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산: 책
4화 세번째 산책 _황정은의 『백百의 그림자』
폭우가 쏟아지던 세운상가에서
우리가 세운상가를 방문한 주엔 500밀리미터가 넘는 이례적인 폭우가 계속되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바지가 젖고, 우산이 뒤집혔다.
‘팔월엔 비가 내렸다. 거의 매일 내렸다. 퍼붓듯 쏟아지다가 반짝 갰다가 꾸물꾸물 어두워졌다가 툭툭 떨어지다가 다시 한차례 퍼붓고 점차 가늘어져서 그 비가 밤새 이어지는, 뒤끝 있는 날씨가 계속되었다’1)는 소설의 한 구절과 묘하게 이어지는 날이었다.
황정은의 경장편소설 『백百의 그림자』(민음사, 2010)는 철거 직전의 전자상가를 배경으로 둔 소설이다. 이 상가의 나동에서 일하는 은교와 무재, 이곳에 오래 터전을 잡고 살아온 상인들의 이야기가 각 장에 하나하나 펼쳐진다.
그림자가 일어났다고 말하자 여 씨 아저씨는 눈을 깜박였다.
(…) 그래서 그림자를 따라가는 기분이 어땠나.
나쁘지 않았어요.
자꾸 따라가게 되던데요, 라고 말하자 그렇지, 라는 듯 여씨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서운 거지, 그림자가 당기는 대로 맥없이 따라가다 보면 왠지 홀가분하고, 맹하니 좋거든, 좋아서 자꾸 따라가다가 당하는 거야, 사람이 자꾸 맥을 놓고 있다 보면 맹추가 되니까. 가장 맹추일 때를 노려 덮치는 거야.2)
해나 : 백(白)의 그림자가 아닌 백(百)의 그림자다. 이 백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가.
정아 :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을 뜻하는 것 아닐까. 어떻게 해석했나?
해나 : 나는 ‘그림자’가 상황의 막막함이나 막연함, 슬픔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 그림자, 슬픔이 있다고 해석했던 것 같다.
정아 : 맞다. 그림자가 움직인다는 건 어릴 때 한번쯤 해봤을 재밌는 상상이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이 상상에 슬픔이 함께 겹치면서 처연하게 느껴졌다.
해나 :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림자에 끌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런 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연애소설인데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정아 : 사귀자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해나 : 무재와 은교의 사랑이 그저 심상하게 그려져 좋다.
정아 : 사랑에 빠져 애정 표현만 이어가기보다 아픔을 보듬는 데 더 집중하는 거 같다.
해나 : 그렇다. 이 소설의 인물 중 유독 마음이 갔던 인물은 누군가?
정아 : 오무사 할아버지. 오무사 가게를 찾아가는 과정과 할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해나 : 많은 독자들이 오무사 할아버지를 애틋하게 여길 것 같다. 나는 유곤씨에게 유독 마음이 갔다. 상가를 돌며 2천원만 빌려주지 않겠냐고 정중히 청하는 장면이나, 술값으로 판 초콜릿 다섯 개를 주는 장면이나 어딘지 모르게 순수하고 정겨웠다. 그런 유곤씨를 지켜주는 무재나 은교, 여씨 아저씨도 좋았고.
정아 : 순수하고 그런 부분에 아기자기함을 느꼈다.
해나 : 이렇게 순하고 정다운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주점에서 법석을 피우는 일행이나, 유곤씨를 가리키며 ‘저런 자에게 뭘 돈을 주느냐’고 말하는 이들은 무례하고 난폭하다.
정아 : 상가를 철거하는 과정에서의 마찰 역시 그렇다. 주인공의 일상은 소소한데, 밖에서는 생계와 관련된 차가운 사건들만 일어난다. 각각의 일화가 디테일해서 감탄했다.
대림상가를 시작으로 우리는 발길 닿는 곳은 전부 가보았다. 지하에 위치한 현재의 아케이드와는 달리 지상에 위치한 세운상가는 부지가 넓고 장대했다. 1킬로미터 정도 되는 이 거대한 건물의 신축 배경을 알기 위해선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해나 : 이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세운이라는 명칭은 무슨 뜻인가?
정아 : ‘세상의 기운 모두 여기에 모여라’라는 뜻이다. 60년대 개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소설에서 ‘가, 나, 다, 라, 마’동이 나오지 않나. 이 역시 당시 서울의 도시 계획이 얼마나 개발 중심적이었는지 나타내는 것 같다. 부르기도 쉽고, 순서 매기기도 쉽고.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명칭을 붙인 거지.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김현옥의 별명이 왜 불도저였는지 이것만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해나 : 명칭은 단순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정아 : 명칭을 붙인 건 개발자들이고, 세운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주민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40년, 현재는 50년 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각각의 동은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세운상가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서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장소가 됐으니까.
