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2040년 작가의 미래
1화 소설가와 미래연구자 ‘파도’를 만들다
1. 팬데믹 이후는 디스토피아일까?
2020년, 나는 10년간 꿈꿔온 문학상을 받았다.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을 때 호주는 국경 봉쇄는 물론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 출간될 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경이 봉쇄된 호주에서 갈 수 없는 고국을 그리며 소설을 쓰고 있다.
실향 작가로 살아가다가 ‘!’(하다) 프로젝트의 ‘코로나 이후 문학의 미래’라는 주제를 접했을 때 미래연구를 하는 친구, 윤하를 떠올렸다.
윤하의 미래연구는 내게 늘 흥미로운 학문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미래 이슈를 발굴하고 네 가지의 상반된 미래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연구. 윤하의 연구소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미래 워크숍을 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흥미로웠던 건 청소년들이 ‘지구 멸망’과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 표를 많이 던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팬데믹이 찾아왔고, 어쩌면 청소년들은 그들의 생각을 더욱 굳혔는지도 모르겠다.
윤하는 흔쾌히 같이하자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미래연구 틀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코로나 이후 문학의 미래를 상상해보고 그것을 한 편의 소설로 완성하기로 했다.
우리는 연구에 앞서 팀 이름을 정했다. 파도. 윤하는 미래가 파도라고 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끊임없이 다가온다고. 그런 파도에 올라타는 연습을 하는 것이 미래연구라고도 했다. 나는 호주에서 보드 없이 파도를 탔던 경험을 떠올렸다. 타이밍을 놓쳐서 파도 안에 빨려들어가 세탁기 안 빨래가 돌듯 데굴데굴 굴렀다. 무릎에 코를 박아서 코피를 흘리는 나를 보고 호주 친구들이 그런 걸 ‘dumped’라고 한다고 했다. 파도에 버려진 것이라고. 파도 안에서 구를 때 세상이 날 버린 것 같은 기분이 잠깐 들기는 했다.
이번에는 윤하가 보드를 들고 올 테고,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보드를 띄울지 같이 고민할 것이다. 몇 번을 버려지더라도 서로를 도와 파도에 올라탈 것이고, 그 위에서 비명을 지르며 소설을 써볼 것이다. 그럼, 어디 시작해볼까.
2. 호주와 한국에서 코로나를 살다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현재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펼쳐질지 그릴 수 있을 테니. 그래서 우리는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 떠오른 이슈/변화 중 상징적인 것을 세 개의 해시태그와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해보기로 했다.
-소설가 수진이 겪은 호주의 코로나
코로나 이전에는 호주에서 외국인으로 3년간 사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았다. 작년이 처음이었다. 길에서 나를 보고 티셔츠를 끌어올려서 코를 가리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게 배를 타고 돌아가라고 했다. 이후에도 인종차별적 표현을 여러 번 듣고 알아보니 이는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다.
호주인권위원회에서는 2020년 2월 한 달간 인종차별 불만 접수가 지난 12개월을 합친 것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2) 호주국립대학교에서 같은 해 10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시안-호주인 중 84.5%가 2020년 1월부터 10월까지 한 번 이상의 인종차별을 경험했다.3) 시드니 전체 인구의 28%에 달하는 아시안-호주인에 대한 혐오가 증폭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2021년 5월 3일 호주는 인도의 자국민을 입국 금지하면서 인도발 비행기가 호주에 착륙시 5년 징역형에 처할 거라고 발표하여 다시 한번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도인-호주인 단체에서는 그들을 2급 시민으로 분류한 것이라며 분노를 표현했다.4)
다민족 사회를 지향하던 호주가 국가의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인종과 국적, 거주지 중 무엇이 한 사회의 시민으로 만드는 걸까?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도리어 국가와 국민의 정의를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
-미래연구자 윤하가 겪은 한국의 코로나
