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小說
1화 171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아서
『어느 작가의 일기』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기를 쓰는 것은 글을 쓰는 축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난 한 해 동안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는 기분 내키는 대로 앞질러 달려나가는 그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길가의 돌부리에 견딜 수 없게 차이면서 달려나가는 것이다.”1)
일기쓰기란 말을 고르지 않고, 여과 없이 ‘쓸 것’에 대해 써버리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설명은 일기쓰기의 본질을 더 파고든 것이 아닐까. 월과월과월은 앞으로 《비유》에서 불특정 타인의 일기를 받아 소설로 창작해보려 한다. 그에 앞서 우리가 펼쳐나갈 프로젝트의 방향을 짚어보자.
이문경(이하 ‘이’) : 일기란 무엇인가. 각자의 생각이 궁금하다.
강아(이하 ‘강’) : 문법이 올바르지 않아도 되는 글이다. 다른 창작물과 다르게 일기는 다루는 소재부터 문장을 써내려가는 방식까지 수정 과정을 크게 거치지 않는 작업물이다.
박몽(이하 ‘박’) : 그렇다면 일기는 기록과 다를까? 둘 사이엔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강 : 기록은 일기보다 좀더 기술(記述)의 성격이 강하다. 어느 기록도 완벽히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기록물은 객관에 가까운 태도를 집필의 윤리로 삼는다. 일기는 그에 비해 훨씬 무모하다.
박 : 공감한다. 그와 관련해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예로 들 수 있다. “앤이 내게 기대듯, 나도 앤에게 기댈 수 있었다. 우리 둘이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겁내지 않고 맞설 수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든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정말 그랬다면 그녀가 돌아왔을 테니까. 그리하여 앤은 가버리고, 나는 한동안 상실감에 시달리겠지. 하지만 내가 슬픔에 대해 뭘 안단 말인가?”2) 앤을 향한 내밀한 감정이 깃든 이 글은 기록이라 부르기 어렵다.
강 : 울프 또한 일기를 쓸 때, “대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순식간에 돌진하게 된다.”3)라고 했다. 이는 기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쏟아내는 것에 가깝다.
이 : 기록은 직관적 관찰이 토대가 되고, 일기는 그 관찰에 내 시선이나 감정을 담아서 글을 쓰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거리를 다르게 둔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일기를 쓸까.
박 :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펼쳐보기 위해 쓰는 것이지 않을까. 일기를 읽고 과거를 되짚는 각자의 방식이 있을 것 같다.
강 : 일기를 쓰면 당장 ‘무언가’를 해소할 수 있다. 울프는 “다만 이 견딜 수 없는 초조감을 적어 잊어버리고 싶다.”4)라고 일기에 썼다. 개인적 상념을 직설로 쏟아내며 삶의 불분명한 부분을 조율하는 것. 이것도 일기쓰기의 목적 중 하나이지 않을까.
이 : 다시 읽기 위해서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독자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바란다. 독자는 내가 될 수도, 내 일기를 몰래 보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독자를 바란다는 점에서 일기쓰기는 소설쓰기와 닮아 있다. 그렇다면 일기가 소설이 될 수 있을까.
강 : 일기 자체는 소설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이야기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 일기의 ‘이야기됨’은 거기에 있다. 다양한 이야기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한 조각. 우리 프로젝트의 출발점 역시 거기에 있다.
박 : 일기를 모티브로 소설을 쓸 땐, 인물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일인칭만이 가질 수 있는 내밀함 때문이다. 그게 기존의 소설쓰기와 우리의 작업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확실히 인물이 실패하는 이야기는 쓰지 않게 될 것 같다. 참여자가 특별히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인물을 쉽게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보통 소설을 쓸 때 실제 인물을 참고해 캐릭터를 만들더라도 그를 불행하게 만드는 데 서슴없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다를 것 같다. 참여자의 일기까지 읽어놓고 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고, 이를 해결조차 해주지 않는 서사는 쉽게 쓸 수 없다.
