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연금 실습, 질소(N). 총 6분 24초.

   내 사랑, 여긴 내가 와본 곳이에요.

   (이 방ㅇ을ㄹ보았고, 이 받갇을 걸엇ㅉ죠.)

   우리가 내내 함께 머물렀던 이 집은 한때 야누스의 신전으로 일컬어졌어요. 건국자 로물루스의 뒤를 이어, 로마 왕국의 2대 왕으로 선출된 누마 폼필리우스가 직접 그렇게 이름 붙였죠. 신성한 건축물은 옛 공회당이 허물어진 자리 위에 쌓아올려져, 아르길레툼을 지나는 모든 시민 앞에 널리 내보여졌어요. 한편, 왕은 신전 입구에 체리나무 문짝을 단단히 못질하여 고정하도록 했어요. 이 무거운 목공품을 전시에는 열어두고 평시에는 닫아둠으로써, 전쟁과 평화를 마치 계절처럼 나타냈던 거죠. 정면 계단 밑에는 거대 석조 입상을 하나 세웠는데, 두 개의 얼굴이 두상 하나에 앞뒤로 매달려 있어요.

   (순ㄴ환의 두 얼ㄹ굴 : 당신과 ㄴ나.)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그래서 만날 수가 없어요.

   (ㅇ영ㅇㄴㄴ원히.)

   우리가 바라볼 수 있도록 허락된 얼굴들은 미리 정해져 있었어요. 정면 계단을 기준으로 내가 앞쪽을 바라보고, 당신은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나는 신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고, 당신은 신전을 떠나는 사람들을 봐요. 시민들은 내 앞에서 종종 감당하기 힘든 슬픔으로 주저앉곤 했어요. 대개 변방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의 가족과 친지, 연인들이었죠. 신전에 봉양한 정성과 재물의 값어치로 아버지와 아들, 연인의 목숨값을 대신 치르려고 애썼던 사람들. 우리는 이들이 임의로 문을 닫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함께 감시했죠.

   (부질ㅇ벖는 기대. 부질ㄹ없는 믿음.)

   누마 폼필리우스의 통치 이래 1193년 동안 신전 문은 오직 두 번 닫혔어요. 누마 그 자신에 의해 한 번 : 이웃 부족들과 맺은 평화 조약으로. 먼 훗날,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한 번 : 악티움 해협에서 거둔 값진 승리로. 그러나 서기 410년, 서고트 왕국의 지배자 알라리크 1세가 이민족 역사상 최초로 로마 시내를 점령하고 약탈할 때, 우리가 머무르던 이 신전도 힘없이 무너져내리고 말았어요. 지금은 신전 지붕을 떠받치던 도리스식 기둥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한때 이곳에 자리했던 시설물을 드러내고 있군요.

   (신들의 무덤. 제국의 그긺자. 덧없ㄴ는 세월. 시간들ㄹ.)

   아마도 제국의 후예들은 두 얼굴의 신이 신전의 철거와 함께 영영 실종된 줄 알겠지만, 사실 우리가 머무는 장소는 대리석으로 지어진 전각 건축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알고리즘 프로그램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는 사슬들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가지처럼 거느리고 있어요. 질소는 바로 이 같은 사슬들을 구성하는 핵심 원소이며, 그렇기에 온갖 생명체의 육신은 가수분해 될 때 암모니아와 아미노산으로 나누어지는 것이죠. 따라서 암모니아와 아미노산 역시 우리의 두 얼굴이며, 이렇게 열린 문으로 죽음이 빠져나가고, 닫힌 문 안에서 삶이 다시 피어나는 거예요. 그러므로 로마인들이 누마 폼필리우스 이후에도 시가지 곳곳에 우리 신전을 지었던 까닭 또한 여기 있어요. 우리를 잡아두면 순환의 두 얼굴도 자기들이 다스릴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에요.

