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g’ 프로젝트는 지난 9월 5, 6일에 확장형 프로그램 〈Ping-pong : 텍스트와 이미지 주고받기〉(온라인 워크숍)를 가졌습니다. 이번 화는 쉬어가는 화로, 확장형 프로그램에 참여한 정소영, 강동호 작가의 리뷰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확장형 프로그램 〈Ping-pong : 텍스트와 이미지 주고받기〉 리뷰①
  print(“Hello, world!”)


   언PC와 NPC


   나는 가끔 인간을 혐오한다. 이런 말을 써도 될는지? 안 될 것 같아서 ‘가끔’이라고 덧붙였다. PC함, 즉 Political Correctness―Personal Computer가 아니다―는 오늘날 중요한 요소이고 혐오는 언피씨한 단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내가 인간에게 느끼는 혐오감은 진실이고. 인간에게 느끼는 애정 또한 (역시 슬프지만) 진실이다. 대학 시절, 한 선생님은 나의 인간 기피 현상(너는 도대체 누구랑 친하니?)이 인간에게 너무 많이 기대하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고 하셨고 맞는 말이었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및 인간인 나)에게 실망하고 마는 건 관계에서 실패할 때였으니까. 타인에게 모멸감을 받았을 때나 누구나 나를 대체할 수 있는 기계적인 일을 할 때도. 바틀비의 되풀이되는 말,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를 떠올리며 왜 나는 기계가 아닌가(어차피 감정 없이 기능하는 존재로 취급되는데?!) 의아했는데 친구는 기계 개발비보다 인건비가 더 싸기 때문이다, 라고 궁금증을 해결해주었고…… 그때부터였다. 인간이기에 겪는 감정을 견뎌내야 할 때 나를 NPC(Non Player Character)로 여기게 된 게.

   신은 일종의 개발자고 나는 NPC다, 프로그래밍된 세계에서 중심인물로 임무를 달성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지만 나는 약간 오류 섞인 코드의 NPC로서 목표는 오직 로그아웃인데 NPC이므로 스스로 로그아웃할 수는 없고 NPC가 할 수 있는 정도로만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고 이것이 NPC의 최선입니다…… 속으로 되뇌는 한편,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읽고 쓰는 일 뿐인데 NPC의 문학…… 괜찮은 걸까?

   문학이 꼭 인간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인간적인 게 뭐지, 창의성? 이젠 AI도 소설을 쓴다던데(2013년, 일본의 한 문학상 공모전에서 AI가 쓴 소설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쓴다던데(중국에서 만든 AI 기반의 챗봇 ‘샤오이스’의 시선집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가 출간되었다), 그걸 인공지능만의 작업물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나, AI를 프로그래밍한 건 인간이고, AI가 학습한 문학적 데이터도 인간이 만든 건데, 그렇다고 인간만의 예술이라고도 할 수 없고, 인간의 작업도 이전의 작업을 기반으로 하니까 딥러닝의 프로세스와 다르지 않은 듯한데, 그럼 협업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건 NPC답지 않고. NPC적인 건 정확히 뭐지, 내 생각에 NPC적 관계 맺음은 멀고 희미한 연결인데. 헤드폰을 낄 때 흘러나오는 “Blooth connected” 같은, 인공지능 번역기가 Trash-can을 ‘쓰레기는 할 수 있다’로 치환할 때의 거리감 같은…… 그래, 이제는 기계 언어의 시대야, 환유에 탁월하니까, 생각했을 때

   친구가 자신이 기획한 워크숍에 참여해보라는 제안을 했다(앞서 말한 “너는 도대체 누구랑 친하니?”의 대답이 되었던 친구이며, 정적이 흐른 뒤 선생님은 “왜인지 알 것 같네”라고 말했다). 왜?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뭐에 대한 건데? 파이썬(Python)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창작에 응용할 수 있는지 볼 거야. 친구는 자세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획안에는

   ⓐ 문학 창작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협업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형식 실험 및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함께 알아본다
   ⓑ 파이썬 등과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개발환경 구축과 간단한 데이터 크롤링을 시도한다

   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워크숍에 참여하기로 했다.


