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하늘 아래 같은 레드 없다’라는 밈을 아십니까?


이것은 같은 컬러가 절대 아닙니다.

   나를 나타내는 특성 중 가장 화려했던 건 머리카락 색상과 메이크업이었다. 미의 이해·분석·재현을 긴 시간 학습했기에 내 몸을 꾸미는 일이 수월했다. 나는 90년생 백말띠에 태어난 여성이며, 30세 이후로 꾸밈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
   제목은 내 취향 아닌 영화에서 따왔다. Shade는 Shadow 또는 Spectrum이 될 수 있다. 시기마다 변화해온 나의 초상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1. 멋이라는 것이 (지갑과 함께) 폭발한다


   나는 무성하고 새까만 반곱슬 모발을 지녔다. 머리 묶어도 지저분해 보인다 해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매직 스트레이트파마를 시작했다. 뿌리가 성큼 자라면 엄마가 준 몇만원을 들고 미용실에 가서 3시간 동안 두피를 지지며 만화 삼국지를 읽었다. ‘예쁜 게 권력’인 세상 속에서 영웅을 거머쥔 중국 미인들은 모두 머릿결이 찰랑거렸다.

   중고등학생 때는 아침마다 앞머리 볼륨을 살리고, 노는 날에는 비비크림과 립틴트를 발랐다. 입시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자, 멋이라는 걸 최대치로 폭발시킬 기회가 열렸다. 새내기 때는 미용실에서 분기마다 20여 만원을 내고 다섯 시간씩 공을 들여 머리를 했다. 구불구불한 모발 뿌리를 펴고, 폈던 모발 끝은 구부렸다. 싼 약을 쓰면 모발이 상하고 헤어 디자인은 고급 기술이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의 대부분을 ‘자기관리에 투자’했다. 비싼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모발 관리 제품과 소형 드라이 용품을 늘 가방 속에 넣어다녔다.



   #2. ‘이왕이면 다홍치마’ : 시각 작업자의 분장 작업실


   대학에 다니며 시각 작업을 확장해갔다. 작업 외부적으로는, 크리틱
1) 시간에 종종 내 PT 복장이 발표 스킬과 작업 완성도보다 효과적으로 인상을 남겼다. 작업 내부적으로는, 세계의 변칙성 속에서 규칙을 뽑아내고 다듬는 방법을 배웠다. 무질서해 보이는 생명력 속에서 조화로운 비율과 독창적 의미를 찾아내기. 원석을 가공한 다이아몬드처럼 ‘다듬어야 빛이 난다’는 말은 반짝이고 싶던 나에게 도달한 진리였다.

   작업실에 연금술사 친구를 불렀다. 모발 화학식이 빛을 발해 나를 재연성했다. 헤어 매니큐어를 쓰면 염색약보다 쨍하게 발색되고 윤기 나 보인다. 인조 속눈썹을 붙이면 눈꺼풀이 무거워져 마법처럼 쌍꺼풀이 생겼다. 컬러렌즈를 끼면 눈동자에 우주가 담겼고, 립스틱 이름은 또 얼마나 매혹적이고 달콤한지! 꿈꿔왔던 모든 색으로 나를 물들였다. 스타일 참조가 된 케이팝 3대 회사 아이돌은 창법·뮤비·패션 콘셉트가 각각 확연히 달랐다. ‘스타일이 곧 브랜딩’이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각 스타일마다 캐릭터 해석, 말투와 행동이 예상되나요?



   #3. 선생님, 왜 파란 치마는 찌찌 안 가려요?


어린 찌찌는 억울하다!

   유아의 놀이는 앞으로의 역할수행의 예습이기도 하다. 내 생애 첫 코스프레는, 유치원 학예회 피날레를 장식한 미스코리아 대회였다. 지금은 잃어버린 녹화 영상에서 나는 왠지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쭉쭉빵빵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영복 가슴께에 풍선 뽕 두 개를 넣고 무대로 내보낸 선생님은 아마 깜찍함과 재미를 의도했을 것이다. 그 자리는 ‘꼬마 아가씨가 당돌함을 뽐낸 무대’였을까? 작업 자료를 모으려고 옛날 사진을 뒤지던 나는 점차 흐린 눈으로 과거를 추억 보정하기 힘들어졌다.

