머물렀거든요. 자연을 바라보는 게 위안이 되었던 거 같아요.
미선
저도 현숙이 머물던 장소에 혼자 갔으면 금방 나왔을 거예요. 제가 정윤씨에게 그런 위안을 받았어요. 자연의 위안처럼요. 제가 정윤씨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했네요.
정윤
저 혼자는 가지 않겠죠. 아니, 가고 싶지 않겠죠.
정윤
내가 만약에 미선씨 어머님의 성묘를 하러 혼자 간다면? 그것도 이상해요.
미선
그렇죠. 제가 이렇게 물어볼 거 같아요. “정윤씨, 거기에 왜 혼자 가셨어요?”
정윤
네, 제가 거기 가서 있다는 게…… 이상하죠. 미선씨 어머니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 관계가 형성이 안 된 사람을 찾아볼 어떤 이유가 안 생기는 거죠.
미선
찾아갈 용기도 안 나고…… 그 장소에 가서 내가 하는 행위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거 같아요. 제가 만약에 문희 언니 묘에 혼자 찾아가서 말을 걸어요. “제가 프로젝트를 하다보니, 문희 언니를 알게 되었어요. 제가 너무 늦게 왔죠?”
미선
그때 제 마음이 진심이었다고 하더라도요.
정윤
저도 미선씨 이야기 들으면서 상상을 해봤는데, 현숙이 사진 찍었던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서 현숙에게 말을 걸어요. “현숙아, 내가 이렇게 사진 찍으면 어때 보여?”
미선
정윤씨가 함께 그 장소에 가준 게 큰 위안이었네요.
정윤
미선씨가 현숙을 함께 애도하고 싶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요. 너무 무겁거나 슬프게만 아니고 기쁘고 즐겁게 애도하고 싶다고. 그런 마음을 서로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가 애도를 항상 무겁지만 않고 놀이처럼 즐겁게도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미선
우리 대화를 날 것으로 기록한 대화록을 보면 웃음 괄호가 많잖아요. 저는 조금 걱정했었거든요.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하면서 웃나?’ 하고 사람들이 이해 못하고 비난할까봐. 하지만 상관없어요. 기쁘게 애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대화하면서 웃을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