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의 온도
5화 50도,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제보를 받은 건 트위터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제보자
정부 산하 기관에서 모니터링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의 차별, 비하 게시 글을 채증하고 신고하는 일을 합니다. 제가 채증한 글을 막말이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용기를 냈습니다. 참신한 막말, 막돼먹은 표현, 미묘한데 혐오적인 맥락을 제보해달라고 하셨죠?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걸 채증하는 게 제 일입니다. 넷상 혐오 표현, 온라인 막말도 필요하다면 연락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일단
안녕하세요, 일단공작단입니다. 먼저 용기내어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보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 혹시 어느 기관에 소속되어 일하고 계신지, 업무 내용을 상세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제보자
(1/6) 어, 그건 좀 곤란하네요. 계약 위반 소지가 있거든요. 제가 계약직도 아니고 임시직으로 근무하고 있어서요. 일단 제 업무가 웹 공간의 혐오 표현을 감시하고 채증하는 일이라는 점만 거듭 말씀드립니다. 두 분이 하시는 일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일간***, 디씨 ****, 워** 사이트가 주된 작업 공간입니다. 트래픽이 엄청난 곳들이죠. 하루에 1,000개가 넘는 글이 올라오고 10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립니다. 광고 수입도 어지간한 언론사보다 많다고 들었습니다. 해당 사이트의 게시 글 가운데 1퍼센트 정도가 삭제됩니다. 사이트 관리자가 즉각 삭제하거나 저희 기관에 의해서죠. 그렇다고 해서 게시 글의 혐오 표현과 막말 지분이 1퍼센트뿐인 건 당연히 아닙니다.
(2/6)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 글에 한정하여 삭제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잖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오프라인보단 온라인에서 더 막돼먹어지고요. 요즘은 인터넷 게시판과 유튜브에서 막말이 주요 콘텐츠이자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고요. 아시다시피 혐오와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은 짧은 시간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입니다. 비판을 하려고 해도 한 번씩은 들여다봐야 하니까요. 조회 수도 높여주고 돈이 되는데 막말을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요. 눈앞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어나가는 일도 아닌데 말이죠. ‘혐오 비즈니스’1) 란 말 들어보셨죠?
(3/6)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예비역 병장, 4년제 경영학과 졸, 수도권 아파트에 거주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사실 제가 여기서 이런 일이나 하고 있을 사람은 아닌데, 요즘 워낙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서 말이죠. 업무 초기에는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 막돼먹은 말들이 그득하거든요. 막말을 퍼 담기 시작하자 망망대해가 펼쳐지더군요. 매일매일 커다란 뜰채로 바닷물을 한 뼘씩 걸러내는 기분이었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업무니까 열심히 했죠. 나중에는 패턴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4/6) 주로 여성이나 노인,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신체장애를 지닌 분들이 타깃이 됩니다. 초반에 채증한 게시 글 몇 개를 옮깁니다. ‘여자 대가리 나쁜거 맞음’이라는 제목에 “노벨상 수상자들 봐봐. 여자들 창의력, 논리력 딸려서 단순 암기하고 *목질해서 수상하는 문학 쪽밖에 없음. 인류에 *도 기여 안하는 분야. 노가다 건축보다 더해. 남자가 이룩한 과학 문명에 빌붙어서 *도 주제 파악 안하는 페미니스트”가 전체 내용입니다. ‘*깨 새끼들 진짜 사람새끼들이 맞음?’이라는 제목의 게시 글에는 “*깨 진짜 극혐이다. 바퀴벌레 새끼들. 바퀴도 이렇게까진 안하지. 냄새봐” 등의 내용이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5/6) 처음에는 사명감에 불타서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채증을 이어갔죠. 그런데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제가 올린 글들이 한 건도 삭제되지 않더군요. 오히려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맥락 없이 배설한 글은 넘기고 문제나 사건의 소지가 있는 글만 면밀히 파악해서 채증하라고요. 그 이후로 내용이 짧거나 맥락이 읽히지 않으면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게 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감이 잡히더라고요. 제 나름의 막말 수위가 생겼달까요. 업무가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화를 내거나 얼굴이 달아오를 일도 없습니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담담해집니다. 환경미화원분들이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며 화를 내진 않잖아요. 그저 묵묵히 주워 담을 뿐이죠.
