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권기봉
글 유은
음악 유성종


총 2분 33초.

   “수경 주임이 한 번만 수고해줘.”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이건 좋지 않은 징조다. 우리 회사는 중소기업이고 주임이라는 직급은 없다. 하지만 사장은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할 때면 꼭 나를 주임이라고 부른다. 책임감을 가지라는 압박이다.
   “제가 그걸 어떻게 해요.”
   나는 머리 아플 정도로 밝은 스튜디오를 보며 말한다. 회사에서 새로 출시하는 다이어트 보조 운동 기구와 요가 매트가 흰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배우가 연락이 안 되잖아. 여기에 여자는 수경 주임밖에 없고.”
   사장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통보한다. 그러면 저도 출연료 주시든가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는다. 출연료도 출연료지만 카메라는 질색이다. 셀카도 안 찍는 사람한테 광고 출연이라니 제정신이야?
   “못해요. 저 유연성도 안 좋고요.”
   “잘 되면 두둑하게 챙겨줄게. 비상 상황이잖아. 응?”
   사장은 그렇게 말할 뿐 보너스를 챙겨준 전례가 없다. 여태 카메라만 만지고 있던 촬영 감독이 담배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다.
   “오늘 진행 안 하시는 겁니까? 촬영 안 해도 출장비는 주셔야 합니다.”
   사장은 나를 하얀 조명 아래로 떠민다.

   세계 최초, 무중력 스트레칭 기구.
   이번 제품의 캐치프레이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 최초도 아니고 무중력 스트레칭 기구도 아니다. 단순히 뒤로 젖혀지는 철제 프레임에 지압 스펀지롤 여섯 개를 달아서 낙타 자세를 보조해주는 물건일 뿐이다. 문제는 그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잘 맞지도 않는 사우나복을 입고 시키는 대로 기구 위에 누웠는데, 낙타 자세는커녕 옆으로 미끄러질 뿐이었다.
   “수경 주임이 코어가 안 좋네.”
   사장은 무안한지 껄껄 웃으며 훈수를 둔다. 코어가 안 좋은 사람들 운동하라고 만든 기구인데 코어가 안 좋은 사람이 못 쓰면 어쩌자는 건가 싶다. 내가 다섯 번쯤 미끄러지자 촬영 감독은 더는 못 봐주겠는지 그냥 촬영을 진행하자고 한다. 사장이 항의하지만 촬영 감독이 요즘에는 이렇게 실수도 하고 자연스러운 영상이 잘 뜬다고 하니까 또 쉽게 의견이 바뀐다.
   삼 주 후에 회사 이메일로 내가 실수를 연발하는 장면과 우연히 몇 번 성공한 게 교묘하게 짜깁기된 웃긴 영상이 왔다. 영상 속에서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운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제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1962년, 마슬레니코보 출신의 여성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소련의 우주 개발 책임자, 세르게이 코롤료프에게 말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그녀에게 보스토크 계획에 참가하여 우주비행사가 되라고 설득했다. 그 당시 그녀는 타이어 공장, 방직 공장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노동자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 제의가 자신에게 수치를 주려는 고위 간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낙하산을 탈 줄 알잖아.”
   코톨료프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쨌든 1960년대 소련에서 당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우주비행사에 지원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선별되었다. 소련은 보스토크 6호를 통해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를 만들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고,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지원한 여성 중 텔레시코바는 낙하산을 수준급으로 타는 유일한 금발 여성이었다. 성적이 더 좋은 경쟁자는 금발이 아니기 때문에 탈락했다. 테레시코바는 그 사실을 몰랐다.
   합격한 테레시코바는 일 년간 훈련을 받고 1963년 6월 16일 12시 30분,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사흘 동안 우주를 비행했다. 그녀의 콜사인은 갈매기였다. 그녀는 발사 직후부터 우주 멀미로 괴로워했으며, 이튿날에는 무선 조작 실수로 교신이 끊긴 상태에서 계속 콜사인을 외치느라 목이 쉬었다. 겨우 지상관제부에 연결되었을 때 그녀는 쇳가루가 섞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갈매기!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 우주선 전부 정상이다.”