   이차성징 전에는 성기 구조의 차이만 있을 뿐 남녀의 외형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유치원, 혹은 그 이전부터 여자아이에게는 가슴 천과 머리끈이 주어진다. 우리 몸은 이차성징을 거치며 유전자, 성호르몬, 환경에 영향받으며 자란다. 성장기가 끝나면 골격은 성장을 멈추지만, 모발과 손발톱은 계속 길어진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아와 여아 모두. 하지만 언젠가부터 남동생은 짧고 나는 길게 길러졌다.



   #4. ‘빨간 약’을 삼켜도 보이는 잔상들 : 남들보다 강하게, 남들과는 다르게


   ‘여자 나이 스물다섯 살이면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다’는 헛소리를 복학생 선배에게 들어야 했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이후 #00계_내_성폭력 고발 운동이 일어난 건 필연적인 흐름처럼 느껴졌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온·오프라인과 내 의식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온라인에서는 누군가의 글이 내게 용기가 되고 내 글도 다른 이의 위로가 됐다. 한편 오프라인에서는 진술서를 상담센터에 제출하고 한숨 돌리면, 내가 고발한 가해자가 전화로 협박과 선처 구걸을 번갈아 지껄이는 걸 들어야 했다.


   머리로는 내 잘못이 아닌 걸 알지만, 마음에 앙금이 생겼다. 무르게 보여서 뭉개졌다는 생각으로 침잠했다. 전에는 예쁘게 보일 방법을 궁리했다면, 이제는 강하게 보일 방법을 고민했다. 당장 근육질이 되는 건 어려웠고, 헬스장 코치는 거의 남자였다. 가방에 낚시용 주머니칼을 넣어 다녔다. 이렇게까지 ‘오버’해야 하나? 살아가는 게 이미 오버였다. 그렇다면 더 요란스럽게 굴자. 도마에 패대기쳐지는 걸 거부하고 그 위로 직접 뛰어올랐다. ‘짓밟히지 않은’ 몸이라는 자원의 생명력을 주체적으로 드러내기. 공들이지 않은 듯 공들이고 클럽에 가서,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춤추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저항하려고 몸부림쳤다.



   #5. 조각조각 땃따따 꺼내보고 땃따따 맘에 들게 날 다시 조립할 거야


   생명의 위험까지 감내하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절대다수는 여성이다. 갈비뼈 제거 수술, 양악수술, 안구 미백술, 종아리근육 축소술, 사소하게는 라섹과 치아교정, 제모까지. 온라인 인기 검색어와 포털 메인, 지하철 광고에는 온통 성형을 부추기는 물방울형 여자 가슴이 걸려있다. 곳곳에 널린 규범을 내면화한 여성의 신체는 업데이트 과정에서 훼손된다. 동시에 여성의 육체는 실시간 촬영되고 편집된 이미지로 다운로드된다. 그로 인해 이 순간에도 주변 여성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각 시대의 미디어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람들의 특정 모습을 부각하고 이를 자본과 연결해왔다. 그 결과 21세기 유튜브에서는 아기가 트월킹2)을 추고 7만 조회수를 얻는다. 주류에 대항하는 대안적 미가 부상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역설적으로 또다른 미의 틀로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은 뭐든지 살 수 있다는 말로 수렴하기 쉽다. 나의 정체성을 특정하고 지지하려면 무언가를 (더)해야 한다. 하지 않음은 곧 정체, 수동, 무능이 된다. 존재를 긍정하는 과정에 ‘미적 수행’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은 언제 올까?


누군가는 가발을 즐기고, 누군가에겐 가발이 필요하다. 어느 쪽이든, 더미(dummy)조차 여성은 맨얼굴이 부정된다.