미래를 연구할 때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섣불리 확신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복수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눈으로는 결코 도래할 가능성이 없는 미래일지라도, 현재는 그 추세가 너무 뚜렷해 반드시 올 것 같은 미래일지라도, 100%란 없다. 이 과정이 어려운 것은 예측되는 각 미래상이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미래를 전망하는 미래워크숍이 매력적인 것은 참가자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미래가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아가기 때문이다. 미래에 있어 정답은 없다. 이 당연한 듯 보이지만 무척이나 깨기 힘든 확신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와 토론함으로서 내려놓는 것. 그리고 확신이 흔들린 다음 펼쳐지는 것은 좌절이 아니라 시야의 확장이라는 것. 나는 이 과정을 불확실성을 즐기는 경험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코로나19와 팬데믹은 2013년 미래연구를 시작한 이래 내가 겪은 가장 미래적인 상황이었다.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세계가 도래했고, 모두가 불확실성을 이야기 하는 시대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 이후, 국민이 바라는 일상의 미래’ 5)연구에 참여하고, 올해 ‘위드 코로나 시대 양극화 미래 전망’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팬데믹 이후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나의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을 쉐어 오피스로 옮긴 후 근무의 80%를 원격으로 진행하고, 온라인 업무 플랫폼을 물리적 사무실처럼 드나들며, 온라인 미래워크숍을 기획하고, 송년회는 랜선 파티로 대신하는 삶. 회사 이름에 담고자 했던 의미처럼6) 한미소W는 어느새 코로나19라는 파도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이번 원고를 준비하며 우리는 몇 번의 토론을 거쳤는데, 코로나19에 대해 느끼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진언니가 ‘인종차별’을 주요 키워드로 뽑았다면 나는 ‘디지털 기술’을 핵심 키워드로 보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모두가 팬데믹의 끝을 고대하는 지금 우리는 팬데믹이 만든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불확실한 여정의 끝에서 어떠한 미래들을 만나게 될까?
3. 팬데믹 이후 작가의 미래
팬데믹 이후 문학의 미래를 이야기한다면 SF문학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느닷없이 나타나 전 지구를 휩쓸었듯이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디스토피아를 SF문학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작가들이 전 지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기를 요구받을 거라고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호주에서 코로나를 겪으며 나는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의 감각이 강해졌으며 도리어 ‘인종’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The Washington Post에서는 출판사, 도서관, 각종 협회와 데이터 기업 및 독자들을 대상으로 2020년 문학 선택에서의 변화를 조사하였는데, 2020년 6월부터 인종에 관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밝힌 것이 흥미롭다.7)
과연 팬데믹은 문학 내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강화할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
이렇게 충돌하는 이슈를 포함하여 우리는 두 장의 사진만으로도 국가의 통제, 개인의 선택권, 코로나 우울증, 정신건강, 고립, 여성의 일할 권리, 과학, 안전, 공동체의 가치, 라이프스타일의 확장 등 많은 이슈를 파생할 수 있었다.
2화에서는 보다 폭넓은 이슈를 발굴하여 본격적으로 ‘팬데믹 이후의 작가의 미래’ 연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팬데믹 이후 작가의 미래에 변수(driving force)가 될 이슈들은 미래연구 방법론에 따라 점수를 측정하여 하나의 맵으로 시각화할 것이다. 점수 측정 기준은 각 이슈가 가진 영향력과 불확실성이다. 해당 이슈는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져오는가? 또한 얼마나 예측불가하고 양가적인가? 2화는 1화와 마찬가지로 함께 토론하고, 그 과정을 미래연구자 윤하가 작성할 것이다.
이 어찌 설레지 아니한가.
파도
한국미래전략연구소W 대표 황윤하와 호주에 거주하는 소설가 서수진은 팬데믹 이후 미래가 궁금해졌다.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미래연구자와 닫혀 있지 않은 미래로 뻗어나가는 소설을 꿈꾸는 작가가 만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소설을 상상한다.
2021/07/27
44호
- 1
- Chin Tan, 〈Where’s all the data on COVID-19 racism?〉, 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 2020년 5월 9일.
- 2
- Chin Tan, 앞의 기사.
- 3
- Max Walden, 〈More than eight in 10 Asian Australians report discrimination during coronavirus pandemic〉, ABC NEWS, 2020년 11월 1일.
- 4
- 〈Australia’s India ban criticised as ‘racist’ rights breach〉, BBC NEWS, 2021년 5월 3일.
- 5
-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포스트 코로나 일상의 미래』, 청림, 2021.
- 6
- 한국미래전략연구소W에서 W는 We, Wave, Wonder를 의미한다.
- 7
- Stephanie Merry and Steven Johnson, 〈What the country is reading during the pandemic: Dystopias, social justice and steamy romance〉, The Washington Post, 2020년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