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요 밑 콩 패션쇼 S/S 2021>(총 2분 17초) ∞ _이응 개인 원고를 쓸 때 찍었던 자화상이다. 왼쪽은 집에서 단벌로 가장 자주 입는, 목이 잔뜩 늘어난 원피스 수준의 반팔 티셔츠이다. 알몸이 아닌 이상 가장 날것의 ‘나’에 가깝다. 오른쪽은 내가 가진 옷 중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화려한 패턴과 쨍한 색감의 옷들, 그리고 악세서리들을 잔뜩 꺼내어 죄다 걸쳤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주 오랫동안 성을 여자 혹은 남자로만 구별했다. 하지만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a Amercian)등 새로이 발표되고 있는 연구에 따르면 성은 스펙트럼임이 자명하다. 점심 메뉴를 선택할 때엔 한식, 양식, 중식, 일식의 분류에서 시작하고, 도서관에선 수많은 숫자로 정리된 책들 사이를 걷는다. 분류와 정의에 드는 양가적인 감정을 어찌할 수 없겠다. 분류와 정의가 분명 필요한 때가 있지만, 불필요할 때조차도 끼어드는 것은 때론 폭력적이라고까지 생각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MBTI 테스트로 자신의 성향에 이름을 붙이고, 각 성향의 특성을 나열하며 그에 맞는 것을 신기해한다. 요 밑 콩, 이 프로젝트는 분류와 정의를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닌데도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정의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각자 자신에 대한 첫 원고를 쓰고, 페어를 이루어 상대에 대한 원고를 쓰면서, 우리는 우리가 보는 사람 ‘이응’ ‘움파’ ‘계피’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렸다. ‘너는 이렇구나!’와 같은 말들은 아주 다정하면서도 가끔 잔인하기도 하다. ‘이렇지 않은’ 내가 분명히 ‘이런’ 내 곁에 딱 붙어 있으니까. 사람이 다면적이란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 되레 너무 쉽게 잊히는 게 아닌가 싶다. 첫 원고를 쓰고 나서 셋이 함께한 모임에서 나는 ‘말하고 나니까 더 강화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땐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상에서, 아침에 입을 옷을 고를 때, 버릴 옷을 정리할 때, 새로 사고 싶은 옷이 생겼을 때, 이 프로젝트에서 내렸던 나에 대한 정의는 의미가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아주 다르고 새로운 가치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응이지만, 움파이기도 했고, 계피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한히 나아가는 화살표를 개인 원고의 제목으로 한 것이 제법 괜찮았단 생각이 든다. 우리 셋은 다 각자의 화살표를 갖고 지내며 달라지다가 겹쳐지기도 하고, 다시 평행을 이루기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은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오돌토돌 완두콩처럼 _움파 계피는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즐겨 입고, 자기 목소리에 어울리는 노래를 부른다. 이응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며, 무엇이 본인에게 행복감을 주는지를 안다. 자기가 누군지 알고,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사람들. 그런 여자들을 늘 닮고 싶었다. 그들이 되고 싶었고,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계피와 이응과 움파. 여자들이 틀에 맞추는 걸 잘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아니었다. 우리는 어딘가로부터 튀어나와 있고, 뛰쳐나오고 싶어한다. * #이야기 처음엔 픽션 형식으로 나를 풀어내야 독자가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익명성과 안전에 관해서도 생각했고, 더 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쓰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살면서 영향을 받은 글 중 많은 것들은, 보통의 일상을 사는 이들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자기고백적 이야기였으니까. 이야기를 상상하는 건 늘 즐겁지만, 이번엔 꼭 그런 방식이 아니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얘기를 불쑥 꺼내놓는, 언니와 이응을 포함한 여성들에게 감사하다. 그들이 거침없이 밀어내는 썰물의 선을 종종종 쫓아가며, 나 또한 어설프게나마 겁없이 밀고나갔던 한 해였다. 덕분에 지친 순간을 넘어 오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눌 여자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시발점 내가 과거에서 단절되었다고 느꼈다는 계피 언니의 말을 종종 떠올린다. 과거는 타의로 태어난 내게 쥐어진 비루한 자원이었고, 내가 어떻게도 바꿀 수 없이 멀어진 결과였다. 딱히 유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서먹한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강하게 영향받았다고 느낀다. 