해나 : 맞다. 나는 작가가 상가의 사정이나 상황, 공간의 느낌을 잘 아는 사람이라 느꼈다.
정아 : 그렇다. 나한테 세운상가는 그동안 공부할 대상이었다. 답사를 가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삶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책의 49쪽에서 가게의 밀도를 표현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40년 가까이 많은 손님이 거래를 했을 테고, 또 수리한 물건을 안 가져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물건들만큼 거대한 상가 안에 수많은 사연이 밀도 높게 담겼다고 느껴서 그 시간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아까 해나가 말했던 백의 그림자의 의미도 이런 대목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해나 : 거시적으로 보면 세운상가의 그림자, 미시적으로 보면 인물 각자의 어둠과 슬픔을 소설에서 건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소설 속에서 가동이 사라지고 공원으로 꾸며지는데, 해가 지면 그림자가 밀려나고 빛이 내리면 밝은 부분만 예쁘게 보이듯 어둠이 사라진 가동은 마냥 깨끗하고 빛나며, 사람들은 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정아 : 맞다. 그게 슬프고 안타까웠다.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3)
해나 : 이 소설을 읽고 슬럼이라는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매체에선 슬럼이라는 단어를 희화해서 쓰는 경향이 있지 않나. 우범 지역의 대체 용어로 쓰이기도 하고, 무재의 말처럼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고려해야 할 게 많으니 슬럼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묶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정아 : 사람들은 표면적인 부분만 보고 쉽게 포장을 해버린다. 물론 범죄가 일어나고, 불법 사업이 일어나지만 부분이 전체가 되지는 않는다.
해나 : 맞다. 세운상가가 지어진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한국은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사회였다. 갈등도 많고 여전히 청산해야 할 것이 많은데, 후세에 이르러 그것을 잘 정리하기보다 막무가내로 밀어버리고 시야에서 지우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그렇기에 철거도 숱하게 일어나는 것 같고.
정아 : 그렇다. 사실 건축의 수명은 그렇게 길지 않다. 수명이 다한 터전은 새로 조성이 돼야 하지만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세대를 바꿔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은교와 무재가 오래된 상가의 새로운 세대가 되는 것처럼. 사람이 먼저 모이고 나서 터전을 잡던 예전과 달리 현대의 터전은 계획과 철거가 우선되고, 사람들의 삶은 그 뒤로 밀려나 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 장소의 세대도 쉽게 끊기는 것 같다.
상가의 끝에는 종묘가 펼쳐져 있다. 상가 5층 옥상에 올라 종묘를 내려다보았다. 비온 뒤라 길도, 건물도 선명히 보이고, 녹음도 짙었다. 상가 5층엔 주거 공간과 더불어 청년 창업자의 사무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서울시는 5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세운상가~대림상가 구간의 비어 있는 공간을 청년 스타트업 창업 공간으로 증축한다고 밝혔다.4) 탈도, 말도 많은 이곳이 앞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띤 공간으로 변모될 수 있을까.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5)
해나 : 마지막 장면이 특히 좋았다. 무재는 항상 노래를 할 때 목이 멘다고 한다. 끝까지 부르지도 못하고. 그런 무재가 마지막에는 은교에게 먼저 노래하자고 청한다. 그 부분이 또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 느꼈다. 더이상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견디려고 하는 마음. 그건 사랑으로 인해 가능하다고 본다.
정아 :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건 무섭지 않다고도 말한다. 결말도 평범한데 평범하지 않다. 다섯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해도 될 텐데 이 작가는 각 동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한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40년의 시간 앞에 예의를 갖추기 위함일 것이다. 오무사의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해나 : 다른 어딘가에서 새로운 오무사를 차리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싶다.
*10월에는 김애란 작가의 「건너편」을 읽고 노량진에 갑니다.
경계 없는 작업실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소설가 성해나와 건축학도 원정아. 문학 안에는 사람이, 사람 안에는 건축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 안에 있는 건축을 본다.
2020/09/29
34호
- 1
-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2010, 59쪽.
- 2
- 같은 책, 30~32쪽.
- 3
- 같은 책, 114~115쪽.
- 4
- 동아일보 2017년 3월 3일자 기사 〈“종로 세운상가를 청년창업 단지로”〉
- 5
- 같은 책, 168~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