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3화 아, 역시 그렇죠?
없을 무(無) / 곽시원
“이 가격엔 허위 매물도 없어요.”
열흘 전이다.
동갑내기의 부동산 사장님은 한참 동안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 역시 그렇죠?”
나는 고개를 조아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쪼로록’ 하고 빨아올린 인스턴트커피는 확 식어 있었다. 아마 내 얼굴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친절히 창동과 노원까지 알아봐주신 노고에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도망쳐나왔다.
다시 나온 거리의 바람은 한결 더 차가워져 있었다.
책상 한 칸을 빌리는 데도 15만원에서 20만원.
하지만 나는 담배를 태우기 용이하고, 사람들과 마음놓고 떠들 수 있는 독자적인 공간을 원했다.
흡연 욕구가 심하게 일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이불 덮고, 만화책을 보며, 귤이나 까먹고 싶었다. 역으로 걸어가며 금일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먹구름은커녕 심지어 미세먼지마저도 없는 쾌청한 하늘의 1월이었다.
역에서 10미터 떨어진 골목에 찾아들었다. 연이어 두 대의 담배를 태우며 고민하고 나서야 비로소 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주한 지하철 노선도를 손으로 따라가며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위로 올라가야 한다. 강과 가까워지거나, 강에서 남쪽으로 더 멀어진다면 확률 자체가 없다.’
고교 시절 의정부에서부터 강남까지 통학을 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2006년 의정부역이 자아냈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떠올려본다면, 10만원 상당의 공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쁨에 조금은 들떠 있었다. 열차에 올라 이리저리 긍정적인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 굴지의 래퍼가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격이 싸기에 의정부에 연습실을 두고 있다’고 말한 기억이 났다. 어쩌면, 어쩌면.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새마을운동 주제가의 후렴부가 아직 재생 중일 것 같았던 의정부는 기억 속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신세계’.
큰 규모의 백화점과 복합 상가, 세련된 대리석 벽면은 이 주변에도 비빌 언덕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외양간을 잃은 소처럼 한참을 서성였다.
또다시 두 대의 연초를 태우고 나서야 근처 부동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보증금 없을 무(無)와 월세 열 십(十)을 읊었다. 사장님은 올해 들어 가장 환하게 웃으시며 답했다.
그런 거 없을 무(無),
주변 열 십(十) 곳을 돌아봐도 아마 없을 무(無).
그래서 나도 할말이 없을 무(無)였다.
발품이 아쉬워 한두 군데를 더 돌아보았으나 소득은 없었다. 다시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자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역 근처의 카페에서 좀전의 일들을 기록하자니, 확인사살을 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술이 당겼다. 친한 형을 불러 단골 꼬치집으로 향했다.
닭껍질에 청하를 기울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형에게 소상히 알렸다. 형은 묵묵하게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힘들지 않을까?”
모든 일에 긍정적인 형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으나, 그렇지 않은 척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역시 그렇죠?”
나는 고개를 떨구며 청하를 한 모금 마셨다. ‘쪼로록’ 하고 빨아올린 청하는 확 차가워져 있었다. 내 얼굴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상권에 밝은 꼬치집 사장님도 동의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이후 화두는 ‘공연’과 ‘닭껍질’로 넘어갔다.
나는 그날, 그렇게 실패했다.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 백은선
이 프로젝트에서 ‘자기만의 방’은 실제 자기 방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온전히 그것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생활과 분리된 공간의 존재를 시도해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놓을 수 있는 장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장소, 소설가가 소설을 동화작가가 동화를 희곡작가가 희곡을 시인이 시를 쓸 수 있는 곳. 그것을 10만원에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실험하는 것이다.
먼저 주변 지인들에게 프로젝트 개요를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대부분 반응은 불가능할 것으로 모아졌다. 안 그래도 막막한 와중에 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할지 곰곰 생각하던 중에 회의 때 이야기가 나왔던 논현역 북카페를 떠올렸다. 북카페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여러 가지 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직접 가서 시험 삼아 작업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다음날 아이를 등원시킨 후 집 밖으로 나왔다. 너무 추웠다. 너무 멀었다. 노트북, 책 등을 가지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나니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는 것 같다. 카페는 역에서 가까웠다. 심야에도 종종 영업을 한다는 점은 좋았다. 천장이 조금 높긴 했지만 격리된 공간이 있었다. 너무 뻥 뚫린 공간에서는 잘 집중을 할 수 없는 나의 성향 탓에 벽에 붙은 자리에 앉았다. 서점도 둘러보고 커피를 시키고 노트북을 꺼내고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졸리고 머리가 띵했다. 작업이 잘되지 않아 책을 조금 읽다보니 벌써 아이 하원 시간이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여기서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인 것 같다. 내 모드 전환에 필요한 시간까지 합하면 진짜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서 ‘작업실은 가까운 게 좋구나’ 혹은 ‘한 번에 갈 수 있는 대중교통이 있는 곳이 좋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쓰지 못했는데 벌써 힘이 들었다. 말도 한 번 못 꺼내본 채 여기는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작업실 구하기 프로젝트에는 지인 찬스는 불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그러나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호의만으로 10만원에 작업실을 내어줄까? 나에게 작업실을 줄 것 같은 사람 혹은 단체의 조건을 적어보았다.