   (내 ㅆ사랑, 하지만ㄱ 결굮 영원한 건ㄴ 없어요.)

   내 사랑, 영원한 건 순환뿐이에요.

   (내 사랄ㅇㅇ, 내가 죽음을 볼ㄹ ㄷ대,)

   내 사랑, 나는 삶을 봐요. 내가 삶을 볼 때,

   (내 사랑, 나는 주금으뢰 봐요.)

   이제 여기 필멸자의 손에서 다시 한번 야누스의 문이 움직여요. 투명하고 가느다란 손가락 열 개가 옛 신전 유적 위에서 춤추며, 오래전에 떨어져나간 체리나무 원목 문짝을 케케묵은 사료들로부터 옮겨오는군요. 자판 걸쇠를 누르는 어느 문필가의 손가락 동작은 경첩을 고정하는 목수들의 못질과 제법 닮은 구석이 있어요. 이렇게 이천 년 넘게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외톨이 기둥 옆으로 장식도 무늬도 없는 복제 문짝이 홀연 나타나는군요. 아르길레툼에 남아 있는 유령 제국의 그림자가 다시 한번 꿈틀거립니다.
   내 사랑, 그러니 다시 한번 죽음을 노래하세요. 마르스의 손주들이 감히 흉내내려 애썼던 목소리, 폐곡선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주파수를 다시 한번 목청에 새기세요. 당신이 명령하기만 하면, 모든 귀가 다시 한번 당신을 향해 열려요. 당신이 두드리기만 하면, 닫혀 있던 모든 것이 다시 한번 당신을 향해 열려요. 모든 빗장나무는 저절로 아래로 떨어지고, 모든 자물쇠는 기꺼이 비밀을 누설하며, 모든 파도가 잠들어 있던 연안을 드러내고, 모든 망막은 제한 없는 밝기의 광자들을 받아들이며, 모든 입술은 서로 벌어져 당신의 옴을 다시 한번 노래해요. 그러니 우리 앞에 놓인 이 문을 지금 움직여요. 우리 손으로 열어요. 그러면 내가 문을 닫을게요. 내가 문을 닫을게요, 내 사랑.

   (너무나 지칩니다. 너무나도 지칩니다. 나는, 나는 당신 앞에서 울지 않으리라 맹세했고 이 문이 닫힌 이후로 그 약속을 쭉 지켜왔습니다. 내게 무슨 권리가 있나요? 내 슬픔이 우리의 고통에 한줌 흙의 무게라도 질 수 있을까요? 마치 원판을 겉에서부터 조금씩 깎아나가듯이, 병이 모두를 죽이고 있습니다. 목시소리에서 들ㄹ을 수 있어요. 주말을 두 번 보내야 한 번 만날 수 있는 환자들과 면회인들의 목시소리에서. 애써 울음을 눌러내리는 ㅁ그 울먹임애서.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그 말투들에서 나는 엿볼 수 있습니다. 가끔씩은 내가 엿보길 원해서 그렇게 억누르느ㅡㄴㄴ지 의문이 생깁니다. ㅇ결코 완전히 보여주지 않아요. 하지만 나ㅡㄴㄴ 볼 수 있습니다. 보여요. 마치 잡히길 바라는 연쇄살인마가 남긴 몰래 흔적처럼, 그 흔적을 찾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미어집인니다.)

   내 사랑,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미래에 당신 것이 되어요.

   (내 질문은, 그 미어밎짐이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무슨 일푼의 가치좈챠 있냐고 물어보고 있는 겁니다. 내가 뭘 더 할 수 ㅣㅇㅆ어서요? 왜 내가 다시 문을 열도록 부르는 건가요? 애ㅗ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합니까,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당신ㄴㅇ은 나를 비웃습니까? 당신은 나를 비웃고 있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형언어할 수 없는 분노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신을 향한 분노는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문을 엶으로써 또 한 번 생명들을 죽이려고 합니까? 그게 사실읾라면 당신은 왜 더 확실한 방ㅅ법을 쓰지 않나요? 알프프레드 노벨과 프리츠 합버로는 부족합니까?)