*

   조회에서 사장은 이번 광고 영상이 대성공이라면서 나를 고른 자신의 안목을 스스로 치하한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단상에 나가서 스스로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감사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웅성거림에 키득거리는 웃음이 섞여 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 유튜브를 확인한다. 내가 미끄러지는 모습을 한 시간 동안 반복 재생하는 영상, 슬로우모션 카메라로 내가 넘어지는 걸 포착하는 영상, 어쩐지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흥겨운 음악을 씌운 영상들이 검색 결과에 뜬다. 내 새로운 별명은 ○○과학 실수녀다.
   “어떡하실 거예요?”
   “좋은 일 아닌가. 수경 주임은 이제 우리 회사 얼굴마담이 된 거야.”
   “그럼 모델료도 주시든가요.”
   “어허,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게. 어차피 그 배우가 왔어도 일당 10만원어치 일 아니었나. 10만원이 뭔가, 그 열 배라도 연말 보너스로 알아서 줄 텐데 왜 나를 나쁜 사람을 만들려고 그러나.”
   사장은 뻔뻔한 얼굴로 그렇게 대꾸하고, 나는 책상 위에 드러누워 있는 묵직한 명패를 그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는다.
   내 자리로 돌아와 나는 『갈매기의 꿈』을 펼쳐든다. 마음의 평정이 필요할 때마다 읽는 책이다. 갈매기의 꿈은 보통 먹고 자는 것만 좋아하는 갈매기 무리 사이에서 홀로 비행을 연마하던 조나단 리빙스턴이 추방당하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것보다 훨씬 긴 뒷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추방당한 조나단은 계속 비행 연습을 하고, 그 비행은 점점 초월적인 것으로 변모해 간다. 그는 선지자를 만나고, 더 나은 비행 기술을 배워 나중에는 자신이 새로운 선지자가 된다. 『갈매기의 꿈』을 읽는 진정한 재미는 그런 비행의 여러 면모들을 상상하며 마치 명상하는 듯한 평온함에 빠져드는 것이다.
   나는 갈매기. 우선은 수평 비행부터 시작해볼까. 수평으로 잔잔하게 날다가 몸을 낮추고 일직선으로 낙하하면서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비행의 묘미.
   나는 갈매기. 구름을 뚫고 날아가면 시원하면서도 부드럽고, 동그란 구름 여러 개를 뚫으면 꼬치구이 모양.
   나는 갈매기.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 전부 정상이다.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우주비행에서 성황리에 복귀했다. 그녀는 소련의 영웅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소련 최고 훈장인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고, 소련 최고회의 의원과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을 역임했으며, 훗날 의사와 재혼했다.
   가장 유명한 그녀의 사진을 보면 가슴팍에 수많은 배지가 달린 걸 볼 수 있다. 그녀는 우주비행을 그만둔 후에도 공군에 남아 있다가 1997년에 은퇴를 했다. 소련은 테레시코바를 통해 누구나 원하면 가능성은 무한이 열려 있다고 체제를 선전하고, ‘여성은 약하지 않다’는 문구를 전파했다.
   체제 선전용 이벤트가 모두 그렇듯 테레시코바 이후 십구 년 동안 여성 우주비행사는 없었다. 소련의 두번째 여성 우주비행사는 1982년에 선발되었고, 미국은 그보다도 일 년 늦은 1983년부터 여성 우주비행사의 시대를 열었다.
   테레시코바는 푸틴이 집권 중인 2021년도에도 여전히 살아 있으며, 통합 러시아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푸틴의 사실상 영구집권을 가능케 하는 헌법을 제안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기회가 되면 다시는 못 돌아오더라도 화성에 가보고 싶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

   나는 유튜브 유명세를 바탕으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는다. 연말에 나온다는 100만원 이상의 보너스, 그런 건 믿지 않는다. 내가 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 하지만 유튜버도 아니고 유명한 영상의 소재가 된 사람이라는 건 큰 이력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회사뿐만 아니라 유튜브 계정들에도 이런저런 오퍼를 넣어봤지만 대부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나는 그냥 우연히 웃긴 사람이 된 것뿐이니까. 차라리 내가 유튜버를 해봐야 하나, 그런 생각에 중고로 방송 장비들을 구해서 영상을 찍어봤지만, 그 무렵 이미 나는 유행이 지난 뒤였다.
   그렇게 어영부영 한 해가 갔다.
   연말이 되어도 보너스는 나오지 않았다.
   회사는 올해 역대 최대 매출을 갱신했다.

선뜻

선뜻은 문학을 ‘먼저’ ‘뜻깊게’ 알리고자 하는 집단입니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모인 다섯 명이 한국문학의 미디어 트렌지션을 고민하며 현재의 형식보다 문학을 친근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고민합니다.
작가, 배우, 성우, 감독, 연주가, 작곡가,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경영가, 개발자, 설계사 등 다른 이름을 가진 5인 안의 끝없는 가능성을 기대해주세요.

2022/01/11
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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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권기봉
글 유은
음악 유성종