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은 김지환의 영화 〈타이베이의 랜드스케이프〉의 일부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2019년 12월 9일부터 2019년 12월 13일까지 촬영했다.(총 7분 37초, 연출·촬영 김지환)


   나는 베를린에서 자주 사라집니다


베를린에서.

   당신은 시드니에서 이곳을 바라봅니다. 베를린 성당 앞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엎드려 있고, 분수대 너머로는 시티투어가 관광객을 실은 채 이제 막 출발합니다. 케이스를 열어 카메라를 들었지만 아무것도 찍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당신의 유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유년의 시기를 보낸 외국과 도시에 대해 생각했어요. 아주 어릴 때라고 했나요. 기억이 드문드문 갑작스럽게 떠오른다고 했습니까. 지금 시드니로 간다면, 지나간 시간들을 거슬러서, 어릴 적 당신과 마주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상상을 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키가 작고,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당신의 표정, 마스코트가 그려진 티셔츠, 자주 가는 놀이터, 부모님과의 대화, 이런 것들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나는 지금 경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어디엔가 있지만 그곳을 경험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는 베를린에서 자주 사라집니다. 레스토랑에서 학센을 주문하고,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식은 커피를 몇 시간 째 그대로 두고, 트램과 전철을 익숙하게 이용해도, 대부분 다른 곳을 떠올립니다. 우리의 거리는 좁아집니다. 그것은 마술일까요? 과학입니까? 인간이라서 가능한 의식의 어떤 부분일까요, 당신이 알려줄 수 있습니까?
   어제는 중앙역으로 가는 철교 아래에서, 인간들이 지겹다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전철 소리 때문에 시끄러운 그 틈에요. 지겨워요. 지겹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간이 아닌 장소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소리입니다.
   그곳에선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겠습니다. 돌아가고 싶다거나, 좋았다거나, 싫었다거나, 여기가 더 좋다거나, 그런 얘기를 나누려고 이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니까요. 나는 당신 자신이 경험한, 당신이 궁금합니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내 얘기를 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_병훈



   나는 그곳에서 미끄러져 흐르기만 했어요


시드니에서.

   고맙습니다. 편지는 잘 받았어요. 편지를 받고 저 역시 오랫동안 유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건 얼마 전에 어린 시절의 당신이 떠나온 곳을 방문했기 때문이겠지요. 한 공간에 고여 있는 유년기란 도대체 어떤 것일지,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다른 곳으로 흐르기만 했으니까요. 에이 비 씨와 가나다를 간신히 구분하던 두어 살 무렵에도, 한국이 싫었던 만큼 호주가 싫었던 중학생 시절에도 나는 그 자리에서 미끄러져 흐르기만 했어요.
   베를린, 베를린이라고 했지요. 중학교 때 우리 반에는 백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 중국,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이탈리아,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지명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어요. 처음에는 동급생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어려워서, 학교에서 도우미 격으로 붙여준 교포 친구에게 매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했어요. 그러던 것이 어느새인가 나는 이 나라에 오래 있지 않을 테니까, 곧 서울로 돌아가버리고 말테니까 너희는 내게 친절하게 대해야만 한다는, 제법 맹랑한 말을 지껄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 도시에 얼마나 오래 머무를 거라고 했었지요? 분명히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숫자가 아닌 단위만이 잔상으로 남아 깜빡입니다. 아무려면 몇 달은 아니겠지요. 몇 시간은 더더욱 아닐테구요. 계속해서 흐르는 성인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에 아득하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되는데, 당신은 어떤가요.
   더이상 어른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 후로 저 역시 당신이 그랬듯이 여러 도시에 잠깐씩 머물다 떠나왔습니다. 베를린도 그렇게 거쳐간 도시들 중 하나였어요. 그 도시에 가기 전에 제법 꼼꼼하게 가이드북을 읽어보았고, 몇 군데의 역사적 명소에 표시를 해두기도 했었지요. 정작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가서는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담배를 피는 펑크족들을 발견하고 겁을 먹은 나머지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전철을 탔던 것을 기억합니다.
   경험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런 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젖어도 젖지 않는 물처럼, 녹아도 녹지 않는 얼음처럼 충분히 겪어보기 전에 지나가버리고 말아요. 경험이라는 믿음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잔상을 덧대어 나갈 수밖에 없고, 그 믿음은 쉽게 파기되겠지요. 그래서일까요? 가끔 나는 거짓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_희정



   닿아 있는 것 같지만 닿지 않는


베를린에서.