이 : 동감한다. 실제 일기로 소설을 쓴다는 창작의 제약이 나에게는 소설쓰기에 대한 책임감을 안겨준다.
강 : 이쯤에서 소설이 될 수 있는 순간에 대해 말해보면 좋겠다. 대부분 일상의 순간과 소설적 순간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박 :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내가 무리 없이 잘 살아서,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 살아서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것인가, 하는 착각을 했더랬다. 결과적으로 그런 건 아니지만. 내 일상에도 소설적 순간은 있었고, 그것을 실제로 쓴 적도 있다. 소설적 순간과 일상의 순간이 다르지 않다는 건 소설을 직접 써보면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일상을 돌아보며 소설을 쓰기 시작할 테니까.
강 :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틱한가, 아닌가의 여부를 놓고 소설이 되는 순간과 일상의 순간을 구분하는 듯하다. 박이 말했듯 글을 쓰면 쓸수록 소설이 되는 순간은 그 자체의 특별함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 순간이 그저 일상인지 혹은 소설인지 구분지어지는 것이다.
박 : 드라마틱한 일상은 오히려 소설로 쓰기 어려울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건 그저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일상적 풍경에서 특별함을 캐치하고 표현해내는 것이다. 이는 우리 프로젝트의 의도와 가장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보통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에 삽입되곤 하는 설명이다. 171小說 프로젝트의 기본 콘셉트를 잘 보여준다.
일기의 성격에 대한 질의를 나눌수록 주제는 ‘일기는 소설이 될 수 있는가’로 기울었다. 우리는 모두 일기에서 나름의 ‘이야기됨’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버지니아는 앞의 글에 이어 다음과 같이 쓴다. “가장 빠른 타자기보다 더 빨리 쓰지 않았다면, 또 쓰던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든지 했다면 이 글은 결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의 장점은 만약에 내가 머뭇거렸다면 빼버렸을 사소한 것들을 우연히도 건져올렸다는 데에 있다.”5)
일기 속에서 이야기를 건져올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일기는 본디 이야기가 되기 위한 글이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엔 분명 ‘이야기됨’의 징후가 있다.
이 : 많은 이들이 일기는 솔직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것이 어렵다. 솔직하게 쓰려고 할수록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171小說 프로젝트는 타인의 일기를 받아 소설을 창작하고, 그 일기도 함께 공개한다. 그 점이 우리가 받게 될 일기의 내용에 영향을 미칠까?
강 : 아무래도 우리가 받을 일기에는 솔직함이 담기기 어려울 것이다. 예상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 가족이 내 일기를 몰래 훔쳐본 이후로 완전히 솔직한 일기를 쓰는 게 어려웠다. 우리가 받을 일기 역시 독자가 존재하므로 솔직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박 : 나의 경우, 일기를 쓸 때 아주 내밀하고 사적인 ‘척’을 하기도 한다. 내가 죽고 나서 누군가가 내 일기를 열어보는 상상을 하며 쓴 적도 있고, 사춘기 때에는 엄마에게 받고 싶은 사과 내용을 일부러 적어놓기도 했다. 누군가 내 일기를 몰래 볼 거라고 생각하고, 일기를 쓰며 솔직함을 가장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일기를 전해줄 참여자들도 자신이 아닌 타인이 보아도 되는 일기를 선택하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의 창작에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강 : 참여자가 얼마나 솔직한가의 여부가 우리가 창작할 글의 메리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박 : 그렇지만, 솔직한가, 아니한가의 여부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창작 과정에서 그 부분을 감안해야 할 때가 있다. 참여자가 자기 이야기를 과장되게 꾸민다 하더라도, 창작자는 그 일기에서 이야기를 위한 많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강 : 맞다. 참여자 역시 일련의 판단을 거친 후 우리에게 일기를 주고, 이 일기가 소설의 밑바탕이 될 것을 고려할 것이다. 박의 말처럼 참여자의 일기에 대한 가공이 오히려 인물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확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 깊은 내면의 목소리가 담긴 일기로 소설을 쓸 때는 일기 내용을 예외 없이 고스란히 살려야 할 것 같다. 자유로운 창작이 어려울까 걱정된다.