매번 날 뒤흔든 사건들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모두 집요하게 의식해왔다. 그렇기에 다음 행보를 선택할 때 욕망의 맥락을 보며, 내 표피와 알맹이 모두 탈피해나가는 전략을 서슴없이 취할 수 있었다. #수평계 어떤 형태로든지 작업을 공개하는 건, 이응의 말처럼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선 긋기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삶의 타임라인에는 들쭉한 마디의 굴곡만 도드라져 보이게 된다. 외부에서 보면 결심은 얼핏 결단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 비장함 앞에서, 평소의 내가 소심하고 실없고 웃긴 사람이라는 건 희미해질 때도 있어 아쉽다. 생활인으로서 나는 내 포지션을 주변에 맞추거나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다만 어느 순간(특히 기록과 전달의 순간)에는 내가 위치를 잡아야 타인이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목격되어야지만 파악 가능한 현실이 있다. 초반에는 매체에 고정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독자인 내가 나를 파악하고 다음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선택지 탄생은 스스로 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생기지 못했다며 신체를 손상하거나 삶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외형에 관계없이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세상을 바란다. 타고난 성별과 조건 때문에 능력이 제약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 그렇게, 나를 증명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새 나를 증명하려 애쓰며 요 밑 콩의 시간이 훌쩍 흘렀고 어느새 우리는 함께 한 살을 먹었다. 우리를 만든 사람들이 머무는 유년의 세계에서 기대하는 역할과 작별하기. 그리고 다른 세계를 그리며 자발적으로 선택한 또다른 역할을 시작하기. 사는 동안 영원히 이어질 지루한 수행이지만, 말랑한 콩 집 안에서 오돌토돌 완두콩처럼 요 밑 콩 친구들과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으면 다음 그다음 굴곡도 쿨하게 쓸어넘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 셋은 개성이 뚜렷하지만 변화에 진취적인 호방함이 모두 닮아 있다고 느낀다. 매번 각자의 세계에서 맞짱 떠 얻어내는 성취를 언제든 몇 번이든 곁에서 축하하고 또 축하받고 싶다. 9개월간의 콩 요리 _계피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비유》 공모를 준비하던 기간까지 합치면, 요 밑 콩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9개월이 걸렸다. 정체성을 탐구하는 내면 작업이었기에 요 밑 콩을 시작할 때와 완성한 뒤의 나는 사뭇 달라져 있다. 내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어떤 옷을 선택하는지 뚫어지게 바라보고 알게 된 점은, 어떤 선택도 별다른 의도 없이 실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 본질적 의도를 자각하기 어려울 때가 본인의 생각보다 많을 뿐이다. 옷은 그 육체성으로 인해 우리와 너무도 가까이 있고 그래서 더 자각하기 어렵다. 외모는 정체성의 격전지였다. 의식적으로는 독립적이라 자부하면서도 치마 입기만을 고집하며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순응을 표현했든(나), 외모 꾸미기에 푹 빠져 유희하던 중 가부장적 폭력성을 접하고 그 분노를 탈코르셋으로 표현했든(움파), 가족으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옷을 모음으로써 애착 대상에 매달리기를 의미했든(이응), 외모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체성이 달라지면 옷도 달라졌다. 옷은 불안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정형화된 여성적 외모에 안착하는 것으로 회피했고, 이응은 화려한 패턴을 지닌 수많은 물건을 곁에 둠으로써 텅 빈 장소에서 떠오르는 불안을 잠재웠으며, 움파는 힘들었던 시기의 외모를 현재 외모와 단절시킴으로써 분노가 주는 불안으로부터 도망쳤다. 분열시켰던 자신의 일부를 되찾아오는 요 밑 콩 작업은 그토록 멀어지기 위해 애썼던 불안을 다시 겪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외모와 여성주의를 연결시키는 문제의식은 진부할 만큼 오래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진부하다고 해서 고질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경우 책 속 여성주의의 외침이 잠시의 분노로 끝나버리고 삶에 적용되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내 삶에 여성주의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자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외모주의가 실제 연애 대상인 남성으로부터 인정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는 아버지로부터의 인정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에게 가부장제는 ‘아버지의 법’이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절대적이며 절실한 대상이고, 그러므로 아버지의 법은 의문 없이 따라야 할 규칙으로 작용한다. 