(6/6) 실은 차별, 비하 발언을 검색하다가 ‘막말의 온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혐오 글인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한참 읽고 나서 깨달았죠. 제가 요즘 난독증이 도졌거든요. 사람이 뭐든 계속 들여다보면 내성이 생기잖아요. 요즘에는 막말이고 혐오 표현이고 식상하게 느껴집니다. 애들이 창의력이 없어요. 한국식 암기 교육의 폐해라니까요. 죄다 어디서 보고 들은 가닥으로 썰을 푸니까 엇비슷한 거죠. 연예인들이 자꾸 악플 때문에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데, 여기 와서 제 일을 일주일만 해보면 아주 속 편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장담합니다. 그나저나 빨리 여길 떠야 하는데, 올 하반기도 공고가 싹 다 전멸이더라고요. 대기업들이 신입 공채는 점점 축소하면서 수시채용으로 돌리는 거 아시나요? 글만 쓰는 분들이라 이런 건 잘 모르시려나. 자기들 필요에 맞게 사람을 부품같이 빼 쓰고 버리겠다 이거죠. 더러워도 어쩌겠습니까. 여기서 태어난 이상 이 바닥 룰에 따라야죠.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요청 사항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이고, 저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제보한 거니까 이번 연재 글에는 제 이름을 공동 작성자로 등재해주시면 상부상조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컴활이며 테셋이며 다 땄는데, 그놈의 대외활동 부분이 약해서요. 이 업무의 고단함을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자는 거죠. 모쪼록 어려운 업무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건당 사례비는 얼마로 책정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2/6)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 글에 한정하여 삭제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잖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오프라인보단 온라인에서 더 막돼먹어지고요. 요즘은 인터넷 게시판과 유튜브에서 막말이 주요 콘텐츠이자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고요. 아시다시피 혐오와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은 짧은 시간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입니다. 비판을 하려고 해도 한 번씩은 들여다봐야 하니까요. 조회 수도 높여주고 돈이 되는데 막말을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요. 눈앞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어나가는 일도 아닌데 말이죠. ‘혐오 비즈니스’1) 란 말 들어보셨죠?
(3/6)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예비역 병장, 4년제 경영학과 졸, 수도권 아파트에 거주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사실 제가 여기서 이런 일이나 하고 있을 사람은 아닌데, 요즘 워낙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서 말이죠. 업무 초기에는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 막돼먹은 말들이 그득하거든요. 막말을 퍼 담기 시작하자 망망대해가 펼쳐지더군요. 매일매일 커다란 뜰채로 바닷물을 한 뼘씩 걸러내는 기분이었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업무니까 열심히 했죠. 나중에는 패턴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4/6) 주로 여성이나 노인,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신체장애를 지닌 분들이 타깃이 됩니다. 초반에 채증한 게시 글 몇 개를 옮깁니다. ‘여자 대가리 나쁜거 맞음’이라는 제목에 “노벨상 수상자들 봐봐. 여자들 창의력, 논리력 딸려서 단순 암기하고 *목질해서 수상하는 문학 쪽밖에 없음. 인류에 *도 기여 안하는 분야. 노가다 건축보다 더해. 남자가 이룩한 과학 문명에 빌붙어서 *도 주제 파악 안하는 페미니스트”가 전체 내용입니다. ‘*깨 새끼들 진짜 사람새끼들이 맞음?’이라는 제목의 게시 글에는 “*깨 진짜 극혐이다. 바퀴벌레 새끼들. 바퀴도 이렇게까진 안하지. 냄새봐” 등의 내용이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5/6) 처음에는 사명감에 불타서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채증을 이어갔죠. 그런데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제가 올린 글들이 한 건도 삭제되지 않더군요. 오히려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맥락 없이 배설한 글은 넘기고 문제나 사건의 소지가 있는 글만 면밀히 파악해서 채증하라고요. 그 이후로 내용이 짧거나 맥락이 읽히지 않으면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게 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감이 잡히더라고요. 제 나름의 막말 수위가 생겼달까요. 업무가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화를 내거나 얼굴이 달아오를 일도 없습니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담담해집니다. 환경미화원분들이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며 화를 내진 않잖아요. 그저 묵묵히 주워 담을 뿐이죠.