박 : 결과적으로 우리는 참여자의 거짓말도 환영하는 걸까?
강, 이 : 그렇다.
이 : 이 프로젝트는 백일장처럼 단순히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는 엄밀히 다르다. 그 부분도 이야기해봤으면 한다. 소설을 창작하기에 앞서 적극적인 태도로 일기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 여기에 이 프로젝트만이 지닌 차별점이 있다. 우리는 일기를 읽는 ‘독자’가 되고, 제공자는 일기를 쓴 ‘창작자’가 되니까.
박 : 창작 전에 이미 한 번의 독서(참여자의 일기 읽기)를 거친다는 것이 기존의 소설 창작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겠다. 일기 내용뿐 아니라, 제공자가 일기를 제공한 의도도 우리는 함께 읽는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듯 말이다.
강 : 프로젝트 참여자는 자신의 일기를 전달하며 무엇을 기대할까? 이에 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 : 참여자는 자신의 일기가 좋은 소설의 밑바탕이 되길 바랄 것 같다. 좋은 소설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만약 참여자가 이 프로젝트의 소설을 읽으며 자신 혹은 타인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치자. 이 경우에도 창작자로서의 최소한의 윤리는 인물과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박 : 가볍게 생각해보면, 제보자는 자신이 주인공이 된 소설을 읽고 싶어할 것 같다.
강 : 내가 주인공이 된 소설을 읽는 일은 그냥 소설을 읽고 감동을 느끼는 것과 결이 다르다. 거기엔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나, 생활이 매끈하게 풀리길 바라는 마음 같은 게 있으니까. 그 때문에 창작자는 참여자가 원하는 방향과 소설 속 이야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이 : 우리의 작업은 참여자의 사생활을 보기 좋게 스타일링해주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한 편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소설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기 제공자는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박 : 본인이 한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작가에게도 흔한 경험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소설 공개에 앞서 완성된 소설을 참여자가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것도 메리트라 할 수 있다.
이 : 가수들이 팬을 위해 만든 노래를 생각해보자. 팬들은 가수와 공통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 노래를 듣고 즐긴다. 일반 청자와 즐기는 범위가 다르다. 단순한 ‘공급-수요’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주고받기’다. 프로젝트 참여자가 느낄 법한 즐거움은 이와 유사할 것이다.
강 : 동의한다. 프로젝트에 일기 본문의 이미지를 게시하지만, 참여자는 제3의 독자가 읽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느끼지 않을까. ‘내 일기의 어떤 부분이 소설 속에서 이렇게 바뀌었구나’ 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느낄 수 있다.
박 : 《비유》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우리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통해 일기를 제공받아 소설을 쓰고, 해당 계정(@171.soseol)에 게재해보았다. 일기 속 화자에 대한 정보 없이 소설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흥미롭다는 반응이 있었다. 소설 속 캐릭터에 공감한 참여자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거 아니냐’는 감상을 전했다.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나게 되더라도 자신이라면 못했을 일을 소설 속에서 하는 것이 신선하다는 평도 있었다. 보통 그전에 소설을 썼을 때에는 겪어보지 못한 직관적인 독자평이었다. 이 단순한 주고받기가 우리의 창작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다.
강 : 참여자가 아닌 일반 독자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하는가.