첫째, 나를 알지만 나의 지인은 아니어야 한다.
둘째, 나를 모르더라도 문학 전반에 관심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셋째, 내게 호감을 가질 확률이 있어야 하고 나도 그쪽에 호감이 있어야 한다.
넷째, 10만원에 작업실을 줄 공간이 예비되어 있는 사람 혹은 단체여야 한다.
다섯째, 우리집에서 많이 멀지 않아야 한다.
이런 사람(혹은 단체)이 있을까?
우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집 앞 상가에 부동산을 가보기로 했다. 왜냐면 작업실은 가까울수록 좋기 때문이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마음의 준비를 하며 상가 앞을 서성이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막막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몰랐지만 시작하고 나서 느낀 점은 이 프로젝트는 상당한 감정노동으로써만 가능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을 잘 내세우지도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스스로의 일을 동종업계 종사자들과만 나누던 나였다. ‘자기만의 방’을 구한다는 것은 자본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자기를 내세워 얻어내는 과정에 다름 아닌 것. 그것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해야 한다는 게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입니다. 제가 방을 구하고 있는데요.”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연습한 이 멘트는 막상 통화시에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나는 곤란의 연속을 겪으며 몇 통의 전화를 하고 완전히 낙담해버렸다.
“10만원이요? 보증금은 없고요? 10만원이라고요?”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이 말이 자꾸 생각났다.
다섯번째 조건 / 임현
혼자 사는 내 자취방은 서재도 따로 둘만큼 평수도 넓고 주변 시세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에 속하는데 대신 언덕이 높다. 그냥 높은 게 아니라 진짜 엄청 높아서 우리집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모두 당황해했다.
어울리는 소설가들 중 몇이 우리집에 놀러온 적도 있었다. 언덕을 오르기 전에 나는 미리 방문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고는 했는데, 주변의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 꼭대기가 보이느냐고, “아니 거기 학원 건물 말고, 저기 저 아파트…… 이제부터 저길 사선으로 오른다고 상상하면 돼.” 하고 설명해주었다.
누군가는 또 이만하면 글을 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 아니냐고 말해주었다. 주변이 조용한 것이 무얼 쓰고 읽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느냐고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런 조건들에 대해서라면 거의 대부분 긍정하면서도 정작 나는 왜 집에서 글을 써지질 않을까, 왜 자꾸 언덕 아래 카페를 전전하며 하루 석 잔의 커피를 마시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하나, 생각했다.
사는 집이 어디든 그곳이 가장 좋은 집필 환경이라고 말하는 작가를 (드물지만) 만나면 나는 그게 참 부러웠다. 그런 취향이랄까, 적응력을 나도 가지고 싶었는데. 나름대로 집안을 카페 분위기로 꾸며본 적도 있었다. 테이블을 방 한가운데 배치하는 비효율적인 공간 활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까운 곳에 머리를 베고 누울 수 있는 이부자리가 있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까 함부로 눕기 어려운 카페 같은 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녹록지만은 않은 것이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남들도 다 좋아해서, 특히 시험 기간이라도 겹치면 좀처럼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방’을 찾기 위한 나름의 기준과 조건들을 정리해보았다.
첫째, 언덕 있는 가정집이 아니어야 하고,
둘째, 24시간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며,
셋째, 그렇다고 또 아주 조용하거나 시끄러워서도 안 된다.
넷째, 가장 문제는 그걸 월 10만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우선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중에 현실적인 제안 몇을 정리하자면 이런 것들이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가. 평일 예배당에서 글을 쓰고, 일요일은 쉬는 거지. 10만원으로 헌금을 해.”
“편의점이 좋습니다. 저도 편의점에서 공부하면서 장학금도 받고 그랬습니다. 생각보다 편의점은 학습 환경이 좋은 곳입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구하세요. 돈도 벌고 글도 쓰세요.”
“10만원으로 매주 로또를 사는 거야. 일등 되면 소설 같은 거 이제 그만 써도 되는 거 아니냐?”
또다른 누군가는 몹시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공동 작업실을 검색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파주 어디쯤이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왕복 3시간, 택시비로는 5만원에 조금 못 미쳤다.
파주 대신 걸어서 갈 수 있는 녹번동으로 향했다.
예전 질병관리본부가 있던 3만평 규모의 부지에는 새롭게 서울혁신파크가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230여 개의 예술, 기술,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혁신가들이 그곳에 입주해 있었는데 얼마 전 나는 그 중 단체 한 곳을 알게 되었다. 부지 내에 일반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여럿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그때였다.
광장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건물은 ‘미래청’으로 불렸다. 혁신단체들의 입주공간인 ‘청년청’과 마주보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노후한 건물이었고, 통로 자체가 몹시 어두웠다. 더구나 오랫동안 관공서로 쓰이던 탓인지 건물 내부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는 길이 많았는데 도무지 길일 것 같지 않은 곳을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섰을 때에야 제법 넓은 공간이 나왔다.
