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주네’s 리뷰-노트


   어느 날 친구는 토끼 귀를 쓴 남자 아이돌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덕질을 고백했다. 자신의 최애에 대해 말하는 친구의 얼굴은 그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밝아 보였다. (주네: 네가 행복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이 정도면 덕질을 덕(德)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생각만 해도 좋고 보면 행복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보람이 넘치는 것. 덕질관심과 애정을 기반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행복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네의 덕질은 그 대상이 얕고 넓다. 요즘 한창 빠져 있는 것들은 99년에 데뷔한 아이돌 그룹과 발레. 둘 다 작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덕(질)목(록)들이다. 얕지만 꾸준히, 최선까지 다하지 않을 정도로 애정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리뷰모구모구를 핑계 삼아 온갖 문화활동을 찾아다니며 모구모구 직원을 자칭하는 일명 ‘리뷰모구모구 덕질’까지 하고 있다. (혼자) 보람 넘치는 주네의 덕질들을 모아 하나의 ‘리뷰-노트’를 구성해보면 어떨까? 리뷰모구모구와 덕질이 일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네의 리뷰모구모구-덕질의 콜라주. 지금까지 모구들이 작성한 리뷰에 작은 리뷰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덕행일치’를 이뤄본다. 항상 그렇듯 덕질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니까. 덕질 주네의 리뷰-노트, 시작한다.
   You are my SOUL! SOUL! いつもすぐそばにある (언제나 바로 곁에 있어)
   ゆずれないよ, 誰もじゃまできない (양보하지 않을 거야,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1)


   리뷰-하다 : 리뷰모구모구에 덧붙인 작은 리뷰들


   하나의 리뷰가 리뷰2와 리뷰3……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 같은 리뷰들. 여러 전시에서 구매한 엽서에 주네의 낙서를 곁들여서 각각의 작은 리뷰들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를 덧대보았다.

   -시루가 ‘러너(runner)’라면, 분명 스프린터(sprinter)일 것이다.


일본 화가 후카이 카츠미의 〈러너〉(미완) 엽서.(홋카이도립 근대미술관에서 구매)

〈러너〉에 곁들이는 주네의 낙서.2)

   시루에게는 남다른 속도로 핵심에 가닿는, 혹은 재미있는 어떤 질문이나 유머를 던지는 능력이 있는데 대체로 인풋과 아웃풋이 동일한 나에게 있어서 그 기민함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어떤 것을 보고 들으며 동시에 자신이 갖고 있거나 갖게 된 생각을 진척시키는 힘. 시루의 플레이리스트 리뷰에서 다뤄진 피아졸라가 그렇듯 자신의 중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외부의 원본에서 얻은 영향을 또다른 자신의 원본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원본이 사람들 사이에서 ‘원본’으로 이야기되고 기억될 때 원본으로서의 독립적인 위치를 갖게 된다. 결국 하나의 원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란,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과 전달받는 사람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 대화는 시대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꼭 말이나 글일 필요도 없다. 남겨진 리뷰들, 다양한 원본들이 여러 방식으로 대화를 구성하여 또다른 대화의 자리를 남긴다. 위에 있는 후카이 카츠미의〈러너〉엽서를 놓고 대화를 걸어볼까. 시루와 홋카이도립 근대미술관에서 우연히 그의 전시를 보게 되었는데 언어의 한계로 인해 거의 그림만 보았다. 그래도 두 가지, 기억나는 것은 그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과 다양한 기법과 주제로 상당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는 점. 그림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달리는 사람의 묵묵한 의지가 좋았다. 조용하지만 묵직이, 꾸준하게 달리고 있다는 느낌. 후카이 카츠미가 그렇게 그림을 그려왔던 것일지 궁금해졌다.

   -재구의 시는 일상이 되어, 모두의 대화를 구할 것이다.


〈마크 로스코전(展)〉(예술의 전당)에서 사온 엽서. 테두리는 재구의 일기 일부.3)

    재구는 시를 쓰고 나는 재구의 시를 종종 본다. 말했듯 나는 인풋과 아웃풋이 같고, 이 같음에 다른 생각을 덧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실 잊고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재구에게 코멘트 주겠다는 거짓 약속을 자주 해버렸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고 싶다. 미안, 재구! 그건 저번 학기니까 용서해줘!) 그래서 재구의 연상력, 조각으로 흩어진 세계를 기발하게 연결 짓는 힘을 볼 때마다 재구의 뇌는 주름이 너무 촘촘해서 빵 반죽처럼 매끈하고 부드러워 보이지 않을까 상상한다. 재구의 “일상, 콜라주”에서도 그렇듯. 다른 사람들의 인스타 글에서 일부분을 모아 각자의 일상을 하나의 콜라주, 한 편의 시로 보이기도 하는 리뷰를 만든 재구의 방식, 재구식 대화는 앞서 말한 ‘대화’와 닮았다. 서로가 각자의 방법으로 어떤 것을 주거나 받기도 하면서 하나의 대화를 구성하고 그 대화가 또 하나의 대화로 연결되는 점에서. 리뷰란 사실 이런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그 모든 것들이지 않을까? 마크 로스코는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을 자신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단순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그린 그림들은 오히려 단순함 속의 복잡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겉은 노란 색이지만 속에는 여러 색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듯한 느낌. 재구의 시에서 사용되는 말들은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지만 그 속에는 겹겹이 재구의 세계가 가득하고 나는 그 세계를 오래 응시하고 싶다.