이 : 한 화에 일기와 작품, 작가노트가 함께 들어간다. 일반 독자 또한 작품의 모티브와 구상, 집필 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강 : 우리 프로젝트가 문학을 가까이하지 않던 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시험 삼아 일기를 받아보며 가장 놀랐던 건, 평소 책을 즐겨 읽든 그렇지 않든 모두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제 사생활이 이야기가 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글을 읽는 행위에도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다. 일기가 소설이 되는 작업은 독서하기에 있어서, 나아가 글쓰기에 있어서 문학을 멀리하는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 : 가끔 SNS에서 아주 추잡스러운 감성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런 계정을 눈앞에 두고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오래 생각했다. 때마침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집하듯 모아 나의 방식으로 창작한 경험이 떠올랐다. 그러던 와중 일기라는 보다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의 글쓰기와 협업하듯이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다양한 양상의 일기에 걸맞은 다채로운 글쓰기가 가능하길 바랐고. 실제로 우리는 171小說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창작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혹여 이 시도를 불편하게 느낄 사람도 있을까?
이 : 우리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전문적으로 써온 작가는 아니다. 그점이 해당 장르의 작가와 독자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우리가 작가로서 생존하려는 하나의 방식임을 고려한다면, 너그러이 봐주지 않을까. 열심히 쓰는 것만이 답인 것 같다.
강 : 한국에선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구분이 지나치게 명징하다 생각한다. 그 구분을 오히려 내부에서 부추기고 있다고도 본다. 우리는 아직 이렇다 할 울타리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정해진 공식을 무시하는 일에 더 자유로울지도 모른다. 오만일지 모르겠지만 현 시점에서 장르에 관한 논쟁은 우리에겐 소모적이다.
박 : 나는 우리가 팀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에 큰 신뢰를 느낀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서로 보완할 부분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 : 끝으로 각자 일기를 받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 유명인이어도 좋으니 가볍게 생각해보자.
이 : 홍진경의 일기를 받고 싶다. 그가 싸이월드에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방송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글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마음 따뜻한 사람의 일기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
박 : 나는 엄마의 일기를 받아보고 싶다. 엄마는 내 일기를 많이도 훔쳐봤겠지만, 내가 본 엄마의 일기라곤 육아일기가 전부다. 나는 현재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의 엄마의 나이를 넘어섰다. 요즘 엄마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상을 사는지 궁금하다.
강 : 그렇지 않아도 이미 엄마에게 일기가 있으면 달라고 말해놓았다. 언젠가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쓴 일기를 본적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시절 일기를 소설로 재구성해보고 싶어졌다. 유명인은 아이유의 것을 받아보고 싶다. 실제로 일기를 많이 쓴다고 한 게 기억난다.
이 : 일기에서 가사로 쓸 문장을 많이 얻는다더라. 가사가 되기 전 날것의 문장이 궁금하다.
박 : FM의 삶을 산 사람의 일기도 보고 싶다. 정해진 계획 하에 하루가 치열하게 흘러갈 것 같은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일기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세지와 프로필의 구글폼을 통해 모집하고 있다.
꾸밈없이 쓴다는 것. 깊은 고민을 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쓴다는 것. 그것이 일기의 본질이자, 일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의 재료이지 않을까.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이야기를 소설의 세계로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창작한 소설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하려 한다. 그 목적을 앞서 밝히며 우리의 작업을 시작해본다.
※171小說은 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소설을 2화부터 연재합니다. 그에 앞서 창작에 필요한 일기를 모집하려 합니다. 참여는 인스타그램 @171.soseol 혹은 트위터 @171soseol 프로필에 링크된 구글폼을 이용해주세요. 동참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구글폼 두번째 페이지 “일기 원문 공개 희망범위” 항목의 기타 체크란에 “웹진 비유”라고 기재해주시면 됩니다. 우리의 문학과 당신의 하루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많은 참여 바랍니다. (일기 채택 시, 연재 내용 기반으로 제작한 엽서 및 포스터형 잡지 제공 예정)
“일기를 쓰는 것은 글을 쓰는 축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난 한 해 동안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는 기분 내키는 대로 앞질러 달려나가는 그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길가의 돌부리에 견딜 수 없게 차이면서 달려나가는 것이다.”1)
일기쓰기란 말을 고르지 않고, 여과 없이 ‘쓸 것’에 대해 써버리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설명은 일기쓰기의 본질을 더 파고든 것이 아닐까. 월과월과월은 앞으로 《비유》에서 불특정 타인의 일기를 받아 소설로 창작해보려 한다. 그에 앞서 우리가 펼쳐나갈 프로젝트의 방향을 짚어보자.
