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

   몇 해 전 국문과 신입생이 되기 위해 서울 가는 기차를 탔다. 여러 모로 요령이 없었기 때문에 양손에 짐을 바리바리 든 채였다. 기차 안에서 책을 읽었는데, 당시 흠모하던 작가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은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라고 적혀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능숙하게 배치된 유머와 문학에 대한 믿음을 읽으며, 그리고 나도 이런 사람들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기대(물론 오해였다)를 하며 너무 벅차오른 나머지 짐칸에 올려두었던 이불을 놓고 내렸다.

   밤에는 급하게 산 담요를 덮고 웅크려 잤다.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글을 쓰며 나이를 먹었다. 그 작가를 조금은 덜 좋아하게 되었고 뭔가를 놓고 내렸을 땐 분실물 센터에 빠르게 전화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글을 써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는 글을 쓰면서 자꾸 뻔한 사람이 됐다. 모든 영화에서 똑같은 캐릭터로 등장하는 배우처럼 말이다. 매일 안 쓰고 종종 써서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 걸까?

*

   글을 쓰는 대신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건 좀 만만해 보였다. 말하는 입장이 아니라 듣는 입장이 되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다. 훔쳐보기를 즐기는 음침한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았다. ‘from A to X’가 고난도 작업이라는 건 나중에 깨달았다.

   인터뷰이를 환대하는 인터뷰어가 되고 싶었다. 귀 기울여 듣고 조심스럽게 질문하며 단어 하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A와 X를 만나고 있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 실현되는 것 같았다. 카페에 마주 앉아 웃으면서 묻고 답하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금방 친밀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와서 인터뷰를 다듬고 옮겨 쓸 때는 난감했다. 아무리 좋았어도 원고를 러브레터로 쓸 수는 없었다. 타인을 마음대로 축소해서 납작한 캐릭터로 만드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실물 크기의 지도가 무용한 것처럼1) 축소와 생략과 편집은 불가피하기도 했다. A와 X가 들려준 말들을 매끈하게 다듬어 엮고 나면 괜히 미안해졌다.

   ‘연결’에 관한 프로젝트였지만 ‘다름’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다. 읽고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했고 만나면 무언가는 연결될 거라고 예상했다. 우리는 동종업계 종사자니까. 오히려 체감한 건 모두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이었다. 간극을 멀리서 구경할 때는 재밌었지만 당장 눈앞에 등장했을 때는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연결될 수 없었다고도, 그럼에도 연결될 수 있었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연결을 말할 때 우리 사이에 실재하는 이물감을 외면하는 것과 외면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긴급회의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나래, 지원과 긴급회의를 많이 했다. 하면 할수록 뭘 하려고 했는지 헷갈렸다. 그럴 때마다 그냥 쉽게 쉽게 쓰고 싶어졌다.

   냉소와 조롱과 뒷담화보다 근사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from A to X’ 필자 소개를 이렇게 적은 게 떠올랐다. 꽤 근사한 문장이었다.

   말이 쉽지.

   그렇게 선언한 건 내가 냉소와 조롱과 뒷담화의 애호가였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지속해온 습관이자 생존 스킬이었고 슬슬 지겨웠지만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었다. 왜 그런 말을 떡하니 적어놨을까. 정말 말이 쉽지. 말은 쉽지.

   결정적인 환기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좋아하는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였다. 최선의 청자·독자가 되는 법을 묻고 싶어서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작품을 봐달라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어떻게 말해주는지 궁금했다. 선생님은 자기만의 비법을 알려줬다. 지적할 게 있을 때는 ‘잘 쓰는 애가 왜 이렇게 썼어?’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마음이 열려서 지적을 들어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고. 나는 ‘정말 잘 쓰나요?’ 하고 물었고, 선생님이 ‘아유, 못 쓰지!’ 하고 대답할 줄 알고 낄낄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들 잘 쓰지. 아주 열심히 쓰고.’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머쓱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말하는 선생님 밑에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진짜 비법은 다른 데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남을 그만 놀릴 것이며 앞으로 문신을 한다면 ‘놀리지 마’라고 새길 거라고 나래와 지원에게 말했다. 둘은 때를 놓치지 않고 내 팔뚝에 굵은 유성 매직으로 ‘놀리지 마’라고 써주었다.

   ‘from A to X’는 어떤 태도를 선언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연마하는 작업이었다. 아주 그냥 단기속성 하드 트레이닝이었다. 번번이 실패했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겠지만. 여전히 나를 머쓱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

   말과 글과 삶이 겹쳐지는 걸 목격할 때 그를 잠시 사랑하게 된다. A가 그런 단어와 그런 문장을 쓸 수밖에 없는 자기만의 이유를 보여주는 순간, X가 생판 모르는 사람의 작품을 공들여 읽고 자신의 삶을 포개어보는 순간이 좋았다. 어떤 말과 글도 자기 삶을 초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좋은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의 말을 곱씹었고 나는 그렇게 어려운 일을 안 해도 돼서 정말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하지만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바라볼 때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들키지 않으면서 남에 대해 얘기하는 건 불가능했다. 좋은 인터뷰를 하는 일은 좋은 이야기를 하는 일과 닮아 있었다.

   글보다는 당신들이 나를 새롭게 만드는 것 같다. 당신들과 스치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나는 안 쓰던 말을 쓰고 쓰던 말을 안 쓰게 된다. 문학을 하며 사는 것과 문학적으로 사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부터 근사한 사람이 되어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다면.


근사

나래. 나은. 지원. 같은 학교에서 같은 허기를 느낀 세 사람이 작당 모의합니다. 냉소와 조롱과 뒷담화보다 근사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쓰고 읽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문학 ‘하는’ 우리를 위해 움직입니다.

2020/04/28
29호

1
보르헤스,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