   #6. 질식과 과호흡 사이의 숨


   어떤 취향과 미감과 특성은 특히 여성에게만 지나치게 권장되거나 선호된다. 그동안 많은 시간, 노력, 금전을 들여 외면에 투자했다. 하지만 여성에게 소유가 허락된 미적 자본은 유독, 세월이 흐르면 필멸할 것들이었다. 특별함은 한시성 속에서 유효했다. 이제는 단단한 현실에 발을 딛고 싶었다. 때마침,
여성의 몸은 아름다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언어가 나에게 당도했다. 나는 그 메아리에 온몸에 녹아들도록 잠겼다. 외면에 박혔던 시선을 거두어 내면으로 두 눈을 되찾아온 여성들의 옆에서 유영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라는 단백질을 덜어낸 후, 규범적 여성성의 수행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나라는 존재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이전과 다른 시선과 질문을 던졌다. 나를 에워싼 주변의 밀도 다른 물음표에 숨 막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에게 성적 물화된 몸을 기대하는 사회의 시선에서 기꺼이 탈락을 감수하자, 돌연 일상이 쾌적해졌다. 더는 하이힐 위에 올라 절뚝이거나, 땀 흘린 모공을 메우지 않는다. 하이웨이스트 바지를 입고 밥을 남기거나, 체모를 밀다 생채기를 내지 않는다. 유리창에 비치는 내 실루엣을 집요히 훑지 않는다.




   #7. 요와 콩 사이의 틈


   외피 속에 숨겨진 알맹이, 진짜 나라는 것은 과연 존재할까? 때로는 흠집 난 껍데기와 껍질 자체가 살아온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규범으로 익힌 ‘아름다움’을 탈학습하던 초기에는 과거의 내 모습이 인생의 오점 같았다. 세안하고 이불에 누우면 사라지는 것들에 비용을 쏟았다는 게 허탈했다. 빠르게 바꾼 외면보다 내면의 속도가 뒤처지는 게 초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의 요철을 가린다고 과거가 매끈해질 순 없다. 특정 행동을 실천했다고 자기 긍정 100퍼센트 달성 수료증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흑역사라며 요즘엔 웃어넘기곤 하지만, 그 찬란했던 장막들은 내가 살기 위해 둘러쳤던 방편이었다. 매번 필사적으로 변화의 힘을 갈망해온 자신을 마주한 후, 마디 없는 성장은 불가능하단 걸 납득하기로 한다.


   일정한 흐름대로 내 이야기를 꿰어보았지만, 매 변화의 분기점과 인과관계를 깔끔히 재단하는 일에 집착하고 싶진 않다. 외면이 화려했던 시기에도 여럿과 충만한 순간이 있었고, 단출해진 이후에도 홀로 힘겨운 순간이 있었다. 탈색을 시도한 다른 계기는 이번 이야기와 겹칠 듯 겹치지 않았다. 투블럭을 시도한 직접적인 계기는 탈코르셋 의제를 접하고도 한참 후, 언뜻 다른 방향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생겨났다. 비선형적인 관계와 다층적인 결이야말로 삶의 본질 중 하나일 것이다.

   눈 감고, 몸과 마음을 환기하기. 내 안팎의 속도를 조율하고 숨 고르기.
   눈 뜨고, 몸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과, 몸이 주변에 남긴 자국을 응시하기.
   그렇게 삶은 몸에 감긴다.




모임도토리(움파)

무대에 서는 직업 때문에 옷에 대해 꽤 생각해본 보컬리스트 계피, 빈티지 샵에서 촛대를 고르듯 옷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밴드 굿즈 티셔츠를 모으는 이응, 풍선 가슴뽕을 넣고 유치원 수영복 콘테스트에 섰던 움파.

2020/09/29
34호

1
(문학·미술 작품 등의) 비평.
2
자세를 낮추고 상체를 숙인 자세에서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며 추는 춤이다. 2013년 미국을 시작으로 인기를 끌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