   -“주네는, 그리 많은 이야기가 필요 없어요.”


〈베르나르 뷔페전(展)〉(예술의 전당)에서 산 광대 엽서로 만들어진 지금의 주네.

   놀랍게도 이 사진 속 광대의 형상은 실제 주네와 겹치는 부분들이 있는데, 우선 곱슬머리. 8월 말 즈음에 충동적으로 파마를 하고 방치하고 있어서 딱 저렇게 정신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진한 눈썹. 최근에 나의 최애와 닮았다고 얘기를 들었던 진한 눈썹이 광대하고도 닮았다. 좋아하는 사람과는 닮는다고 했던가. 그게 왜 눈썹일까 싶지만 이렇게 하나씩 닮아가다보면 정말 비슷해질지도 모른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담아 그룹 멤버들이 맡고 있는 색들을 넣어보았다. 우울해 보이던 광대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진 거 같다. 베르나르 뷔페는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 ‘광대’라고 답했다고 한다. 강렬한 색채와 거친 느낌으로 채색되어 있던 뷔페의 광대들. 뷔페는 왜 자신을 광대라고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맞아, 광대는 우리 모두의 것이지’4) 하는 이상한 결론을 떠올렸다.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광대가 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광대를 자처하기도 하니까. 광대 분장은 지우기 쉽지만 그것을 지웠을 때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 선택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적어도 적극적으로 행복한 광대이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다.


   리뷰-TMI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찾은 열 가지 리뷰들


   핀란드 아티스트 유하 발케아파와 뮤지션 타이토 호프렌의 작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으로의 열 번의 여행〉 5)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리뷰에 덧붙이는 TMI, 날것의 리뷰, 크게 도움되지 않는 리뷰를 공유해본다.

   ① 유하와 타이토의 작업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9년 9월에 3회 상연되었다. 그들은 미술관 잔디밭에 세워진 텐트로 사람들을 초대해 따뜻한 음료와 팬케이크를 손수 대접했고 그들 각자의 이야기와 해당 작업을 준비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어쩌다보니 음료와 팬케이크를 받지 못했고 다음날 팬케이크 가루를 사서 직접 해먹었다. ② 500밀리리터의 팬케이크 가루는 성공적으로 소진되었고 대체로 맛있었다. 포인트는 작게 여러 동그라미를 만드는 것. ③ 그날 나는 태풍을 뚫고 텐트로 갔었다. ④ 이제 와서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일본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아라시(ARASHI)고 뜻은 태풍(嵐)이다. ‘남기 람(嵐)’자라 한국팬들은 스스로를 ‘람덕’이라 부르는 듯하다. 이것도 글을 쓰면서 찾아보다 발견한 것. ⑤ ④에서 유추한 것이 틀리면 좀 슬플 것 같다. (여러분, 그래도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라서 행복해요.) ⑥ 후카이 카츠미의 작품들은 정말 많았고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러너〉를 비롯한 상당수의 작품들이 말년에 미완으로 남겨져 있던 것을 미루어 보아 상당히 성실했던 것 같다. ⑦ 미완을 얘기하다보니 페터 팝스트 전시의 무대들이 떠오른다. 페터 팝스트는 무용수들이 자신의 무대를 해방시켜준다고 했는데, 그럼 전시된 무대들은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⑧ 페터 팝스트 전시에 갔던 주네의 시각 영상을 첨부한다. 무대는 해방되었을까?


페터 팝스트 전시를, 보다(by.주네) ※사운드는 없다.

   ⑨ 번호를 보면 알겠지만 주네의 리뷰-노트는 곧 끝난다. 하지만 재구와 시루의 리뷰가 남아 있다. 앞서 말했지만 그들은 너무나 흥미로운 모구들이다. ⑩ 리뷰-노트가 끝났다. 그러나 리뷰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리뷰모구모구는, Super Mogus!


   다음 화 예고


   얼떨결에 주네로부터 ‘모두의 대화를 구해야 한다’는 미션을 받게 된 재구.
   주네의 리뷰를 리뷰함으로써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을까?

   재구, 「리뷰-노트 : 사람을 리뷰해도 될까?」6)


리뷰모구모구

시를 쓰고 미래를 상상하는 재구, 리뷰를 많이 쓰고 의문을 던지는 시루, 덕질을 하고 대화를 중재하는 주네.

2019/11/26
24호

1
아라시(Arashi), 〈A·RA·SHI〉, 1999.
2
그림(〈러너〉)의 저작권자 요청으로 엽서 원본을 변형할 수 없었다. 엽서 위에 주네의 그림을 덧입히는 대신 주네의 그림을 나란히 배치해보았다.
3
재구의 “일상, 콜라주”에서 재구의 일기 부분을 가져와 사용하였다. “세상 편히 잠들어 있다 사람들은 요즘 세상을 부사적으로 쓴다 아마 부딪힐 세상이 없는데 참 무관한 성분인데 휴가를 포기한 사람들 나 빼고 아무도 왜냐고 묻지 않는다”
4
시루가 신문 지면에서 한 소설의 대목을 ‘~는 ~의 것인데’와 같이 변형해서 다룬 적이 있는데, 이 글에서 활용해보았다. 시루의 글 「감자는 우리 모두의 것」은 이 링크를 참조할 것. 링크 바로가기
5
이들의 작업 정보는 이 링크를 참조할 것. 링크 바로가기
6
손미의 시집 제목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민음사, 2019)를 빌려와 변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