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있는 철교는 죄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어졌는데, 감옥의 어떤 창문에서 봐도 빛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다리 옆면에 새겨진 형형색색의 보이지 않는 글자들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당신의 욕망을 묶어두는 창살로부터 도망치세요. 철교를 달려가며 발이 내는 커다란 소리를 들어보세요. 당신의 고막을 가득 채우는 침묵. 당신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무언가 당신을 따라오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간수들이 이곳에 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당신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도망치고 있기 때문에. 창살과 욕망은 하나입니다. 하나라는 조건 속에서 당신은 간수들의 눈에 띌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을 따라오는 것은 오직,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당신의 물러터진 마음입니다. 천국 같은 죽음을 견딜 수 없는 물러터진 마음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조각처럼 서 있습니다. 마음이 부서진 채. 당신이 오지 않아도 될 때 와주세요.

총 7분 1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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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죽음의 터널을 지나 맞이하게 되는 것은 뼈와 가죽으로 이루어진 나약하고 추악한 자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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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장은 두와 모든 것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두와 함께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여름엔 창밖으로 잎이 무성한 나무를 바라보며, 창밖을 날아가던 하얀 새가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 장면에 대해 썼다. 장은 선천적으로 불행하며 음울한 사람이고, 후천적으로 행복하고 밝은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으며, 후천적으로 후회를 하지 않는 성격이 되었으며, 후천적으로 자신의 불행과 음울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장은 종말이나 끝을 상상하지 않으며, 종말이나 끝이란 여기에 언제나 머무르는 숨과 같은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출발점(들숨)과 도착점(날숨)은 언제나(영원히) 순환한다. 영원회귀 같은 것은 아니고.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진 매듭이 영원히 맞닿고 엉켜 실마리도 찾을 수 없는 다차원의 매듭이 되듯이……

   인간은 살아가면서 점차 의존하는 것이 늘어나고, 살다보면 인간에게 점차 의존하는 것이 늘어난다. 그것들이 인간을 찾아낸다. 장은 지금 자신에게 의존하는 헬륨 풍선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걸어가는 단식광대와 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단식하면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대기권까지. 성층권까지. 멀리 더 멀리. 함께 날아가다보면. 내가 풍선에게 의존하는 것일까, 풍선이 내게 의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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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장은 샤워기 아래 중얼거린다.

   두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와 먼 곳. 내 몸 속에 있거나 영영 볼 수 없는 곳.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장 같은 거? 몸이 말 거는 거 나만 듣지. 너도 들을 때가 됐어. 보이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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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스키야키를 좋아해
   나는 흙이니까
   나는 사람들이 남긴 건 다 먹으니까
   나는 단란함을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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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차르트. 너는 살리에리.”
   “나도 모차르트. 너도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하나야.”
   “모차르트는 하나니까. 그러니까 너랑 내가 모차르트.”
   “하나가 뭔데?”
   “모든 걸 하나씩 세는 거. 모차르트 하나. 모차르트 둘.”
   “둘은 뭔데?”
   “하나가 하나를 만나는 거. 네가 너를 참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셋은?”
   “다 괜찮아졌을 때. 하나나 둘이 필요 없을 때.”
   “어쨌든. 모차르트는 하나야. 내가 모차르트. 너는 살리에리.”
   “아니. 나도 모차르트. 너도 모차르트.”
   “그나저나, 다 괜찮아?”
   “응.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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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 사실 애호박을 좋아한다.
   장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귀족적인 품위를 유지하고 싶어서.
   대신 주키니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애호박과 거의 똑같이 생긴.
   장은 두를 위한 스키야키를 준비한다.
   단란함의 상징. 다양한 규칙.
   장은 마켓에 있다.
   장바구니에서 주키니를 꺼내 어루만진다.
   그는 되뇌인다.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This is never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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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토지만 꼭 껴안을 수 있어♬

   베개가 차가워야 잠이 오지만
   창문을 열어두면 잠이 깨잖아
   겨울에는 베개를
   냉장고에 넣어둬
   겨울에는 베개를
   산책로에 데려가
   겨울에는 베개를
   네가 없는 내 맘속에
   겨울에는 베개를
   내가 없는 내 맘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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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미가 쓴 일기」

   하얀 새만 보면 자고 싶어.
   두는 베개를 생각한다. 장이 베고 자던 베개다. 온기가 남아 있다. 두는 온기를 흡수한다. 차가운 몸으로. 몸? 두는 몸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춰 선다.

   두는 점토지만 장을 꼭 껴안을 수 있다. 장은 뜨겁고 단단하다. 장의 뼈가 딱딱한 것 같아. 장의 피부는 부드러운 것 같아. 베개는 물렁한 것 같아. 베개 위에서 자꾸만 쓰러지는 두는 장의 생각을 흡수한다. 장의 꿈을 흡수한다. 장의 꿈에는 두가 등장하지 않는다. 장의 꿈에서, 모르는 예술가가 노래를 부른다. 모르는 영화감독이 지껄인다. 모르는 작가가 담배를 피운다. 두는 이 모든 장면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두는 더이상 떠날 수 없다.

   하얀 새는 두의 집 실외기에 찾아온다. 늦은 오후면, 햇살이 드는 실외기에 앉아 천변을 살핀다. 두에겐 슬프게도 일이 있고, 그러므로 하얀 새를 관찰하는 것은 두의 일과 중 가장 짧은 시간이었다. 두는 일을 시작하기 전 새를 들여다보고, 새로부터 떠난다.

   장이 퇴근한다. 두는 베개 위에 앉아 작업 중이다. 두의 작업은 장을 흡수하는 일. 침대 근처엔 실외기가 없고, 장은 하얀 새를 발견할 수 없다. 장은 하얀 새를 모른다. 장은 잠을 모른다. 다만 장은 베개 위의 두만 안다. 장이 두를 안는다. 따뜻한 몸으로. 두, 차가워. 너의 몸이 차가워. 두는 잠 앞에서 멈춰 선다.

   그렇다면 두는 언제 멈추지 않는가? 두는 장의 머릿속에서 자랄 수 있다. 두는 장을 사랑하니까. 장은 두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두는 장이 만든 점토니까. 두는 장이 두드리지 않은 점토니까.

   두, 떠든다. 잠든 장 옆에서.
   내가 너를 안을 수 있어.
   잠 속에는 팔이 있어.

   새는 웃는다.


*이번 4화에서는 강상헌 시인과 이현아 시인이 텍스트 작업에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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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디자이너 송제원, 세라믹 아티스트 정서일, 시인 정사민은 2020년 아트북 『텍스티미지 Textimage』 제작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 조형과 디자인 등의 유기적이며 종합적인 협업을 지향합니다.

2021/12/14
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