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B 인터뷰(4화를 참조할 것. 바로가기)와 창작집단 담의 고민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인물을 소개합니다. 정윤희라는 인물의 프로필과 그의 가방 속 물건을 살펴보시고 그의 독백도 들어봐주세요. 무대에 오르기 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의 머릿속에 생생한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랍니다.


   1. 인물 프로필


인물 프로필 표: 이름, 나이, 가족관계, 취미, 성별, 성적지향, MBTI, 특기로 구성
이름 정윤희 성별 여성
나이 46 성적지향 여성, 남성 모두에게 호감을 느낀다.
가족관계 1남 1녀 중 둘째 MBTI 검사해본 적 없다
취미 클래식 음악 듣기 특기 언쟁, 일


   2. 윤희의 가방 속




   ① 수사 자료 더미
   현재 진행 중인 수사 자료 중 조금 더 살펴야 할 것들을 들고 다닌다. 수사 자료는 종이가 두꺼워 스테이플러로 묶이지 않는다. 사무관들이 정리한 서류를 단단한 끈으로 묶어주면 갈색 서류 봉투에 넣어 보관한다.

   ② 검정 볼펜
   사무실에 필기구가 넘치지만 필기감이 좋아서 소지하는 펜이 있다. 뚜껑을 여닫아야 하는 것은 불편해서 싫어한다. 뒤를 눌러 사용하는 볼펜을 즐겨 사용한다.

   ③ 오래된 휴대전화
   휴대전화가 없으면 업무가 불가능하다. 늘 휴대한다. 오래된 기종을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기종에 관심이 있지만 신기종은 액정이 점점 커지는 추세라 한 손에 들리지 않는다. 휴대전화의 케이스는 없다. 케이스에는 관심도 없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④ 1957이라는 이름의 향수
   선물받은 향수. 기분 전환을 위해 가지고 다닌다. 향수를 뿌리면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우디 계열의 중성적인 향이다.

   ⑤ 민트
   피곤함을 상쇄하기 위해 늘 민트를 소지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민트를 거의 모두 먹어봤다. 가루처럼 흩어지는 민트는 싫어하고 사탕처럼 단단한 것들을 좋아한다. 웬만한 민트는 자극이 오지 않아서 강한 것들로 골라서 산다.

   ⑥ 알록달록 더블클립
   가방 안에 늘 굴러다니는 더블클립. 서류가 너무 많아서 늘 더블클립이 주변에 많다. 가장 튼튼하고 단단한 제품을 선호한다. 검정색을 가장 선호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⑦ 지갑
   작은 지갑을 선호한다. 세 개의 카드 슬롯이 있고 지폐를 넣을 수 있는 형식이다. 신용카드 두 개와 신분증, 운전면허증, 넣어두고 잊어버린 명함이 들어 있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카드지갑이다. 10년은 족히 되었지만 깨끗하다.

   ⑧ 공무원증
   검찰청 출입을 위해 필요한 공무원증이다. 목에 걸고 다녀야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것이 싫어서 가방에 넣어 다닌다. 오래된 증명사진이 붙어 있다. 그 사진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3. 윤희의 독백


윤희의 독백. 총 5분 35초.
   
늦은 밤 책상에 앉은 윤희가 낡은 봉투 속에서 CD 한 장을 꺼낸다. 표면에 ‘윤희에게’라고 쓰여 있다. 오디오에 넣고 재생한다.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윤희는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쓴다.