171(일기) 펼쳐보기
이문경(이하 ‘이’) : 일기란 무엇인가. 각자의 생각이 궁금하다.
강아(이하 ‘강’) : 문법이 올바르지 않아도 되는 글이다. 다른 창작물과 다르게 일기는 다루는 소재부터 문장을 써내려가는 방식까지 수정 과정을 크게 거치지 않는 작업물이다.
박몽(이하 ‘박’) : 그렇다면 일기는 기록과 다를까? 둘 사이엔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강 : 기록은 일기보다 좀더 기술(記述)의 성격이 강하다. 어느 기록도 완벽히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기록물은 객관에 가까운 태도를 집필의 윤리로 삼는다. 일기는 그에 비해 훨씬 무모하다.
박 : 공감한다. 그와 관련해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예로 들 수 있다. “앤이 내게 기대듯, 나도 앤에게 기댈 수 있었다. 우리 둘이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겁내지 않고 맞설 수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든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정말 그랬다면 그녀가 돌아왔을 테니까. 그리하여 앤은 가버리고, 나는 한동안 상실감에 시달리겠지. 하지만 내가 슬픔에 대해 뭘 안단 말인가?”2) 앤을 향한 내밀한 감정이 깃든 이 글은 기록이라 부르기 어렵다.
강 : 울프 또한 일기를 쓸 때, “대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순식간에 돌진하게 된다.”3)라고 했다. 이는 기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쏟아내는 것에 가깝다.
이 : 기록은 직관적 관찰이 토대가 되고, 일기는 그 관찰에 내 시선이나 감정을 담아서 글을 쓰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거리를 다르게 둔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일기를 쓸까.
박 :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펼쳐보기 위해 쓰는 것이지 않을까. 일기를 읽고 과거를 되짚는 각자의 방식이 있을 것 같다.
강 : 일기를 쓰면 당장 ‘무언가’를 해소할 수 있다. 울프는 “다만 이 견딜 수 없는 초조감을 적어 잊어버리고 싶다.”4)라고 일기에 썼다. 개인적 상념을 직설로 쏟아내며 삶의 불분명한 부분을 조율하는 것. 이것도 일기쓰기의 목적 중 하나이지 않을까.
이 : 다시 읽기 위해서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독자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바란다. 독자는 내가 될 수도, 내 일기를 몰래 보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독자를 바란다는 점에서 일기쓰기는 소설쓰기와 닮아 있다. 그렇다면 일기가 소설이 될 수 있을까.
강 : 일기 자체는 소설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이야기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 일기의 ‘이야기됨’은 거기에 있다. 다양한 이야기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한 조각. 우리 프로젝트의 출발점 역시 거기에 있다.
박 : 일기를 모티브로 소설을 쓸 땐, 인물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일인칭만이 가질 수 있는 내밀함 때문이다. 그게 기존의 소설쓰기와 우리의 작업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확실히 인물이 실패하는 이야기는 쓰지 않게 될 것 같다. 참여자가 특별히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인물을 쉽게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보통 소설을 쓸 때 실제 인물을 참고해 캐릭터를 만들더라도 그를 불행하게 만드는 데 서슴없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다를 것 같다. 참여자의 일기까지 읽어놓고 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고, 이를 해결조차 해주지 않는 서사는 쉽게 쓸 수 없다.
이 : 동감한다. 실제 일기로 소설을 쓴다는 창작의 제약이 나에게는 소설쓰기에 대한 책임감을 안겨준다.