바깥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내부는 아늑하다고 할까, 작게 카페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것과 무관하게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넓은 목재 테이블과 벤치형 의자가 여럿 있어서 작업을 하기에 좋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아주 넓은 세미나실 같은 분위기였는데 누군가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하고 도시락도 먹고, 미취학 아동들은 뛰어다녔다. 한쪽에는 신발을 벗고 이용할 수 있는, 거실처럼 생긴 공간이 따로 있어서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이 앉아서 싸온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거나 심지어 누워서 독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시켰다. 2천원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적당한 소음이 있었고, 활기도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는 했으나 뛰어도 괜찮을 만큼 공간이 아주 넓었다. 이용료는 무료인데다가 커피값도 싸고, 배고프면 중화요리도 시킬 수 있는 뭐랄까, 아주 시민지향적인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치명적인 단점 하나가 있었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차마 그것 하나를 나는 이겨낼 수 없었다.
평일 오후 8시가 되자 카페는 더 운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공간은 계속 이용할 수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천장이 높을수록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산책을 즐기는 거라고. 따로 산책 나가지 않아도 좋을 만큼 올려다본 천장은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난방이 좋아서 외풍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지? 왜 자꾸 서늘한 기분이 드는 거지?’라고 생각한 것은 어느 순간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을 무렵부터였다.
특별히 내가 심령현상이라든지, 영적인 존재를 두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곳에 혼자 오래 있다 보면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내부가 넓고 구획이 여럿이라 사각지대도 많았다. 그런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천장이 높아서 그런지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렸다. 오래 전에 이곳이 질병관리본부였다는 이력도 왠지 무서웠다. 무엇보다 출입문을 찾아 급하게 나서게 만드는 어둑한 그 통로가 나는 가장 무서웠다.
그곳을 빠져나와 멀어지는 동안 나는 다짐했다.
낮에 오자. 사람들 많은 낮에만 오자. 그러자.
‘자기만의 방’을 구하는 조건 하나 더.
다섯째, 혼자 있는 밤에도 무섭지 않을 것.
정적인 분위기에서 나는 부드러움을 느낀다 / 최현진
삶을 통틀어 내 방을 가져본 기억은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네모난 문을 열면 침대와 책상이 들어가 있는 작은 방. 주로 거실이나 부엌에서 작업을 하는 나는 이따금 들려오는 목소리나 분주한 움직임, TV 소음에 많이 예민한 편이었다. 집에서 글을 쓸 때 언니는 ‘너 왜 이렇게 인상을 쓰고 글을 쓰냐’라며 내 표정을 알려주기도 했다. 글을 쓸 때 나는 즐겁고 행복한데, 인상을 쓰고 있다는 건 아마 그 개인적 행복과 즐거움을 방해받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글을 쓰기 위한 나만의 공간을 간절히 필요로 했던 순간은 등단을 준비할 때였다. 글을 쓰는 공간이 마땅치 않음은 때때로 가난과 연결이 되었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도 연결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 연구조교 자리에 들어가면서 공간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다. 적어도 1년간은 글을 쓸 수 있는 무상(공짜는 아니고 노동을 전제로 했지만, 까페처럼 매일 드는 비용이 없었으므로) 공간이 생겨서 든든했다. 넓은 책상, 큰 모니터와 프린트기, 푹신한 의자와 타인과 나를 분리시켜주는 파티션. 그동안 가져본 공간 중에 가장 정적이고 편안했다. 읽고 싶은 책을 원 없이 읽고 쓰면 되었다. 정적인 분위기에서 나는 부드러움을 느낀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와 비슷한 공간을 구상해나갔다.
내가 떠올린 첫번째 방은 도서관의 한 공간(세미나실, 멀티미디어실 등)이었다. 마침 집에서 가깝고 새로 지은 도서관이 있어서 나는 그곳을 1순위로 염두에 두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장점은 원하는 자료와 도서를 바로 찾아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아주 조용’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공간을 제공해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공간을 얻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첫번째는 부동산에 방문해서 월 10만원을 주고 조용하고 작은 공간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고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두번째는 자주 가는 카페에 한 테이블을 얻는 것이었고, 세번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상상들을 하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막연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다. 나는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열람실을 지나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 때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에는 총 세 분이 계셨는데, 먼저 일어나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묻는 분에게 내 이름과 동화작가라는 직업을 말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 도서관을 원한다’고 말해버렸다. 우왕좌왕 설명을 하는 사이 어린이청소년문학 담당자분이 오셨고 나는 그제서야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력서를 건네자 그때부터는 순조로웠다. 이 도서관에서 원하는 공간, 혹 봐둔 공간이 있느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사전조사 때 슬쩍 눈여겨본 공간을 말씀드렸다.
예기치 못한 전개였다. 담당자는 얼마든지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다며, 작가님을 만나게 되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서관에는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나와 도서관,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첫 실행에 덜컥 내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 따듯한 온도, 커다란 프린트기와 넓은 책상, 하얀 벽이 있는 곳. 작은 창문으로 공원이 보이고, 동화책과 어린이들로 가득한 곳에 내 자리가 생겼다.
작가들
곽시원(극작가), 백은선(시인), 임현(소설가), 최현진(동화작가)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