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인간은 혐오 발언을 하지 않을 의무와 듣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 수정헌법 78조 시행에 따라 정부는 공공장소에서 발생하는 혐오 발언을 통제하기 위해 휴머노이드 로봇 에이치알(Hate Robot)을 도입한다. 공공장소에서 혐오 발언이 발생했을 때 에이치알이 출동하여 발화자의 입과 수신인의 귀를 통제하고 발화자를 타인과 분리한 뒤 혐오 지수를 낮추기 위한 대화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에이치알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되 채록 데이터를 공유하여 딥 러닝 방식으로 대화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한다. 원활한 대민 서비스를 위해 분기별로 정기검진을 시행하며, 검진이 끝나면 공공언어센터 에이치알 관리본부 소속 직원과 면담한다. 면담자는 에이치알의 생체리듬이 기준점에서 벗어난 사례를 채록 데이터와 함께 보고받고 업무 적합 여부를 판단한다.
   다음은 김관영 주무관이 237호와 면담한 내용이다.

   2

   주무관 : 지난 분기 관찰 사례는 네 건이군요. 순차적으로 보고해주세요.
   237호 : 광장에서 피켓을 든 이들 사이에 혐오 발화가 발생했습니다. 워낙 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발화해서 저를 포함하여 백여 기가 한꺼번에 출동했습니다. 혐오 발화가 1분 이상 지속되어 수발신 차단 프로그램 가동했습니다. 인근 부스에는 자리가 없어서 10킬로미터 이내에 있던 대화 부스로 향했습니다.
   주무관 : 기록을 위해 발화자에게 고지한 법령을 말해주세요.
   237호 : 모든 생활 영역에서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前科), 성적 지향, 성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차별·혐오 발언을 금지하여 사회 모든 영역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헌법 이념을 실현하고 인간 존엄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다. 2)
   주무관 : 부스에서는 어떤 대화가 이어졌나요?
   237호 : 채록한 데이터를 재생해도 되겠습니까?
   (주무관의 승인에 따라 에이치알의 입에서 발화자의 말이 흘러나온다.)
   말 1 : 이런 좆만 한 새끼가 날 어디로 데려온 거야. 이 새끼야, 넌 에미 애비 없냐. 참, 없지. 어디서 이런 근본도 없는 고철 덩어리가 인간을 건드려.
   237호 : 수정헌법 78조에 따라 공공장소에서의 차별?혐오 발언은 격리 대상입니다.
   말 1 : 누구 맘대로. 그 법은 누가 만들었는데. 순 빨갱이 새끼들이 만든 죽창으로 이 특전사를 찔러 죽이시겠다? 내가 밀림에서도 사막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야. 어디서 애새끼들이 까불어.
   237호 : 어떤 생을 살아오셨는지 들려주시겠습니까?
   말 1 : 쫄따구 새끼가 뭘 안다고 나대. 야, 네 상관 데려와. 어디서 기계 주제에 인생을 나불거려. 당장 아까 거기로 데려다 놔, 이 새끼야.
   237호 : 그는 대화를 거부한 채 혐오 발언을 계속 쏟아냈습니다.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법령에 따라 24시간 침묵 장치를 실행시키고 가까운 지구대로 이송했습니다.

   주무관 : 두번째는 이동 수단이로군요.
   237호 :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기사는 곳곳에 불을 밝힌 대화 부스를 흘겨보며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말 2 : 그깟 말 몇 마디 했다고 독방 신세니 어디 무서워서 입이나 떼겠어. 불법 체류자며 난민이며 좆 나게 받아들여서 나라꼴을 씹창 내더니 이젠 저런 기계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네. 씨발, 나 같은 서민이 호구다, 호구.
   237호 : 에이치알 경보가 울리면 제 신분을 고지할 참이었지만 일 분이 지나도 경보는 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묻자 그는 손님들이 싫어해서 차단 장치를 설치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소속을 밝히고 법령을 고지한 뒤 대화 프로그램을 작동했습니다. 기사는 분을 삭이듯 국가 정책의 안일함에 대해 말했습니다.
   말 2 : 안 그렇습니까, 손님? 자율주행 택시를 풀어버릴 거면 나같이 계속 운전 밥만 먹어온 사람을 먼저 구제해야지. 인간 나고 기계 났잖아. 인간 좋으라고 만든 기계에 내가 왜 밥그릇을 뺏겨야 하냐고. 이젠 어떤 인간들이 내 택시를 이용하는지 알아요? 술에 찌들어서 걷지도 못하는 새끼. 꽁꽁 싸매서 눈도 안 보이는 더럽게 수상한 새끼. 짐 들어줄 손 하나 더 필요한 새끼. 가끔 보면 내가 하인인지 기사인지 모르겠다니까. 나는 기계가 아니라서 스물네 시간 벌지도 못한다고. 근데 씨발, 생각해보니까 내가 왜 기계를 모시고 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네.
   주무관 : 차단 장치는 회수했습니까?
   237호 : 회수 뒤 기사의 신상 정보와 함께 업로드했습니다.