   나는 시드니에 가겠다고 종종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실은 가고 싶지 않으면서요. 지구본 어디에 위치한 줄도 모른 채.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베를린도 그런 곳들 중 하나입니다. 베를린이라서, 베를린이기 때문에 중요한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떠나기 전 본가에서 비디오테이프를 찾았습니다. 1993년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재생할 장비가 없어 그대로 챙겨두기만 했어요. 무엇을 찍었고, 누가 찍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유년 시절의 저와 가족 혹은 친구들이 담겨 있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죠. 안 봐도 비디오란 말을 실감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틈만 나면 핸드폰과 카메라로 많은 것들을 찍었습니다. 사진과 영상으로 훗날 기억하기 위해서일까요. 기억을 믿지 못해 기억을 불러일으킬 계기를 만든 걸까요.
   어딘가를 떠나 어딘가로 간다는 게 요즘은 정말 피곤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어떻게든 연결돼 있고 완벽하게 끊어낼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럴 때 편지가 매우 유용합니다. 닿아 있는 것 같지만 닿지 않는, 위태위태한 실에 올라탄 상태처럼 느껴져요.
   당신의 편지를 읽으니 당신의 경험을 상상하게 됩니다. 다국적인 동급생들 사이에서 어떤 말투로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 곧 서울로 돌아간다는 말을 그들은 믿었을까요. 어쩌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요. 나는 종종 돌아갈 장소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장소가 내게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게도 수많은 장소가 있고 떠나왔는데 어째서인지 하루하루가 공중에 뜬 열기구처럼 지나갑니다. _병훈



   툭, 하고 어깨를 건드립니다


시드니에서.

   처음 편지가 도달한 날에 대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지간해서는 공과금 고지서나 광고지 외의 것들이 꽂혀 있는 일이 잘 없는 아파트 우체통에, 그 봉투가 비스듬하게 꽂혀 있었습니다. 당연스럽게도 나는, 그것이 광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봉투 한쪽 끝에 손톱만 하게 적힌 이름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것을 곧바로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우체통이, 시드니에 살던 집 앞에도 있었습니다. 총 열세 가구가 사는 다세대주택이었고, 똑같이 녹슬고 똑같이 네모난 우체통이 열세 개, 위로 아래로 붙어 있었어요. 서울에서 그랬듯이 시드니에서도 그 우체통에 저를 위한 무언가가 꽂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위태위태한 실은, 3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까지는 닿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묘한 구조의 집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체통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어요. 이따금씩 계단을 둘러싸고 있는 풀숲에서 도마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손톱만한 도마뱀은 조금이라도 몸을 숙여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벌레가 정말 많이 나오는 집이기도 했어요. 이따금씩 새벽에 잠이 깨어 가만히 누워있으면 엄마가 바퀴벌레를 잡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그게 정말 싫었어요.
   아니, 사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바퀴벌레를 잡는 소리라는 건 도대체 어떤 소리일까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아침에 샤워를 하려고 들어선 샤워부스에서 새끼손톱만 한 바퀴벌레가 뒤집힌 채로 버둥대는 것을 본 것, 못 본 척 샤워기를 틀어 바퀴벌레를 하수구로 흘려보냈던 것, 아침 식사를 하던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갈색 봉투와 그 안에 들어 있던 참치샌드위치, 점심시간에 중국인 친구가 나누어준 볶음국수의 색깔, 이런 것들뿐이에요. 그리고 이 기억의 파편들은 마치 눈을 깜빡이면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일 뿐, 절대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이상한 일입니다. 잡아두고 싶은 순간을 잡아두기 위해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고 녹음을 하고 기록을 할수록 그 순간은 자꾸만 멀어져가는데, 잡아두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와 툭, 하고 어깨를 건드립니다. 그러고는 다시 저편으로 팔랑팔랑 날아가버리고 말아요. 그건 마치 한 번도 기억해본 적 없는, 그러나 언젠가는 분명히 꾸었던 꿈의 파편 같습니다. _희정

영상 〈서신교환: 민병훈-허희정〉(총 9분 32초, 구성 김지환). 독일 혹은 베를린이 배경인 영화를 리서치했다. 서간체 형식의 문학 텍스트를 교환하는 편지 형식의 파운드푸티지 또는 오디오비주얼에세이다.



꿈의 수집

음악을 만드는 Goat the funky와 영화를 만드는 김지환, 소설을 만드는 민병훈, 양선형, 최영건, 허희정. 여섯 사람이 모여 일곱 장소를 표류합니다.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새로 출발한 사람들이 다시 따라 걷습니다. 이로써 ‘꿈의 수집’은 ‘장소와 장소’ ‘장소와 개인’ ‘개인과 개인’이라는 세 가지 관계의 꿈을 읽어내보려 합니다.

2019/12/31
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