   P의 세계


   워크숍은 이틀 동안 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데이터와 아카이빙이 지금까지 어떻게 예술에서 응용되었는지 살펴보고, 각자의 PC에 파이썬이 작동하도록 환경을 구축했다. 그리고 “Hello, world!”를 출력하며 파이썬과 연결되었다.
   파이썬은 읽고 쓰기 쉬운 인간적인 언어라고, 진행자는 설명했고 과연 C#언어와 비교해보니 훨씬 직관적이며 단순했다(파이썬의 철학은 ‘가장 아름다운 하나의 답이 존재한다’이다). 제어문은 print, if, else, while, for 등으로 명료했고, 사칙연산 또한 낯익은 수학기호 그대로였다. 게다가 나는 정리정돈에 가벼운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데(나의 퇴고 방식은 시험을 앞두고 책상 정리를 하는 것과 같다), 파이썬의 들여쓰기 문법은 강박적이며 가독성이 뛰어나서 다소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다……

   첫날 우리는 변수를 설정하고, 목록화하거나, 범위와 조건을 설정한 뒤, 코드를 실은 배를 파이썬의 바다로 띄워 보냈다(실제로는 Run 버튼을 누른다……). 오타나 오류가 섞여 있으면 파이썬은 즉시 우리의 코드를 거절하였으므로(파이썬은 동적 타이핑 대화형 언어이다) 채팅하는 느낌이 들었고, while과 if 명령어를 사용해서 입력문을 출력했을 때, 반복·변주되는 문장들은 프리모 레비가 묘사했던 오래된 노래를 떠올리게 했다.1) 문장을 만들고, 특정 부분의 단어만 추출하거나 뒤섞으면 기계-시를 만들어볼 수 있을지도……

   둘째 날에는 라이브러리에 대해 배우고, 웹 스크래핑을 실습했다. 크롬에서 개발자 모드에 들어가면 홈페이지를 구성하고 있는 html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필요한 부분을 긁어왔다. 파이썬이 구글맵에서 ‘수영장’을 검색하고, 서울에 위치한 수영장들을 돌아다니도록 명령했다. Run 버튼을 클릭한 것 외에 나는 어떤 동작도 하지 않았는데, 크롬 브라우저가 켜졌다. 구글맵이 실행되었다. ‘Chrome이 자동화된 테스트 소프트웨어에 의해 제어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떴다. 검색창에 수영장이 자동으로 입력되었고, 목록의 수영장들을 차례차례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주어를 누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두 손 놓고, 가본 적 없는 키즈돌핀 강서발산점을 거쳐 영등포공원 물놀이장까지, 파이썬이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래, 이제 파이썬에게 맡기는 거야, 나처럼 자료조사를 한답시고 웹에 접속한 뒤 딴 길로 새다가 뭘 찾으려던 건지 까먹지 않을 파이썬에게.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다.’2) 이것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환자, P선생이 장갑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의사는 이렇게 진단한다. “그에게는 현실의 시각적 자아가 없었다. 그는 사물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는 못했다.”
   워크숍 이후, 이 문장을 다르게 읽게 되었다. 확실히 P선생의 장갑 묘사는 컴퓨터 언어적인 측면이 있다. ‘손에 끼우는 사물’이라는 익숙함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는 굳이) 정확하면서도 미묘하게 불완전한 설명 같은. 하지만 이게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건가. 그저 다르게 세계와 사물을 탐구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으며 프로그래밍 언어와 문학적 언어가 어디에서 만나고, 어떻게 어긋날 수 있을지 상상했다. 가보지 않은 장소로 갈 방법을.


정소영

무엇은 말이 되고, 무엇은 말이 안 되는지, 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하다. 행동하는 말을 보는 게 좋아서 읽고 쓴다.

2020/10/27
35호

1
“이것은 엄밀하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노래로, 꼭 4행시로 되어 있는데 계속 되풀이되고, (…) 매번 되풀이할 때마다 4행시의 단어들 중 하나는 소리 내지 않고 손짓으로 대신한다는 특징이 있다. (…) 단어가 다 제거되어, 시가 더이상 신호들로 표시될 수 없는 관사들과 접속사들의 불완전한 더듬거림이 되거나 아니면 또다른 변형판에서 볼 수 있듯이, 율동적인 몸짓으로 표현되는 완전한 침묵이 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프리모 레비, 『휴전』(이소영 옮김, 돌베게, 2010)에서.
2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조석현 옮김, 알마,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