(6/6) 실은 차별, 비하 발언을 검색하다가 ‘막말의 온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혐오 글인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한참 읽고 나서 깨달았죠. 제가 요즘 난독증이 도졌거든요. 사람이 뭐든 계속 들여다보면 내성이 생기잖아요. 요즘에는 막말이고 혐오 표현이고 식상하게 느껴집니다. 애들이 창의력이 없어요. 한국식 암기 교육의 폐해라니까요. 죄다 어디서 보고 들은 가닥으로 썰을 푸니까 엇비슷한 거죠. 연예인들이 자꾸 악플 때문에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데, 여기 와서 제 일을 일주일만 해보면 아주 속 편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장담합니다. 그나저나 빨리 여길 떠야 하는데, 올 하반기도 공고가 싹 다 전멸이더라고요. 대기업들이 신입 공채는 점점 축소하면서 수시채용으로 돌리는 거 아시나요? 글만 쓰는 분들이라 이런 건 잘 모르시려나. 자기들 필요에 맞게 사람을 부품같이 빼 쓰고 버리겠다 이거죠. 더러워도 어쩌겠습니까. 여기서 태어난 이상 이 바닥 룰에 따라야죠.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요청 사항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이고, 저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제보한 거니까 이번 연재 글에는 제 이름을 공동 작성자로 등재해주시면 상부상조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컴활이며 테셋이며 다 땄는데, 그놈의 대외활동 부분이 약해서요. 이 업무의 고단함을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자는 거죠. 모쪼록 어려운 업무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건당 사례비는 얼마로 책정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길고 자세한 말씀 감사합니다. 현장에 계신 분의 단상을 통해 이 일의 고단함과 복잡성, 내면화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시 앞서 예시로 들어주신 게시 글들의 URL을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더불어 공동 작성자 등재 및 사례비 관련해서는 저희도 해당 기관에 자문을 구하고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할 만한 부분이라서요. 바로 답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사례비는…… 지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제보자
(1/2) URL이요? 아, 곤란한데…… 그게…… 사실은 제가 쓴 겁니다. 일종의 혼성모방이랄까요. 어차피 글이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요즘은 페이지를 한참 넘겨도 채증할 만한 글이 별로 없어요. 다 그럴 만하고, 그럴듯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직접 작성하기도 합니다. 간단하거든요. 게시판에서 돌고 돌면서 헐어버린 짤방을 붙여두고 자판 좀 두드리면 익숙한 문장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니까요. 한나절 걸릴 일이 두 시간 만에 뚝딱. 제 글에 댓글이 우수수 달리거나 인기 글까지 올라가면 찌르르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쓰레기들이 이런 맛으로 글을 쓰는 거겠죠. 제가 간접 체험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주제가 협소하면 금방 티가 날 것 같아서 다양하게 잡았고요. 여혐, 연예인 루머, 노인 비하, 성소수자 혐오…… 예시 글이 더 필요하면 바로 만들어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2/2) 그런데요, 사례비가 없으면 진작 말하셨어야죠. 양아치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그쪽 재단에 글을 쓸 정도면 댁들도 공인이잖아요. 그러면 상식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가만 보니 지난번 글에 제가 작업하는 사이트에서 문장 몇 개 가져다 쓰셨던데, 무단 도용 아닙니까? 근데, 생각해보니까 좆나게 어이없네. 내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런 제보나 하고 있는 줄 알아? 어디서 찐따 새끼들이 작가라고 유세야. 방구석에서 아무도 안 보는 이딴 거나 쓰고 있는 주제에. 너네 어디 지방 변두리에 살더라. 전세도 아니고 월세지? 내가 얼굴도 다 확인했거든? 한 놈은 난쟁이 똥자루에, 한 년은 돼지 같더라. 그러니까 악플 하나 안 달리지. 너네 같은 애들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무쓸모, 무존재. 나니까 상대해주지, 너네 인생 똑바로 살아라. 앞으로 뭐든 썼는데 악플 달리면 나인 줄 알고. 우리 생각 좀 하면서 살자.
(2/2) 그런데요, 사례비가 없으면 진작 말하셨어야죠. 양아치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그쪽 재단에 글을 쓸 정도면 댁들도 공인이잖아요. 그러면 상식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가만 보니 지난번 글에 제가 작업하는 사이트에서 문장 몇 개 가져다 쓰셨던데, 무단 도용 아닙니까? 근데, 생각해보니까 좆나게 어이없네. 내가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런 제보나 하고 있는 줄 알아? 어디서 찐따 새끼들이 작가라고 유세야. 방구석에서 아무도 안 보는 이딴 거나 쓰고 있는 주제에. 너네 어디 지방 변두리에 살더라. 전세도 아니고 월세지? 내가 얼굴도 다 확인했거든? 한 놈은 난쟁이 똥자루에, 한 년은 돼지 같더라. 그러니까 악플 하나 안 달리지. 너네 같은 애들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무쓸모, 무존재. 나니까 상대해주지, 너네 인생 똑바로 살아라. 앞으로 뭐든 썼는데 악플 달리면 나인 줄 알고. 우리 생각 좀 하면서 살자.
일단공작단
유재영은 소설을 쓰고, 최고라는 책을 만듭니다. 서로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는 상대입니다. 대개는 다정한 말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달하지만, 이따금 차갑거나 뜨거운 말을 던져 파문을 일으킵니다.
2019/12/31
25호
- 1
- ‘혐오 비즈니스’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했다. 시사저널 1556호 기사 〈“혐오를 팝니다”…‘혐오 비즈니스’에 빠진 대한민국〉 링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