강 : 이쯤에서 소설이 될 수 있는 순간에 대해 말해보면 좋겠다. 대부분 일상의 순간과 소설적 순간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박 :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내가 무리 없이 잘 살아서,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 살아서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것인가, 하는 착각을 했더랬다. 결과적으로 그런 건 아니지만. 내 일상에도 소설적 순간은 있었고, 그것을 실제로 쓴 적도 있다. 소설적 순간과 일상의 순간이 다르지 않다는 건 소설을 직접 써보면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일상을 돌아보며 소설을 쓰기 시작할 테니까.
강 :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틱한가, 아닌가의 여부를 놓고 소설이 되는 순간과 일상의 순간을 구분하는 듯하다. 박이 말했듯 글을 쓰면 쓸수록 소설이 되는 순간은 그 자체의 특별함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 순간이 그저 일상인지 혹은 소설인지 구분지어지는 것이다.
박 : 드라마틱한 일상은 오히려 소설로 쓰기 어려울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건 그저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일상적 풍경에서 특별함을 캐치하고 표현해내는 것이다. 이는 우리 프로젝트의 의도와 가장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기의 성격에 대한 질의를 나눌수록 주제는 ‘일기는 소설이 될 수 있는가’로 기울었다. 우리는 모두 일기에서 나름의 ‘이야기됨’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버지니아는 앞의 글에 이어 다음과 같이 쓴다. “가장 빠른 타자기보다 더 빨리 쓰지 않았다면, 또 쓰던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든지 했다면 이 글은 결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의 장점은 만약에 내가 머뭇거렸다면 빼버렸을 사소한 것들을 우연히도 건져올렸다는 데에 있다.”5)
일기 속에서 이야기를 건져올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일기는 본디 이야기가 되기 위한 글이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엔 분명 ‘이야기됨’의 징후가 있다.
171로 소설쓰기
이 : 많은 이들이 일기는 솔직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것이 어렵다. 솔직하게 쓰려고 할수록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171小說 프로젝트는 타인의 일기를 받아 소설을 창작하고, 그 일기도 함께 공개한다. 그 점이 우리가 받게 될 일기의 내용에 영향을 미칠까?
강 : 아무래도 우리가 받을 일기에는 솔직함이 담기기 어려울 것이다. 예상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 가족이 내 일기를 몰래 훔쳐본 이후로 완전히 솔직한 일기를 쓰는 게 어려웠다. 우리가 받을 일기 역시 독자가 존재하므로 솔직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박 : 나의 경우, 일기를 쓸 때 아주 내밀하고 사적인 ‘척’을 하기도 한다. 내가 죽고 나서 누군가가 내 일기를 열어보는 상상을 하며 쓴 적도 있고, 사춘기 때에는 엄마에게 받고 싶은 사과 내용을 일부러 적어놓기도 했다. 누군가 내 일기를 몰래 볼 거라고 생각하고, 일기를 쓰며 솔직함을 가장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일기를 전해줄 참여자들도 자신이 아닌 타인이 보아도 되는 일기를 선택하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의 창작에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강 : 참여자가 얼마나 솔직한가의 여부가 우리가 창작할 글의 메리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박 : 그렇지만, 솔직한가, 아니한가의 여부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창작 과정에서 그 부분을 감안해야 할 때가 있다. 참여자가 자기 이야기를 과장되게 꾸민다 하더라도, 창작자는 그 일기에서 이야기를 위한 많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강 : 맞다. 참여자 역시 일련의 판단을 거친 후 우리에게 일기를 주고, 이 일기가 소설의 밑바탕이 될 것을 고려할 것이다. 박의 말처럼 참여자의 일기에 대한 가공이 오히려 인물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확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 깊은 내면의 목소리가 담긴 일기로 소설을 쓸 때는 일기 내용을 예외 없이 고스란히 살려야 할 것 같다. 자유로운 창작이 어려울까 걱정된다.
박 : 결과적으로 우리는 참여자의 거짓말도 환영하는 걸까?
강, 이 : 그렇다.
이 : 이 프로젝트는 백일장처럼 단순히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는 엄밀히 다르다. 그 부분도 이야기해봤으면 한다. 소설을 창작하기에 앞서 적극적인 태도로 일기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 여기에 이 프로젝트만이 지닌 차별점이 있다. 우리는 일기를 읽는 ‘독자’가 되고, 제공자는 일기를 쓴 ‘창작자’가 되니까.