   주무관 : 세번째는 지하철인가요?
   말 3 : 뭐야, 날 왜 여기로 데려오는 거야? 어떤 년이 신고했어. 아까 그 년이지? 돼지 같은 게 난 관심도 없는데 좆 나게 흘겨보더라.
   237호 : 공공장소에서 욕설과 촬영은 위법입니다.
   말 3 : 내가 내 폰으로 내 취미 생활 좀 하겠다는데,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데. 네가 내 부모야? 판사야? 야, 경찰 불러. 나도 변호사 부를게.
   237호 : 불법 촬영에 관해서는 데이터가 송출되어 곧 역내 경찰이 출동할 예정입니다.
   말 3 : 야, 불법은 무슨 불법이야. 그렇게 따지면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헐벗고 다니는 년들이 불법이지. 봐달라고 그러는 거잖아. 그걸 현장에서 눈으로 보는 거랑 집에 가져가서 보는 거랑 뭐가 달라.
   237호 : 그의 말은 비슷한 논조로 이어졌습니다. 혐오 지수가 내려가는가 싶더니 역내 경찰이 출동하자 다시 치솟았습니다.
   말 3 : 너희들…… 똑같아. 같은 패턴이지. 그렇게 뭐라도 지껄이게 만들면, 그 다음엔? 그러면 뭐가 나아질 거 같아? 이 빌어먹을 세상은 똑같잖아. 하나도 바뀐 게 없는데, 나 같은 사람 입이나 틀어막는다고 세상이 더 좋아질 거 같으냐고. 방구석에서는 다 똑같으면서, 위선자 새끼들. 그러면서 찔리는지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너희 같은 기계나 도입해서 외주화할 참인가. 세상 참 좋아지겠다!

   (주무관이 모니터로 에이치알의 생체리듬을 확인한다.)
   주무관 : 마지막은 메모리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군요.
   237호 : 위치 로그에 의하면 지하철역에서 나온 뒤 인근 대학의 교수 연구실에 두 시간가량 머문 기록이 있습니다만, 채록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주무관 : 이상한 일이군요. 데이터는 외부적으로는 삭제가 불가능할 텐데요.
   237호 : 정기검진에서 담당 엔지니어는 제가 기록을 지웠을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복구 불가능한 방식으로요.
   주무관 : 복구 불가능한 방식이란 없습니다.
   237호 : 파괴할 수 있습니다. (에이치알은 왼손 검지 두 마디를 분리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이 손가락처럼 물리적으로 도려내면 됩니다. 인간은 말을 칼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 칼날에 잘려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주무관 : 에이치알은 베이거나 잘려나가지 않습니다. 듣고 대화할 뿐이죠. 같은 시각, 교수 연구실 앞에서 욕설을 들었다는 학생이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김두환 교수에게 폭언한 바 있습니까?
   237호 : 기억나지 않습니다.
   주무관 : 에이치알 제1원칙을 말해주세요.
   237호 : 에이치알은 인간에게 물리적, 언어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주무관 : 에이치알 법칙을 위배하고 저장 매체 일부를 스스로 파괴했습니까?
   237호 :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임계치에 도달한 부위가 스스로 잘려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암 덩어리를 잘라내듯 말이죠.
   (에이치알의 외피가 41도에 가까워지자 냉각팬이 최고 속도로 돌아간다. 주무관은 말없이 검진 차트에 무언가 적는다.)

   3

   에이치알과 교수의 대화는 복원 불가. 교수는 두 시간 동안 감금된 채로 에이치알의 폭언을 들었다고 주장. 데이터는 없지만 목격자 있음. 당시 연구실 앞을 지나가던 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욕설이 랩처럼 쏟아졌지만 익숙한 음성은 아니었다고 함. 김두환 교수는 무수한 성추행과 폭언으로 수차례 대학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지만 경징계에 그침. 특이 사항: 사립대인 L 대학 이사장의 조카. 해당 학생은 누군가 교수에게 내지르는 막말이 경쾌하여 같은 과 학우들을 불러 함께 경청했다고 부연함.
   주무관은 사전에 조사한 내용과 상담 내용을 차트에 덧붙인 뒤 에이치알 237호의 공공근로 부적합 보고서를 최종 승인했다.


*에이치알의 외피는 인간에게 온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40도로 설정되며 1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일단공작단

유재영은 소설을 쓰고, 최고라는 책을 만듭니다. 서로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는 상대입니다. 대개는 다정한 말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달하지만, 이따금 차갑거나 뜨거운 말을 던져 파문을 일으킵니다.

2019/11/26
24호

1
에이치알의 외피는 인간에게 온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40도로 설정되며 1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2
2013년 2월 12일, 김한길 의원 등 51인에 의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되었던 차별금지법안 제안 이유를 각색함. 링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