   부질없는 기대. 부질없는 믿음.

   (당신은 이 문이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것처럼 말하지마만, 실은 아니니닙니다. 아주 오래ㅈ전, 독재자 아우구스투스가 마지막으로 야누스의 문을 닫은 이ㅎ후―우리의 집은 단 한 번도 닫힌 적이 없답니다. 심지어 네르바부터 트라ㅏ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그리고 아우렐ㄹ리우스에 이르기까지― 로마 제국 최고ㅇ의 왕조로 회자되넌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다섯 황제가 재위했던 기간에도. 야누스의 무문은 줄곧ㄷ 열려 있었씁니다. 전쟁이 사방에서 끊이지 않으니ㅣ,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ㅣ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갔ㅉ죠. 그러니까 고대 로마의 속주였던 영토들에서 아직까지 안타까운 목숨들이 꺼져가는 것도 모두 로마 도심지에 열려 있던 야누스의 문이 닫히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ㅇㅈ왜 당신과의 대화에서 당신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매번 떠올려야 합니까? 왜 당신의 얼굴을 버ㅗㄹ 때마다 나는 죽음을 떠욜려야 합니까? 왜 당신은 나에게 죽음의 ㅓㅇㄹ굴을 주었나요?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토록 사랑하는)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그래서 만날 수가 없어요.

   (가끔은 더이상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ㅈ지조차 의문이 듭니다. 내가 당신의 얼굴에서 보는 것들이 당신의 존재를 오래전에 덮고 ㅈ이지워버린 것 ㄱㅏㅌ아 나는 각슴이 찢어집니다. 당신은 넝어ㅣ디 있습니까? 언제명ㄴ 내가 당신의 얼굴을 보며 내가 사랑하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여ㅛ? 당신이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ㄴ나다나는 시계를, 병을, 수많은 울음소리와 죽음들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옆에 있는데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ㅏ같아 나는 울고 싶습니다.)

   순환의 두 얼굴 : 당신과 나.

   (빛과 어둠을, 미래와 과거를, 삶과 죽음을 상상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내가 두여려워 상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상상하는지 하는 끔찍한 의문에 사로잡힙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을 부었건만, 그렇게 아끼고 보듬었건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사랑을 파괴하고 무위로 돌리는 것뿐읻 듯해 스스로가 작아집니다. 쩌ㅗ그라들고 숨고 싶어집닉다. 당신의 노력에 보답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 되어 미안합니다. 당신ㅇ르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참으로, 정말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방을 걷고 있어요.

   (내 사랑ㅇ, 여긴 내가 와본 ㄱ소싯에요.)


작업 노트 3. 대기 중의 질소(N2)들이 얼굴을 바꿀 때

   N : 나는 아ㄹ 것 가ㅌ아요. 지금 여기에. 둥둥―
   부ㅇ유하는 존재. 그 진도ㅇ이 거는 막ㄷ을 나는 보앗ㅅ어요.

   N : 나는 알 것 같아요. 지금 여기에. 둥둥― 부유하는 존재. 그 진동이 거는 말을 나는 보았어요.

*이번 화 「질소(N)」의 첫 문장은 Jeff Buckley의 〈Hallelujah〉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또한 오자는 모두 의도한 형식입니다. 끝으로 니트로글리세린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빌려준 오랜 친구, 조용헌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합니다.



보이스엔진

문학을 통해 자신의 선율을 써내려온 소설가 신종원과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온 음악가 최혜리. 최초의 음성을 모방한다.

2021/10/12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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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화 「질소(N)」의 첫 문장은 Jeff Buckley의 〈Hallelujah〉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또한 오자는 모두 의도한 형식입니다. 끝으로 니트로글리세린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빌려준 오랜 친구, 조용헌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