박 : 창작 전에 이미 한 번의 독서(참여자의 일기 읽기)를 거친다는 것이 기존의 소설 창작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겠다. 일기 내용뿐 아니라, 제공자가 일기를 제공한 의도도 우리는 함께 읽는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듯 말이다.
강 : 프로젝트 참여자는 자신의 일기를 전달하며 무엇을 기대할까? 이에 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 : 참여자는 자신의 일기가 좋은 소설의 밑바탕이 되길 바랄 것 같다. 좋은 소설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만약 참여자가 이 프로젝트의 소설을 읽으며 자신 혹은 타인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치자. 이 경우에도 창작자로서의 최소한의 윤리는 인물과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박 : 가볍게 생각해보면, 제보자는 자신이 주인공이 된 소설을 읽고 싶어할 것 같다.
강 : 내가 주인공이 된 소설을 읽는 일은 그냥 소설을 읽고 감동을 느끼는 것과 결이 다르다. 거기엔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나, 생활이 매끈하게 풀리길 바라는 마음 같은 게 있으니까. 그 때문에 창작자는 참여자가 원하는 방향과 소설 속 이야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171小說 프로젝트 참여 방법에 대한 상세한 안내서다.
171로 쓴 소설 읽기
이 : 우리의 작업은 참여자의 사생활을 보기 좋게 스타일링해주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한 편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소설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기 제공자는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박 : 본인이 한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작가에게도 흔한 경험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소설 공개에 앞서 완성된 소설을 참여자가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것도 메리트라 할 수 있다.
이 : 가수들이 팬을 위해 만든 노래를 생각해보자. 팬들은 가수와 공통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 노래를 듣고 즐긴다. 일반 청자와 즐기는 범위가 다르다. 단순한 ‘공급-수요’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주고받기’다. 프로젝트 참여자가 느낄 법한 즐거움은 이와 유사할 것이다.
강 : 동의한다. 프로젝트에 일기 본문의 이미지를 게시하지만, 참여자는 제3의 독자가 읽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느끼지 않을까. ‘내 일기의 어떤 부분이 소설 속에서 이렇게 바뀌었구나’ 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느낄 수 있다.
박 : 《비유》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우리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통해 일기를 제공받아 소설을 쓰고, 해당 계정(@171.soseol)에 게재해보았다. 일기 속 화자에 대한 정보 없이 소설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흥미롭다는 반응이 있었다. 소설 속 캐릭터에 공감한 참여자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거 아니냐’는 감상을 전했다.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나게 되더라도 자신이라면 못했을 일을 소설 속에서 하는 것이 신선하다는 평도 있었다. 보통 그전에 소설을 썼을 때에는 겪어보지 못한 직관적인 독자평이었다. 이 단순한 주고받기가 우리의 창작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다.
강 : 참여자가 아닌 일반 독자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하는가.
이 : 한 화에 일기와 작품, 작가노트가 함께 들어간다. 일반 독자 또한 작품의 모티브와 구상, 집필 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강 : 우리 프로젝트가 문학을 가까이하지 않던 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시험 삼아 일기를 받아보며 가장 놀랐던 건, 평소 책을 즐겨 읽든 그렇지 않든 모두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제 사생활이 이야기가 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글을 읽는 행위에도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다. 일기가 소설이 되는 작업은 독서하기에 있어서, 나아가 글쓰기에 있어서 문학을 멀리하는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 : 가끔 SNS에서 아주 추잡스러운 감성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런 계정을 눈앞에 두고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오래 생각했다. 때마침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집하듯 모아 나의 방식으로 창작한 경험이 떠올랐다. 그러던 와중 일기라는 보다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의 글쓰기와 협업하듯이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다양한 양상의 일기에 걸맞은 다채로운 글쓰기가 가능하길 바랐고. 실제로 우리는 171小說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창작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혹여 이 시도를 불편하게 느낄 사람도 있을까?