윤희
정심에게. 심아, 정말 오랜만이다. 잘 지내? 대학 졸업하고 결혼했다는 소식까지는 들었어. 아, 그 후에 둘째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도. 서로 사느라 바빠서 안부 한번 못 물었네. 오늘,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편지를 꺼내 읽었어. 문득 네 생각이 났거든. 잊은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편지를 보니 그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랐어. 편지 속의 너는 나를 응원하고 나를 궁금해했더라.
나,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어.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서류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쁜 놈들이랑 싸우지. 재밌어. 일이 너무 재밌어서 나는 아직 결혼도 안 했어. 기억해? 내가 변호사 되겠다고 했었잖아. 아무도 내 앞에서는 말 함부로 못하게, 말빨로 이겨먹는 사람 될 거라고. 대학가서 공부하다 보니까 검사가 그렇게 멋있더라고. 심아, 네가 늘 그랬잖아. ‘너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해 내는 사람’이라고. 감나무에 올라가거나, 체육 대회 때 달리기 하거나 할 때 들었던 말이지만 그게 나한테는 주문처럼 남았어. 힘들 때마다 그 말로 버티다보니 지금은 부부장 검사가 됐네? 제법 높은 사람이야 나.
심아, 오늘 어린 후배 하나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왔더라. 임신을 했다고. 검사 일이라는 게 그래,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거든. 길면 5년이야. 지역에 연이 생기기 전에 발령이 나거든. 그래서 그만둬야겠다 싶었나봐. 엄마가 되니까, 아이랑 있어줘야 하니까. 그런데 그 맘 다 알면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고작 그것 밖에 안 되는 인간이냐고. 그럼 너는 네 이름으로 살지 못하는 거라고. 그게 용납이 되냐고. 그렇게 일부러 더 악담을 하고 화를 냈어. 멋없지?
너무 화가 났어. 왜 엄마만 하려고 하는 걸까?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엄마도 하면서 자기 이름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 그러려고 하지 않는 걸까? 알지, 쉽지 않지. 괴롭고 힘들지, 알지. 하지만 해볼 만한 일이잖아?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 후배가 그러더라. 선배는 절대로 모른다고. 마치 내가 적이라도 되는 듯이 쳐다보면서, 이해 못할 거라고. 그 눈이 너무 아팠어.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걸까?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걸까 심아?
심아, 너는 대학가요제에 꼭 나갈 거라고 했었잖아. 왜 안 나갔어? 너 정말 노래 잘했었는데. 대학가요제를 하면 혹시 네가 나오지는 않았을까 유심히 보고는 했었어. 난 정말 네가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내 주변에 너처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없었거든. 그건 지금도 유효해. 넌 내가 봤던 사람 중에 가장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야.
(잠시)
네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을 어떻게 참고 사니? 그 노래들이 다른 것들로 변했을까? 네 아이들이 그때의 우리 나이 정도가 됐겠다. 어때? 널 닮았어?
가끔은 믿어지지가 않아. 내가 이렇게나 어른으로 오래 살고 있다니. 그때는 너무 짧았는데 어른은 참 길다.
(잠시)
심아. 보고 싶다.

   
클래식 음악이 계속해서 흐른다.


   4. 1cm 리뷰단


담A
소녀, 성녀, 창녀, 엄마가 아닌 다른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 성녀, 창녀, 엄마를 읽고 보고 배워온 내가 새로운 인물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독백을 쓰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담B
윤희가, ‘왜 엄마만 하냐’고 묻는 동시에 ‘아이들은 너를 닮았냐’고 묻는 부분이 좋다. 세상에는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윤희가 있는 것처럼, 엄마로 살기로 선택한 정심이나 혹은 그렇게 살아갈 후배도 있다. 나와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들과 마주할 때 우린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윤희의 고민은 나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윤희의 고민을 좀더 지켜보고 싶은 이유다.

담C
왜 엄마만 하려고 하는 걸까? 작가와 배우, 그리고 윤희는 결국 같은 문제를 고민한다. 모두 다른 곳에 서 있는 세 사람이 말이다. 난 아빠든 엄마든 될 마음이 없으니, 이 질문은 직접적인 내 문제가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내 주변의 질문들을 외면해왔던 것 같다.




창작집단 담

구하나, 박주영, 서동민. 세 명의 극작가가 담에 모였습니다. 담담하게 다음을 도모합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담.

2020/10/27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