내가 아버지의 법을 주입받은 시기가 어린 시절이고, 그만큼 아버지의 법을 따르지 않았을 때 치렀던 정서적 대가가 뼈에 새겨져 있기에 그토록 넘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지금은 받아들인다. 움파도 돌아보기 싫어했던 기억을 돌아봄으로써 지난날의 자신을 어느 정도 용서했기를 바라본다. 풀 빌라에 놀러갔을 때의 사진. 낮에만 놀았고 밤에는 격한 요 밑 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동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당도하지 못했을 지점이 많다. 1화부터 4화까지 우리는 각자의 외모 역사를 분석한 개인 원고를 썼다. 원고 자체는 개인이 작성했지만 원고를 쓰기 위해 서로의 외모와 상징에 대해 탐색하고 맹점을 건드리며 성찰했던 시간은 꽤 길다. 우리는 즐거웠다. 테이크아웃한 커피 얼음이 다 녹아서 맹물이 되도록, 오후에 시작한 자리가 저녁이 되도록 열띠게 대화했던 봄날이 떠오른다. 어둑해서 서로의 얼굴이 잘 안 보인다는 걸 깨닫고 작업실 불을 켰더니 눈이 부셨다. 이응네 집에서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대화한 다음 날 이응 현관문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고도 들었다. ‘유쾌한 이웃이 오셔서 저도 좋지만, 민감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이 저희 집까지 다 들린답니다’라는, 고맙고 다정한 주의 쪽지였다. 예민한 지점을 넘나들다보니 우리가 했던 갈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응에게 어느 한도 이상으로 밀고 들어갔다. 내 실수였다. 나는 이응이 멈춰 있는 어떤 부분이 마음 아프고 안타까웠고, 그래서 욕심을 부려 등을 밀었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깨져버릴 위기에 놓였다. 나는 후회했다. 이응이 넘어서기 힘들어하는 벽 앞에 있다면 그건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나? 내가 보기에나 벽이지 이응의 관점에서는 벽이 아니지 않은가? 내 맹점은 또 얼마나 많고 내 상처는 다 치유되었다고 볼 수 있나? 내가 한 것은 충고의 탈을 쓴 공감 불능, 염려의 표정을 한 투사였다. 내가 사과하고 다행히 이응이 받아주었지만 우리는 아직 조금은 어색하다. 앞으로 우리는 좀더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다지고 싶어한다. 이응과 있었던 일은 흐름상 지금껏 원고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요 밑 콩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얻은 중요한 경험 중 하나다. 내 미숙함을 수용해주었던 이응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5화, 6화에서 서로를 코스프레했던 작업은 기획할 때보다는 부수적이었다. 1화∼4화를 쓰기 위해 서로가 깊이 있는 대화와 탐색을 했던 경험이 사실 코스프레보다 더 코스프레의 본래 취지에 더 가깝게 작용했다. 그래도 서로의 옷을 따라 입으며 내 관점이 변화한 부분이 많다. 이응을 따라 입으면서는 그의 애착을 더 이해했고 그래서 이제 나는 내 옷에 묻은 역사를 이전보다 훨씬 아끼게 되었다. 움파를 따라 입으며 그의 시각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페미니즘 서적은 내가 아직 얽매여 있는 굴레를 더 명확히 보도록 했다. 미디어에 나오는 거의 모든 여성이 화장을 하고 있다는 점을 한번 자각하자 그 부자연스러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다음 공연에는 화장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야지 하고 결심했지만 사정상 아직 공연을 하지 못한 채다. 요 밑 콩 프로젝트가 자랑스럽다. 나는 내 글이 좋고, 팀원의 글이 좋고, 불안을 통과하며 도달한 나름의 성찰을 삶에 적용할 수 있었기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혼자서는 완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요 밑 콩 찾아내기 작업을 같이 완성한 일도 기쁘다. 우리 요 밑에는 아직도 콩이 많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로 인해 더 콩의 존재에 민감해졌기에 잘 알 수 있다. 요 밑 콩이 없어질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배가 부른 것은, 그동안 찾아낸 콩을 요리해서 이리 데치고 저리 볶아 잘 소화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X(트위터)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 URL 복사하기 ↗ 본문 인쇄하기 모임도토리 무대에 서는 직업 때문에 옷에 대해 꽤 생각해본 보컬리스트 계피, 빈티지 샵에서 촛대를 고르듯 옷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밴드 굿즈 티셔츠를 모으는 이응, 풍선 가슴뽕을 넣고 유치원 수영복 콘테스트에 섰던 움파. 2021/02/23 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