이 : 우리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전문적으로 써온 작가는 아니다. 그점이 해당 장르의 작가와 독자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우리가 작가로서 생존하려는 하나의 방식임을 고려한다면, 너그러이 봐주지 않을까. 열심히 쓰는 것만이 답인 것 같다.
강 : 한국에선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구분이 지나치게 명징하다 생각한다. 그 구분을 오히려 내부에서 부추기고 있다고도 본다. 우리는 아직 이렇다 할 울타리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정해진 공식을 무시하는 일에 더 자유로울지도 모른다. 오만일지 모르겠지만 현 시점에서 장르에 관한 논쟁은 우리에겐 소모적이다.
박 : 나는 우리가 팀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에 큰 신뢰를 느낀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서로 보완할 부분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 : 끝으로 각자 일기를 받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 유명인이어도 좋으니 가볍게 생각해보자.
이 : 홍진경의 일기를 받고 싶다. 그가 싸이월드에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방송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글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마음 따뜻한 사람의 일기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
박 : 나는 엄마의 일기를 받아보고 싶다. 엄마는 내 일기를 많이도 훔쳐봤겠지만, 내가 본 엄마의 일기라곤 육아일기가 전부다. 나는 현재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의 엄마의 나이를 넘어섰다. 요즘 엄마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상을 사는지 궁금하다.
강 : 그렇지 않아도 이미 엄마에게 일기가 있으면 달라고 말해놓았다. 언젠가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쓴 일기를 본적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시절 일기를 소설로 재구성해보고 싶어졌다. 유명인은 아이유의 것을 받아보고 싶다. 실제로 일기를 많이 쓴다고 한 게 기억난다.
이 : 일기에서 가사로 쓸 문장을 많이 얻는다더라. 가사가 되기 전 날것의 문장이 궁금하다.
박 : FM의 삶을 산 사람의 일기도 보고 싶다. 정해진 계획 하에 하루가 치열하게 흘러갈 것 같은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꾸밈없이 쓴다는 것. 깊은 고민을 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쓴다는 것. 그것이 일기의 본질이자, 일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의 재료이지 않을까.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이야기를 소설의 세계로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창작한 소설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하려 한다. 그 목적을 앞서 밝히며 우리의 작업을 시작해본다.
※171小說은 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소설을 2화부터 연재합니다. 그에 앞서 창작에 필요한 일기를 모집하려 합니다. 참여는 인스타그램 @171.soseol 혹은 트위터 @171soseol 프로필에 링크된 구글폼을 이용해주세요. 동참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구글폼 두번째 페이지 “일기 원문 공개 희망범위” 항목의 기타 체크란에 “웹진 비유”라고 기재해주시면 됩니다. 우리의 문학과 당신의 하루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많은 참여 바랍니다. (일기 채택 시, 연재 내용 기반으로 제작한 엽서 및 포스터형 잡지 제공 예정)
월과월과월
매주 월요일(月)에 모여,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넘나들며(越), 문장(문장의 최소 단위를 뜻하는 우리말 ‘월’)을 쓴다는 목표 아래 모인 창작 동인이다. 만화 시나리오 작가 강아는 좋아하는 만화와 소설 앞에선 조금 상기되는 편이다. 대학원생 박몽은 동경에 거주중이고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 단 한 해도 학교를 쉰 적 없는 학교 덕후다. 생활체육인 이문경은 책을 만들며 시와 소설을 읽고 쓴다.
2020/06/30
31호
- 1
-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박희진 옮김, 이후, 2009, 27쪽.
- 2
-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김선형 옮김, 문예출판사, 2004.(e-book에서 인용하여 쪽수 생략함)
- 3
- 버지니아 울프, 같은 책, 38쪽.
- 4
- 버지니아 울프, 같은 책, 82쪽.
- 5
- 버지니아 울프, 같은 책, 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